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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45분


제11과


성경과 프랑스 혁명(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272~288


기억절 :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2)


서론 :  프랑스가 하나님의 두 증인에 대하여 도전하였으므로, 그 두 증인은 오히려 전에 없이 높임을 받았다. 1804년에 영국 성서 공회가 조직되었다. 그 후로 유럽 대륙에 이와 유사한 조직체들과 지부들이 형성되었다. 또한 1816년에는 미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었다. 영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었을 때에 성경은 50개의 국어로 인쇄되어 배부되었다. 그 후 성경은 수백 가지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었다.

1792년 이전의 50년간은 외국 선교사업에 대하여 거의 유의하지 않았다. 새로운 선교회의 조직이 거의 없었고, 이방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노력한 교회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8세기의 말엽이 되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합리주의의 결과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하나님의 계시와 체험 종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외방 선교사업이 비상한 발전을 하였다.”(쟁투, 287-288)


성 바돌로매 제일(祭日)의 대학살

1. 성 바돌로매 제일(祭日)에 프랑스에서는 어떤 끔찍한 만행이 자행되었는가?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잠 12:6)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시 55:10, 11)


죄악의 참혹한 목록 가운데서 가장 암흑한 것, 곧 각 세기를 통하여 자행된 잔인무도한 일 중에서 가장 끔찍스런 만행은 성 바돌로매 제일(祭日) 대학살이다. 세상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 잔인하고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습격의 광경을 공포와 전율로써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왕은 로마교의 승려와 주교들의 강요로 그 흉악한 행위를 묵인하였다. 그리하여 사방이 고요한 한밤중의 적막을 깨뜨리고 울려 퍼진 왕궁의 큰 종소리는 학살에 대한 신호가 되었다. 수천 명의 개신교도들은 왕의 명예를 건 약속만을 신뢰하고 각자의 집에서 평안히 자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끌려 나가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였다.”(쟁투, 272)

2. 이 대학살을 음모한 자들의 보이지 않는 지도자는 누구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는가?

그들은 불법들을 탐구하며 부지런히 찾나니 곧 그들 각 사람의 속생각과 마음은 깊도다.”(시 64:6, 킹제임스)


애굽의 속박에서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셨던 것처럼 사단은 무수한 순교자를 내는 무서운 일에 있어서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학살은 파리에서 7일간 계속되었는데, 최초의 3일간은 특히 광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그리고 그 일은 왕의 특명에 의하여 파리 시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교도들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와 촌락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 일은 연령과 성별을 구별하지 않았다. 천진한 어린아이들과 백발노인도 가리지 않았다. 귀족과 농부, 노인과 청년, 어머니와 아이, 그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살육하였다. 프랑스 전국에서 학살이 2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국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7만 명이나 죽었다.”(쟁투, 272)

무신론과 이성(理性)의 여신

3. 프랑스 혁명과 공포 시대 동안에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무신론의 세력은 하나님과 어떻게 싸웠는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시 73:1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딤후 3:9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이리라.’ 프랑스 혁명과 공포 시대 동안에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무신론의 세력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대하여 싸움을 벌였는데, 그것은 세계가 일찍이 목격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국회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리고 성경을 모아다가 될 수 있는 대로 모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공중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 하나님의 율법은 유린당하고 성경에 명시된 제도들은 폐지되었다. 매주의 휴일은 경시되어 버렸고 그 대신에 10일마다 휴식하되, 그날은 연락하고 모독적인 일을 하는 데 바쳐졌다. 침례식과 성찬 예식은 금지되었고, 묘지에는 눈에 띄게, 사망은 영원한 잠이라는 표지가 붙여졌다. …

프랑스는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사 57:15)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거절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 소위 이성(理性)의 여신이라는 열등한 우상 숭배로 전락하였는데, 방탕한 한 여자가 그 여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일은 국민의 대표적 집회에서, 행정 및 입법의 최고의 권위에 의하여 결정되었던 것이다.”(쟁투, 273-275)

4. 프랑스의 무신론자들이 성취하고 완성시킨 일들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그런데 무신론자들이 완성시키고 있었던 일을 시작한 것은 법왕권이었다. 프랑스를 급속히 멸망으로 밀어 넣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인 모든 상태는 로마교의 정책이 이루어 놓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무서운 상태를 기술한 한 저자는 왕위와 교회가 그 극단적인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엄격히 비판하면 그것들은 모두 교회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법왕교는 종교 개혁을 왕위의 적이요,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는 불화의 요소라고 말함으로써 왕들의 마음을 자극하였다. 왕위를 통하여 가장 비참하고 잔인하며 가장 견딜 수 없는 압제와 박해를 행한 것은 그와 같은 모양으로 고취된 로마의 정신에 의한 것이었다.”(쟁투, 276, 277)

혁명이 일어난 근본 원인

5. 로마교는 프랑스가 종교 개혁 운동을 반대하게 하는 일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렘 14:14)


로마는 왕들의 질투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1525년에 법왕은 프랑스의 섭정(攝政)에게 말하였다. ‘이 종교광(宗敎狂-프로테스탄트를 가리킴)들은 종교계를 혼란케 하고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통치권, 귀족 계급, 법률, 질서, 계급 등을 파괴하는 자들이다.’ 불과 몇 년 후에 법왕 사절은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폐하여, 속지 마십시오. 프로테스탄트들은 종교의 질서는 물론이요, 국가의 질서도 모두 전복시킬 것입니다. 왕위는 제단(祭壇)과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 새 종교가 들어오면 새 정부가 필연적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또한 신학자들은 프로테스탄트들에 대하여 ‘사람들을 유인하여 신기한 것과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하며, 왕으로 하여금 신하들의 충성심을 잃어버리게 하여 교회와 나라를 다같이 파괴시키는 자들이다’고 주장함으로 백성들의 편견에 호소하였다. 이리하여 로마교는 프랑스가 종교 개혁 운동을 반대하게 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프랑스에서 박해의 칼을 처음으로 든 것은 왕위를 지탱하고, 귀족을 보호하고, 법률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쟁투, 277)

6. 국가의 법률을 가장 성실하게 순종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그들은 이 치명적인 정책의 결과를 내다보지 못한 채로 종교 개혁이 시작된 후로 얼마 동안이나 그것을 계속하였는가?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잠 8:15)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벧전 2:13)


프랑스 통치자들은 이 치명적인 정책의 결과를 거의 내다보지 못하였다. 성경의 교훈은 공평, 절제, 진리, 평등, 자애의 원칙들을 백성들의 마음에 심어 줄 것이었는데, 그러한 미덕들은 국가를 번영케 하는 유일한 초석이다.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4:34, 16:12).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은 국가의 법률도 가장 성실하게 순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온갖 권위를 행사하는 나라의 왕을 공경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불행히도 성경을 금지하였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파문하였다. 여러 세기에 걸쳐서 원칙과 신조에 굳센 사람들, 예민한 지력과 도덕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 자기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고난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과 용기의 사람들, 그들은 갤리선의 노예로 고역을 당하거나 화형을 당하거나 감옥 속에서 신음하였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은 먼 곳으로 피하여 간신히 안전한 곳으로 갔다. 이와 같은 상태는 종교 개혁이 시작된 후 250년간 계속되었다.”(쟁투, 277, 278)

프랑스 대혁명

7. 프랑스에서 마침내 무서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 혁명에 로마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참고하려면, 제10과 3~8문을 보라.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계 11:7)


‘그러나 맹목적이요,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프랑스는 모든 덕망 있는 교사들과 질서를 잘 지키는 우수한 사람들과 왕위를 충성스럽게 옹호해 주는 사람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그들의 나라를 세상에서 명성 있고 영광스러운 나라로 만들어 줄 사람들에게 화형이 아니면 추방을 택하라고 강요하였다. 드디어 국가의 쇠퇴는 극도에 달하여, 추방될 만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남지 아니하였고, 화형주로 끌려갈 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없어졌고, 나라 밖으로 추방할 만한 애국자들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서운 혁명이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로마교는 왕들과 지배 계급의 질투심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두도록 영향을 미쳤다. 로마교는 이와 같이 하여 나라가 약화되면 백성들과 통치자들이 모두 자기의 지배 아래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선견적 정책에 의하여 로마교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노예 상태가 되게 하려면 그들의 심령을 착고로 채워야 한다는 것과 그들이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하려면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상태에 놓아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이 정책의 결과로 초래된 육체적 고통보다 천 배 이상 무서운 것은 도덕적 타락이었다. 성경은 박탈되었고, 고집과 이기적인 교훈으로 얽힌 백성들은 무지와 미신에 가리워 졌고, 악습에 빠져 버렸으므로 자제하기에 전연 부적당하게 되었다.(쟁투, 279-281)

8. 프랑스가 로마교의 지배하에 복종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이 모든 일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불행한 프랑스는 자신이 심은 씨앗을 피로써 거두었다. 프랑스가 로마교의 지배하에 복종한 결과는 두려운 것이었다. 프랑스가 로마의 영향을 받아 종교 개혁의 초기에 최초의 화형주를 세웠던 그곳에 프랑스의 혁명당들은 최초의 단두대를 세웠다. 16세기에 개신교의 신앙을 가진 최초의 순교자들이 화형을 받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18세기에는 최초의 희생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는 자기 나라를 치료해 줄 복음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무신론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열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제재를 무시해 버릴 때 인간의 법률은 인간의 정욕이라는 강력한 물결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반란과 무정부 상태로 휩쓸려 들어갔다. 성경에 대한 투쟁은 세계 역사에서 공포 시대라는 뚜렷한 한 시대를 초래하였다. 사람의 가정과 마음에서 평화와 행복이 사라졌다. 안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의 승리자가 내일에는 혐의를 받고 정죄를 받았다. 포악과 음란이 극도에 달하였다.”(쟁투, 282)

“이 모든 일은 사단이 소원하던 일로서 그는 그 일을 여러 시대에 걸쳐서 계획하고 이루고자 노력하여 왔던 것이다. 그의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기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의 단호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저주와 불행을 가져다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파괴하고 욕되게 함으로 그분의 자비와 인애의 거룩하신 목적을 방해하여 하늘에 슬픔을 가져다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기만적인 술책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처럼 느끼게 하고, 자기가 가져온 모든 비참한 일들을 창조주의 계획의 결과처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단은 자기의 잔인한 세력에 의하여 타락하고 야수적으로 된 사람들이 자유를 얻을 때 그는 과격하고 흉악한 일을 하도록 그들을 충동한다. 그리고는 폭군들과 압제자들은 그 포악무도한 방종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자유가 가져온 결과가 어떠함을 보라고 한다.”(쟁투, 284, 285)

복음 사업의 발전

9. 요한계시록 11장 11절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니라”(사 37: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 16:21)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의 참람된 권력으로 말미암아 살해된 하나님의 충성된 두 증인은 오랫동안 잠잠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 11:11). 그리스도교를 폐하여 버리고 성경을 금지한다는 법령이 프랑스 국민 의회를 통과한 것은 1793년이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후 그 결의를 무효로 만들고 성경을 용납하는 의안을 동일한 그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세계는 성경을 거절한 결과로 생긴 가증한 범죄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으며, 사람들은 덕행과 도덕의 기초로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임을 인정하였다.”(쟁투, 287)

10.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8)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시 111:7, 8)


그 두 증인에 대하여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2). 프랑스가 하나님의 두 증인에 대하여 도전하였으므로 그 두 증인은 오히려 전에 없이 높임을 받았다. 1804년에 영국 성서 공회가 조직되었다. 그 후로 유럽 대륙에 이와 유사한 조직체들과 지부들이 형성되었다. 또한 1816년에는 미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었다. 영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었을 때에 성경은 50개의 국어로 인쇄되어 배부되었다. 그 후 성경은 수백 가지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었다(부록 25 참조).

1792년 이전의 50년간은 외국 선교사업에 대하여 거의 유의하지 않았다. 새로운 선교회의 조직이 거의 없었고, 이방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노력한 교회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8세기의 말엽이 되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합리주의의 결과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하나님의 계시와 체험 종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외방 선교 사업이 비상한 발전을 하였다(부록 26 참조).

인쇄 기술의 발달은 성경을 보급시키는 사업에 활기를 주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교통수단의 발달은 옛날부터의 편견과 쇄국주의(鎖國主義)의 담을 헐어 버렸다. 그리고 로마의 법왕이 세속적 권력을 잃어버리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수 있는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해에 걸쳐서 로마의 거리에서도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성경이 판매되었으며, 오늘날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성경이 보급되고 있다.”(쟁투, 287, 288)


[상고할 말씀]

자유의 정신은 성경과 병행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들의 마음이 각성되었다. 그들은 무지와 부도덕과 미신의 노예로 속박되어 온 질곡(桎梏)을 깨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행하기 시작하였다. 왕들은 그러한 일들을 보고 저들의 전제 정치의 장래를 염려하였다.”(쟁투,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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