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7분
제4과
제후들의 항의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197~210
기억절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서론 : “사단은 오늘날도 여전히 신앙의 자유를 파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다. 스파이얼스 항의자들이 배척한 반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오늘날 새로운 힘으로 잃어버렸던 최상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 사업이 위기에 놓였을 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집착하는 것, 그것만이 오늘날의 개혁 사업의 유일한 희망이다.”(쟁투, 205)
점점 심해지는 개혁파의 고난
1. 개신교회를 칭하는 이름으로 “프로테스탄트”라는 명칭은 어떤 의미인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개혁 사업을 위한 가장 고귀한 증언 중의 하나는 1529년 스파이얼스(Spires) 회의에서 독일의 그리스도인 귀족들이 제출한 항의서였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신앙과 용기와 견인불발은 그 후 여러 시대를 위하여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쟁취했다. 그들의 항의 때문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명칭이 개혁 교회에 주어졌다. 그 원칙이 ‘프로테스탄트의 본질’이다.”(쟁투, 197)
2. 독일의 황제 카알 5세는 종교 개혁을 주장하는 개혁파에게 어떤 요구를 하였는가? 이 요구에 응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옹호하기 위하여 누구를 일으키셨는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 22:16)
“황제는 회의석에서 종내에 종교 자유를 허락한 결과로 큰 무질서가 생겼으므로 그것의 철폐를 요구한다고 공포하였다. 이러한 전횡적인 행위는 개혁파의 의분(義憤)과 경악을 자아냈다. …
신교의 자유는 법률상으로 명시되어 있었으므로, 개혁 운동을 옹호하는 주(州)에서는 그들의 권리의 침해를 반대하는 결의를 하였다. 루터는 보름스 회의의 칙령에 의하여 파문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스파이얼스 회의에 출석하는 일을 허락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위급한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옹호하기 위하여 일으켜 주신 제후들과 동역자들이 루터를 대신하여 일을 하였다. 전에 루터의 옹호자로 일하던 작센의 프리드리히 후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그의 아우 요한 후도 또한 개혁 사업을 환영하였었다. 그는 평화의 애호자로서 신앙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하여 많은 노력과 큰 용기를 나타내었다.”(쟁투, 198, 199)
황제측과 개혁파 제후들과의 대립
3.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권에 대하여 개혁파의 제후들은 어떤 입장을 고수했는가?
“…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 1:3)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모든 정부가 국가의 권위로써 종교의 의식을 규정하거나 강요하려고 하는 것은 복음파 그리스도인들이 그처럼 고귀하게 투쟁해서 지키려고 한 바로 그 원칙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쟁투, 201)
4. 황제측에 비하여 수도 적고 로마와도 불화한 사이였지만, 개혁파 제후들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황제측에서는 그리스도인 제후들이 사람의 교리(敎理)와 사람의 요구보다 성경을 주장하여 굳게 지킬 것을 알았고, 또한 이 원칙이 인정되는 곳은 어디에서나 법왕교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시대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은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았으므로, 황제와 법왕의 사업은 강하고 개혁자의 사업은 약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만하였다. 개혁자들이 사람들의 힘만을 의지하였다면 법왕당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그들은 무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수는 적고 로마와도 불화한 사이였을지라도 그들은 그들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의회의 결의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카알 황제보다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였다.”(쟁투, 202)
개혁파 제후들의 항의서
5. 종교 자유의 양심을 억압하는 황제가 내린 칙령에 반박하여 개혁파의 제후들은 어떤 내용의 항의서를 의회에 제출했는가?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이 유명한 항의서가 담고 있는 모든 원칙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의 의미는 ‘항의자’이다-역자 주). 이 항의서는 신앙의 문제에서 사람의 두 가지 악폐에 대하여 항의하였다. 그 하나는 위정자의 강요이며, 또 하나는 교권의 남용이다. 이러한 악폐 대신에 프로테스탄트주의는 정권 위에 양심의 힘을 보이는 지상의 교회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놓았다. 첫째로 프로테스탄트주의는 신령한 사물에 있어서 세속적 권세를 거부하고 선지자와 사도들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고 말한다. 그것을 카알 5세의 왕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관을 높이고 있다. 그것은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온갖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해 준다.’ 그뿐 아니라 그 항의자들은 진리라고 확신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밝혀진 바를 믿고 순종할 뿐 아니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승려나 정권이 이를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하였다. 스파이얼스의 항의는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데 대한 엄숙한 반증(反證)인 동시에 온 인류는 자기의 양심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을 경배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쟁투, 203, 204)
6. 당시의 개혁자들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오늘날의 개혁 사업이 위기에 놓인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너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또 너에게 사람을 보내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들로 답변하게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잠 22:21, 킹제임스)
“만일 개혁 사업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후에 세속적 영광을 얻기 위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는 일에 동의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동시에 개혁 그 자체에도 어긋나는 것이 되어 마침내 자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고결한 개혁자들의 경험은 그 후 각 시대의 백성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겨 주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사단의 공격 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에도 16세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는 일을 반대하고 있다. 오늘날은 개혁자들의 교훈과 모본에서 멀리 떠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았던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단은 오늘날도 여전히 신앙의 자유를 파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다. 스파이얼스 항의자들이 배척한 반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오늘날 새로운 힘으로 잃어버렸던 최상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 사업이 위기에 놓였을 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집착하는 것, 그것만이 오늘날의 개혁 사업의 유일한 희망이다.”(쟁투, 204, 205)
개혁파에게 이른 두 번째 위기
7. 황제 카알 5세는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의회를 소집하고, 이 자리에 개혁파의 지도자들을 소집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 5:14)
“개혁 사업은 세상의 고관들 앞에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복음주의 제후들의 호소가 페르디난트 왕으로 말미암아 과거에는 거부되었지마는 지금은 황제를 비롯하여 국가와 교회의 고관들이 열석한 자리에서 그들의 사업을 진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제국을 괴롭힌 분쟁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스파이얼스의 항의가 있었던 이듬해에 카알 5세는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의회를 소집하였다. 또한 그가 친히 그 의회를 주재할 것이라는 그의 의향도 발표되었다. 거기에 개혁파의 지도자들도 소집되었다.”(쟁투, 205, 206)
8. 개혁파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왜 위기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때에 루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침체되어 가는 믿음에 활기를 북돋아 주었는가?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며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가 자고할까 하나이다 (셀라)”(시 140:5, 8)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시 9:9)
“큰 위험들이 개혁 사업을 위협하였으나 그 사업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사업을 여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복음에 대한 저들의 태도를 굳게 할 것을 스스로 맹세하였다. 작센의 선후는 그의 고문관들로부터 의회에 나가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그들은 황제가 제후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참석하기를 요구하였다고 말하였다. ‘강력한 원수의 소굴로 일부러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제후들로 하여금 오로지 용기를 가지고 처신하게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업은 반드시 구조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우리를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고 루터는 말하였다. 선후는 그의 수행원을 데리고 아우그스부르크로 떠났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침울한 얼굴과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코베르크까지 동행했던 루터는 그 여행에서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노래로 그들의 침체되어 가는 믿음에 활기를 북돋아 주었다. 영감적인 그 노랫소리에 장차 다가올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염려는 사라지고,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다.”(쟁투, 206)
종교 개혁과 기도의 정신
9.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면서 굳게 고수해 온 원칙은 무엇인가? 개혁파의 선후들이 연맹을 조직하려 하였을 때,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시 44:5, 6)
“루터가 굳게 고수해 온 원칙들 중의 하나는 개혁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속적 권력에 호소하거나 그 사업을 옹호하기 위하여 무력에 호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의 귀족들이 복음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 옹호 연맹과 같은 것을 조직하고자 제안하자 그는 분명히 말하였다. ‘복음의 교리는 하나님 한 분을 통하여서만 옹호되어야 한다. … 사람들이 거룩한 사업에 적게 간섭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 많이 그 사업에 관여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정책적인 묘안을 사용할지라도 그것은 쓸데없는 공포(恐怖)와 죄악적 불신을 조장할 뿐이다.’ …
그 후에 개혁파의 선후들이 연맹을 조직하려 하였을 때에 다시 루터는 이 싸움에 사용되어야 할 무기는 오직 ‘성령의 검’ 뿐이라고 밝히 말하였다. 그는 작센의 선후에게 편지하였다. ‘우리는 양심상으로 연맹에 대한 제안에 찬동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음 때문에 한 방울의 피라도 흘려야 하는 일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열 번이라도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일은 사지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선후 전하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써, 우리의 원수들이 자랑하는 것보다 더욱 큰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의 피로써 전하의 손을 더럽히지만 마십시오. 만일 황제께서 우리를 그의 법정에 넘겨주도록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출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하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 줄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위기를 당하면 자기의 믿음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쟁투, 209)
10. 온 세계를 동요시킨 위대한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루터는 어떤 능력으로 이 운동을 감당할 수 있었는가?
“그 때에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기를,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고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주께서는 단순한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되었을 때에 그분께서 나를 도우셨도다.”(시 116:4-6, 킹제임스)
“온 세계를 동요시킨 위대한 종교 개혁의 큰 능력은 밀실(密室)의 기도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종들은 은밀한 곳에서 그분의 언약의 반석 위에 튼튼히 섰다. 아우그스부르크의 투쟁의 때에도 루터는 ‘적어도 하루 세 시간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그렇게 하였다.’ 은밀한 그의 방에서 ‘존경(尊敬)과 두려움과 희망에 넘치는 말로써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을 토로하는 음성을 사람들은 듣게 되었다. ‘당신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 하나님이시므로 당신의 자녀의 핍박자들을 흩어버리실 줄을 이 종은 알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도 우리와 함께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아버지의 사업입니다. 우리는 다만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그 사업에 일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우리를 보호해 주옵소서.’”(쟁투, 210)
[상고할 말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그분께서는 귀족들과 목사들에게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지탱할 은혜와 용기를 주셨다.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벧전 2:6)고 말씀하셨다.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자들은 그리스도 위에 견고히 섰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쟁투,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