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6분


제8과


후기 영국의 개혁자들(1)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245~253


기억절 :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시 119:160, 161)


서론 :  사도 시대와 같이 박해는 다시금 복음의 발전을 돕는 수단이 되었다. 온갖 방탕자와 무서운 죄인들이 섞여 있는 누추한 옥중에서도 존 번연(John Bunyan)은 바로 천국의 분위기를 호흡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멸망의 세상에서 천국 도성에까지 이르는 순례자의 여행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를 저술하였다. 그 후 2백 년이 넘도록 베드포드(Bedford) 옥중에서 나온 그 소리는 큰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번연의 두 저서 ‘천로역정’과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는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쟁투, 252)


틴데일의 영어 성경

1. 루터가 봉하여진 성경을 독일 백성들에게 열어주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누가 성경 번역 사업에 헌신했는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루터가 봉하여진 성경을 독일 백성들에게 열어주고 있는 동안 틴데일(Tyndale)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영국에서 같은 일을 하였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위클리프가 라틴어 성경에서 이미 성경을 번역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잘못 번역된 데가 많았다. 그것은 또한 인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이 대단히 비싸서 부자나 귀족이 아니면 가질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교회에서 그 성경을 엄격하게 금지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좁은 범위에 걸쳐서 보급되었다. 1516년, 곧 루터가 95개조를 공개하기 일 년 전에 에라스무스가 헬라어와 라틴어의 신약 성경을 발행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으로 원어로 출판된 일이었다. 이 성경으로 말미암아 그전에 번역된 성경에서 잘못된 점이 정정(訂正)되고 의미가 훨씬 더 분명하여졌다. 그리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더욱 철저하게 진리의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고, 개혁 사업에 대하여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부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자기 나라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보급시키므로 위클리프의 사업을 완성시키고자 한 사람이 곧 틴데일이었다.”(쟁투, 245)

2. 성경 번역 시업에 앞장섰던 윌리엄 틴데일(1494~1536)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는 복음 사업에 어떻게 헌신했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근면한 학도요, 열렬한 진리의 탐구자였던 그는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에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깨달은 바를 두려움 없이 전파하고, 모든 교리를 성경에 비추어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자기 나라의 말로 된 신약 성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마음속에 간직하기 시작했던 틴데일의 목적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곧 그 사업에 몰두하였다. … 오래지 않아 3천 부의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으며, 같은 해에 다시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큰 열심과 인내로써 사업을 계속하였다. 영국 당국자들이 물샐틈없이 각 항구를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런던으로 몰래 건너가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전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법왕교도들은 진리를 억압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지마는 모두 허사가 되었다. …

틴데일은 배반자로 인하여 원수들의 손에 잡히어 여러 달 동안 감옥에서 고생을 당하였다. 그는 마침내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가 마련해준 무기는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통하여 복음의 군병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전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쟁투, 245-248)

영국의 개혁자들

3. 영국에서는 또 다른 어떤 개혁자들이 일어났는가?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사 8:16)


래티머(Latimer)는 성경을 자기 나라의 말로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교단에서 힘 있게 주장하였다. 그는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며’, 성경은 그 저자의 능력과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어떤 왕이나 황제나 장관이나 통치자든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순종할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곁길로 들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도록 하자. …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간 길이나 행한 일을 따르거나 행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여야 한다.’

틴데일의 친구 반즈(Barnes)와 프리드(Frith)가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났다. 그리고 리들리즈(Ridleys)와 크랜머(Cranmer)가 또 그 뒤를 이어 일어났다. 영국의 종교 개혁의 지도자들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중의 대부분이 로마교에서 열성과 경건으로 크게 존경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법왕교를 반대하게 된 것은 법왕청의 잘못을 안 결과였다. 그들은 바벨론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큰 능력으로 그것에 항거하는 증언을 하였다.”(쟁투, 248)

4. 그 개혁자들은 왈덴스인들과 위클리프와 얀 후스와 루터와 츠빙글리와 그들과 연합했던 동지들이 주장한 어떤 위대한 원칙을 주장했는가? 그들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순교했는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그 개혁자들이 주장한 위대한 원칙은 왈덴스인들과 위클리프와 얀 후스와 루터와 츠빙글리와 그들과 연합했던 동지들이 주장한 원칙들과 똑같은 것으로, 그것은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는 성경이 절대무류(絶對無謬)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원칙이었다. 그들은 법왕과 종교 회의와 교부들과 왕들이 종교 문제로 사람의 양심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다. 그들의 권위는 성경이었으므로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여 모든 교리와 모든 주장을 시험하였다. 그 거룩한 사람들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었다. 래티머는 그와 함께 곧 화형에 처해 질 그의 동료에게 이렇게 부르짖었다. ‘안심하라.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국에서 결단코 소멸되지 않을 촛불을 우리는 켤 것이다.’”(쟁투, 249)

스코틀랜드의 개혁 사업

5. 스코틀랜드에서의 개혁 사업은 어떻게 발전해 갔는가?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콜룸바(Columba)와 그의 동역자들로 말미암아 스코틀랜드에 뿌려진 진리의 씨는 완전히 멸절되지 아니하였다. 영국의 교회들이 로마 법왕에게 복종한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2세기에 이르러 법왕교가 이 나라에 세워지게 되자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절대권을 휘둘렀다. 이곳처럼 암흑이 심한 곳은 다른 어떤 곳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도 빛이 비치어 가리워진 암흑을 뚫고 내일을 약속해 주었다. 성경과 위클리프의 교리를 가지고 영국에서 온 롤라드인들(Lollards)은 복음의 지식을 보존하게 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복음의 증거자와 순교자를 배출해 내게 되었다.

대종교 개혁이 시작됨과 동시에 루터의 저서가 들어오고, 다시 틴데일의 영어 신약 성경이 전해졌다. 이러한 저서들은 교권의 감시를 받지 않고 조용히 산과 골짜기들을 넘어서 스코틀랜드에서 거의 꺼져가던 진리의 등불에 새로운 생기를 주었다. 그리하여 4백 년간의 압박이 이루어 놓은 로마의 사업을 무너뜨렸다.”(쟁투, 249)

6.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떤 개혁자들이 개혁 사업에 동참했는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해밀턴(Hamilton)과 위샤트(Wishart) 두 사람은 가문도 좋고 인격도 고상한 사람들이었는데 겸손한 많은 제자들과 함께 화형주에서 그들의 생명을 마쳤다. 그러나 위샤트의 화형주로부터 불꽃으로도 침묵시킬 수 없는 사람, 곧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스코틀랜드의 법왕교를 몰락시킬 한 인물이 나타났다.

존 녹스(John Knox)는 로마교의 전설과 신비주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위샤트의 가르침을 통하여 로마교를 벗어나고자 확고하게 결심하고 박해를 받는 개혁자들에게 가담하게 되었다.”(쟁투, 250)

개혁의 선봉자 녹스

7.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녹스(1513~1572)는 어떻게 개혁 사업에 참여 하게 되었는가?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그[녹스]는 동료들로부터 복음의 사자가 되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에 그 책임의 중요성을 두려워하여 오랫동안 주저하였다. 그는 여러 날을 집안에 들어박혀 생각하고 번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단 그 일을 맡게 되자 그는 확고한 결심과 불굴의 용기로써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전진하였다. 이 충성되고 열렬한 개혁자는 사람의 낯을 전연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박해의 불꽃은 그의 열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촉진제가 될 뿐이었다. 압제자의 도끼가 그의 머리를 위협하면서 들려 있을지라도 그는 자기의 자리에 굳게 서서 바른 손으로는 강한 타격을 주고 왼손으로는 우상 숭배를 분쇄하였다.”(쟁투, 250)

8. 녹스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의 앞에서 어떻게 진리를 증거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여왕 메리는 말하였다. ‘너는 성경을 이런 의미로 해석하고, 그들(로마교의 교사들)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며, 누가 판단을 해줄 것인가?’

‘여왕 전하께서는 성경이 밝히 말한 하나님을 믿으시면 그만입니다. 거룩한 말씀이 여왕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는 이편 말이나 저편 말이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분명합니다. 만일 애매한 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경우에라도 하나님과 결코 상치되지 않는 성령께서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그 점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짓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무지한 데 묻히지 않는 한 의심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 개혁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의 앞에서 그와 같은 진리를 말하였다. 그는 똑같은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나아갔고, 스코틀랜드가 법왕권으로부터 해방되는 날까지 기도하면서 거룩한 싸움을 계속하였다.”(쟁투, 251)

개혁 운동에 호의를 보인 영국

9. 영국에서는 개신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그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9, 10)


영국에서는 개신교를 국교로 한 결과 박해의 세력이 미약하여지기는 하였으나 전연 없어지지는 않았다. 로마교의 교리는 대부분 폐지되었으나 그 형식들이 적지 않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법왕의 절대권은 부인되었으나 그 대신에 임금이 교회의 머리가 되었다. 교회의 예배는 여전히 복음의 순결성과 단순성에서 멀리 떠나있었다. 종교 자유의 대원칙도 아직까지 이해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개혁주의를 신봉하는 국왕들은 로마교가 일찍이 이단에 대하여 과한 그러한 잔혹한 일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각 사람이 자기의 양심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다. 모든 사람은 국교가 정한 교리를 인정하고 그 예배 형식을 준수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박해로 인하여 적지 않은 고난을 당했다.”(쟁투, 251, 252)

10. 영국에서 개혁 운동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핍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박해가 어떻게 다시금 복음의 발전을 돕는 수단이 되었는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 6)


그러나 그처럼 조심하였지만 많은 사람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감옥은 꽉 찼고, 가족들은 헤어졌다. 또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다. 그러므로 핍박이 그들의 증언을 침묵시킬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대서양 건너편 미국으로 쫓겨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서 지금껏 그 나라의 영광과 보루로 삼아온 정치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

사도 시대와 같이 박해는 다시금 복음의 발전을 돕는 수단이 되었다. 온갖 방탕자와 무서운 죄인들이 섞여 있는 누추한 옥중에서도 존 번연(John Bunyan)은 바로 천국의 분위기를 호흡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멸망의 세상에서 천국 도성에까지 이르는 순례자의 여행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를 저술하였다. 그 후 2백 년이 넘도록 베드포드(Bedford) 옥중에서 나온 그 소리는 큰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번연의 두 저서 ‘천로역정’과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는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쟁투, 252)


[상고할 말씀]

박스터(Baxter), 플래블(Flavel), 올린(Alleine), 그 밖에 재능 있고 교양 있고 깊은 그리스도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일어섰다. 그 사람들이 이룬 업적은 비록 이 세상의 위정자들에게서는 배척을 받고 도외시되어도 결코 없어질 수 없다. 플래블이 저술한 ‘생명의 샘’과 ‘은혜의 역사’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심령을 그리스도께 계속적으로 바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박스터의 저서 ‘개혁 목사’는 하나님의 사업의 부흥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인정되었고, 또한 그의 저서 ‘성도의 영원한 안식’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남겨 둔 안식’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쟁투, 252,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