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7시 29분
제6과
왈덴스(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67-78
기억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서론 :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은 그들에게 미친 여러 세기의 박해를 그들의 구원의 주를 영화롭게 한 인내와 성실로 견디었다. 그들은 토벌을 당하여 비인도적인 학살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전도자를 파견하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의 피는 이미 뿌린 씨에 물을 주게 되어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이 왈덴스인들은 루터가 나기 수세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증거하였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그들은 위클리프 시대에 시작된 종교 개혁의 씨를 뿌렸는데, 그 운동은 루터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깊고 넓게 자라났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모든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하여 진행될 것이다.”(쟁투, 78)
왈덴스인의 신앙 교육
1. 왈덴스인들은 깊은 골짜기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훈련을 받았는가?
“내가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12:11)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사 30:20)
“왈덴스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세속적 번영과 유익을 다 버리고 꾸준한 인내로써 자기의 양식을 얻기에 수고하였다.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경작할 만한 토지를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잘 개간하였으므로 드디어 골짜기와 언덕의 사면(斜面)들은 많은 수확을 내는 농토로 변했다. 검소와 엄격한 극기의 정신은 그 자녀들에게 유일한 유산으로써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훈련시키려는 뜻이 무엇이라는 것과 그들의 궁핍은 모두 각자의 수고와 생각과 주의와 신앙으로만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의 생애는 실로 수고롭고 고달픈 것이었으나 그것은 건전한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훈련과 발전을 위하여 제공하신 학교로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수고와 고난에 단련되어 있었으나 정신과 지능의 계발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더욱 발달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쟁투, 67-68)
2. 왈덴스의 젊은이들은 목사에게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 되었는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목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중요한 과목으로 배웠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대부분의 사도들의 편지서들과 함께 암기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경을 복사하여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전부를 베끼고, 어떤 이들은 그 일부분을 뽑아낸 것에 성경 해석자의 간단한 설명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베꼈다. 그같이 하여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자로 말미암아 오래 숨기워졌던 진리의 보배가 드디어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때로는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절 두절, 또 한장 두장 성경을 베끼어 나아갔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업은 진행되었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순금과 같이 빛났다. 시련을 견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얼마만큼이나 밝고 분명하고 능력있게 되었는지 실제로 그 사업에 참가한 사람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천사들은 이처럼 충성된 일꾼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쟁투, 68-69)
왈덴스인들의 전도 활동
3. 왈덴스의 어떤 청년들은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도시들의 학교로 파견되었으며, 그들이 수많은 유혹과 위험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잠 1:7)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왈덴스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여기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신력을 넓히고 지각을 예민하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실생활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의 요긴함을 알고 있었다. 어떤 청년들은 그 산간의 학교로부터 그들이 살고 있는 알프스에 비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관찰하기에 더욱 유리한 지역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청년들은 유혹을 받고, 부도덕한 일을 목격하고, 가장 교활한 이단설과 위험성이 많은 기만(欺瞞)으로 접근하는 사단의 교활한 대리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받은 그들의 교육은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능히 이길 만한 품성을 이루어 놓았다.”(쟁투, 69-70)
4. 왈덴스인들은 단순히 진리를 보전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영혼 구원을 위한 어떤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통해 일했는가?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막 6:7)
“그리스도의 정신은 전도의 정신이다. 거듭난 마음속에 제일 먼저 생기는 충동은 다른 사람들 또한 구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것은 보우도봐의 그리스도인들이 품은 정신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들의 교회 안에서 순결한 진리를 보전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신다는 것, 즉 암흑 가운데 앉아 있는 자들에게도 빛을 비추어 줄 엄숙한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로마교회가 사람들에게 메워 준 무거운 멍에를 끊어 버리고자 힘썼다. 보우도봐의 목사들은 누구나 다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성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전도자의 경험을 쌓아야 하였다. 고향에 있는 교회의 책임을 맡기 전에 어떤 선교 지역에서 3년 동안 봉사하여야 하였다. 이러한 봉사는 무엇보다도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였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시련을 겪고 있던 그런 시대에 있어서 목사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입문(入門)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성직에 나아간 청년들은 그 앞길에 세속적 이익과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고 고생과 위험의 생활, 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운명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 때처럼 두 사람씩 파견되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고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교훈해 줄 책임을 진 동반자의 지도에 복종하였다. 그 동역자들은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도하고 협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피차에 신앙을 강화시켰다.”(쟁투, 70-71)
선교사들의 활동
5. 광야교회의 교육을 받은 왈덴스의 선교사들의 활동은 그들이 거주하는 산기슭에 있는 평원과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확대되었는가?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 54:2)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이 초기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산기슭에 있는 평원과 골짜기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넘어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바와 같이 여로(旅路)에 더러워진 초라한 옷을 입고 맨발로 큰 도시들을 지나다녔고, 멀리 떨어진 지방까지도 빼놓지 않고 침투하여 들어갔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귀중한 종자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순교자들의 피가 진리를 증거하였다. 여호와의 큰 날에 신실한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풍부한 수확이 나타날 것이다. 은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교국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정과 심령 속으로 영접되었다.”(쟁투, 71-72)
6. 그들은 법왕과 신부들의 지도 아래 있는 무리들이 그들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함으로 심중의 죄를 용서받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열망하고 갈망했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왈덴스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을 취급하신 기록과 현재의 책임이나 의무에 대한 계시일 뿐만 아니라 장래에 있을 위험과 영광을 나타내 주는 기록이었다.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머지않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도와 눈물로써 성경을 연구할 때, 그들은 그 귀중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책임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이 거룩한 말씀 속에 분명히 나타난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빛이 그들의 이해력에 비추어져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때 그들은 그 빛을 로마교의 오류의 암흑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비추어 주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
왈덴스인들은 이처럼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는 평안의 기쁨을 알려 주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자 갈망하였다.”(쟁투, 72-73)
속죄의 복음을 전함
7. 법왕과 신부들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없도록 쌓아놓은 장애물이 되었는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벧후 1:9)
“법왕과 신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성, 심지어 그리스도의 품성까지도 가혹하고 음울하고 가까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구주께서는 타락한 인류에게 신부나 성자들의 중보가 필요하리만큼 동정심이 전혀 없으신 분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들은 이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하여 자비의 팔을 펴시고 자기들의 죄와 근심과 염려의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사랑과 동정이 많으신 구주를 소개하고자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사단이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없도록 쌓아놓은 장애물을 제거하여 버림으로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쟁투, 73)
8. 왈덴스의 선교사들은 이 장애물을 어떻게 해결해 주었는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보우도봐[왈덴스]의 선교사들은 열심으로 뜻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복음의 귀중한 진리를 밝히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성 있게 손으로 베낀 성경을 내어놓았다. 하나님을 마치 보복만 하시는 분으로 알고 엄격한 심판을 기다리면서 죄짐에 눌려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 어린 눈으로, 때로는 무릎을 꿇고, 그들은 동포들에게 죄인의 유일한 소망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을 읽어 주었다. 이리하여 진리의 빛은 암흑에 쌓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어두운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치료하는 광선을 가진 의의 태양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되었다. 때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해서 읽어 주었는데,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올바르게 들었는지 확인할 뜻으로 반복해서 읽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다시 읽어주기를 간청한 성경 구절들은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는 말씀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고 한 부분들이었다.”(쟁투, 73-74)
피로 적신 진리의 씨
9. 왈덴스인 선교사들의 활동을 지켜본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크게 경성하여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 16:2)
“초대 교회의 신조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이 백성들이 로마교의 배도를 언제나 입증하였으므로 그들의 가장 심한 미움과 박해를 일으켰다. 특히 성경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로마교가 용납할 수 없는 범법이었다. 그리하여 로마교는 그들을 이 지상에서 쓸어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산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무서운 십자군이 파견되었다. 또한 종교 재판관들이 그들과 함께 파견되어 죄 없는 아벨이 잔인한 가인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이 자주자주 되풀이되었다.”(쟁투, 76)
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백성들은 여러 세기의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었는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5-26)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은 그들에게 미친 여러 세기의 박해를 그들의 구원의 주를 영화롭게 한 인내와 성실로 견디었다. 그들은 토벌을 당하여 비인도적인 학살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전도자를 파견하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의 피는 이미 뿌린 씨에 물을 주게 되어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이와 같이 왈덴스인들은 루터가 나기 수 세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증거하였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그들은 위클리프 시대에 시작된 종교 개혁의 씨를 뿌렸는데, 그 운동은 루터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깊고 넓게 자라났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모든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하여 진행될 것이다.”(쟁투, 78)
[상고할 말씀]
“사단은 오류와 이단과 미신의 쓰레기 아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버리기 위하여 법왕교의 승려와 주교들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암흑 시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성경은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전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인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 사람들은 성경의 명백하고 확실한 의미를 흐려 버리기 위하여 성경 자체의 증거들을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큰 파도의 깊은 물 속에 뜬 방주처럼 그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폭풍을 헤치고 나아갔다. 마치 금과 같은 풍부한 광맥들이 땅속에 숨겨져 있을 때 그 귀중한 광석들을 파내야 하는 것처럼 성경도 열심 있고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진리의 보배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유년 시대에나 청년 시대에나 장년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교과서로 삼고자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당신 자신의 품성에 대한 계시로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경의 저자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있다. 성경 연구는 인류로 하여금 창조주와 더욱 밀접히 연합하게 해주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관하여 더욱 명확한 지식을 얻게 해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 중개의 역할을 해준다.”(쟁투,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