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6시 57분
제1과
예루살렘의 멸망(1)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17-24
기억절 :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2-44)
서론 : “그분[예수]께서는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예루살렘의 무수한 백성들을 위하여 우셨다. 곧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 백성들의 무지와 고집 때문이었다.”(쟁투, 18)
예루살렘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시 132:13)
“때마침 유월절을 맞이하여 이 큰 절기를 지키려고 야곱의 자손들이 각 지방으로부터 모여 와 있었다. 순례자들의 천막이 정원과 포도원과 언덕 위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층층대처럼 생긴 산들과 위엄 있는 궁전들과 이스라엘 도성의 거대한 성곽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시온의 딸이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계 18:7)고 자랑하는 듯하였다. 옛날에 한 왕이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시 48:2)고 노래하던 때와 같이 지금도 여전히 그 성은 아름답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듯하였다. 장엄한 성전의 건물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야흐로 서산에 지는 햇살은 눈과 같이 흰 대리석에 비취어 황금빛의 문과 성전의 첨탑(尖塔)에 반사되어 있었다. 그 성전은 실로 온전히 아름다워 이스라엘의 자랑이었다. 이러한 광경을 눈으로 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그 누가 기쁨과 찬탄의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었으랴!”(쟁투, 17-18)
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감람산 꼭대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어떤 예언을 하셨으며, 그런 예언이 주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 13:2)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 21:6)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 19:42-44). …
그분[예수]께서는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예루살렘의 무수한 백성들을 위하여 우셨다. 곧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 백성들의 무지와 고집 때문이었다.”(쟁투, 17-18)
최후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
3.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보호를 입은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는가?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삼하 5:7, 9)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3-14)
“예수님의 눈앞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보호를 입은 택한 백성들의 천여 년간의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언약의 아들이 아무런 반항없이 제물로서 제단에 묶이어 있던 모리아 산이 보였다. 이곳이야말로 축복의 언약, 곧 메시야에 대한 영광스러운 허락이 믿음의 조상에게 확증되었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죄인을 위한 구주의 희생과 중보를 적절히 상징하는 번제의 불꽃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그 멸망시키는 천사의 검을 제지시킨 곳이다(역대상 21장 참조). 예루살렘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많이 입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시 132:13) 하셨다. 그곳은 여러 시대 동안에 거룩한 선지자들이 경고의 기별을 전한 곳이요, 제사장들이 향로를 가지고 분향하던 곳이요, 향연이 예배하는 자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상달되던 곳이었다. 그곳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상징하는 어린양을 잡아 날마다 그 피를 드리던 곳이요, 여호와께서 속죄소 위에 있는 영광의 구름으로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던 곳이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그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이 세상에 열어 준 신비로운 사다리가 놓여 있던 곳이다(창 28:12; 요 1:51 참조).”(쟁투, 18-19)
4. 그처럼 은총 받은 백성의 역사가 배교와 반역으로 점철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사자와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럼에도 모든 권고와 경계와 견책이 허지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하늘의 가장 귀한 선물인 누구를 보내셨는가?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막 12:2-6)
눅 20:10-13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대하 36:16)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당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으로 나타내셨다.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비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계속 탄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더한 사랑으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대하 36:15)셨다. 마침내 모든 권고와 경계와 견책이 허지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가장 귀한 선물을 보내어 주셨는바, 그분께서는 그 하나의 선물을 통하여 하늘의 모든 것을 다 주셨다.”(쟁투, 19)
하나님의 아들의 호소
5.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그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빛과 영광의 주께서 3년 동안 당신의 백성과 함께 지내셨다. 그분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행 10:38)셨다. 그분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갇힌 자를 놓아 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눅 4:18; 마 11:5 참조).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은혜의 초청이 똑같이 주어졌다.
그분께서는 선에 대하여 악으로,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미움으로 보답을 받으셨지마는 당신의 자비의 사명을 꿋꿋이 행하셨다(시 109:5 참조). 그분께 은혜를 구한 사람 중에 거절을 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분께서는 집 없는 방랑자로서 비난을 받고 날마다 궁핍하게 살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사람들의 재난을 덜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이게 하시고자 탄원하는 생애를 사셨다. 완고한 자의 마음의 벽에 부딪쳐 은혜의 물결이 되돌아올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은 다시 긍휼의 조수가 되어 더 힘있게 몰려가는 것이었다.”(쟁투 20)
6.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명의 선물을 받아들이게 하시고자 탄원하는 그분의 사랑의 간청과 권고와 경고를 어떻게 대했는가? 마지막 시대의 교회인 재림교회는 라오디게아 기별을 받고 어떻게 대했는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장 좋은 벗이요, 자기들을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을 버렸다. 그분의 사랑의 간청은 멸시당하고, 그분의 권고는 배척당하고, 그분의 경고는 조소를 받았다.”(쟁투, 20)
“A. T. 존스와 E. J. 와그너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기별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기별이며 …."(원고 24, 1892년)
“선입 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은 주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 J. 와그너]와 [A. T. 존스] 두 형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정신에 다분히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특별하신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한 것처럼 저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 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1기별, 234-235)
예루살렘의 운명
7.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실 때, 하나님의 택하신 곳이요, 특별한 보배가 되었던 그 성과 그 온 백성의 어떤 운명을 보셨는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4)
“희망과 사유의 시간은 신속히 지나가고 오랫동안 지체되어 온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거의 찼다. 배교와 반역의 각 시대를 통하여 쌓여 온 저주의 검은 구름은 형벌 받을 백성에게 바야흐로 내려 덮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박한 멸망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신 그분은 멸시와 모욕과 거절을 당하셨으며, 얼마 안 있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게 되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면,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받는 나라로서의 이스라엘 시대는 끝나게 될 것이었다. 단 한 사람의 영혼일지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온 세계의 이득과 보화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실 때 한 때 하나님의 택하신 곳이요, 특별한 보배가 되었던 그 성과 그 온 백성의 멸망이 그분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쟁투, 20-21)
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먼 장래까지도 내다보셨는데,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된 원인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먼 장래를 내다보실 때, 그분께서는 언약의 백성이 거칠고 쓸쓸한 바닷가에 깨어진 배 조각들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경을 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릴 현세의 보응은, 그들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셔야 할 진노의 잔에 비교하면 겨우 한 모금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보셨다. 그리하여 거룩한 동정과 애끓는 사랑은 드디어 비통한 어조가 되어 그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마 23:37 인용] 오, 어떤 나라보다 더욱 많은 은혜를 받은 나라여, 네가 권고하시는 날과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다행이었을 것을! 나는 의의 사자로서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었고, 너희가 회개하도록 호소하였지마는 허사가 되었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척한 이는 단순히 종이나 대리자나 선지자가 아니요, 진실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곧 너희의 구속주(救贖主)시다. 만일 너희가 멸망 당한다면, 그 책임은 다만 너희에게 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쟁투, 21-22)
세계의 멸망을 상징하는 예루살렘의 멸망
9.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예루살렘이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는가? 예루살렘의 운명과 이 세상의 운명이 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그리스도께서는 불신과 반역으로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의 보응의 형벌을 재촉하고 있는 이 세상을 예루살렘이 상징하고 있음을 보셨다. 타락한 인류의 신음 소리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고민의 부르짖음이 그분의 입에서 새어 나오게 하였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불행과 눈물과 피 흘리는 일에서 죄의 기록을 보셨고,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무한히 동정하셨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손으로도 인류의 저주의 물결을 물리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곧 인류의 유일한 도움의 근원이신 그분을 찾아 구하는 자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당신의 영혼을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에 내어 주고자 하셨지마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오는 자들은 별로 없었다.”(쟁투, 22)
10.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예루살렘을 멸망에서 구원하실 수 없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교계의 큰 죄가 무엇이 될 것을 내다보셨는가?
“…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하늘의 대주재께서 눈물을 흘리시다니!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마음에 근심하시고 고뇌에 눌리시다니! 그 광경을 보고 온 하늘은 놀랐다. 그 광경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전능하신 분에게 있어서도 죄인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린 결과에서 구원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타내 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내다보시고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 그 같은 속임수에 온 세계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유대인의 큰 죄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교계의 큰 죄는 천지를 다스리는 하나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멸시받고 무시당할 것이다. 죄에 속박되어 사단의 종이 된 무수한 자들이 둘째 사망을 받을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권고(眷顧)하시는 날에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맹목(盲目)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쟁투, 22-23)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11. 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하던 시대에 첫 성전이 지어졌는데, 당신의 처소인 이 성전은 누가 완성했는가? 두 번째 성전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두 번째 성전은 첫 성전과 어떻게 비교되었는가? 둘째 성전에서는 첫째 성전에 있었던 무엇을 볼 수 없었는가?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시 78:68-69)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학 2: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스 3:12)
“그 첫 성전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영하였던 시대에 지은 것이었다. 다윗왕은 이 목적을 위하여 많은 보화를 준비하고 또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것을 설계하였다(대상 28:12, 19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이 그 사업을 완성시켰다. 이 성전은 일찍이 이 세상에 있었던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
이 성전은 첫 성전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된 후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이 황폐된 고국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약 500년 전에 다시 건축한 것이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일찍이 솔로몬이 지은 훌륭한 성전을 본 노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새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그것이 처음 성전보다 못한 것을 보고 울었다. …
그러나 이 둘째 성전은 그 웅장하고 화려한 점에 있어서 처음 성전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리고 그 처음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던 신성한 표적들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지도 못했다. 그 성전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어떤 초자연적 권능의 표시도 없었다. 새로 건축된 성소를 가득 채울 영광의 구름도 없었다.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사를 불도 내려오지 않았다. 지성소의 그룹들 사이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빛(쉐키나)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곳에서 법궤와 속죄소와 증거의 두 돌판도 볼 수 없었다.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의 뜻을 알리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오지도 않았다.”(쟁투, 23)
12. 둘째 성전은 그 웅장하고 화려한 점에 있어서 처음 성전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러나 둘째 성전의 영광이 첫 성전의 영광을 능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여러 세기 동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하여 주신 허락이 어느 곳에서 성취되었는지 보이기 위하여 헛된 노력을 해왔다. 교만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은 선지자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둘째 성전은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으로가 아니라,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심으로 존귀하게 되었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던 때는 참으로 ‘만국의 사모하는’ 분께서 당신의 성전에 오신 때였다. 다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으로 둘째 성전의 영광은 첫 성전의 영광을 능가하였다.”(쟁투, 24)
[상고할 말씀]
“유대인들은 그들이 찰 착고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들이 마실 복수의 잔을 스스로 채웠다. 그들이 국가적으로 당한 완전한 멸망이나, 그들의 방황하는 처지에서 받은 저주는 그들 자신의 손으로 뿌린 것을 거두는 데 불과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호 13:9; 14:1)고 말하였다. 그들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징벌로 흔히들 이야기한다. 대기만자는 이와 같이 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숨기려고 애쓴다. 하나님의 자비를 완강하게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떠나가게 하였으며, 사단은 그들을 마음대로 주관하도록 허락받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나타난 무섭고 잔혹한 모든 사건들은 자신을 사단의 지배에 맡기는 자들에게 사단이 얼마나 무서운 마력(魔力)을 휘두르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실례이다.”(쟁투, 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