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2 21:19

3. 제1세기의 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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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0분


제3과


제1세기의 핍박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39-48


기억절 :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 15:20)


서론 :  악인의 손에 의인이 핍박받는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믿음이 연약한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가져다준 한 문제였다. … 구주께서는 어두운 시련의 때에 제자들의 마음에 의혹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요 15:20)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이 악한 자의 잔인한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보다 더욱 심한 고난을 받으셨다. 혹독한 형벌과 순교를 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쟁투, 47)


교회에 닥칠 폭풍이 예고됨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승천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장차 어떤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는가?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막 1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운명과 재림의 광경을 알려 주실 때, 당신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신 후부터 권능과 영광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러 다시 오시기까지 당신의 백성들이 당할 경험에 대하여서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구주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사도 시대의 교회에 밀려올 폭풍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또한 먼 미래를 내다보시면서 장차 올 암흑과 박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미칠 맹렬한 폭풍을 보셨다. 그리고 지극히 의미심장하고 분명한 말씀으로 이 세상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어떠한 일을 할지에 대해서도 예언하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동일한 굴욕과 비난과 고난의 길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세상의 구주를 향하여 쏟아졌던 증오는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쟁투, 39)

2.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박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곳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무엇으로 위로받았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2)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어디로 피난하든지 맹수처럼 추적당했다. 그들은 불가불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은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히 11:37, 38)다. ‘카타콤’(Catacombs) 은 무수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로마성 밖에 있는 언덕들 밑에 흙과 바위를 뚫고 만든 긴 굴들이 있었다. 그물 모양으로 이리저리 뚫린 굴은 성 밖 멀리 수십리의 지점에까지 뻗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하의 피난처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체를 묻었다. 또한 그들이 의심을 받고 그들에게서 법률의 보호가 제거되었을 때 여기서 살았다. … 그들은 진리를 위하여 고난받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었다는 사실로 즐거워하였으며 딱딱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믿음으로 위를 쳐다보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목하시고,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기꺼이 받으시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다. 그들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었다.”(쟁투, 40-41)

교회 안에 들어온 타협 정신

3. 폭력(박해)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멸하려는 사단의 노력이 허지로 돌아가자, 사단은 어떤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는가?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 2:4)


폭력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멸하려던 사단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 박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어들이는 더욱 강한 초청이 될 뿐이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목 베임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수효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다.’ …

그러므로 사단은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정부를 대적할 계획을 세우고, 자기의 깃발을 그리스도 교회 안에 꽂았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을 속여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도록만 한다면, 그들은 힘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쉽사리 자기의 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쟁투, 41-42)

4. 품성이 불완전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성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는 무엇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7)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무리들 가운데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왔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구주의 생애를 연구하고, 자기들의 결점을 고치고 그분의 모본에 일치되고자 열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며, 그 다른 편의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보여 주는 명백하고도 실제적인 진리를 피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비록 그 형편이 가장 좋았던 시대에 있어서도 진실하고 순결하고 성실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우리 구주께서는 고의적으로 죄 가운데 빠지는 사람들을 교회에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품성이 불완전한 자들로 더불어 사귀심으로 당신의 가르치심과 모본을 통하여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고칠 기회를 가지게 하셨다. 열두 제자 중에도 한 반역자가 있었다. 유다가 제자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의 품성의 결함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서였다. 그가 제자들 가운데 속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품성이 어떠한 것임을 배우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거룩한 은혜를 힘입어 진리를 순종하므로 그 심령이 정결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에게 그토록 은혜롭게 비추어진 빛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죄에 빠지므로 사단의 유혹을 자초(自招)하였다. 그의 품성의 나쁜 특성이 지배적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암흑의 세력에 맡겼다. 그는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책망을 받게 되자 화를 내었고, 마침내는 자기의 주님을 파는 무서운 죄를 범하기까지 되었다. 이와 같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면서 악을 품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죄악적 행동을 지적함으로 마음의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그들은 유다처럼 어떤 기회를 만나면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견책해 주는 사람들을 도리어 배반할 것이다.”(쟁투, 43-44)

빛과 어두움 사이의 대쟁투

5. 빛의 임금과 어두움의 임금 사이에는 연합이 없다. 이 둘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5)


그러나 빛의 임금과 어두움의 임금 사이에는 연합이 없으며, 그들의 추종자들간에도 연합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교(異敎)로부터 반쯤 개종한 자들과 연합하기를 동의하므로, 그들은 진리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져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 사단은 이처럼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속이는 데 성공한 것에 대하여 미칠 듯이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들에게 더욱 충분한 능력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아직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핍박하게끔 충동하였다. 한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옹호하던 자들만큼 참된 그리스도인 신앙을 반대하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이러한 배도한 그리스도인들은 반쯤은 이교적인 신도들과 연합하여 기독론의 가장 기본적인 면들을 공격하였다.

충성스럽게 되려는 자들이 성직자의 옷으로 위장하고 교회에 들어온 기만과 가증한 것들을 굳세게 대항하는 데는 투쟁이 필요하였다. 성경은 신앙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종교 자유의 교리도 이단으로 불리웠으며, 그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증오를 받았으며 법률의 보호에서 제외당했다.”(쟁투, 45)

6. 왜 초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양보 대신에 불화와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오랫동안의 격렬한 투쟁 끝에, 충성된 적은 무리는 이 배교적인 교회가 거짓과 우상 숭배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들과 결코 연합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분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의 심령에 치명적인 오류를 묵인하거나, 후손들의 신앙을 위태롭게 할 모본을 남기는 일을 차마 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 저촉되지 않는 양보이면 화평과 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도 있지마는 원칙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진리와 정의를 양보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연합이라면 차라리 불화와 투쟁의 편을 택하기로 하였다.”(쟁투, 45)

화평이냐, 분쟁이냐?

7. 복음은 평화의 기별인가? 아니면, 분쟁의 기별인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1-53)


그렇다면 복음이 어떻게 평화의 기별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이사야는 메시야의 출생을 예언할 때에 그분을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불렀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출생을 목자들에게 선포할 때에 베들레헴 상공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노래하였다. 이 예언적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하신 말씀은 서로 배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그 둘은 완전히 일치된다. 복음은 평화의 소식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순종하기만 하면 세상에 평안과 조화와 행복을 전해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친한 형제의 관계를 이루어 준다.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고 상호간에 화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대적인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 복음은 그들의 습관과 욕망과는 전혀 반대되는 생활 원칙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드러내어 그것을 죄라고 지적해주는 순결을 증오하며 공의롭고 성결한 복음의 요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인다. 그러므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고상한 진리가 증오와 분쟁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는 의미에서 복음은 검으로 불린다.”(쟁투, 46-47)

8. 예수님께서는 복음으로 인한 가장 견디기 어려운 투쟁은 어떤 관계에서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구주께서는 복음에 대한 세상의 증오는 정복될 것이며, 잠시 후에 그 반대가 그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투쟁이 생기는 것은 복음의 영향이 아니라 복음에 반대하는 결과로 생긴다. 모든 박해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박해는 가정 안에서의 알력이요 절친한 세상 친구들과의 사이가 소원(疎遠)해지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선언하신다.”(소망, 357)

핍박과 박해가 용납된 이유

9. 하나님께서 악인의 손에 의인이 핍박받는 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 15:20)


악인의 손에 의인이 핍박받는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믿음이 연약한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가져다준 한 문제였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몹시 악한 자들은 번영케 하시면서 선하고 순결한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게 하신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버리려고까지 한다. 공의롭고 자비하시고 무한한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이와 같은 불의와 압박을 묵인하실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조금도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하여 그분의 자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구주께서는 어두운 시련의 때에 제자들의 마음에 의혹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요 15:20)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이 악한 자의 잔인한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보다 더욱 심한 고난을 받으셨다. 혹독한 형벌과 순교를 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쟁투, 47)

10. 오늘날 교회에 박해의 불이 거의 꺼진 듯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렇다면, 핍박의 불길은 언제 다시 타오를 것인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박해의 불이 거의 꺼진 듯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 유일한 이유는 교회가 세속적 표준과 타협하여 별로 반대를 받을 일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생활하던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처럼 순결하고 거룩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인기가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죄와 타협하는 정신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진리들이 너무도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 내에 활력이 넘치는 경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신앙과 능력이 되살아날 때에 박해의 정신은 다시 나타날 것이며, 핍박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쟁투, 48)


[상고할 말씀]

사도들은 교회 안에서 입으로는 경건하다고 공언하면서도 불의한 것을 마음에 몰래 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만적인 일을 하였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하나님께 완전히 희생한 것처럼 보였지마는 실상은 탐심을 품고 재산의 일부를 그들 자신들을 위하여 감추어 두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그 거짓된 자들의 본성을 사도들에게 드러내 주셨고, 하나님의 징벌은 그 더러운 오점을 제거하고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게 해주셨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낱낱이 가려내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에 나타난 현저한 증거는 모든 위선자와 악인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다. 그들은 습관과 품성에 있어서 항상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같이 지낼 수는 없었다. 핍박과 시련이 이를 때에 진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기를 꺼리지 아니하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같이 하여 핍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교회는 비교적 순결을 유지했다. 그러나 박해가 그치자 철저하지도 못하고, 헌신하지도 아니한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사단의 발판 노릇을 하게 되었다.”(쟁투,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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