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6분
제4과
영적 암흑시대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49-60
기억절 :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3-4)
서론 : “로마교회가 권세를 잡게 되므로 이른바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권세가 더해 갈 적마다 암흑은 더욱 짙어졌다. 믿음은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법왕에게로 옮기어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법왕과 법왕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법왕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법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심신에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오류가 많고 잔인한 사람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는 암흑의 임금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죄는 신성(神聖)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다. 그런즉 성경이 금지를 당하고, 사람이 자기를 지극히 높은 자라고 할 때 우리는 거짓과 속임과 불법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법과 전설이 높임을 받을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므로 생기는 타락이 나타났다.”(쟁투, 55)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남
1. 교회에 대한 맹렬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비밀리에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자 더욱 공공연하게 그의 기만적이요, 참람된 일을 진척시켰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적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지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方伯)들의 교만과 허식(虛飾)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쟁투, 49)
2. 이러한 변화 가운데 특별히 교회를 급속히 타락하게 만든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이 사건을 통해서 어떤 예언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는가?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3-4)
“4세기 초엽에 있었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의 이름뿐인 개종은 큰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이 의(義)의 형식의 탈을 쓰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타락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이교가 정복당한 듯하였으나 실상은 승리자가 되었다. 이교의 정신이 온 교회를 지배하였다. 이교의 교리, 의식, 미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예배와 신앙에 혼합되었다.
이러한 이교와 그리스도교회 사이의 타협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더 높이리라고 예언된 ‘죄악의 사람’의 발전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거짓 종교의 거대한 조직은 사단의 능력의 걸작품, 곧 스스로 보좌에 앉아서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의 기념탑이다.”(쟁투, 50)
암흑시대와 로마교
3. 로마교의 법왕은 스스로 어떤 권세를 주장했으며,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어떻게 배치되는가?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법왕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의 볼 수 있는 머리이며, 세계 각처에 있는 감독들과 목사들에 대한 최상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로마교의 주요 교리의 하나이다. 더욱이 법왕에게는 하나님의 직함들이 주어진 바 되었다. 그는 ‘주 하나님이신 법왕’이라고 불리워오고 있으며 절대 무오의 존재로 선포되어 왔다(부록 1, 2 참조). 그는 전 인류의 숭배를 요구한다. 사단이 시험의 광야에서 주장한 것과 똑같은 주장을 그는 오늘날도 로마교를 통하여 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숭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교활한 원수의 유혹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눅 4:8)고 말씀하심으로 물리치셨듯이 이같은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 참람된 자를 대적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가운데 어떤 사람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암시조차 하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법왕의 최상권에 대한 교리는 성경의 교훈과 전적으로 배치된다. 법왕은 찬탈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배할 권세를 가질 수 없다.”(쟁투, 50-51)
※ 부록 2 Ⲻ 1870, 71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무류설을 공표함.
4. 법왕권은 예언대로 우상 숭배의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먼저 어떤 일을 신속하게 실행했는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단 7:25)
“오류(誤謬) 탐지기인 성경이 제거되자 사단은 마음 놓고 활약하였다. 예언은 법왕권이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단 7:25)라고 하였다. 그 일의 실행은 지체되지 않았다.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대신할 어떤 것을 마련해 주어 그들의 명목적인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성상(聖像)과 유물 숭배가 그리스도인 예배에 점진적으로 도입되었다. 총회의 교령(敎令)은 마침내 우상 숭배의 제도를 확립시켰다(부록 3 참조). 로마교는 신성 모독적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대담하게도 우상 숭배를 금지한 하나님의 둘째 계명을 삭제하고 계명의 수효를 맞추기 위하여 열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다.”(쟁투, 51-52)
※ 부록 3 Ⲻ 우상 숭배를 확립하기 위해서 소집된 기원후 787년의 제2차 니스(Nice) 공의회의 결정 사항.
안식일 변경과 사단의 흉계
5. 이교에 양보하는 정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권위를 한층 더 무시하는 길을 열었는가? 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활동했는가?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1-12)
“이교에 양보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권위를 한층 더 무시하는 길을 열었다. 사단은 헌신하지 못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넷째 계명에 손을 대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옛적부터 내려오는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이교도들이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로 지켜온 그 날을 축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을 초기에는 공공연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돈독하였고,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었으므로 율법의 신성성을 열렬하게 옹호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대단히 교묘한 방법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요일에 집중시키기 위하여 그날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일로 삼았다. 그날에 종교적 행사들이 행해졌지만, 그날은 다만 오락일로 여겨졌을 뿐이며, 안식일은 여전히 신성하게 준수되고 있었다.”(쟁투, 52)
6. 사단은 자신의 목적한 사업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누구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칙령을 내려 일요일을 로마제국 전체의 공적인 축일로 삼았다(부록 4 참조). 태양의 날은 이교도들이 존중하고 있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도 존중하고 있었다. 이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충돌하는 이해(利害)를 연합시키는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 그리스도교와 이교도가 같은 날을 지킨다면 이교도들이 명목상으로라도 그리스도교를 채택하는 일이 촉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교회의 권세와 영광이 더할 것을 깨달은, 야망과 권력욕에 고무된 교회의 감독들이 황제에게 그렇게 하도록 촉구하였다. 그러나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이 어느 정도 신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안식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날로 주장하였고, 넷째 계명에 따라 그날을 지키고 있었다.”(쟁투, 53)
※ 부록 4 Ⲻ 기원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휴업일(休業日)에 관한 법령이 반포됨.
법왕권의 확립과 일요일 준수
7. 사단이 큰 배도자를 통하여 십계명 중에서 특별히 넷째 계명을 변경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단 7:25)
“…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이리하여 이 큰 배도자는 마침내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살후 2:4)게 스스로를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모든 인류에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율법의 유일한 계명을 변경하려고 시도하였다. 넷째 계명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로서 계시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다른 거짓 신들과 구별되신다. 그리고 제칠일이 인류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된 것은 한편으로 창조 사업을 기념하는 동시에, 또한 인류의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단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지적해주는 계명을 특별히 공격하고자 애쓰고 있다.”(쟁투, 53-54)
8. 6세기에 법왕권이 확립되면서 일요일 준수는 어떻게 강화되었는가? 그 사건은 어떤 예언의 성취를 가져왔는가?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계 13:5-7)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므로 그날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 관한 성경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그날을 그와 같이 높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제도로써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단서(端緖)는 이미 바울의 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불법의 비밀’(살후 2:7)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 이 법왕권의 소생(所生)을 양자로 삼으셨는가?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이와 같은 변경에 대하여 어떠한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겠는가?
6세기에 법왕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이교는 그의 지위를 법왕에게 넘겨주었다. 곧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계 13:2)를 주었다(부록 5 참조).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1260년간의 법왕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쟁투, 54)
※ 부록 5 Ⲻ 시간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예언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은 연-일(year-day) 원칙이다.
절대 무류(絶對無謬)를 주장하는 법왕
9. 법왕의 참람된 행위는 어디까지 나아갔는가?
“…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겔 28:2)
“법왕의 참람된 행위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1세기에 법왕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ous Ⅶ)는 로마교회가 완전하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주장 중의 하나는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한 번도 그릇된 일을 한 일이 없고, 또 장래에도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성경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거만한 법왕은 또한 황제들을 폐위시킬 권세가 자기에게 있노라고 주장하고, 자기가 선포한 선고는 아무도 이를 폐기(廢棄)할 수 없지만, 자기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결정을 변경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였다(부록 7 참조).”(쟁투, 57)
10. 절대 무류(絶對無謬)를 주장하는 법왕의 교만한 특성을 보여 준 실례를 역사에서 찾아보라. 법왕과 예수님의 태도는 어떻게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가?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14)
“…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겔 28:6, 2)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절대 무류(絶對無謬)를 주장하는 법왕의 포악한 특성을 보여 준 현저한 실례는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Heinrich Ⅳ)에게 행한 조치였다. 하인리히는 법왕의 권위를 감히 무시하였기 때문에 파문(破門)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폐위의 선고까지 받았다. 하인리히 4세는 법왕의 명령에 의하여 자기를 배반하도록 촉구받은 자기의 제후(諸侯)들의 배척과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법왕과 화해해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법왕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자 황후와 충실한 한 시종을 데리고 한겨울에 험한 알프스산을 넘어갔다. 그리하여 당시 그레고리우스 법왕이 유하고 있는 성에 도착하자 호위병 하나 없이 궁전의 외원(外苑)에 이끌려 나가,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몸에는 변변치 못한 옷을 입은 채 맨발로 추위에 떨면서 법왕의 면회가 허락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일 동안의 금식과 자복이 있은 후에야 법왕은 그를 사면하였다. 그것도 왕친을 나타내는 휘장(徽章)을 달거나 왕의 권리를 행사하게 될 때에는 먼저 법왕의 윤허(允許)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에 그레고리우스는 의기양양하여 군주들의 교만을 꺾어 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자랑하였다.
이처럼 오만불손한 법왕의 태도를 마음 문밖에 서서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리스도,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7)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태도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대조적인가!”(쟁투, 57-58)
오류와 미신이 퍼짐
11. 로마교회의 권세가 더해 갈수록 암흑이 더욱 짙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마 6:23, 킹제임스)
“로마교회가 권세를 잡게 되므로 이른바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권세가 더해 갈 적마다 암흑은 더욱 짙어졌다. 믿음은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법왕에게로 옮기어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법왕과 법왕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법왕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법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심신에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오류가 많고 잔인한 사람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는 암흑의 임금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죄는 신성(神聖)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다. 그런즉 성경이 금지를 당하고, 사람이 자기를 지극히 높은 자라고 할 때 우리는 거짓과 속임과 불법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법과 전설이 높임을 받을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므로 생기는 타락이 나타났다.”(쟁투, 55)
12. 8세기 말에는 로마교회의 비행(非行)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비행(非行)은 온 사회에 퍼지되 심지어 로마교회의 지도자들에게까지도 파급되었지마는 그 교회의 세력은 꾸준히 증가되는 듯하였다. 8세기의 말엽에 법왕교도들은 초대의 교회에서도 로마의 감독들은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신령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의 확실성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더욱 권위 있게 하기 위하여 무슨 방법이 사용되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로 말미암아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암시가 이미 주어져 있었다. 승려들은 고서(古書)들을 위조하였다. 초기부터 법왕은 전반적인 최상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세우기 위하여 그 당시까지 전혀 듣지 못한 종교 회의의 결의문들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진리를 배반한 교회는 이 기만을 즐겨 받아들였다(부록 6 참조).”(쟁투, 56)
[상고할 말씀]
“사단은 성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기만을 간파하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권세에 대항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구주이신 주님조차도 사단의 공격을 물리치실 때에는 성경 말씀으로 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단이 도전해 올 때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영원한 진리를 방패로 삼아 대응하셨다. 사단의 모든 암시를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의 지혜와 능력으로 대항하셨다. 그러므로 사단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찬탈적인 법왕권을 세우려면 반드시 사람들을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높이는 동시에 유한한 사람의 위치를 나타내 주는 것이므로, 성경의 진리를 가리워 버리거나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교는 이와 같은 논리를 채택하였다. 수백 년 동안 성경의 보급은 금지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읽거나 집에 간직해 둘 수도 없었다. 절조 없는 신부들과 주교들이 그들의 진위가 모호한 주장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해석하였다. 그같이 하여 법왕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교회와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일반 사람들은 시인하기에 이르렀다.”(쟁투,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