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4 07:58

3. 야곱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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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1분


제3과


야곱과 에서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177~182; 살아남는 이들, 87~89.


기억절 :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


서론 :  많은 군중들은 육욕적 방종 때문에 그들의 장자의 명분을 팔고 있다. 동시에 품성을 나약하게 하고 저하시키는 방종, 즉 다만 일시적인 쾌락을 위하여 건강을 희생시키고 지적 능력을 감소시키며 하늘을 잃어버린다. 에서가 자신의 경솔한 거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는 그의 손실을 회복하기에 너무 늦었던 것처럼, 이기적 만족 때문에 하늘의 상속권을 팔아버리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부조, 182)


두 아들 – 에서와 야곱

1. 이삭과 리브가는 기도의 응답으로 쌍태를 가지게 되었다. 장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 그의 성격은 어떠한가?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창 25:25) 


에서는 자아 만족을 사랑하며 그의 모든 관심을 현세에 집중시키며 자라났다. 제어받기를 싫어하며, 사냥하는 거친 자유를 즐겨 일찍부터 사냥꾼의 생활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조용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목자인 아버지는 이 맏아들의 대담성과 활기에 끌리었다. 그는 두려움 없이 산야를 넘고, 아버지를 위하여 사냥한 고기와 그의 모험적 생활의 흥미진진한 보고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부조, 177) 

2. 쌍둥이 동생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 그의 성격은 어떠한가?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창 25:26) 


반면에 사려 깊고 부지런하고 집안일을 돌보며 항상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는 야곱은 양떼를 돌보고 밭가는 일에 종사하며 집안에 있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그의 꾸준한 참을성과 검약과 선견지명은 그의 어머니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애정은 깊고 강하였으며, 그의 온순하고 끈질긴 친절은 에서의 소란스럽고 우발적인 친절보다 어머니를 훨씬 더 행복스럽게 하였다. 리브가에게는 에서보다 야곱이 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부조, 177) 

하나님의 언약과 장자의 명분

3.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그 아들들에게 확증된 약속으로써 장자의 명분은 무엇을 말하는가?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신 21:17)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그의 아들에게 확증된 약속은 이삭과 리브가에게는 그들의 큰 소망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이 약속을 에서와 야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장자의 명분을 매우 중대한 일로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것은 세속적 재산의 상속뿐 아니라 영적 탁월성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가정에서 제사장이 되고 그의 후손의 가계에서 세상의 구주가 나실 것이었다.”(부조, 177) 

4. 장자의 명분을 얻고자 하는 야곱의 열정은 좋았으나, 아직 그에게 부족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 27:36)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자신에게 주어지리라는 하나님의 암시를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그의 마음은 그것이 줄 특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충만하였다. 그가 갈망한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적 장자의 명분이 그가 바란 대상이었다. 의로운 아브라함이 한 것같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드리는 일, 택하신 백성과 약속된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일, 언약의 축복에 포함된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일 등이 그가 획득하고자 열망한 특권과 명예였다. … 그러나 그와 같이 현재보다 내세의 축복을 존중하였으나, 야곱은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지 않았다.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자기 자신에 관한 약속은 성취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믿고, 그는 자신의 형은 매우 경시하나 자신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그 축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자 끊임없이 연구하였다.”(부조, 178-179) 

속임수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음

5.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에게는 부과되는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 4:22-23) 


한편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에게 부과되는 의무가 있었다. 그 축복을 상속받을 자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바쳐야 하였다. 아브라함처럼 그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야 하였다. 결혼이나, 가족 관계나, 공공 생활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 하였다.”(부조, 177-178)

6. 이삭은 이런 장자의 특권과 조건들을 아들들에게 알려주고 장자인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물려주려 하였으나, 야곱이 이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6) 


이삭은 그의 아들들에게 이 특권들과 조건들을 알리고, 장자인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에서는 헌신을 좋아하지 않았고 종교 생활을 애호하지 않았다. 영적 장자의 명분에 동반된 요구들이 그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오히려 달갑지 않은 구속이었다. 아브라함과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이었던 율법이 에서에게는 속박의 멍에로 생각되었다. 그는 방종에 기울어져 그가 좋아하는 것을 행할 자유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게는 권세와 부귀, 잔치와 연락이 행복의 전부였다. 그는 그의 거친 방랑생활의 제재받지 않은 자유 가운데서 자만하였다.”(부조, 178) 

기만으로 축복을 가로챔

7.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삭은 장자의 축복을 내리는 일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리브가와 야곱의 반대를 알면서도 이 의식을 하기 위해 에서에게 어떤 요구를 하였는가?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3-4) 


세월이 흘러 마침내 나이 많고 눈이 어두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예측한 이삭은 그의 장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일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러나 리브가와 야곱의 반대를 알고 그는 이 엄숙한 의식을 비밀리에 거행하고자 결심하였다. 이런 경우에 잔치를 베푸는 습관에 따라 이삭은 에서에게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3, 4)고 명하였다.”(부조, 179) 

8. 야곱이 사냥을 하러간 사이 리브가는 야곱을 어떻게 유혹했으며, 결국 야곱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창 27:8-13)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창 27:19)  


에서가 아버지의 말대로 사냥하러 나가자마자 리브가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 나섰다. 그 여자는 일어난 일을 야곱에게 말하고 그 축복이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게 에서에게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만적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를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 야곱에게 만일 자신의 지시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장자의 명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시켰다. 야곱은 어머니가 제의한 계획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속인다는 생각이 그를 크게 당혹시켰다. 그는 그와 같은 죄가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망설임도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어 그는 어머니의 제안을 수행하려고 나섰다. 직접 거짓을 행하는 것이 그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일단 그가 아버지 앞에 나온 이상 물러서기에는 너무 깊이 간 것 같이 생각되어 그는 탐하던 축복을 기만적인 방법으로 얻었다.”(부조, 180)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손실

9.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줄로 알고 야곱을 축복했다. 자신이 기만을 당한 줄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어떻게 했는가?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 


눈이 어둡고 연로한 아버지는 기만당한 줄을 알고 놀라움과 고통으로 떨었다. 그가 오랫동안 자기 나름대로 품고 있던 소망은 좌절되어 버렸고 그는 그의 맏아들에게 틀림없이 다가올 실망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이 좌절되고 그가 방지하려고 결심하였던 바로 그 일이 실현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확신이 그에게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는 천사가 리브가에게 한 말을 기억하였으며 지금 야곱이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곱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보았다. 축복의 말이 그의 입술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그는 영감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심을 느꼈다. 이제 모든 사정을 안 그는 무의식 중에 야곱에게 선언된 축복을 승인하였다.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부조, 181)

10. 에서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축복해줄 것을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 축복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창 27:38)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에서는 축복이 그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가볍게 여겼으나 그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지금에는 그것을 가지고자 하였다. 그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강한 성질이 발동했으며, 그의 비탄과 분노는 무서웠다. 그는 매우 비통한 소리로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아버지께서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일단 주어진 약속은 취소될 수 없었다. 그가 그처럼 부주의하게 팔아 버린 장자의 명분을 이제는 다시 되찾을 수 없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곧 제어된 일이 없는 식욕의 순간적인 만족을 위하여 에서는 그의 유업을 팔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였을 때는 그 축복을 회복하기에 너무 늦었다. ‘저가 …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에서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특권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으나, 장자의 명분을 회복할 방법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의 슬픔은 죄를 인정함으로 솟아난 것이 아니었으며 그는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갈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죄의 결과 때문에 슬퍼하였지, 죄 그 자체를 슬퍼하지는 않았다.”(부조, 181) 


[상고할 말씀]

하나님의 축복과 요구에 무관심하였으므로 에서는 성경에서 ‘망령된 자’라고 불리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신 구원을 경히 여기고 없어질 세상의 사물을 위하여 하늘에 들어갈 그들의 상속권을 희생하는 자들을 대표한다. 많은 무리들이 장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나 관심도 없이 현세를 위하여 살고 있다. 에서와 같이 그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라고 부르짖는다. 그들은 기호의 지배를 받으며 극기를 실천하기는 고사하고 가장 귀중한 사려마저 내버린다. 만일 부패된 식욕의 만족이나 극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하늘의 축복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식욕의 요구가 우세하고 하나님과 하늘은 사실상 멸시를 당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도 건강에 해롭고 영혼의 감수성을 마비시키는 기호에 기울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육체와 정신상의 모든 더러움을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함을 이루라는 의무가 제시될 때, 그들은 그것을 언짢게 여긴다. 그들은 하늘을 얻기 위하여서는 이 유해한 만족을 더 유지할 수 없음을 알고, 영생으로 가는 길은 매우 좁으므로 저들이 그리로 이상 더 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부조, 181~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