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5시 59분
제2과
옥에 갇힌 바울(1)
[연구범위]
사도행적, 399-408; 행 21:17-36
기억절 :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행 21:30)
서론 : “복음을 받아들였던 유대인 중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의문의 율법을 존중하고 있었으며, 동포의 신임을 얻어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고 그들을 세계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로 인도하고자 너무도 현명치 못한 양보를 자원하였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인 교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에 대해 편견을 품는 한, 그들은 그의 감화를 소멸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만일 그가 어떤 합리적인 양보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요구한 만큼 양보하도록 하나님의 재가를 받지 못하였다.”(행적, 405)
이방인 신자들이 보낸 자원하는 선물을 전달함
1.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도착하여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5-26)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행 21:17-18)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이 기회에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예루살렘의 사업을 맡은 지도자들에게 유대 형제들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이 보낸 연금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 이 연금을 모으기 위하여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은 많은 시간과 애타는 생각과 끈질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예루살렘 장로들의 기대보다 훨씬 많은 금액은 이방 신자들의 큰 희생과 극심한 궁핍을 나타내는 것이었다.”(행적, 399)
2. 그러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중에는 이방인 신자들의 선물과 바울의 방문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이 자원하여 드린 연금은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조직된 사업에 대한 이방 신자들의 충성의 표시이므로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였으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보기에는 지금 그들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까지라도 선물을 드리게 한 형제다운 사랑의 정신에 감사하지 않는 어떤 자들이 있는 것이 명백하였다.
이방인 중에 복음 사업을 행한 초창기에 예루살렘의 지도적인 형제들 중 어떤 이들은 이전의 편견과 사고의 습관에 매달려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협력하지 아니하였다. 몇몇 무의미한 형식과 의식을 보존하려는 열망으로, 그들은 각처의 주의 사업을 하나로 연합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그들이 사랑한 사업과 자신들에게 이르러 올 축복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비록 그리스도 교회의 최대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발전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조를 같이 하는 데 실패하였고 인간의 지혜로 교역자들 주위에 많은 불필요한 제재를 가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리하여 먼 지방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당하는 변화되는 환경과 특수한 필요를 친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형제들에게 어떤 특정한 활동 방법을 따르라고 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노라고 주장하는 한 무리가 생겨났다. 그들은 마치 복음 전도의 사업이 그들의 의견과 일치하게 발전되어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행적, 399-400)
바울의 목회를 반대하는 몇 지도적 형제들
3. 예루살렘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몇 사람들이 바울의 전도 방법에 대하여 어떤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그들은 어떤 편견으로 다시 물의를 일으켰는가?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행 21:21)
행 15:5-31 참조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이교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전담한 사도들이 취한 활동 방법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평을 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회기 동안에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넓어져서 그들은 전체 신자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데 형제들과 연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이방인 중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신속하게 증가하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의 지도적 형제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방법에 대하여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편견을 새로이 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편견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굳어져서 마침내 어떤 지도자들은 복음 전도 사업이 그들 자신의 의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만일 바울이 그들이 주장하는 어떤 정책에 그의 방법을 일치시킨다면 그들은 그의 사업을 승인하고 지지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사업을 더 이상 호의를 가지고 우러러보거나 지원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교사이시므로 당신의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교역자들은 직접 지도를 받기 위하여 인간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거룩한 지도자를 따르는 개인적인 경험을 얻어야 하며 그분의 일꾼들은 인간의 의견이 아닌 거룩하신 분의 형상을 좇아 꼴 지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다.”(행적, 401)
4.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과 상치되지 않도록 일하기 위하여 그의 전 목회 기간 동안 누구의 지도를 온전히 따랐는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사도 바울은 그의 목회 사업에서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백성들을 가르쳤다. 그가 선포한 진리는 성령이 그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4, 10-13)고 바울은 선언하였다.
바울은 그의 전 목회 사업을 통하여 직접 하나님의 지도를 구하였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에 맞도록 일하고자 매우 주의하였으므로 그 결과 교회들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행 16:5)였다. 그리고 이제 어떤 이들이 자기를 흡족하게 동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기회에 그가 유대 장로들 앞에 바칠 수 있었던 관대한 연금에서 나타낸 바와 같은 충성과 관용과 형제다운 사랑의 정신을 그가 회개시킨 사람들에게 나타내게 함으로써 그의 의무를 다하였음을 의식하고 위안을 얻었다.”(행적, 401-402)
질투와 편견을 자복하는 대신 바울에게 그릇된 타협을 제시함
5. 바울의 선교 보고는 의심하고 질투와 편견을 가진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자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들은 성령의 감화를 어떻게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는가?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행 21:19)
“바울은 예물을 드린 후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모든 사람들, 더욱이 의심하였던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그의 수고에는 하늘의 축복이 함께 하였다는 확신을 가져왔다.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그들은 이 사도가 취한 활동 방법에는 하늘의 인이 찍혀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 앞에 드린 너그러운 연금은 이방인들 중에 세운 새로운 교회들의 충성스러움에 관한 사도의 증언에 무게를 더하였다. 예루살렘의 사업을 책임진 사람들 가운데 포함된 자들 중에서 독단적인 통제 방법을 채택할 것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바울의 봉사를 새로운 빛 가운데서 보고 자신들의 행위가 그릇되었으며, 그들이 유대인의 습관과 유전에 속박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헐린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복음 사업을 크게 방해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일하셨으며 때때로 그들이 그의 원수들의 보고를 듣고 질투와 편견을 일으킴으로 과오를 범하였음을 모든 지도적인 형제들이 솔직히 자복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해를 입은 사람을 공정하게 취급하려는 노력으로 연합하는 대신에 기존의 편견에 대하여 바울이 크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그들이 품고 있음을 나타내는 권고를 그에게 하였다. 그들은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를 옹호하기 위하여 굳게 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의견으로는 오해의 모든 원인을 제거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노선을 따르도록 그에게 권면함으로써 타협을 짓고자 노력하였다.”(행적, 402-403)
6. 저들은 바울에게 어떤 타협안을 제시했으며, 이 방법을 따르는 것은 총회의 결정과는 어떻게 모순되는가?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행 21:23-24)
“형제들은 바울이 제시된 방법을 따르므로 그에 관한 거짓 보고에 단호한 반박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들은 이방인 회심자들에 대한 전번 총회의 결정과 의문의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그에게 확증하였다. 그러나 지금 준 충고는 그 결정과 모순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런 교훈을 주시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소심(小心)의 결과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의 율법을 준수하지 아니함으로 스스로 유대인들의 증오심을 불러 일으켜 핍박을 당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산헤드린은 복음의 발전을 방해하고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단체는 사도들 특히 바울을 추적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들의 사업을 방해하고자 사람들을 택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산헤드린 앞에서 율법의 파괴자로 정죄함을 받을 때 유대 신앙의 배도자로서 신속하고도 엄격한 형벌을 받을 것이었다.”(행적, 404-405)
“이 양보는 바울의 가르침과 조화되지 않았고, 확고하고 성실한 그의 품성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를 권고하는 사람들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이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 하에 기록하기는 하였지만 그들도 성령의 직접적인 감동하에 있지 않을 때는 잘못을 범하였다. 바울이 베드로가 이중적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를 면전에서 책망한 적이 있는 것이 기억날 것이다(바울의 생애 214).”(화잇주석, 행 21:20-26)
원칙의 희생은 아닐지라도 비겁한 타협은 결국 위험을 초래함
7. 바울은 장로들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원칙을 희생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령의 재가 없이 자신이 전 목회 기간 동안 가르쳐 왔던 확고한 길에서 빗나감으로 오히려 어떻게 상황을 악화시키고 위기를 재촉하게 되었는가?
“…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행 21:24)
“우리는 그의 형제들과 조화되고자 하는 바울의 큰 소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친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였던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원칙을 희생하지 아니하는 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려는 그의 의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 온 확고하고 단호한 길에서 부득이 빗나가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라던 목적을 성취시키는 대신 화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다만 위기를 재촉하였으며 예언된 고통을 초래하여 그를 형제에게서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교회는 제일 강한 기둥의 하나를 잃었으며 각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슬픔을 가져왔다.”(행적, 405-406)
8. 바울이 장로들의 권고를 수행하는 동안 어떻게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는가?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행 21:27)
“다음날 바울은 장로들의 권고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그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민 6장 참조) 네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였다. 아직도 결례를 위하여 상당히 값비싼 희생제물을 드려야 하였다.
이 방법을 취하도록 바울에게 충고한 사람들은 이렇게 함으로 바울이 당하게 될 큰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은 여러 나라에서 온 예배자들로 가득하였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는 세상의 많은 대도시들을 방문하였으므로 외국 여러 곳에서 절기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에 온 무수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마음에 바울에 대한 통렬한 증오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날 동안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예배자들 중에 출입하였으나 그 특정한 기간이 끝나기 전 그가 드려야 할 희생제물에 관하여 한 제사장과 함께 담화하고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악마들처럼 격노하여 그에게로 달려와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라고 부르짖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도움의 호소에 응할 때 그가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는 비난이 추가되었다.”(행적, 406-407)
성전모독의 누명과 위기에서 구출됨
9. 바울에게 군중들의 편견과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누명이 씌워졌는가?
“…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행 21:28, 29)
“유대의 법에 따라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거룩한 전의 앞마당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벌을 받게 되는 범죄였다. 바울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성내에 나타났었으므로 그가 드로비모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왔으리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고 자신이 유대인인고로 성전에 들어간 그의 행위는 범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비난은 전부가 거짓이었지만 백성들의 편견을 자극하였다. 부르짖는 소리가 성전 온 마당에 들리자 거기 모인 군중들은 거친 흥분에 휩싸였다. 소식은 신속히 온 예루살렘에 퍼져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였다.
무수한 사람들이 예배하려고 세계 각처에서 그곳에 와 있는 바로 이 때에 이스라엘의 한 배교자가 감히 성전을 모독한다는 사실은 폭도들의 감정을 가장 극렬히 자극하였다.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행적, 407)
10. 바울은 군중들에 의해 성전 밖으로 끌려 나오자마자 어떤 위기에 처했으며, 어떻게 모면했는가?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행 21:31-32)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그가 처리하였던 폭동의 요소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었다. 소동의 원인은 몰랐으나 군중의 분노가 바울에게 향해진 것을 보고 로마 천부장은 그가 체포를 피하여 멀리 도망하였던 애굽인 반역자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천부장은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었다. 즉시 많은 사람들이 음성을 높여 분노하여 고발하였다.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갔기 때문이었다.”(행적, 407-408)
[상고할 말씀]
“성령께서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의문의 율법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좋음을 아셨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사도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성령의 마음과 같았다. 야고보는 회의를 인도하였으며 그의 최종 결정은,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자는 것이었다. …
그 소송에 대해 결정을 내렸던 그 총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육성하는데 탁월했던 사도들과 교사들, 그리고 여러 지방에서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 … 그들이 신중하게 협의한 결과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당면 문제에 대해 응답하셨음을 그들 모두가 알았고, 따라서 성령의 지도를 따르는 것이 그들의 할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인 전체가 그 문제를 가결하도록 부름을 받지는 않았다. ‘사도들과 장로들,’ 즉 영향력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교령(敎令)을 만들어 반포하였다. 그러나 모두 그 결정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찬성하지 않은, 야심 있고 자신감을 가진 형제들의 파벌 싸움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독단적으로 그 사업에 종사하는 듯하였다. 그들은 많은 불평과 허물 찾기에 몰두하고, 새로운 계획들을 제의하면서 하나님께서 복음 기별을 가르치도록 임명하신 사람들의 사업을 무너뜨리고자 노력하였다. 처음부터 교회는 그와 같은 장애물을 만났으며 세상 끝날까지 항상 그러할 것이다.”(행적, 194-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