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2분




제10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범위]

가려뽑은 기별 1권, 296-303, 311-330. 


기억절 :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서론 :  죄인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피를 힘입음으로써만 속박과 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직 죄가 없으신 대치물과 담보물이 되시는 주님의 완전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경주(競走)를 할 수 있다. … 그리스도가 없이는 인간은 언제나 율법의 정죄 밑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서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다.”(1기별, 330)


칭의

1. 칭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을 성경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4-26)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롬 3:24-26 인용) 여기에 그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 선하심과 자비하심은 참으로 과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인의 편에서는 아무런 공로도, 권리도 없는데 값없이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칭의는 죄에 대한 충분하고 완전한 용서이다.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는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입혀진다.”(화잇주석, 롬 3:24-26)

“그리스도의 의밖에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은혜스러운 언약의 축복 중 단 한 가지도 받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이 축복을 얻으려고 오랫동안 갈망하고 노력한 자들이 많으나 받지 못함은 그들이 스스로 이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무슨 일을 해보려는 생각을 품은 까닭이었다. 그들은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고 예수를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구주로 믿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시다. … 아무도 마치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을 가진 것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 일을 하기에 무력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 안에는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칭의와 우리의 의가 있다.”(부조, 431)


2. 왜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이루기에 불가능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토의해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타락한 사람은 죄책 때문에 자신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범죄자 사이에는 통과할 수 없는 벽이 생겼기 때문이다. 죽음의 선고가 대속물 위에 내리도록 하는 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구속의 계획에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하였으니 인간의 죄의 결과로 죽음이 필연적으로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희생물이 된 짐승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어야 했다. 죽임을 당한 제물에서 사람은 당분간 ‘네가 정녕히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아야만 하였다(리뷰 1874. 3. 3.).”(화잇주석, 창 4:4)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는 미쁘심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마음을 일깨워야 한다. 우리가 갈바리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주님의 자비와 사랑은 영원한 보증이 된다.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감사의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인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시다.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설교하라.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예수님을 높이 치켜 세우라.”(1기별, 106)


용서와 칭의 

3. 피 흘림이 없다면 사함이 없다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우리의 고행이나 선한 행위로 용서받을 수 있는지 토의해보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사도 바울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 하나님의 율법은 범죄자의 생명을 요구하였다. 죄인의 빼앗긴 생명을 나타내는 피, 곧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는 그 희생 제물의 피는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성소로 옮겨져서 그 휘장 앞에 뿌려졌는데, 그 휘장 너머에는 그 죄인이 범한 율법을 넣어둔 법궤가 있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쟁투, 418)

“용서의 통로는 단 하나뿐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다. 바로 그 통로를 통하여 부요하고 풍성한 용서가 회개하고 통회하는 영혼을 기다리고 있으며 가장 검은 죄라 할지라도 용서를 받는다. 

수천 년 전부터 이 교훈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상징과 비유로 반복해서 가르쳤다. 이는 진리가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하려 함이었다.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 피를 흘리는 모든 희생 제물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모든 의식 절차마다 감명을 끼치는 큰 교훈, 하나님께서 친히 반복해서 가르치신 큰 교훈은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해서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괴로운 멍에를 그대로 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 진리의 힘을 느끼고 직접 그 진리 위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또 어찌 그리 적으며,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믿는 온전한 믿음으로 축복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몇 사람 되지 않으니 … 

공의는 인간의 고통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고통을 지불하셨다. 그분 자신을 위해서는 고통의 속죄가 필요치 않았으며 그의 모든 고통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모든 거룩함과 그의 모든 공로가 타락한 인간에게 공개되어 있고 하나의 선물로 제시되어 있다(편지 12, 1892).”(화잇주석, 딤전 2:5)


4. 죄인은 용서와 칭의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게 된다. 용서와 칭의의 관계를 설명해보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17, 22)


용서와 칭의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믿음을 통하여, 믿는 자는 사단과 죄악의 자녀인 반역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백성의 위치로 나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타고난 선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입양하여 그분의 자녀로 받으시기 때문이다. 죄인은 그의 죄를 그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기 나의 자녀가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망의 선고를 유예하고, 나의 생명보험증권, 곧 영생을 그에게 줍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용서받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

죄인이 실수를 범할지라도 그는 무자비하게 쫓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범죄와 죄악을 용서해 주는 것은 아버지의 대권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셔서 우리의 형벌을 중지하시고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의를 옷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희생은 공의(公義)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

칭의(稱義)는 유죄선고(有罪宣告)와 반대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범죄와 죄악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흉악한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총 안으로, 그리고 영생의 강한 소망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믿음, 103-104)


노력과 행위

5. 인간의 노력과 행위는 구원 얻기에 얼마나 무력하고 무가치한 것인가?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사 59:6)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엄숙한 예배, 집회, 종교적 의식의 반복,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 제사 등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을 의롭고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소망, 280)

“만일 그대가 사람에게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나 공로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제안은 반역으로 간주되어 배격당할 것이다.”(믿음, 24)

“우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으며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이 범한 거룩하고 공의로운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일지라도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것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의를 주장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셨고 죄인을 위하여 대속하심으로써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순수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며 죄인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리자가 되게 한다.”(1기별, 363)


6.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참된 순종의 행위는 자신의 행위인가? 믿음(칭의)의 결과인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잠 12:15)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온전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순종함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셔야만 한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만을 가지고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기뻐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은 가인의 제물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진 것과 죄 뿐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것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천국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그 영혼은 향상하게 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들은 힘에서 힘을 얻게 되며 승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산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진 자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굳게 붙잡게 하며 구속의 경륜에서 큰 위로와 만족을 찾아낼 것이다(1890년 7월 1일, 리뷰 앤 헤랄드).”(1기별, 364)

“겸손과 온유와 순종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들은 믿음의 결과요 열매이다.”(5증언, 437)


성화

7.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들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영적 지식은 무엇인가? 의롭다 함을 얻었으나 자신의 육체 속에 무엇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가? 어떤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가?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레 20:7-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롬 7:18)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것들이 모두 다 즐겁지만은 않을지라도 그대는 놀랄 필요가 없다. 우리 자신의 결점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두움은 사라지고 참 빛이 비친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나의 걸음이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 다윗의 기도를 드리면서 매일 전진하라. 사람의 모든 길은 위험으로 둘리어 있지만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를 의지하면서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면 안전하다. 그대의 마음으로 그 사랑 안에 편히 쉬게 하라.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은 성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찾고 구해야 할 것들이다(노트북 11번 2).”(화잇주석, 시 17:5)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비추는 빛은 자기들 스스로 발하는 빛이 아니다. 그 빛은 모두 다 세상의 생명이요, 세상의 빛이신 분에게서 온 빛이다. 그분은 이 빛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모든 사람이 그를 섬기는 일을 할 때에 사용해야 하는 불까지도 그분께서 붙이신다. 그리스도는 빛과 생명과 거룩함이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성화이다.”(화잇주석, 마 5:13, 14)


8. 성화와 관련하여 사단의 어떤 기만에 조심해야 하는가? 율법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2-24)

요일 5:1, 2.


현대적 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게 나아와, ‘주여 주여 우리를 모르십니까?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묘사된 이 사람들, 위와 같은 거짓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모든 종교적 행사에 표면적으로는 예수를 끌고 들어갔던 이 사람들은 현대적 성화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율법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적절히 대표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과 그들의 악하고 거룩하지 못한 마음을 가리우기 위하여 의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사기꾼들이다. 사단은 이 마지막 시대에 내려와서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여 일하고 있다.”(화잇주석, 마 7:21-23)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 율법을 발로 밟고 자신들이 고안해 낸 표준으로 스스로를 판단하는 자는 결코 성화될 수가 없다(리뷰 1885. 11. 17).”(화잇주석, 마 24:23, 24)


온전한 혼인예복

9.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칭의)를 얻은 자들에게 어떤 표준이 주어졌는가? 특히, 마지막 세대들은 어떤 권고를 받고 있는가? 또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살전 5:23.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신다.(원고 128, 1903).”(화잇주석, 계 3:15-22)

“신자가 복음의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에 할 일은 그의 품성에 덕을 더하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지식은 모든 참교육과 모든 참 봉사의 기초이다. 이것이 유혹에 대한 유일의 참 방벽이며 이것만이 사람의 품성을 하나님과 같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신자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의를 얻고자 성실하게 소망하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남겨 두시는 좋은 선물은 없다. …

아무도 자신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에 도달하기에 실패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초청하시고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모본을 두신다. 끊임없이 죄악을 저항하는 생애로 온전하여진 인성을 쓰신 구주께서는 신성과의 협력을 통하여 인간이 이 세상에서라도 품성의 완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우리도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보증이다.”(행적, 530-531)


10.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방법으로 우리는 무엇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품성)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과 품성에서 품성으로 변화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최초의 새벽빛밖에 보지 못하였다. … 그의 나오심이 새벽빛같이 일정하신 그분을 알되, 그들이 완전한 복음 신앙의 정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그분을 배우는 것이었다.”(행적, 307)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하심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품성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형성하시어 영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지닌 훌륭한 건물이 되게 하신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으시다.”(소망, 762)


[상고할 말씀]

우리들은 우리 자신 안에서는 죄인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인들이다.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히시므로 우리들을 의롭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셨으며 의인들처럼 취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로서 바라보신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많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권세를 대항하여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 2).”(1기별, 394)

“아무도 스스로 열렬한 노력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랫동안 마음을 세상 만물만을 생각하도록 허용한다면 그 습관적인 생각을 변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너무 자주 관심이 그것에만 끌려 흥미를 그곳에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도성에 들어가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려면 이 세상에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품성이 자주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어야 하며 매일 일정한 시간을 특별히 이 거룩한 제목들을 경건하게 명상하는 일에 바쳐야 한다.”(성화, 91)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감해 주시며 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실 때에 당신의 거룩한 은총 가운데로 그 영혼을 받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를 통하여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죄인은 오직 범죄한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대속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받을 자가 없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망과 부활의 공로를 통해서만 죄와 율법의 정죄와 범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 믿음이야말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며 신앙이란 믿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하는 것을 포함한다.”(1기별,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