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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0분


제3과


위협당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572-581


기억절 :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단 7:25)


서론 :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최초의 법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말미암아 제정되었다(서기 321년). 이 칙령은 도시인에게는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휴식할 것을 요구하면서 농촌 사람들에게는 농사일을 계속하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이교도의 법규이었으나 황제가 형식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시행하였다.

왕의 칙령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입증되자 평소에 군주들의 은총을 받고자 희망했던 콘스탄티누스의 특별한 친우이며 추종자인 감독 유세비우스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였다고 하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 새로운 교리를 증명하는 성경상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 자신이 부지중에 그것이 허위임을 시인하고 그것을 변경한 참 장본인들이 누구임을 지적한다. ‘안식일에 해야 할 일체의 의무를 우리는 주의 날로 옮겼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일요일에 대한 논증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안식일을 유린하는데 대담해지게 했다. 그리하여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인기 있는 축제일을 받아들였다.”(쟁투, 574)


법왕교가 세력을 얻는 비결

1. 개신교도들은 법왕교의 정체를 알고 그를 싫어하며 피하게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왕교가 세력을 얻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 40)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개신교도들은 법왕교의 정체를 알고 그를 싫어하며 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부하므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해주도록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깨닫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한가지로 무지하다. 그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양심을 진정시켜야 하므로 가장 신령적이 아닌 것, 가장 굴욕적이 아닌 것을 찾아 구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방법이다. 법왕교는 그런 사람들의 요구에 잘 맞도록 되어 있다. 법왕교는 거의 전 세계를 망라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자기의 공로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들과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적합하도록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법왕교가 세력을 얻는 비결이 있다.”(쟁투, 572)

2. 지적 빛이 밝은 시대에도 법왕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전 6:20, 21)


지적 어둠이 심했던 시대가 법왕교의 성공에 유리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지적 빛이 밝은 시대도 꼭 마찬가지로 그의 성공에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지나간 시대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눈이 가리워져 자기들의 발 앞에 펼쳐 있는 그물을 보지 못하고 걸려들었다. 이 시대에 ‘소위 과학’이라는 인간의 그릇된 이론에 눈이 부시어 올무를 분별하지 못하고 마치 눈이 가려진 것처럼 그리로 걸어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능을 창조주로부터 받은 선물로 생각하고 진리와 의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과 야심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 자신의 이론을 더욱 높이기 때문에 총명이 무지보다 더욱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리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암암리에 손상시키는 오늘날의 거짓 과학은 암흑시대에 있어서 지식을 억제함으로써 로마교의 발전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법왕교를 받아들이게 하는 일에 성공적인 길임이 입증될 것이다.”(쟁투, 572-573)

일요일 준수 운동이 일어남

3. 로마교가 유럽에서 잃어버린 최상권을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 회복하도록 어떤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 7:7, 8)


오늘날 미국에서는 교회의 제도와 관습에 있어서 국가의 지지를 받으려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바, 그것은 개신교가 로마교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개신교도들은 로마교가 유럽에서 잃어버린 최상권을 개신교 미국에서 회복하도록 문을 열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더욱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일요일 준수, 곧 로마교가 만들어서 그의 권위의 표라고 주장하는 관습의 강요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들에 침투되어 그들로 하여금 일찍이 로마교가 그들 앞에서 한 그대로 일요일을 존중하는 동일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로마교의 정신, 곧 세속적 관습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유전을 존중하는 정신이다.”(쟁투, 573)

4.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최초의 법령은 누가 언제 제정했는가? 왕의 칙령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기에 충분치 못하자, 누가 그 일을 도왔는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단 7:25)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최초의 법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말미암아 제정되었다(서기 321년). 이 칙령은 도시인에게는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휴식할 것을 요구하면서 농촌 사람들에게는 농사일을 계속하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이교도의 법규이었으나 황제가 형식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시행하였다.

왕의 칙령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입증되자 평소에 군주들의 은총을 받고자 희망했던 콘스탄티누스의 특별한 친우이며 추종자인 감독 유세비우스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였다고 하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 새로운 교리를 증명하는 성경상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 자신이 부지중에 그것이 허위임을 시인하고 그것을 변경한 참 장본인들이 누구임을 지적한다. ‘안식일에 해야 할 일체의 의무를 우리는 주의 날로 옮겼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일요일에 대한 논증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안식일을 유린하는데 대담해지게 했다. 그리하여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인기 있는 축제일을 받아들였다.”(쟁투, 574)

일요일 옹호자의 문서 위조

5. 성경의 어떤 근거도 없는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기 위하여 로마교회는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그러나 일요일 준수를 성경의 권위로 보증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큰 곤란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날을 숭배하기 위하여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한 여호와의 분명한 선언을 무시해 버릴 권리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있는가 질문하였다. 성경에서 얻어야 할 증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하여 다른 방편이 필요하였다. 12세기 말엽에 영국의 교회들을 방문한 열렬한 한 일요일 옹호자는 충성된 진리의 증인들에게 거절을 당하였다. 그는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효과가 없으므로 일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가르침을 강요하기 위한 어떤 방안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의 그 결함이 보충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으로 주장하는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일요일을 준수해야 한다는 명령과 이를 순종하지 않는 자를 위협하는 무서운 협박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소위 그 귀중한 문서, 사실은 그것이 지지하는 그 제도와 마찬가지로 비루한 위조물에 불과한 그 문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데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있는 성 시므온의 제단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로마의 법왕궁이 그 출처였다. 교회의 세력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하여서는 사기와 위조도 각 시대에 걸쳐 법왕권 제도에 의해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돼 왔다.”(쟁투, 575-576)

6. 16세기에 있었던 법왕교 회의는 어떤 결정을 내림으로 그들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고 있음을 스스로 공공연하게 고백했는가?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일요일 신성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왕교도 자신들은 안식일의 거룩한 권위와 그것을 대신하여 생긴 일요일 제도가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공연하게 고백하였다. 16세기에 있은 법왕교 회의는 아래와 같이 분명히 언명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칠일이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날이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지켜오던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안식일을 주의 날로 변경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함부로 변경한 자들은 그들이 한 일이 어떤 일인가를 모르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그들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고 있었다.”(쟁투, 577)

일요일 강요에 대한 개신교의 태도

7. 로마교회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써왔는가에 대한 한 가지 현저한 실례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 16:2)


로마교회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써왔는가에 대한 한 현저한 실례는 왈덴스인들에게 가한 잔악하고 장기간에 걸친 박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는 안식일 준수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넷째 계명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유사한 방법으로 고난을 받았다. 에디오피아와 아비시니아 교회들의 역사는 특별히 중요하다. 암흑 시대의 어둠속에서 중앙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띄지 않고 세상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는데 그들은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의 신앙을 자유롭게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로마는 그들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고 미구에 아비시니아의 황제는 법왕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승인하는 미혹에 빠지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것들도 양보하게 되었다. 가장 엄한 형벌 아래 안식일 준수를 금지하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그리고 법왕의 학정은 너무도 쓰라린 멍에가 되었기 때문에 아비시니아 사람들은 그들의 목에서 그 멍에를 벗어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무서운 투쟁 끝에 로마 교도들은 그들의 영토 밖으로 추방되고 옛날의 신앙이 회복되었다. 교회들은 그들의 자유를 향유함과 동시에 그들은 로마교의 기만과 광신과 전제적 세력에 대하여 배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들은 외로운 그들의 영토에서 다른 그리스도교국에 알려지지 않고 지내는 것을 만족히 여겼다.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법왕교가 완전히 배교하기 전에 그 교회가 지켰던 것처럼 안식일을 준수하였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제칠일을 지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관습을 따라 일요일에 노동을 하지 않았다. 로마교가 최상권을 잡게 되자 그는 그 자신이 정한 날을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안식일을 유린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거의 일천 년 동안 숨어서 이 배교에 동참하지 않았다.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자 그들은 참 안식일을 버리고 거짓 안식일을 높이도록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독립을 회복하자마자 그들은 넷째 계명을 준수하게 되었다(부록 34 참조).”(쟁투, 577-578)

8. 이와 같은 과거의 역사가 언제 다시 반복될 것인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이와 같은 과거의 기록들은 참 안식일과 그 옹호자들에 대한 로마교의 적의와 그가 창안한 제도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이 어떠함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교와 개신교가 일요일을 존중하기 위하여 연합하게 될 때 이런 사건이 반복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쟁투, 578)

미국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

9. 요한계시록 13장 11절의 예언은 미국을 통해서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묘사된 세력이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표범과 비슷한 짐승으로 표상된 법왕권을 경배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은 또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할 것이며, 더욱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계 13:11-16) 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표상된 세력은 북미 합중국임이 이미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은 로마교가 그의 최상권에 대한 특별한 인정의 표로 주장하는 일요일 준수를 미국이 강요하게 될 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이 법왕권에게 이러한 경의를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한 모든 나라에 있었던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예언은 그 세력이 다시 회복될 것을 알려 준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계 13:3)리라고 한다. 치명적 상처를 받은 타격은 1798년에 발생한 법왕권의 몰락을 가리킨다. 그 일이 있은 후 선지자는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더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불법한 자’(살후 2:8)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로 세상 종말까지 기만하는 사업을 계속할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법왕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고 한다. 신대륙과 구대륙 모두에서 법왕권은 오로지 로마교회의 권위로 세워진 일요일 제도의 존중을 통하여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쟁투, 578-579)

10. 미국에서 개신교회와 국가의 권세가 연합하여 양심을 지배하게 되면, 어떤 예언이 성취될 것인가?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 13:3, 4)


그리고 결코 변경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로마교의 자랑을 기억해야 한다. 그레고리우스 7세와 인노센트 3세가 가졌던 원칙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로마 천주교의 원칙들이다. 그러므로 만일 로마교가 권력을 가지게만 되면 지나간 세기에 못지않게 그 세력을 행사할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일요일을 준수하는 사이에서 로마교의 도움을 받고자 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로마교는 그의 세력을 다시 구축하고 그의 잃어버린 최상권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을 관철시키고 있다. 일단 이 원칙이 미국에서 확립되어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거나 지배하게 되고 국법이 종교 행위를 세속적 법률로 강요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교회와 국가의 권세가 양심을 지배하게 되면 이 나라에서의 로마교의 승리는 확실해진다.”(쟁투, 581)


[상고할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절박한 위험을 경고해 왔다. 만일 여기에 유의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개신교계는 마침내 로마교의 진상을 알게 될지라도 그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서 그 올무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교회는 조용히 세력을 키우고 있다. 그의 교리는 입법 기관과 교회들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 교회는 오늘날 높고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고 있는데 그 건축물들의 은밀한 장소에서 그의 이전의 핍박이 반복될 것이다. 때가 되면 그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극히 조용히 그의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유리한 입장에 서는 일인데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우리는 미구에 로마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난과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쟁투,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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