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0 20:22

6. 가버나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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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6분


제6과


가버나움에서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52-261; 마태복음 4:13-17; 마가복음 1:21-38; 누가복음 4:31-44


기억절 :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막 1:27-28)


서론 :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철저한 의식 존중주의와 그들의 예배 및 자선 행위의 과시를 통하여 영예를 얻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신앙을 토론의 주제로 삼음으로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열성을 입증하였다. 반대파들간의 논쟁은 언성이 높고 시간이 길었으며 거리에서 유식한 율법 박사들의 성난 논쟁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수의 생애는 이런 모든 것과는 뚜렷이 대조되었다. 그의 생애에서는 소란한 논쟁이나, 가식적인 예배나, 칭찬을 얻으려는 행위 등을 결코 목격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감취어 지셨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품성 가운데 드러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 계시로 향하게 하고 그들의 경의가 이 계시에 표해지기를 바라셨다.”(소망, 261)


가버나움 – 구주의 사업의 중심지

1.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처음으로 가르치신 날은 어느 날이었는가? 가버나움은 어떤 곳이었으며, 왜 구주의 사업의 중심지가 되기에 매우 적합하였는가?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눅 4:3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예수께서 여기저기 다니시는 여행의 여가에는 가버나움에서 사셨으므로 그곳은 ‘예수의 고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가버나움 자체는 구주의 사업의 중심이 되기에 매우 합당한 곳이었다. 그 도시는 다메섹에서 예루살렘과 이집트 및 지중해에 이르는 대로상에 있었으므로 여행의 왕래가 심한 곳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도시를 지나갔고 혹은 이곳저곳 여행하는 길에 쉼을 얻기 위하여 머무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모든 계층의 부자와 위인과, 가난한 자와 미천한 자를 함께 만날 수가 있었으며, 그의 교훈은 다른 나라들과 많은 가정에 전하여질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예언의 말씀을 상고하는 일이 일어나고, 관심은 구주에게로 향하여지고 예수의 사명이 세상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소망, 252-253)

2. 이미 가버나움에는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실 수 있는 길이 한 가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가정은 어떤 귀한 축복의 경험을 증거하고 있었는가?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요 4:46, 53)

요 4:47-52


아버지는 아들을 반기기 위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아들을 죽은 아이가 살아 나온 것처럼 자기 품에 힘껏 안고 이 놀라운 회복에 대하여 몇 번이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신하는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를 갈망했다. 그는 후에 예수의 교훈을 듣고 그와 그의 모든 가족이 제자가 되었다. 그들의 재난은 온 가족의 회심으로 전화 위복이 되었다. 이적에 대한 소식은 퍼졌다. 그리하여 그토록 많은 그의 능력 있는 이적이 행해진 가버나움에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봉사를 위한 길이 예비되었다.”(소망, 199-200)

“가버나움에서 그리스도께서 고쳐주신 왕의 신하의 아들은 예수의 능력에 대한 한 증거였다. 그리하여 그 신하와 그의 집안은 그들의 신앙을 기쁘게 증언하였다. 그 선생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알려지자 온 동네가 들먹거렸다. 무리들이 예수가 계신 곳에 모여들었다. 안식일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 되돌아갔을 정도로 사람들이 회당에 모였다.”(소망, 253)

권세는 있으나, 부드러운 동정으로 회중을 대하심

3.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어떻게 제시하셨으며, 가르치시는 방법과 태도와 교훈에 있어서 랍비들과는 어떻게 대조되었는가?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9)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가르침은 기계적으로 배운 교훈과 같이 냉랭하고 형식적이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없었다. 그들 자신의 사상과 유전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습관적인 의식의 굴레 속에서 율법을 설명하노라 했지만 그들 자신의 마음이나 듣는 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감은 전혀 없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분분했던 여러 가지 주제들에 전혀 관계하지 않으셨다.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업이었다. 예수의 말씀은 족장들과 선지자들의 교훈에 환한 빛을 비춰 주었으므로, 성경의 말씀이 새로운 계시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이전에 결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그토록 심오한 의미들을 깨닫지 못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곤고함을 익히 아시는 분으로서 사람들을 그들의 처지에서 만나셨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가장 직접적이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하심으로써 그 진리를 아름답게 하셨다. 그의 언어는 깨끗하고 세련되어 있었으며 흐르는 물처럼 맑았다. 랍비들의 단조로운 어조의 말을 들어왔던 자들에게 예수의 음성은 마치 음악과 같이 들렸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는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특징이 예수의 가르침을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과 대조가 되게 하였다. 랍비들은 마치 성경의 말씀들이 한 가지 사물이나 혹은 그와는 꼭 반대의 사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과 주저함으로 말하였다. 듣는 자들은 날마다 더욱 큰 불확실 가운데 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의 책으로 가르치셨다. 그가 제시하시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간에 그의 말씀을 전혀 논박할 수가 없는 그런 권세로 그 문제가 제시되었다.”(소망, 253)

4. 예수님께서는 불신으로 무뎌진 회중들의 마음을 어떻게 당신께로 이끄셨는가?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어떤 정신으로 회중들과 연결시키셨는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2:20-21)


그의 부드러운 동정은 지치고 상한 마음들 위에 치유하는 접촉이 되어 임하였다. 성난 원수들의 소요 속에서도 그는 화평의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그의 용모의 아름다움, 그의 품성의 온유하심, 그중에서도 특히 표정과 음성 속에 표현된 사랑이 불신으로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모든 외모와 말 가운데 비친 친절하고 동정깊은 정신이 아니었다면, 예수께서 큰 회중을 이끌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께로 왔던 고통받는 자들은 그분께서 충실하고 친절한 친구가 되셔서 당신의 관심을 그들의 관심에 연결시키셨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를 더욱 알기를 갈망하였다. 하늘이 가까이에 임하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사랑의 안위하심이 그들과 계속적으로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임재하심 안에 머물기를 갈망하였다.”(소망, 254-255)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달아 보셨다. … 내가 그대의 재난을 담당하고 슬픔을 짊어졌다. 그대는 그대의 목자의 부드러운 동정의 사랑 가운데 가장 깊으면서도 가장 풍부한 동정을 갖고 있다. … 주님의 인성은 그분의 전능하신 품성으로 채워져 있다. 그분은 항상 그분의 동정과 사랑을 그분이 택하시고 그분의 초청에 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려고 갈망하고 있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7. 5. 18).”(그분을 알기 위하여, 51)

사단의 계획을 제어하심

5.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우려고 오셨던 나라와 사단에게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한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 일을 통해서 사단이 목적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3-34)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그가 세우시려고 오셨던 나라와 사단에게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기 위한 그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은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었다. 어떤 광인이 사람들 가운데서 뛰쳐나오면서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외쳤다.

모든 사람이 이제 혼란과 경악 속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들의 주의가 그리스도에게서 돌려졌으며, 그의 말씀은 유의 되지 않았다. 이것이 사단이 그의 희생자를 회당 안에 인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귀를 책망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소망, 255)

6. 귀신 들린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이 사람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이 처참한 고난자의 마음은 사단에 의해 어두워졌었으나, 구주의 임재 앞에서 한 줄기의 빛이 암흑을 꿰뚫었다. 사단의 지배를 떠나서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귀신이 그리스도의 능력에 저항하였다. 그 사람이 예수에게 도움을 호소하려고 할 때, 악한 영이 그의 입에 말을 넣어 주었다. 그는 공포의 괴로움 가운데서 소리를 질렀다. 귀신 들린 사람은 자기를 자유케 하실 수 있는 분 앞에 자기가 나와 있다는 것을 얼마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위대하신 손을 붙잡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가고자 힘쓸 때에 또 하나의 다른 의지가 그를 붙들어서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단의 능력과 자유를 구하는 그의 욕망 사이의 투쟁은 처절했다. …

이 사람을 그의 친구들에게는 두려운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 자신에게는 괴로움이 되게 한 그 재앙의 은밀한 원인은 그의 생활 속에 있었다. 그는 죄의 향락에 빠져서 인생을 대환락으로 삼으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세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그의 가족에게 치욕을 안겨 주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시간을 천진한 젊은 시절의 어리석은 행위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번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그의 발은 급속히 타락의 길에 떨어졌다. 부절제와 천박한 행동이 그의 성품의 고상한 속성들을 왜곡시키고 사단이 그를 완전히 지배했다.”(소망, 255-256)

말씀 – 불신을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

7.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고 가버나움의 광인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악령은 또 누구를 지배하고 있었는가? 의와 죄 사이에 있을 마지막 대쟁투에 있어서 사단은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할 것인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고 가버나움의 광인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악령이 불신하는 유대인들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습을 가장했으며, 구주를 거절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동기에 대하여 그들을 기만하려고 하였다. 그들의 형편은 귀신 들린 자의 그것보다 더 희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사단의 세력 아래 단단히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

의와 죄 사이에 있을 마지막 대쟁투에 있어서도 이러할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 빛과 능력이 하늘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반면에 한 새로운 생명이 밑으로부터 솟아 올라와서 사단의 대리자들에게 활기를 준다. 모든 세상의 요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랜 세기 동안의 쟁투에서 얻은 교활함을 가지고 악의 임금은 변장한 채 활동한다. 그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딤전 4:1)을 것이다.”(소망, 256-257)

8. 그리스도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교사들이 사단의 역사에 대항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가?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2-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막 12:24)


그리스도의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교사들은 사단의 역사를 대항하는 데 무력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악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의 수단을 등한히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악한 자를 이기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자라고 고백하였으나,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유전을 지지하고 사람이 만든 그들의 계율(戒律)들을 시행하기 위해서만 연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주시지도 않은 취지를 그것이 표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석하였다. 그들의 신비적인 해석은 하나님께서 명백히 하신 것들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무의미한 세부적인 문제에 대하여 논란하고 실질적으로는 가장 요긴한 진리들을 부인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불신의 씨앗이 널리 뿌려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능력을 잃고 악령이 그들의 뜻대로 활동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 앞에 성경을 펴놓고 그 가르침을 존중한다고 공언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그 말씀을 잘게 해부하여 그 간명한 진술보다 자신의 의견을 높이는 일에 바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수중에서 그 갱생시키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것이 바로 불신이 횡행하고 죄악이 난무하는 이유이다.

사단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킨 다음, 사람들이 다른 근원에서 빛과 능력을 찾도록 지도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교묘하게 환심을 사는 것이다.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과 하나님의 성령의 자각시키는 능력에서 돌아서는 자들은 마귀의 지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사악한 자를 이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방법, 곧 말씀의 능력이다.”(소망, 257-258)

이 날(안식일)의 또 다른 이적과 봉사들

9. 회당에서의 놀라운 표적으로 인해 회중들이 넋을 잃고 있는 사이에 예수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위해 어디로 가셨는가?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분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어떤 형편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눅 4:38-39)


회당에 있던 회중들이 놀라움으로 여전히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잠시 쉬기 위하여 베드로의 집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예수께서 질병을 꾸짖으시자 환자가 일어나서 주인과 그의 제자들에게 수종 들었다.”(소망, 259)

10.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소식은 이날이 안식일이었음에도 가버나움 전역에 빠르게 퍼졌다. 안식일 시간이 끝나자마자 베드로의 집에는 어떤 소동이 벌어졌는가? 왜 그들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는가?

해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눅 4:40-41)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소식은 가버나움 전역에 급속히 퍼졌다. 백성들은 랍비들을 두려워하여 안식일에는 감히 치료를 받기 위하여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가정에서, 가게에서, 시장에서, 동네 주민들이 예수께서 쉬고 계시는 보잘것없는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환자들은 들것에 실려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혹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약하여 비틀거리면서 구주가 계신 곳으로 들어왔다.

여러 시간 동안 그들은 오고 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이 치료자가 내일도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실지에 대해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버나움은 이전에 이와 같은 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늘은 승리의 소리와 구원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구주께서는 당신이 일깨워 주신 기쁨 가운데서 즐거워하셨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온 자들의 고통을 목격하실 때에 그의 마음에 동정심이 일어났으며,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자를 치료하시기까지는 그의 일을 쉬지 않으셨다. 군중이 물러간 것은 밤이 꽤 깊은 때였다. 정적(靜寂)이 시몬의 집에 내려앉았다. 긴 흥분의 날이 지나가고 예수께서는 잠자리에 드셨다. 그러나 동네가 아직도 잠들어 있을 때에 구주께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예수의 지상 생애의 나날은 이렇게 보내어졌다.”(소망, 259)

그리스도의 사명과 사업의 성공을 위한 길

11. 그리스도의 사업이 고향 나사렛에서는 거절되었으나, 거기에서 가까운 가버나움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떠나시지 말기를 만류하는 무리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왜 그곳을 떠나셔야만 하셨는가?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눅 4:42-43)


이른 아침에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께 와서 가버나움 사람들이 벌써 예수를 찾고 있다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제까지 받으신 대접을 보고 심히 실망하였었다.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으며, 심지어 예수의 고향 사람들까지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는 열광적인 기쁨으로 환영을 받았으므로, 제자들의 희망은 다시 불타올랐다. 자유를 사랑하는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서 새 왕국의 지지자들이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당시 가버나움을 휩쓸던 흥분 가운데서 예수의 사명의 목적이 상실될 우려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단지 이적을 행하는 자나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자로서 사람의 이목을 자신에게 이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구주로서의 자신에게로 이끄시려고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세상적인 국가를 세우시려고 왕으로서 오셨다는 것을 믿으려고 열망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지상의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돌리기를 원하셨다. 세속적인 성공만으로는 그의 사업에 방해가 될 것이었다.”(소망, 260)

12. 예수님의 생애와 그분의 사업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성취되어야만 했는가?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사 42:2-4)


그리고 부주의한 군중의 경탄은 그의 정신에 거슬렸다. 예수의 생애에는 자기 주장이 섞여 있지 않았다. 세상이 지위나, 부나, 재능에 표시하는 존경은 인자와는 관계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충성과 존경을 얻으려고 사용하는 방법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의 탄생 여러 세기 전에 예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되었다. (사 42:2-4 인용) …

의의 태양은 찬란하게 세상에 나타나서 그의 영광으로 감각들을 현혹시키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호 6:3)라고 기록되었다. 일광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땅을 비추면서 어두움의 그림자를 흩어 버리고 세상을 활기 있게 만든다. 그와 같이 의의 태양은 ‘치료하는 광선을’(말 4:2) 가지고 떠오른다.”(소망, 260-261)


[상고할 말씀]

각 사람은 어떤 권세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할 것인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아무리 깊이 타락하고 죄악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귀신 들린 자는 기도 대신에 사단의 말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의 말없는 호소는 들려졌다. 필요를 느끼는 영혼이 외치는 소리는 그것이 비록 말로 표현되지 못했을지라도 무시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로 동의하는 자들은 사단의 능력에나 그들 자신의 연약한 성정 그대로 버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구주에게서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는 초대를 받고 있다. 흑암의 영들이 한때 자신들의 지배 아래 있었던 그 영혼과 싸울 것이나,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세한 힘을 가지고 그 영혼을 위하여 대항할 것이다. 주께서는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사 49:24, 25)고 말씀하신다.”(소망, 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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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2. 요한의 투옥과 죽음 (2) 청지기 2022.07.03 61
434 1. 요한의 투옥과 죽음 (1) 청지기 2022.06.26 85
433 2022년 3기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청지기 2022.06.26 60
432 13. 베데스다와 산헤드린 (2) 청지기 2022.06.18 55
431 12. 베데스다와 산헤드린 (1) 청지기 2022.06.11 60
430 11.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청지기 2022.06.05 68
429 10. 야곱의 우물가에서 (2) 청지기 2022.05.28 63
428 9. 야곱의 우물가에서 (1) 청지기 2022.05.21 62
427 8.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청지기 2022.05.14 52
426 7. 니고데모 청지기 2022.05.08 64
425 6. 당신의 성전에서 (2) 청지기 2022.04.30 60
424 5. 당신의 성전에서 (1) 청지기 2022.04.23 64
423 4. 혼인 잔치에서 청지기 2022.04.16 89
422 3.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청지기 2022.04.09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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