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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21분


제5과


당신의 성전에서 (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154-162; 요한복음 2:12-17


기억절 :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서론 :  그리스도께서는 모종의 조치가 취해져야만 될 것을 아셨다. 백성들은 의식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교훈을 받음이 없이 무수한 의식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배자들은 그들이 바치는 희생 제물이 유일하시고 완전하신 희생 제물 되시는 분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쳤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그들의 모든 제사가 상징하고 있는 분께서 인정과 존귀를 받으심 없이 서 계셨다. 그가 바로 헌물에 대한 지시를 주셨던 분이셨다. 그는 그 제물들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셨다. 그는 이제 그 제사가 왜곡되고 오해되고 있음을 보셨다. 신령한 예배는 신속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그들의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예배를 확립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실 사업이었다.”(소망, 157)


첫 유월절

1. 가나의 혼인 잔치 후에 예수님께서는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 2:13)


예수께서는 이 여행에서 수도로 향하여 길을 떠나고 있던 큰 무리 중의 한 무리와 일행이 되셨다. 그는 아직도 자기의 사명을 공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군중 가운데 섞이셨어도 남의 주목을 끌지 않으셨다. 이 경우에도 요한의 전도로 말미암아 현저하게 제시되었던 메시야의 강림이 흔히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국가가 강대해진다는 소망은 흥분된 감격으로 강조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소망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기인된 것이므로 실망을 겪게 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깊은 열의를 가지고 예언의 말씀을 설명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치밀하게 연구하도록 깨우치려고 힘쓰셨다.”(소망, 154)

2. 유월절은 왜 예수님께서 당신의 공중 봉사사업을 시작하시고 성취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절기였는가?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요 2:23)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 세 연례적인 절기에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주 앞에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세 절기 중 유월절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다.”(소망, 75)

“유대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유월절 절기 동안 예루살렘에는 팔레스틴 각처와 심지어 먼 외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소망, 154)

탐욕과 부정의 소굴이 된 성전 뜰

3.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들은 매해마다 생명의 속전으로 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으며, 이 속전은 어떤 방법으로 거두어졌는가?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이 제도뿐만 아니라, 예배자들의 희생 제물로서 소요되는 동물들로 어떻게 악용하고 있었는가?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0:12)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요 2:14)


모든 유대인은 ‘그 생명의 속전’으로 해마다 반 세겔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이렇게 모은 돈은 성전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다(출 30:12-16). 이외에도 많은 금액이 자원하는 헌물로 드려져서 성전 금고에 넣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외국 화폐는 성전 봉사에 사용되었던 성전 세겔이라고 불리어졌던 주화로 바꾸도록 되어 있었다. 돈을 바꾸는 일은 사기와 부정 취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수치스러운 거래로 발전하였으며, 제사장들의 소득원이 되었다.

상인들은 동물들을 팔 때에 엄청난 가격을 요구하여 제사장들 및 관원들과 이익금을 나눠 가졌다. 그들은 이와 같이 백성들의 희생으로 치부하였다. 경배자들은, 만일 그들이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자녀들과 토지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아왔다. 이와 같이하여 비싼 가격에 동물들을 팔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그들이 하려고 왔던 헌신의 행위를 이행함이 없이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소망, 155)

4. 저들의 신성한 예배를 위한 명목상의 편의는 오히려 신성한 장소를 어떻게 더럽히고 있었으며, 의식의 엄격한 준수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이 예배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가?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사 56:11)


유월절 때에는 수많은 제물들이 바쳐졌으므로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는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이에 따르는 혼란으로 그곳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란스러운 가축 시장과 같았다. 쩔렁거리는 동전과 노한 언쟁 소리에 뒤섞여 흥정하는 날카로운 소리, 가축들이 우는 소리, 양들과 비둘기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혼란이 너무나 극심하여 경배자들은 방해를 받았으며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은 성전 속까지 침입하여 들어온 소동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경건을 크게 자랑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바라보며 기뻐했으며, 성전을 헐뜯는 말을 하면 신성모독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성전에 관계가 있는 의식을 이행하는 데 매우 엄격했으나 그렇게 한 것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이 의식의 원래의 목적에서 그들이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거의 깨닫지 못했다.

… 하나님의 성전의 경내(境內)는 신성하게 간주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익 다툼으로 이 모든 것이 잊혀졌다.”(소망, 155-156)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성전 뜰에서의 악폐를 시정했어야 했다. 그들은 성실과 동정의 모본을 백성들에게 보여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는 대신에 경배자들의 사정과 필요를 염려하고 필요한 제물들을 살 수 없는 자들을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탐욕으로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게 되었다.”(소망, 156-157)

성전을 정결케 하심

5. 신성한 경내의 이 모든 부정의 광경을 보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열심(질투)으로 고무되셨는가?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사 57:17-18)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이 모든 광경을 보셨다. 그는 부정한 거래를 보셨다. 그는 피흘림이 없이는 그들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난한 자들의 슬픔을 보셨다. 그는 당신의 성전의 바깥뜰이 부정한 장사의 장소로 변한 것을 보셨다. 신성한 구내는 일종의 광대한 돈 바꾸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종의 조치가 취해져야만 될 것을 아셨다. 백성들은 의식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교훈을 받음이 없이 무수한 의식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배자들은 그들이 바치는 희생 제물이 유일하시고 완전하신 희생 제물 되시는 분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쳤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그들의 모든 제사가 상징하고 있는 분께서 인정과 존귀를 받으심 없이 서 계셨다. 그가 바로 헌물에 대한 지시를 주셨던 분이셨다. 그는 그 제물들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셨다. 그는 이제 그 제사가 왜곡되고 오해되고 있음을 보셨다. 신령한 예배는 신속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그들의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예배를 확립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실 사업이었다.”(소망, 157)

6. 예수님께서는 인성의 두루마기를 통하여 신성의 번쩍이는 의분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4-16)


예수께서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시면서 구내 입구에 모아 둔 노끈으로 된 채찍을 드시고 장사하는 무리에게 성전 구내에서 떠나가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전에 결코 나타내시지 않으셨던 열정과 준열하심으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다. 주화는 대리석으로 깐 보도 위에 떨어져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아무도 감히 예수의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정 수단으로 얻은 이익을 주워 모으려고 감히 멈추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가지시고 그들을 때리지는 않으셨지만 그의 손에 들린 간단한 채찍은 마치 화염검과 같이 무서워 보였다.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 투기(投機)하는 제사장들, 그리고 중간 상인들과 가축을 파는 자들이 양과 소를 몰고 오직 그리스도 앞에서 받은 정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일념으로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달아났다.

공포가 무리를 휩쓴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의 표시를 느낀다. 공포의 비명이 수백 명의 핏기 잃은 입술에서 새어 나온다. 제자들까지도 떤다. 그들은 예수의 평상시의 태도와는 동떨어진 그 언행의 위엄에 위압을 느낀다. 그들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 69:9)라는 말씀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된 것임을 기억한다. 곧 떠들썩하던 군중이 그들의 물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떠나간다. 성전 뜰에는 부정한 거래가 없어지고 무거운 침묵과 엄숙함이 혼란하던 광경 대신에 자리를 잡는다. 옛날 시내산을 성별하셨던 여호와의 임재하심이 이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성전을 신성하게 하셨다.”(소망, 158-161)

영혼의 성전 정결

7.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은 그리스도로서의 그분의 사명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1-3)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는 중에 예수께서는 메시야로서의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시고 당신의 사업에 착수하시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 건축된 성전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하여 한 실물 교훈이 되도록 계획되었다. 영세 전부터 광명하고 거룩한 스랍 천사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내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그쳤다. 사람의 마음은 죄악으로 어두워지고 더러워져서 신령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더이상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쓰시고 사람이 되심으로 하늘의 목적은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인류 안에 거하시고 또한 구원하는 은혜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은 다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는 고상한 운명에 대하여 끊임없이 증거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 성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성령이 임재하실 만한 성전으로 바치지 않았다. 불경한 거래의 혼잡으로 채워진 예루살렘 성전 뜰은 관능적인 욕정과 부정한 생각을 품음으로 더러워진 모든 사람의 마음의 성전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세상의 매매하는 자들로부터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마음에서 더러운 죄 곧 영혼을 부패하게 하는 세속적인 욕망, 이기적인 욕정, 악한 습관을 제거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당신의 사명을 나타내셨다.”(소망, 161)

8.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처럼, 또 하나의 어떤 전(殿)이 정결함을 입어야 하는가? 이것 역시 누구만이 정결케 하실 수 있는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어떤 사람도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자기 스스로 내쫓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만 영혼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강제로 들어가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옛날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으신다. 그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 그는 또 하루 동안만 와 계시지는 않으실 것인데 이는 그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후 6:16; 미 7:17)고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은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여 주님의 거룩한 성전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엡 2:21, 22) 되게 할 것이다.”(소망, 161-162)

스스로 자초한 운명

9.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왜 성전으로부터 도망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미래를 내다보셨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시 76:6-8)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공포에 질려 그들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예리한 눈초리를 피하여 성전 뜰에서 도망갔다. …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매우 측은하게 바라보시고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불쌍히 여기셨다. 이 장면 가운데서 그는 온 유대민족이 그들의 악함과 완고함으로 인하여 흩어지게 될 상징을 보셨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왜 성전에서 도망갔는가? 그들은 왜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는가? …

그리스도께서는 왕의 위엄을 가지시고 말씀하셨으며 그의 외모나 음성에는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명령의 말씀을 듣고 전에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위선자와 강도로서의 자신들의 진정한 입장을 깨달았다.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치 영원하신 재판장의 보좌 앞에서 현세와 영원에 대한 선고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가 선지자임을 확신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임을 믿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에 관한 선지자들의 말들을 번개처럼 떠오르게 해 주셨다. 그들이 과연 이 깨달음에 굴복하려고 할 것인가?”(소망, 162)

10.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위선적인 참모습을 분명히 깨달았으나,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하기로 결심했는가? 왜 그랬는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 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눅 11:52)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뜰의 계단에 서셔서 준엄한 눈초리로 자기 앞에 있는 장면을 바라보신다. 그는 예언적인 눈으로 미래를 내다보신다. 그리고 몇 년 후의 일만이 아니라 여러 세기와 여러 시대를 내다보신다. 그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어떻게 궁핍한 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을지를 보신다.”(소망, 157)

“그들은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셨음을 알았다. 그들은 백성들과 거래할 때에 부정 취득하는 것이 범죄임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셨으므로 그를 증오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공공연히 책망하시는 것이 그들의 자만심에 굴욕감을 주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시기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내쫓으실 때 사용하신 능력과, 또한 이 능력을 그리스도에게 주신 분에게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소망, 162)


[상고할 말씀]

이 절기[유월절]에 고통당하는 자들과 곤핍과 비탄에 잠겨 있는 자들이 왔다. 그곳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벙어리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들것에 실려 왔다. 너무 가난하여 심지어 자신의 허기진 배를 채울 양식조차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이 사람들은 제사장들의 말을 듣고 크게 괴로워하였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경건함을 자랑하고 백성들의 수호자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들에게는 동정과 긍휼이 없었다.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죽게 된 이들이 은총받기를 간구했으나 헛일이었다. 그들의 고통도 제사장들의 마음속에 연민의 정을 일으키지는 못했다.”(소망, 157)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오실 것으로 예견했던 그대로 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만일 그분이 약속된 분으로 영접을 받았을 것 같으면 학식 있는 그들의 교사들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켰으며, 사단은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주를 거절하게 했다. 그들의 교만한 의견을 굴복시키기는 커녕 그들은 그분의 메시야성에 관한 모든 증거에 대하여 눈을 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원의 기별을 스스로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대적하게 했다. 그들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엄숙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빛을 가지고 계실 때 사단이 조용히 곁에 서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 것으로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신과 질투와 의혹을 일으키기 위하여 활동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거절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빛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스스로 빛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천국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을때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신 다음의 말씀이 이처럼 크게 은총을 받은 백성들에 대해서 말해지지 않도록 하라.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5증언,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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