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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29분


제13과


안나스 앞과 가야바의 궁전에서(3)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712-715; 마태복음 26:66-74; 마가복음 14:64, 72; 누가복음 22:31-32, 63-65, 70-71; 요한복음 18:22


기억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


서론 :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예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가 이제 막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하여 놀라움과 충격을 느끼면서 자기의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도 그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뒤섞인 서글픈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그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를 그윽히 바라보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통회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전환점에 이르러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였다. 그는 세리처럼 통회하고 회개하였고 세리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그를 바라보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에게 용서를 보증해 주었다.”(실물, 152-154)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야 자아를 깨달음

1. 베드로는 제자된 자신의 신분이 비난받게 되자 자신의 위장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맹세를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는가?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마 26:69-74)


두 번째로 그에게 주의가 집중되고 다시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는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아직도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하나 곧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가까운 친척이 되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네 말하는 소리가 너를 표명한다’(영문 성경 참고)고 하였다. 이 말을 듣자 베드로는 버럭 성을 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말이 순결한 것으로 유명했다. 베드로는 이제 그에게 질문하는 자들을 완전히 속이고 그의 위장된 신분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저주하고 욕함으로 그의 주님을 부인하였다. 또다시 닭이 울었다. 이 때에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소망, 712)

2. 베드로가 주님을 확실하게 세 번이나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의 양심은 어떻게 깊이 일깨워졌는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비열한 저주의 말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발해지며 드높은 닭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에 울리고 있을 그때에 구주께서는 얼굴을 찌푸린 재판장들로부터 얼굴을 돌려 그분의 가련한 제자를 유심히 바라보셨다. 그와 동시에 베드로의 시선도 주님께 이끌렸다. 그 부드러운 얼굴에서 그는 깊은 동정과 슬픔을 볼 수 있었을 뿐 분노의 그림자는 추호도 볼 수 없었다.

창백하고 고통에 차 있는 얼굴과 떨리는 입술과 동정과 용서의 정이 서린 그분의 모습은 화살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다. 양심은 일깨워졌다. 기억은 되살아났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나 죽는 곳에라도 가겠다고 했던 불과 몇 시간 전의 그의 약속을 회상했다. 구주께서 다락방에서 그날 밤에 그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이 슬퍼하던 일을 기억하였다. 베드로는 방금 예수님을 모른다고 선언하였으나, 이제 그는 매우 슬퍼하며, 주께서 그를 얼마나 잘 아시며, 자신도 알지 못하였던 거짓된 마음을 얼마나 정밀하게 아셨는지를 깨달았다.

추억들은 조수와 같이 그에게 밀려들었다. 구주의 부드러운 자비, 그분의 친절과 오래 참으심, 과오를 범한 그의 제자들을 대하시는 그분의 부드러우심과 인내, … 이 모든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는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눅 22:31, 32)라고 하신 주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심한 혐오감을 가지고 자기가 예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것과 자신의 거짓과 거짓된 맹세에 대하여 반성하였다. 베드로가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한 괘씸한 손이 주님의 얼굴을 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재판정에서 뛰쳐나왔다.”(소망, 712-713)

제자들이 큰 손실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3. 양심이 일깨워진 베드로는 예수님의 당하시는 치욕의 장면을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재판정을 뛰쳐나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디에 와 있었는가?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4:72)


베드로는 홀로 외로이 어두운 곳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고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고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광경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피땀에 젖어 고민으로 떨고 계시던 고통스러운 주님의 얼굴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그는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시련의 시간에 그분과 연합했어야 할 자들이 자고 있었던 일과 예수께서 홀로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시고 고민하시던 일을 기억하였다. 그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신 예수님의 엄숙한 명령을 기억하였다. 그는 다시 재판정에서 일어난 광경을 회상했다. 그가 구주의 굴욕과 슬픔에 가장 무거운 짐을 더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애통하는 마음은 몹시 괴로웠다. 예수께서 당신의 아버지께 자기의 영혼의 고통을 토로하시던 바로 그곳에 와서 베드로는 자기의 얼굴을 땅에 대고 죽기를 원했다.”(소망, 713)

4. 베드로는 물론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명하신 대로 깨어 기도했더라면, 지금처럼 큰 손실을 당하지 않고도 이 시련의 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인가?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0-41)


베드로가 큰 죄를 지을 길을 마련하고 있던 때가 바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는데도 자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잠을 잤으므로 제자들은 모두 큰 손실을 당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통과해야 할 불같은 시련을 아셨다. 그분은 어떻게 사단이 그들의 감각을 마비시켜서 그들로 시련을 대비하지 못하도록 할 것인지를 아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경고를 주셨던 것이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더라면 베드로는 자기 자신의 연약한 힘만을 의지하도록 버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이 고민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와 같이 깨어 있었다면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압도적인 고민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고통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예언하신 그분의 말씀을 회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어둡고 극심한 시련의 때에 희망의 빛들이 어두움을 비춰서 그들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소망, 713-714)

세 번의 사형선고와 세 번의 조롱

5. 날이 새자마자 산헤드린이 다시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의 심문이 어떻게 다시 반복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눅 22:70-71)


날이 새자마자 산헤드린은 다시 회의를 소집해서 예수님을 공회 앞에 끌어왔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고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 그분을 대적할 혐의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으로는 예수님을 정죄할 수 없었다. 이는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야간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분의 이러한 말씀을 듣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로마의 법정이 그분의 말씀에서 사형에 처할 만할 죄목을 찾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술에서 그 말씀이 되풀이되어 나오는 것을 그들 모두가 다시 들을 수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분이 메시야라는 주장을 선동적인 정치적 주장과 연계시킬 수 있었다. …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그들은 한 소리로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셨다. 저희는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고 부르짖었다.”(소망, 714)

6. 예수님께서는 유대의 권력자들로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사형선고를 받으셨는가? 그리고 그분을 욕하고 조롱하는 장면이 몇 번이나 벌어졌는가?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막 14:64)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마 27:1)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요 18:22)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눅 22:63-65)


유대의 권력자들로부터 세 번째 선고를 받으셨으므로, 예수께서는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다. 이 모든 선고에 대해 로마인들의 재가(裁可)를 받기 위하여 이제 그분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 그분을 욕하고 조롱하는 장면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무식한 폭도들에게 받던 것보다 한층 더 심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참석한 바로 그곳에서 또 그들의 허락을 얻어 이 일이 벌어졌다. 모든 동정심과 인도적인 감정은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졌다. 만일 저들의 논법이 약해서 그분의 음성을 침묵시키지 못했다면 그들은 아마 다른 무기들 곧 각 시대를 통하여 이단자들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되었던 고통과 폭력과 죽임과 같은 무기들을 사용했을 것이다.”(소망, 714-715)

악마적 분노에 사로잡힌 백성들

7.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예수님께 유죄가 선고되었을 때, 백성들은 그분을 향한 분노를 어떻게 부르짖었는가? 이 장면은 지상에서 언제 또다시 재현될 것인가?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마 26:66)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막 14:64)


재판관들이 예수님의 유죄를 선고하자 백성들은 악마적인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맹수의 소리와 같았다. 군중들은 예수님에게 달려가서 ‘그는 죄인이다. 그를 죽여라!’ 하고 부르짖었다. 로마의 군병들이 없었던들 예수께서는 갈바리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살아계시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 당국이 간여해서 무력으로 폭도들의 폭력을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재판관들 앞에서 갈갈이 찢기셨을 것이다.”(소망, 715)

“예루살렘에 있었던 재판정의 장면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일어날 것의 상징이다. 세상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든지 아니면 최초의 큰 배도자요, 도둑이요, 반역자요, 살인마인 사단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에 관한한 자비의 기별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사단과 그의 거짓된 것들을 받아 들이면 그들은 자신들을 모든 거짓말장이의 괴수로 만드는 반면에 바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리뷰 1900. 1. 30).”(화잇주석, 마 27:15-26)

8. 로마의 관리들은 유대인들이 무죄한 사람에게 불법적으로 유죄와 사형을 선고함으로 로마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유대인의 법 절차 또한 무시하였음을 어떻게 지적했는가?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애 4:3)


이방인들은 아무 죄도 찾아낼 수 없는 사람을 야수처럼 취급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였다. 로마의 관리들은 예수님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 유대인들이 로마의 권리를 침해했고 더군다나 그 사람의 증언만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유대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의 개입으로 사건 진행에 순간적인 소강(小康)상태를 가져왔지만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동정과 수치심에는 모두가 무감각해 있었다.”(소망, 715)

재림의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분의 얼굴을 다시 볼 자들

9.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존귀함의 직분은 다 잊은 채 그분을 어떻게 모욕했는가?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마 26:67-68)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이 가진 직분의 존귀함을 잊어버리고 추악한 형용어구를 써서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문을 들어 그분을 욕했다.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언한 그분의 외람됨이 그분을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이끌어갔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분을 박해하는 자들은 헌 옷을 머리에 씌우고 그분의 얼굴을 치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고 하였다. 그 헌 옷을 그분에게서 벗길 때에 한 초라하고 비루한 자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소망, 715)

10.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희의 사랑하는 사령관에 대한 온갖 모독적인 표정과 말과 행실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그들이 침 뱉고 주먹으로 쳤던 그분의 얼굴을 그들은 언제 다시 다른 상황에서 보게 될 것인가?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예수께서는 성난 군중들이 당신에게 가장 악랄한 희롱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저들 앞에 온유하고 겸손하게 서 계셨다. 그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얼굴은 언젠가는 저들이 피하여 숨기 바라는 얼굴이며 또 하나님의 도성에서 햇빛보다도 더 밝게 빛날 바로 그 얼굴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자들을 위협하지 않으셨다. … 천사들 가운데 동요가 일어났다. 그들은 곧 그를 구하러 뛰어나가고 싶었으나 제지하는 천사가 그들을 억제하였다.”(초기, 170)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희의 사랑하는 사령관에 대한 온갖 모독적인 표정과 말과 행실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평온하고 창백한 얼굴에 침을 뱉고 멸시한 비열한 자들은 장차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소망, 715)


[상고할 말씀]

유대인이요 외국인으로서 베드로는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선고를 받았다. 이 무서운 죽음을 내다본 사도는 예수께서 심문받으시는 시간에 그분을 부인한 그의 큰 죄를 기억하였다. 한때 그처럼 십자가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그는 이제 복음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버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주님을 부인하였던 자신이 주님이 죽으신 동일한 방법으로 죽는 것은 너무도 큰 영광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베드로는 그 죄를 성실히 회개하였으며 그에게 양떼를 먹이라고 주신 고상한 사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용서함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최후의 무서운 장면의 고통에 대한 생각조차도 슬픔과 회개의 괴로움을 감소시킬 수 없었다. 베드로는 마지막 부탁으로서 그를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아 줄 것을 사형 집행자들에게 간청하였다. 그 요구는 수락되었다. 위대한 사도 베드로는 이런 방법으로 죽었다.”(행적, 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