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4 21:20

1.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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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16분


제1과


초청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328-332; 마태복음 11:28-30 


기억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서론 :  우리가 근신과 순종이라는 주님의 멍에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 멍에를 우리가 지면, 우리는 계속 주님 곁에 있게 되고 그분은 그 짐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져 주신다.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도다.’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교훈을 배우는 것은 학생들이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이다. 마음에 쉼이 이르는 것은 우리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될 때에 오는 것이다(편지 144, 1901).”(화잇주석,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1. 모든 사람은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짐들인가?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시 66:1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각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은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피곤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만 제거할 수 있는 짐에 억눌려 있다. 우리가 진 가장 무거운 짐은 곧 죄의 짐이다. 우리가 이 짐을 지도록 그대로 버려진 바 된다면 그것은 우리를 눌러 박살을 낼 것이다.”(소망, 328)

“그들의 마음은 이생의 염려와 가시덤불이 너무나 무성하므로, 하늘의 사물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당신께로 오면 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초청하신다. … 그리스도께서 주신 휴식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이기적 만족을 위하여 돈을 모으는 계획에 온 정신을 몰두하면서 계속해서 괴로운 이기심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지우신 자아 부정과 무아적 자선의 짐을 지는 중에 누리는 평안과 쉼을 경험하지 못한다.”(1보감, 363)

2. 세리나 죄인들은 물론이고 종교적인 열심으로 가득 차 있던 서기관들과 랍비들조차도 왜 만족할 수 없었는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종교적 형식에 지나친 주의를 하던 서기관들과 랍비들은 의식적(儀式的)인 참회로서는 채울 수 없는 부족감을 느꼈다. 세리들과 죄인들은 육욕적이며 세속적인 것에 만족하는 체할 수는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에는 불신과 공포가 있었다.”(소망, 328)

안식의 축복

3.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초청에 응하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죄인들을 향하여 어떻게 선포하시는가?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안위의 말씀은 예수께서 그를 따르던 군중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구주께서는 사람이 오직 당신을 힘입음으로써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사물에 대한 지식이 주어진 바 된 자들로서 당신의 제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도 당신의 보호와 사랑에서 자신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예수께 나올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마음 상한 자와 근심하는 자들, 희망이 시들어진 자들, 세속적인 기쁨으로 영혼의 갈망을 가라앉히려고 힘쓰는 자들을 보시면서 내 안에서 모두 쉼을 얻으라고 초청하셨다.”(소망, 328)

“축복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하듯이 그대도 스스로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돕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 불신의 말을 하지 말라. 원수가 그대에게 주님께서 그대를 저버리셨다고 하면 그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19:13)고 하셨으므로 결코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라고 말하라. 그대의 연약함을 슬퍼하고 학대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대신 노래를 시작하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하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초청의 말씀을 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대가 배우기를 원하시는 교훈이다. 그대가 이 교훈을 배우면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하늘, 132)

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함께 어떤 짐까지도 져주실 것인가? 그분만이 우리의 짐을 넉넉히 져주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죄가 없으신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단한 어깨에서 짐을 가져가실 것이다. 그리고 쉼을 주실 것이다. 그는 염려와 슬픔의 짐도 지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근심을 당신께 벗어 놓으라고 초청하신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를 기억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소망, 329)

“우리 인류의 맏형님께서는 영원한 보좌 곁에 계신다. 그는 구주가 되시는 당신께 얼굴을 돌이키는 각 사람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약점과 필요가 무엇이며 어디에 시험을 대항할 힘이 있는지를 경험을 통하여 아시는 바 이는 그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는 없으시다. 예수께서는 무서워 떠는 하나님의 자녀인 그대를 지켜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가?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가 힘을 주실 것이다. 그대는 무지한가? 그가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대는 상처를 입었는가? 예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또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 147:4, 3)신다. 그의 초청의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이다. 걱정과 시련이 어느 정도이든지 간에 그대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의 마음에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며 곤경과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신이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대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하여질 것이다.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짐지시는 그리스도에게 맡김으로써 더욱 편안한 안식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소망, 329)

쉼(안식)을 얻는 방법

5.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전하고 완전한 쉼(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제안을 하시는가? 그분의 멍에는 무엇인가?

… 나의 멍에를 메고 …”(마 11:2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렘 6:16)


예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다. 멍에는 봉사의 도구이다. 일하는 가축에게는 멍에를 메우는데 이 멍에는 가축이 효과적으로 일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실례를 들어 생명이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봉사를 위하여 부름을 입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예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그의 멍에를 메어야 한다.

봉사를 위해 메는 멍에는 곧 하나님의 율법이다. 에덴에서 계시되었고 시내산에서 선포되었으며 새 언약에서는 마음에 기록된 사랑의 대 강령, 이것이 일하는 인간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킨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성향을 좇아 우리의 의지가 인도하는대로 가도록 방임된다면 우리는 사단의 반열에 빠져서 그의 속성을 소유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높고 고상하고 향상시키는 당신의 뜻으로 우리를 제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봉사의 책임을 끈기 있고 현명하게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성을 쓰시고 봉사의 멍에를 메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요 6:3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의 영광을 위한 열성과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 사랑이 예수로 하여금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생애를 지배하고 있었던 힘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원칙을 채택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신다.”(소망, 329-330)

6.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안하시는 쉼(안식)을 위한 초청을 받고도 자신의 길을 선택함으로 어떻게 짐을 가중시키는가?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잠 10:16)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세상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애씀으로써 근심의 짐에 눌려 상심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섬기기로 택하였고 세상의 괴로움을 받아들였으며 그 관습을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품성은 훼손을 당하고 생애는 곤고하게 된다. 그들은 야망을 만족시키고 세속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양심을 상하게 하여 가책의 짐을 얹어 짊어진다. 끊임없는 근심은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 근심은 눈멀게 하며 장래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든다.”(소망, 330)

“사람들은 가벼워 보이고, 즐겁게 멜 만한 멍에를 자기들의 목에 맞추어 만들지만, 그것은 곧 아주 지기 힘든 멍에임이 판명된다. 주님께서 이것을 미리 보시고, ‘나의 멍에를 메라 네게 아주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네가 스스로 멘 멍에는 전연 맞지 않을 것이다.’”(화잇주석, 마 11:28-30)

구속(救贖)은 영혼이 하늘을 위하여 훈련을 받는 과정

7.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는 마음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는가?

…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우리는 예수에게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 구속(救贖)은 영혼이 하늘을 위하여 훈련을 받는 과정이다. 이 훈련은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흑암의 임금의 학교에서 얻은 생각, 습관, 행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 반대되는 모든 것에서 영혼이 구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여 다스려진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칭찬을 받음으로 의기양양하시거나 비난이나 실망으로 인하여 의기가 소침해지는 일도 결코 없으셨다. 가장 심한 박대와 가장 잔악한 대우를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용기는 왕성하셨다. 그러나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기를 두려워하므로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지 아니하는바 이는 저희가 그렇게 내어 맡김으로 겪어야 될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굴복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소망, 330)

8.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배우기 위하여 매 순간 그분의 구속의 멍에를 메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로부터 거듭날 때에 예수의 마음, 곧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겸비하게 하도록 이끈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때에야 우리는 가장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그를 배우려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의 가치는, 과시하거나 유명하게 되며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고 열성을 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사업의 가치는 성령의 나누어 주심에 비례한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심지(心志)를 더 거룩하게 하여 인내할 수 있게 한다.

소에 멍에를 메우는 것은 짐을 끌 때 소를 도와서 부담을 가볍게 해주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도 그러하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 안에 흡수되고 또 남을 돕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할 때에 생애의 짐이 가벼워짐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사랑 안에서 그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소망, 330-331)

“우리의 뜻과 방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교훈을 배우면 우리는 평화와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교만과 이기심과 야망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뜻은 그리스도의 뜻 안에 삼켜져야 한다. 전 생애를 하나의 계속적인 사랑과 희생이 되게 할 수가 있다. 움직이는 모든 행동 하나, 하나를 사랑과 희생의 표현이 되게 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사랑의 표현이 되게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화잇주석, 마 11:29)

완전한 순종에는 완전한 쉼이 있다

9.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왜 중요한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3-4)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 68:19)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예수의 보호하심에 영혼을 맡기고 또 그의 명령하심에 생애를 맡기는 자들은 평강과 평온함을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임재로서 그들을 기쁘게 하실 때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그들을 슬프게 하지 못한다. 완전한 순종에는 완전한 쉼이 있다. 주께서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생애가 복잡해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슬기로우신 대명장(大名匠)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이 될 생애와 품성의 본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 - 품성 - 을 나타내는 그 품성은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도록 가납하심을 받을 것이다. 새롭게 함을 입은 자들이 흰옷을 입고 예수와 동행할 것이니 저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소망, 331)

10. 우리가 예수님을 힘입어 “와서 나를 배우라”는 그분의 초청에 응하게 될 때,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어디까지 동행하실 것인가?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5-17)


예수를 힘입어 우리가 안식을 얻는 때에 하늘나라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와서 나를 배우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나옴으로 우리는 영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늘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복락을 오래 누릴수록 더욱더 풍성한 영광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며 하나님을 알수록 우리의 행복은 증대할 것이다. 우리가 이생에서 예수와 동행할 때에는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이요 당신의 임재하심으로 만족을 느낄 것이다. 인성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 땅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세의 영광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소망, 331-332)


[상고할 말씀]

우리의 일은 우리의 짐을 한 데 모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짐을 질 때 그분께서 어떤 짐을 지고 계셨는가를 실제로 느낄 수가 있다. 성경을 연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어떤 짐을 지고 계셨는가를 발견할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시었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성경 말씀에서 우리는 져야 할 멍에가 있음을 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믿음―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짐을 지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짐들을 지고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가 참 많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이런 짐들을 지도록 하나님께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멍에를 메고 그의 짐을 질 때 그리스도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다고 증거할 수 있다. 이는 그분이 우리가 이 짐들을 지도록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울함을 느끼고 용기가 꺾일 때 싸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는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의 품 안에서 우리는 쉼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목을 유행의 멍에 아래 두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메우시려고 계획하신 일이 전혀없는 멍에를 메지도 말아야 한다. 세상 표준에 맞추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다. 각자가 해 보아야 할 큰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표준에 맞출 수가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영혼에 쉼을 얻을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리뷰 1887. 5. 10).”(화잇주석,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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