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3 06:18

제10과 베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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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14분




제10과


베냐민



[연구범위]

교회증언 4권, 200~205.


기억절 :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65:25)


서론 :  사람을 괴롭히는 죄가 무엇이든지 간에, 또 아무리 격심하고 사악한 정욕이 마음을 지배하려고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그가 만약 깨어서 이스라엘의 크신 협력자의 힘과 그분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대항하여 싸우면 그는 반드시 그것들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화잇주석, 삼상 15:17)

 

사랑받는 아들


1. 라헬이 야곱에게서 둘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뭐라고 불렀으며, 야곱은 어떻게 고쳐 불렀는가?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창 35:16-18)


 

“베냐민의 출생은 하나님이 또 다른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로 요셉의 이름을 지은 라헬의 소원에 대한 성취였다(30:24 주석 참조). 그녀는 해산 중에 죽어가면서 이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곧 ‘내 고통의 아들’ 혹은 ‘내 불행의 아들’로 지었다. 그녀의 관점에서 상황들을 살펴볼 때 이것은 매우 적절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으로 불렀다. 문자적으로 ‘오른손의 아들’이다. 야민(yamin), ‘오른쪽’은 행복과 번영을 함축하고 있으며, 아랍어에서도 행운을 뜻한다. 진정한 낙관주의자 야곱은 자기의 막내아들이 용기와 희망을 표현하는 이름, 곧 라헬을 상실한 자신의 슬픔보다 그의 열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의 마음속에 밀려왔던 기쁨을 언제나 상기시켜 주는 이름을 갖기 원하였다. 그것은 다른 한 쪽을 상실한 것을 부분적으로 보상하였다.”(성경주석, 창 35:18)


2. 사랑하는 아내와 요셉을 잃은 야곱의 슬픔은 또 누구를 편애하게 만들었는가? 편애적인 사랑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창 42:36, 38)


 

“많은 가정에서 거의 유아기 동안에 허영과 이기심의 씨가 어린이들의 마음 밭에 뿌려진다. 그들의 귀여운 몇 마디 말들과 행동들이 그들이 있는 데서 칭찬되고 찬양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장되어 되풀이된다. 어린이들은 이것을 주목하고 자아 존대로 의기양양해진다. 그들은 감히 대화를 가로막으며 건방지고 뻔뻔스러워진다. 아첨과 멋대로 하도록 두는 것은 그들의 허영과 외고집을 기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어린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포함된 전 가정을 다스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되어 버린다.”(4증언, 200, 201)


“훈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세상과는 엇갈린 채 인생을 살아가며 그들이 성공했어야 할 곳에서 실패자가 되고 만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아첨하거나 비위를 맞추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점점 더 생각하게 되며, 세상에 대하여 원한을 품음으로써 복수를 하고 세상에 공공연히 반항을 한다.”(4증언, 201, 202)


품성의 결점


3. 야곱은 자신의 유언에서 베냐민의 품성에 있는 어떤 위험성을 언급했는가? 빼앗고 움키고 물어뜯는 성격을 방임하는 것의 위험성을 말해보라.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정복되지 못한 가슴은 그 속에 안식과 만족의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다. 지성과 마음은 훈육을 받아야 하며, 품성이 우리 존재를 다스리는 현명한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한 제지 아래 두어야 한다. 불안정과 불만족은 방종과 이기심의 결과이다.”(4증언, 202)


“젊은이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허락하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더 큰 저주가 없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부모가 알기에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데 방종하게 할 때에, 자녀들은 곧 부모들에 대한 모든 존경심과 하나님이나 인간의 권위에 대한 모든 존중심을 잃어버리고 사단의 뜻에 복종하게 된다. 잘못 단속한 가족의 영향은 널리 퍼지고 온 사회와 국가에 해를 끼치는 악의 조수를 쌓아올린다.”(부조, 579)

 

4. 베냐민 자손에게서 나타난 잔인하고 호전적인 역사를 말해보라. 이 역사의 전후 배경은 어떤 것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삿 21:1-3)


사사기 19, 20장을 읽어보라.


 

“기브아의 악인들을 두둔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는 통혼하지 않겠다고 서약할 정도로 분개했는데, 이는 가나안의 일곱 이방 족속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여호와가 명령한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신 7:1~4).”(SDA성경주석, 삿 21:1)


   참고        이 성읍은 베냐민의 기브아라고 부르기도 하고(삿 19:14; 20:4, 10; 삼상 13:2,15; 14:16) 사울의 기브아라고 부르기도 한다(삼상 11:4; 15:34; 삼하 21:6; 사 10:29). 기브아 사람들이 어떤 레위인의 첩을 욕보여 죽게 했다(삿 19:22-28).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읍을 멸망시켰다(삿 20장).


뛰어난 재능


5. 베냐민 지파 중 많은 사람들은 어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나님의 사업에서의 성공은 뛰어난 재능이 아닌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삿 20:15, 16)

“울람의 아들은 다 큰 용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일백오십 인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대상 8:40)


대상 12:1, 2.


 

“참으로 겸손한 마음을 품는다면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매우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신뢰하면서 어떤 큰 책임을 맡아 성공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쓰실 인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세상 사람이 위대하고 재능이 있고 훌륭하다고 존경하는 자들을 택하시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 자들은 흔히 너무나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 없이도 행할 능력이 있다고 느낀다.”(부조, 553)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에게 이르러 오는 가장 위대한 승리들은 그들의 재능이나, 교육이나, 재물이 인간의 어떤 호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열렬하고 필사적인 믿음으로 전능하신 능력의 팔에 매달릴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도의 밀실에서 얻어지는 승리들이다.”(부조, 203)


6.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항상 마음에 새겨야할 중요한 진리는 무엇인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 8:2, 3)


 

“우리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자극하는 동기에는 자기 숭배의 어떤 요소도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무아적 헌신과 희생의 정신은 항상 받으실 만한 봉사의 첫 요소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오라기의 이기심도 당신의 사업에 짜여 들어가지 않도록 계획하신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지상 성막을 건축하던 자들에게 요구하셨던 재주와 기술과 정확성과 지혜를 우리의 노력에도 기울여야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최대의 재능이나 가장 훌륭한 봉사도, 자아를 태워 버릴 산 제물로 제단에 올려놓을 때에만 가납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선지, 65)


“성공은 재능보다 정력과 자발성에 더욱 많이 달려 있다. 우리들로 하여금 받으실 만한 봉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훌륭한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정신, 다른 사람들의 복리에 대하여 소박하고 진실한 관심을 가지는 정신에 있다. 가장 천한 형편에서 참된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성실하고 충실하게 수행한 가장 평범한 일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다.”(선지, 219)


베냐민 지파의 두 사람


7.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사람이었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관하여 말해보라. 그의 시작은 좋았으나 결말은 어떠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큰 교훈을 주고 있는가?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삼상 9:1, 2)


삼상 9:17, 21; 10:1, 9; 15:16~23, 28; 18:11.


     

“사울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은 이유로, 즉 스스로 작게 여기고 겸손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 우리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해서는 안 된다. 사단의 가장 성공적인 전략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이끌어 작은 죄를 범하게 하고, 조그마한 방종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게 하며, 명백히 언급된 하나님의 요구를 조금 탈선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큰 죄악을 보고는 두려워 움추리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에 죄를 범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하지만 이 작은 죄들이 영혼의 경건 생활을 잠식하고 있다. …일단 퇴행성 운동이 시작되면 그것이 어디에 가서 끝나게 될지 아무도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신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인도와 지지를 받기 위함이며 그분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행할 힘을 얻기 위함이다(사인즈, 1882.9.7).”(화잇주석, 삼상 15:17)


8. 이스라엘의 초대 왕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베냐민 지파의 한 사람을 말해보라. 이 사람의 시작과 결말은 어떠했는가? 두 사람의 사울에게서 배울 교훈을 찾아보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 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행 9:1-6)


빌 3:4~7.


 

“사울은 그릇된 신앙을 옹호하기 위하여 힘과 열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투옥시키고, 죽이는 일에 열심이었다. 비록 그의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결정하고 열렬하게 지지하는 발언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길을 예비하였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그들의 생명을 취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었다.”(화잇주석, 행 9:1, 2)

“만약 사울이, ‘오 주여, 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께서 상세히 말씀해 주신 당신의 지시를 저는 전연 따를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주께서 사울에게 열배의 빛을 더 비추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인간의 뜻과 방법을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되게 하는 것은 가장 힘들고 혹독한 투쟁이며, 인간의 큰 결심과 결단을 요한다. … 품성은 그 결심과 행동의 성질을 결정할 것이다. 행동을 감정이나 경향성에 맞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알려져 있는 뜻에 맞출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복종하라(편지 135, 1898).”(화잇주석, 행 9:6)


소망의 기별


9. 베냐민은 좋은 품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모세는 그에게 어떤 축복의 말을 남겼는가? 마지막 결정적인 위기의 때에 베냐민 사람들 중 어떤 사람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는가?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신 33:12)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에 2:5)


에 3:13; 4:1~3, 8:7, 8, 15~17.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고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자가 무수하더라’(에 4:3). 메대-바사의 법령은 취소할 수 없었으므로 분명히 희망이 없는 것 같았고 온 이스라엘은 멸망의 운명에 놓여 있었다.

…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하였다.

에스더가 직면한 위기는 신속하고도 열렬한 활동을 요구하였으나 그와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힘있게 일하지 아니하시면 그들 자신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신속히 연달아 일어난 사건들-왕 앞에 나타난 에스더, 그가 받은 현저한 은총, 단 한 사람의 빈객인 하만과 왕과 왕후의 잔치, 잠이 오지 않는 왕, 대중 앞에서 명예롭게 된 모르드개, 악한 음모가 발견되었을 때의 하만의 굴욕과 죽음-이 모든 사건은 익히 아는 이야기이다.”(선지, 601)


10. 아하수에로 왕 시대의 사건은 어떻게 마지막 시대에 재현될 것인가? 이때에 영적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8)


 

“에스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른 시련은 그 시대에 국한된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세상 끝날까지 여러 시대를 내려다 본 계시자는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고 선포하였다.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볼 것이다. 과거 여러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참 교회를 박해하게 한 동일한 정신이 장래에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행동을 하고자 할 것이다. 지금도 이 마지막 대투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 대하여 최후에 공포될 법령은 아하수에로가 유대인들에 내린 법령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오늘날 참 교회의 원수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는 적은 무리 가운데서 대궐문에서의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을 본다. 당신의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경의는 여호와 경외하기를 버리고 당신의 안식일을 짓밟고 있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견책이 된다.”(선지, 605)라 당신께 나아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들을 모두 용서해 주실 것을 예표 한다.”(부조, 239, 240)


   참고         베냐민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대제사장 가슴에 부착된 흉패의 셋째 줄에 있는 자수정(출 28:19)이다. 자수정(Amethyst)은 붉은 돌로서 포도즙에서 보이는 자줏빛을 내며 이 보석에 베냐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야곱의 유언에서 보이듯 베냐민은 본성적이요 가정환경에서 형성된 좋지 못한 품성-이리와 같이 잔인하고 물어뜯고 움키는 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자줏빛 보혈로 씻어 변화되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고 있는가? 144,000인 중 12,000명은 바로 베냐민의 이름으로 하늘도성 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12.베냐민 지파.jpg


[상고할 말씀]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도덕적인 능력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범사에 저들의 모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들의 시야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진리를 바라보고 또한 바라봄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에서 순종으로, 불순결에서 순결로 또한 죄에서 마음의 거룩함과 의로운 생애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저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셨다.”(1기별, 262)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율법을 범함으로 규정된 형벌을 되돌리신다. 그 때 죄인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서게 되며 하늘의 호의를 받게 되고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후에 성취되어야 할 다른 일이 남아 있는데 이 일은 점진적인 성격의 것이다. 영혼이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 역시 믿음으로 성취된다. 이는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받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서만이 우리의 품성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3기별,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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