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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6분


제9과


후기 영국의 개혁자들(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253~264


기억절 :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 28:4, 5)


서론 :  사람의 성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고정시켰다는 하나님의 선고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웨슬리는 그와 같은 율법 무용론자들의 그릇된 의견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율법 무용론으로 이끌어가는 교리는 성경과 배치된 것임을 증명하였다. …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은 값없이 주어졌다. ‘참 빛’, 곧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요 1:9)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선물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쟁투, 261, 262)


웨슬리 형제

1. 존 웨슬리(1703~1791)와 찰스 웨슬리(1707~1788) 형제가 살던 시대에 영국의 신앙 환경은 어떠했는가?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1, 2)


그로부터 백 년 후, 곧 영적 암흑시대에 휫필드(Whitefield)와 웨슬리(Wesley) 형제는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당시의 영국 사람들은 국교회(國敎會)의 통제 아래 이교도와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으로 쇠퇴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성직자는 자연 종교를 즐겨 연구하였으므로 그들의 대부분의 신학은 그런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상류 계급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냉소하였고, 소위 그들이 광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위에 있다고 자랑하였다. 하류 계급은 심한 무지 상태에서 부도덕에 빠져 있었다. 그와 반면에 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진리의 사업을 지탱할 힘이나 믿음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쟁투, 253)

2.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은 루터가 고민했던 것과 같은 어떤 문제로 괴로워했는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은 참된 종교는 마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은 말과 행동에는 물론이요, 생각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외부에 나타나는 행위의 바름뿐 아니라 마음의 성결이 또한 필요한 것을 확신하였으므로 새 생애에 들어가기를 힘썼다. 그들은 가장 근면하고 경건한 노력으로 그들의 육신적 마음의 사악함을 극복하고자 애를 썼다. 그들은 극기와 박애와 겸비의 생애를 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게 해주는 성결, 곧 그들의 가장 열망하는 것을 얻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방법을 매우 엄밀하고 정확하게 준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였다. 정죄의 상태에서 놓여나고 죄의 세력을 깨뜨리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그것은 바로 루터가 에르푸르트의 외로운 방에서 경험한 것과 똑같은 투쟁이었다. 그것은 그의 심령을 괴롭게 했던 문제, 곧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고 한 바로 그 문제였다.”(쟁투, 254)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생긴 일

3. 웨슬리 형제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선교사업을 위하여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존 웨슬리와 찰즈 웨슬리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선교 사업을 위하여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들은 모라비아 교도들과 일행이 되어 배를 타게 되었다. 그들은 항해 중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존 웨슬리는 그때에 아직 자기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의 보증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자기가 맛보지 못한 신뢰와 평안을 그 독일인들은 나타냈다.”(쟁투, 254)

4. 웨슬리가 독일인들에게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었는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그[웨슬리]는 말하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들의 진실한 태도를 관찰하였다. 그들은 다른 여객들을 위하여 영국 사람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아니할 비천한 일들을 함으로 항상 겸손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일에 대하여 아무런 보수도 원치 아니하였고, 그것은 자기들의 교만한 마음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라고 하며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더욱 큰일을 행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어떠한 장애를 만날지라도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 유순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만일 밀침을 당하든지, 매를 맞든지, 넘어뜨림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가 버릴 뿐이요, 한 마디의 불평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교만과 분노와 복수의 정신에서는 물론이요, 공포심에서 놓여났는지의 여부를 시험해 볼 기회가 왔다. 그들이 언제든지 예배를 시작할 때에 시편을 송영하던 그대로 시편을 읽고 있을 때 바다가 거칠어지고, 큰 돛이 찢어지고, 파도는 배를 삼키려는 듯이 갑판 위를 휩쓸었다. 이 때에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떠들고 부르짖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독일인들은 조용히 송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후에 나는 그중의 한 사람에게 “당신들은 무섭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또 “그러나 부인들과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요, 우리의 부녀들과 아이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쟁투, 255)

웨슬리의 회심

5. 웨슬리는 괴롭고 쓸쓸한 고투의 긴 세월, 엄격한 극기와 자책과 겸비의 긴 세월을 보냈지만, 결국 어떤 진리를 깨닫게 되었는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영국으로 돌아오자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의 전도자의 교훈 아래 성경상 신앙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행함을 의지하던 것을 모두 버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온전히 신뢰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에서 있은 모라비아 교도들의 한 집회에서 하나님의 영이 믿는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여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으로 된 루터의 글이 낭독되었다. 그 말을 듣자 웨슬리의 마음속에는 신앙의 불이 타올랐다. …

괴롭고 쓸쓸한 고투의 긴 세월, 엄격한 극기와 자책과 겸비의 긴 세월을 통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을 찾으려는 한 가지의 목적에 굳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금식과 자선 사업과 자기희생으로 얻으려고 애쓴 은혜가 실상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깨달았다.”(쟁투, 255, 256)

6. 웨슬리의 신앙생활은 회심한 후에 어떻게 바뀌었는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웨슬리]는 엄격한 극기의 생애를 계속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신앙의 근거가 아니고 결과였으며 성결의 기초가 아니고 열매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이며, 그 은혜는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다. 웨슬리의 생애는 그가 받은 위대한 진리,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새롭게 하는 능력,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생애에 이루어지는 열매 등에 관한 진리를 전하는 일에 바쳤다.”(쟁투, 256)

웨슬리와 하나님의 기적적 보호

7. 웨슬리는 새로운 교파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칭호가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세력 있는 교파의 하나인 어떤 조직을 가지게 되었는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자기들의 소망 없는 상태에 대하여 오랫동안 심각하게 느낌으로써 그들의 사업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이 대학 시절과 전도 사업을 착수한 당시에 받은 멸시와 조롱과 박해의 격렬한 시련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들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소수의 다른 사람들은 경건치 않은 동료 학생들로부터 메소디스트(Methodists-규칙 준수자)라는 모멸적인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칭호가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세력 있는 교파의 하나로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그들은 영국 국교회의 교인으로서 그 교회의 예배 형식에 매우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높은 표준을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전하라고 그들을 강권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이 그들의 활동에 함께 하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였다. 그리하여 그 양들을 약탈하려는 이리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새로운 교파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감리교(Methodist Connection)라는 명칭으로 한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쟁투, 256, 257)

8. 각 시대의 교회 역사에서 하나님의 종들은 험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웨슬리 또한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해 주셨는가?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 18)


하나님의 종들은 험한 길을 걸었다. 세력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그들[휫필드와 웨슬리 형제]을 대적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얼마 후에는 많은 성직자들이 분명한 적의를 나타내었고, 순결한 믿음과 그 믿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교회의 문들을 닫아 버렸다. 강단 위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성직자들의 행동은 암흑과 무지와 불법을 자아내는 요소가 되었다. 여러 번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이적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격노한 폭도의 무리가 그를 습격하여 피할 길이 없는 듯이 보였을 때 사람의 모양을 한 천사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그러자 폭도들은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종은 그 위험한 장소에서 무사히 피해 갔다.”(쟁투, 258)

초대 메소디스트들의 고투

9. 초창기의 메소디스트[감리교회]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로부터 철저한 핍박의 대상이 되었는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초창기의 메소디스트 교인들은 전도자들과 일반 신도들을 막론하고 국교인들과 혹은 국교인들의 무고로 말미암아 격분한 불신자들로부터 조롱과 박해를 받고 그것을 견디었다. 그들은 법정에도 이끌려 나갔는데, 당시의 법정은 유명무실하여 정당한 재판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자들의 폭행으로 자주 고통을 당하였다. 폭도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기구와 물품들을 파괴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약탈하였고, 남녀들과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취급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메소디스트들의 집을 파괴하고 약탈하려는 자는 어느 때 어느 곳으로 모이라는 광고를 공공연하게 써 붙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국가의 법률과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아니하였다. 메소디스트들은 죄인들을 멸망의 길에서 성결의 길로 돌이키고자 힘을 썼기 때문에 이처럼 철저한 박해를 받았다.”(쟁투, 259)

10. 웨슬리 시대 직전에 영국에 나타난 영적 쇠퇴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오늘날까지 이어온 괴상한 교리는 본질적으로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웨슬리가 주장했던 현대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시 119:126)

“구원이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저희가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155)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시 119:160)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웨슬리 시대 직전에 영국에 나타난 영적 쇠퇴는 대체로 율법 무용론의 교리가 빚어낸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도덕률을 폐지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났고, ‘선을 행해야 할 책임감’에서도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율법의 영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율법을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무용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과 덕성을 실천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범하는 악행은 참된 범죄가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길 것도 아니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로써 그런 죄를 끊어 버릴 필요도 없다’고 하는 매우 두려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종의 가장 비열 한 죄, 곧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큰 위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만일 택함을 입은 자가 범한 것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간주하지 아니하신다’고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율법에 금지된 것은 어떤 것이나 행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이요 뚜렷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괴상한 교리는 본질적으로 후세의 일반 교육자와 신학자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이 결코 불변(不變)의 것이 아니라 도덕의 표준이 사회 자체의 현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사상은 다 사단의 정신에서 온 것이며, 그는 죄 없는 하늘의 거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한 제재를 없애 버리기 위한 그의 사업을 착수하였던 것이다.

사람의 성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고정시켰다는 하나님의 선고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웨슬리는 그와 같은 율법 무용론자들의 그릇된 의견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율법 무용론으로 이끌어가는 교리는 성경과 배치된 것임을 증명하였다. …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은 값없이 주어졌다. ‘참 빛’, 곧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요 1:9)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선물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쟁투, 260-262)

웨슬리의 율법과 복음관

11.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문의 율법과 함께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웨슬리는 어떤 깨우침을 주었는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17-20)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문의 율법과 함께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웨슬리는 말하였다. ‘십계명이 포함되어 있고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견고하여진 도덕적 율법은 주님께서 결코 폐지하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그 율법의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이 율법은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며, “충실한 증거자로서 하늘에 굳게 설 것”이다. … 그 율법은 태초부터 있었는데, 그것은 “석판에 새기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인류의 자녀들이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그들의 마음에 모두 새겨졌다. 그리고 한때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문자로 기록되기까지 하였지마는 오늘날에는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선악에 대한 의식이 다소나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그 율법은 완전히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율법의 모든 부분은 각 시대의 온 인류가 지켜야 할 의무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 그리고 그 상호간의 변경될 수 없는 관계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함이로다.” 그 말의 뜻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의 온갖 곡해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것을 완전케 하러 왔다. 그 속에 있는 모든 애매하고 분명치 않은 점들을 완전히 천명하러 왔다. 그 모든 부분의 진정하고 완전한 의미를 선포하고,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각 조목의 범위, 곧 그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각 항목에 들어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순결과 영적 성질 등을 나타내기 위하여 왔다.’”(쟁투, 262, 263)

12.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에 관하여 어떻게 말했는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1-26)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를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율법은 끊임없이 복음을 위한 길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로 가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여 율법을 더욱 정확히 성취시키도록 한다.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모든 요구에 대하여 부족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마는 이처럼 사랑을 주고, 겸손하고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게 된다. 우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을 붙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곧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복음을 전하면 율법의 모든 목적을 다하는 것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전연 부인한다. 복음은 소위 율법의 첫째 목적, 곧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아직도 음부의 구덩이에서 그냥 잠자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일을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죄를 깨닫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진정으로 느끼지 아니한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건강한 자, 혹은 스스로 건강한 줄로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의원을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들은 먼저 그들에게 그들이 병든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대들의 수고에 대하여 그들은 감사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아직 그 마음을 깨뜨리지 아니한 자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쟁투, 263, 264)


[상고할 말씀]

그 전도자들[메소디스트]은 국교로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국교 자체에서 개혁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것이 전혀 외부로부터 왔었더라면 그것은 그것을 매우 필요로 하는 내부에까지 침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흥을 주장하는 전도자들은 교인들이었으므로, 기회만 얻으면 교회의 내부에서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문들을 통하여 진리가 들어가게 되었다. 어떤 성직자들은 도덕적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서 자기들의 교구에서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형식주의로 마비되었던 교회들이 생기를 되찾았다.”(쟁투, 257)

“웨슬리는 그의 주님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한편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을 충실히 감당하였으므로 영광스러운 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는 나이 80세가 넘은 만년에 가서, 곧 반세기 이상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50만 명 이상의 영혼들을 신자로 얻었다. 그리고 그의 봉사를 통하여 타락과 멸망의 구덩이에서 고상하고 순결한 생애로 들어간 무리들과 그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더욱 깊고 풍부한 체험을 얻은 사람들의 수는 구속받은 가족이 하나님의 나라에 모일 그 때에 가서야 비로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의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교훈을 준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종의 신앙과 겸손, 불굴의 열성, 극기, 헌신은 오늘날의 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쟁투,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