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5 18:50

2. 예루살렘의 멸망(2)

조회 수 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분


제2과


예루살렘의 멸망(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24-38


기억절 :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2-5)


서론 :  오늘날의 세상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에 대하여 취한 태도와 마찬가지의 태도로 현대의 기별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가 이르리니, 여호와의 날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생각지 아니한 중에 이를 것이다. 일상생활이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향락에 도취되고, 사업과 장사와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종교인들은 세속적 발전과 문화를 찬양하고, 백성들은 거짓된 안전 속에 속아 있을 그 때에, 마치 도둑이 문들을 단속하지 아니한 집으로 숨어 들어오는 것처럼 부주의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갑작스런 멸망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2, 3)할 것이다.”(쟁투, 38)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

1. 영광스런 둘째 성전이 황폐하게 될 운명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두려운 사건도 예언하셨는가?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신 그분을 배척하였다. 그 겸손한 선생이 그날 황금 문을 통하여 나오심으로 그 영광은 성전에서 영원히 떠나 버리고 말았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이미 성취되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그리스도께서 전세계적인 제국의 보좌를 빼앗으시고, 완고한 유대인들을 벌하시고, 유대 국가로부터 로마의 멍에를 꺾어 버리시고자 세속적 영광으로 오실 사건과 관련시켰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당신께서 두 번째로 오시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재림을 회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람산 위에서 예수님 주위에 둘러앉아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고 물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일어날 큰 사건들의 윤곽만을 보여 주셨다. 그분의 말씀이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였으나, 당신의 백성들이 그때 주어진 교훈을 필요로 하게 될 때에 밝혀지게 될 것이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예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전조(前兆)를 보여 주는 동시에 마지막 큰 날의 두려운 사건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었다.”(쟁투, 24-25)

2.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먼저 어떤 분명한 징조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안전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에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어떤 분명한 징조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역한 이스라엘에게 내릴 심판, 특히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릴 보응의 징벌을 선포하셨다. 두려운 사건이 절정에 이르기 전에 먼저 분명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 무서워하던 시간은 갑자기 또한 신속히 이를 것이다. … 곧 우상 숭배하는 로마의 군기(軍旗)가 예루살렘 성벽 밖 수 마일까지 미치는 거룩한 땅(聖地)에 세워질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망하여 안전을 얻어야 할 것이었다. 경고하는 징조가 보일 때에 도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지체없이 서둘러야 할 것이었다.”(쟁투, 25-26)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나라[미국]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5증언, 464-465)

“얼마 안 있어 도시마다 투쟁과 혼란이 일어날 것인데, 도시들을 떠나기 원하는 자들은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위해서 준비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빛이다(대총회 회보, 1903. 4. 6).”(2기별, 142)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3. 예루살렘의 운명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 선고된 후 거의 40년[예언상 한 세대] 동안 형벌이 미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눅 13:7)


예루살렘의 운명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 선고된 후 거의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성과 그 백성에 대한 형벌을 미루어 오셨다. 당신의 복음을 거절하고 당신의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놀라웠다. … 유대인 가운데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업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일찍이 그들의 부모가 거절한 빛을 받아서 실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그 동료들의 전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자 하셨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의 생애는 물론이요,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언이 어떻게 성취된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그 자녀들이 부모의 죄 때문에 형벌을 선고받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들에게 주어진 빛은 물론이요, 그들 자신들이 받은 빛까지도 거절하므로 부모의 죄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악의 잔을 가득 채웠다.”(쟁투, 27-28)

4.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유대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결국에는 어떠한 형편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사 30:11)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유대인의 완고한 고집을 더욱 크게 해줄 따름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함으로 마침내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비까지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호의 손을 그들에게서 거두시고 사단과 그 사자들을 억제하던 능력을 그들에게서 거두시므로, 그 백성은 자기들의 택한 지도자의 지배에 버려진 바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악한 충동을 제어할 능력을 줄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악한 충동들이 그들을 정복하였다. 사단은 사람의 가장 격렬하고도 비열한 정욕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이성(理性)을 떠나서 충동과 맹목적인 격정(激情)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잔인성은 악마와 같았다. 가정에, 백성들 사이에, 상류 계급과 하류 계급들 간에, 한결같이 의심, 질투, 원한, 불화, 모반, 살육이 편만하였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살해하였다. 위정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다스릴 힘이 없었다.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폭군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거짓 증언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거짓 고소가 그들 자신들의 생명을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사단은 나라의 수령이 되고, 국가와 종교의 최고 권위자들은 모두 그에게 지배되었다.”(쟁투, 28-29)

재난과 멸망의 전조

5.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지도록 경영하지 않으신다. 특히, 재난과 멸망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알려 주는 어떤 징조와 기사들이 있었는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재난과 멸망의 전조가 되는 징조와 기사들이 나타났다. 깊은 밤중에 한 줄기의 이상한 빛이 성전과 제단 위에 나타났다. 해가 질 무렵에는 구름 위에 싸움터로 모여드는 군사들과 전차(戰車)들의 광경이 나타났다. 밤에 성소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이 신비한 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렸다. 땅이 진동하였고, ‘우리가 여기서 떠나가자’고 하는 군중의 외침이 들렸다. 20명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열 수 없는 육중하고 견고한 주춧돌에 깊이 박혀 있는 철빗장으로 굳게 닫혀진 동문(東門)의 문짝이 아무런 인적(人迹)도 없이 밤중에 열려졌다.

그리고 7년 동안 예루살렘의 시가를 오르내리며 성도(聖都)에 재앙이 내릴 것을 선포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낮으로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는 ‘동편에서 한 소리가, 서편에서 한 소리가, 사방에서 한 소리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신랑과 신부를 책망하는 한 소리가, 온 백성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난다고 외쳤다. 그 수상한 사람은 옥에 갇히어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온갖 능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그 거민들이여’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경고의 외침은 그 자신이 예언한 그대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치지 아니하였다.“(쟁투, 29-30)

6.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예루살렘 멸망의 전조(前兆)를 보고도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서로 적대적인 파당의 지도자들이 때때로 불쌍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약탈하는 일에 결탁하였고, 다시 그들끼리 싸우고 무자비하게 살육하였다. 신성한 성전에서까지도 그들은 포악무도한 일을 행하였다. 예배하던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성소는 그 시체들로 더럽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흉악한 사건의 선동자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므로, 멸망될 염려가 없다는 그들의 맹목적이며 모독적인 억측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기 위하여 그들은 거짓 선지자를 매수하여, 비록 성전이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공포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최후까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원수들을 무찔러 주실 것이라는 신념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 불행한 예루살렘이여! 내분(內紛)으로 찢겨지고, 피차의 손으로 죽임을 당한 자녀들의 피로써 거리는 붉게 물들어지고 그 요새(要塞)는 이방인들에게 파괴되고, 용사들은 죽임을 당한 불행한 예루살렘이여!”(쟁투, 29)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

7.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해주셨는가?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그리스도인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믿은 모든 사람은 그 약속의 징조에 유의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눅 21:20, 21)라고 말씀하셨다. 로마군은 세스티우스(Cestius)의 지휘아래 그 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즉각적으로 공격하기에 유리한 것처럼 보였을 때에 그들은 갑자기 그 포위를 풀고 퇴군하였다. 성 안에 포위되어 있던 사람들은 적군을 격퇴할 수 없음을 알고 항복하려던 찰나였는데, 그 때에 아무런 명백한 이유 없이 로마의 대장은 군사를 철수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사건들을 조종하고 계셨다. 약속된 징조가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이제 구주의 경고를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도망하는 일은 막을 수 없도록 사건들을 그렇게 조종하셨다. 세스티우스가 퇴각하는 것을 본 유대군은 예루살렘성에서 나와서 물러가는 적군을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두 군대가 교전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성을 빠져나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쟁투, 30)

8. 전국에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안전하게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피신한 “벨라” 성은 어떤 곳인가?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창 19:22)

창 19:16-21 참조


그 성이 포위된 당시에 유대인들은 장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으므로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방해받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안전한 곳, 즉 요단강 건너편 베레아 땅에 있는 벨라성으로 피난하였다.”(쟁투, 31)

“그러나 롯은 당황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그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와 죽지나 않을까 해서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할 수 없노라고 핑계하였다. … 그는 자신의 뜻과 생명을 주님의 손에 의심 없이 맡기고 전적으로 하늘의 사자를 의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자신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려고 하였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 19:20). 여기서 말한 도시는 나중에 소알이라고 불린 벨라였다. 그 도시는 소돔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이었으며 소돔처럼 부패하였고 멸망 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롯은 이 성을 보존해 주시기를 간청하며 이것은 작은 요청이라고 애원하였다. 그의 소원은 허락되었다. 주께서 그에게 확언하시기를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오, 과오를 범하는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얼마나 큰가!”(부조, 161)

예루살렘의 함락

9. 예루살렘이 티투스 장군에 의해 재차 포위되었을 때, 성 안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신 28:56-57)


무수한 사람들이 기근과 온역으로 죽었다. 혈연적인 애정은 사라진 듯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것을, 아내는 남편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늙은 부모의 입에서 음식을 빼앗는 자식들도 볼 수 있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사 49:15)느냐는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멸망받을 그 도성에서 나왔다. 그것은 곧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애 4:10)는 대답이었다. 또한 1400년 전에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경고도 이루어졌다. [신 28:56, 57 인용]”(쟁투, 32)

10. 티투스 장군은 성전을 보전하려고 애썼으나,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티투스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 비참한 광경을 빨리 끝내고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을 막아 보고자 하였다. 그는 골짜기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고 공포로 충만하여졌다. 그는 무엇에 도취된 사람처럼 감람산 위에서 웅장한 성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돌 하나도 다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그 요새를 점령하는 작전을 벌이기 전에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기가 이 거룩한 곳을 부득이 피로써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 티투스가 성전을 보전하기 위하여 기울인 온갖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티투스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께서 일찍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셨던 것이다.”(쟁투, 32-33)

현대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

11.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에서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무엇인가? 세상 끝에도 어떤 사람들에게 구원이 약속되어 있는가?

…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사 4:3)

롬 9:27


예루살렘의 징벌에 대한 주님의 예언은 아직도 하나 더 성취되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장차 올 것과 비교하면 아주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택함을 받은 도성의 멸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고 그분의 율법을 짓밟는 세상의 운명을 볼 수 있다. 죄악으로 점철된 몇천 년간의 처참한 인류의 기록은 암담한 것뿐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프고 기절할 정도이다.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른 결과는 두려운 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계시에는 이보다 더욱 암담한 일이 나타나 있다. 과거의 기록, 곧 소란, 투쟁, 혁명,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사 9:5) 등에 관한 오랫동안의 역사도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신이 악한 자를 떠나고 인간의 욕망과 사단의 분노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날에 있을 두려움과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날에는 사단의 통치의 결과가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와 같이 그때에도 하나님의 백성 곧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사 4:3)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쟁투, 36-37)

1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가까움을 알리는 징조를 알려 주셨던 것처럼, 세상의 마지막 멸망이 가까움을 알려 주는 어떤 징조를 주셨는가? 우리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르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2-5)


그분[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고 그 멸망이 가까워 오는 데 대한 징조를 알려 주심으로 그들이 도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멸망을 경고하시고 그날이 가까워 옴을 알려 주는 징조를 주셔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날에 임할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곤고하리라’고 말씀하신다(눅 21:25; 마 24:29; 막 13:24-26; 계 6:12-17). 그분의 강림의 전조를 보는 사람들은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마 24:33)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막 13:35)고 경고하신다. 그 경고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버려둠을 받지 않을 것이요, 알지 못하는 때에 그날이 그들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르게 될 것이다(살전 5:2-5 참조).

오늘날의 세상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에 대하여 취한 태도와 마찬가지의 태도로 현대의 기별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가 이르리니, 여호와의 날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생각지 아니한 중에 이를 것이다. 일상생활이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향락에 도취되고, 사업과 장사와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종교인들은 세속적 발전과 문화를 찬양하고, 백성들은 거짓된 안전 속에 속아 있을 그 때에, 마치 도둑이 문들을 단속하지 아니한 집으로 숨어 들어오는 것처럼 부주의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갑작스런 멸망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2, 3)할 것이다.”(쟁투, 37-38)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당신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제자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두 사건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당신께서 보신 대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분은 두 큰 위기를 섞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셨을 때, 그분의 예언의 말씀은 그 사건을 넘어 주께서 일어나사 세상의 죄를 심판하셔서 땅이 더 이상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를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 놓을 수밖에 없는 그 최후의 날에 일어날 대재화의 사건에까지 미쳤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서도 주어진 것이다.”(소망, 62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 7. 충실한 증인(1) 청지기 2025.02.08 34
9 8. 충실한 증인(2) 청지기 2025.02.15 30
8 9. 은혜로 변화됨 청지기 2025.02.22 28
7 10. 밧모섬 청지기 2025.03.01 37
6 11. 계시(1) 청지기 2025.03.08 22
5 12. 계시(2) 청지기 2025.03.15 17
4 13. 승리한 교회 청지기 2025.03.22 9
3 2025년 2기 역사와 예언 청지기 2025.03.29 11
2 1. 예루살렘의 멸망(1) 청지기 2025.03.29 8
» 2. 예루살렘의 멸망(2) 청지기 2025.04.05 4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ext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