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7 20:02

11. 헌신한 목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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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41분


제11과


헌신한 목사(2)


[연구범위]

사도행적, 365-371


기억절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서론 :  바울은 그리스도의 목사로서 그에게 지워진 책임을 잊지 않았으며 만일 자신의 불충실로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문책하시리라는 것도 결코 잊지 않았다.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하였다. ‘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5-29).

이 말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들 앞에 달성해야 할 높은 표준을 제시하지만, 이 표준은 자신들을 크신 교사의 지배하에 두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이들은 누구나 달성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수반되는 능력에는 한정이 없다. 자신의 부족을 크게 느끼고 주 안에 자신을 감추는 목사는 청중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될 어떤 것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행적, 368-369)


목사는 자신의 배와 그물을 완전히 버려야 함

1. 목회 사업에서 성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써 어떤 원인이 있는가? 목사들은 왜 기업체의 중임을 맡거나 경영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가?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1-12)

딤전 6:9-12


목회 사업에 수고한 어떤 이들은 주의 사업에 그들의 관심을 온전히 기울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성공을 얻지 못하였다. 목사들은 영혼들을 구주께 인도하는 위대한 사업으로부터 마음을 빼앗는 일에 흥미를 갖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어부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다. 목사들이 큰 개인 기업체에서 중임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 받으실만한 사업을 행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관심의 분열은 그들의 영적 지각을 흐리게 한다. 세속적 사물이 정신과 마음을 점령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는 둘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맞도록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대신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사업을 그들의 환경에 따라 꼴 짓고자 노력한다.”(행적, 365)

2. 목사의 모든 정력은 어떤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는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목사는 세속적인 이익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37)

눅 16:13


목사의 정력은 모두 그의 고상한 소명에 필요된다. 그의 최대의 능력들은 하나님께 속한다. 목사는 큰 사업으로부터 그를 떠나게 할 투기사업이나 어떠한 사업에도 종사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이와 같이 사도는 주님을 섬기는 데 대한 목사의 무조건적인 헌신의 필요를 강조하였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목사는 그의 거룩한 부르심에 자신을 충분히 바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업에 종사하기를 거절한다. 목사는 세상의 명예나 부를 위하여 노력하지 아니한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에게 영생의 보화를 주시고자 자신을 버리신 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의 최고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재물을 저축하려는 것이 아니요, 무관심하고 불충실한 사람들의 주목을 영원한 실체에로 이끄는 것이다. 목사는 큰 세속적 이익을 약속하는 기업에 종사하라는 요청을 받을지 모르나 그런 유혹에 대하여 그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라고 대답한다.

사단이 이와 같은 유혹을 그리스도께 제시한 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세계는 결코 구속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다른 가면을 쓰고 오늘날 하나님의 목사들에게 동일한 유혹을 제시한다. 이는 그 유혹에 미혹되는 자들은 그들의 임무에 성실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행적, 365-366)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3. 목사들은 사단이 제시하는 부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는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 23:4)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시 119:36)


하나님의 목사들이 부를 구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교훈은 물론 모본으로써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딤전 6:10, 11, 17-19)다.”(행적, 366-367)

4. 재물 얻을 재능과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선물들을 어떻게 함으로 위험한 올무가 될 수 있는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성경은 단지 부유하다는 이유 때문에 부자를 정죄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부를 획득하는 것이 죄가 된다고 선고하지도 않고 … 이와 반대로 성경은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재능이 하나님께 바쳐지고 주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활용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귀중한 달란트가 된다. 성경은 천부적인 재능이나 기술을 정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몸에 베옷을 입거나, 또는 집에 있는 위안과 취미와 편리를 위한 모든 시설을 제거한다고 하여 그것으로 우리 마음을 더 순결하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썩지 않을 보화와 경쟁하는 위치에 재물을 둘 때에만 그 재물은 위험한 소유가 된다고 가르친다. 지상의 일시적인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생각과 애정과 헌신을 흡수해 버릴 때 그것이 올무가 된다. 몇 년만 최선을 다하면 영원한 저택이 그들의 집이 될 수 있는데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지상의 화려하게 반짝이는 보잘것없는 물질과 바꾸는 자들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판에서와 같은 교환이요, 미디안 왕의 보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린 발람의 교환이며, 은 삼십 냥에 영광의 주를 팔아먹은 유다의 교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선포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다. …

하나님의 다른 선물과 마찬가지로 재물의 소유도 그것을 증가시킬 책임을 가져오는 동시에 재물 특유의 유혹도 가져온다. … - RH, 1882. 5. 16.”(청지기, 138-139)

교회를 세우고, 돌아보고, 젊은 동역자를 양성함

5. 바울은 자신의 생명과 모든 정력을 어떤 사업에 헌신했으며, 받은 바 축복들을 오직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했는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4-25, 27)


사도 바울의 경험들과 목사의 사업의 신성성에 관한 그의 교훈은 복음 전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도움과 영감의 근원이다. 바울의 마음은 죄인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그는 영혼 구원 사업에 그의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그보다 더 헌신적이요 끈기 있는 일꾼이 생존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받은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데 사용하여야 할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구주에 관하여 설교하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기회를 잃지 아니하였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들을 세웠다. 그는 발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때는 어디서든지 악을 시정하고 남녀들의 발을 의의 길로 돌이키고자 노력하였다.”(행적, 367)

6.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고, 세운 교회들을 다시 돌아가며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를 견고히 하고 돌보기 위해 어떤 더 확실한 방법으로 일했는가?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3, 18-19)

딤후 1:13-14; 2:2-3; 딛 1:5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을 잊지 아니하였다. 선교적 여행을 한 후 그와 바나바는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 돌려 저희가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중에서 저희가 복음 전도에 연합하도록 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을 이루고 있는 바울의 사업에는 오늘날의 목사들을 위한 중대한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사도는 복음 전도의 직무를 맡도록 청년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그의 사업의 일부분으로 삼았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선교 여행을 떠났으므로 그들은 후에 그들로 책임이 무거운 직분을 맡을 수 있게 한 경험을 얻었다. 그들과 헤어졌을 때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의 사업과 접촉을 유지하였다.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은 그들의 성공을 얼마나 갈망하였는지에 대한 증거이다.

오늘날 경험 있는 교역자들은 스스로 모든 짐을 지고자 노력하는 대신에 젊은 일꾼들을 양성하여 그들의 어깨에 짐을 지울 때 고상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행적, 367-368)

진리와 복음의 직책에 맞는 모본

7. 바울은 복음의 목사로서의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도록 그가 가르치는 모든 진리에 대하여 어떻게 본을 보여주었는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


바울의 기록은, 복음의 목사는 그가 가르치는 진리에 대하여 본이 되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3, 4-10).”(행적, 369)

8.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도 믿는 자에게 본이 되기를 어떻게 권면했는가? 이 본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져야 하는가?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 4:12-13)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6-8)


추수를 고대하면서 세상의 황무지에 진리의 씨를 심으러 나아가는 당신의 목사들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더욱 소중한 사람들은 없다. 당신의 종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을 때의 그 열망을 측정하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 영혼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죄에서 떠나 의로 인도함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기꺼이 그들의 농장과 직업과, 필요하다면 그들의 가족까지라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응답을 받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잃어버린 사람들의 요구에 감동을 받아 우상숭배자들과 야만인들 중에 자비의 기별을 선포하기 위하여 안락한 가정과 친구들과의 교제와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중도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잃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그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업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였고 슬픔 중에 뿌린 씨는 많은 수확을 가져왔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널리 퍼졌고 십자가의 깃발은 이방 나라들에 세워졌다.”(행적, 369-370)

한 영혼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면

9. 목사에게 있어서 한 영혼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죄인 한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목사는 그의 재능을 전부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영혼은 그의 앞에 있는 가능성과 그에게 허락된 영적 이익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활력을 얻게 될 경우 소유하게 될 능력과 복음 가운데 제시된 소망을 통하여 얻게 될 불멸성 때문에 크게 귀중하다. 그리스도께서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아흔아홉을 떠나셨다면, 우리가 그보다 적은 일을 하고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하기를 게을리하는 것은 거룩한 임무에 대한 배반과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아니겠는가?”(행적, 370)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와 구속 가운데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도 귀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정신 기능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품성과 아주 닮은 품성을 계발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 외에는 거룩한 하늘에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편지 55, 1895)”(화잇주석, 고후 10:5)

10. 진실한 목사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강렬한 소망으로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살후 3:13)


진실한 목사의 마음은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다. 시간과 힘이 투자되고 수고로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의 영혼에 그와 같은 기쁨과 평화와 즐거움을 가져온 진리를 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그에게 임하신다. 그는 영혼들을 그가 반드시 찾아야 할 사람들처럼 바라본다. 그는 갈바리의 십자가에 그의 눈을 고정시켜 높이 달리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그분께서 끝까지 그의 방패와 힘과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 섞인 초청과 호소로써 영혼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그를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계 17:14)로 계수한다.”(행적, 370-371)

“영혼의 가치는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완전히 헤아려질 수 없다. 속량받은 자들과 영화롭게 된 자들은 그들의 구원에 도구가 되었던 자들을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겠는가! 한 사람도, 그의 의무를 등한히 했거나 선행에 지쳐 버렸다면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영혼들을 위한 자신의 극기의 노력과 꾸준한 활동, 그의 인내, 오래 참음, 간절한 마음의 열망 등을 그때에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5증언, 620)


[상고할 말씀]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고취된 그 사랑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서 인간의 견해로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한 영혼의 가치와 비교해 보면 그 중요성에 있어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사랑은 어떤 인간의 계산도 초월한다. 그 가치는 무한하다. 신의 성품을 소유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한다. 거기에는 실패나 좌절이 없는 타고난 동정심과 긍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각 사람의 마음에 거하여 매일의 생애에 나타나도록 격려되어야 할 정신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과 매일 교제함으로 영양분을 공급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영혼을 사랑함으로써만 존속될 수 있고, 세련되고, 거룩해지고 순결해지고 향상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냉랭함은 모두 믿음을 부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밝은 광선 앞에 녹아 버릴 것이다. 그는 즐겁고 가식 없는 마음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명령을 순종할 것이다. ― 원고 60, 1897”(구호,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