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1분


제6과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부르심(2)


[연구범위]

사도행적, 315-322; 고린도전서 10장, 12장, 13장, 15장


기억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7-58)


서론 :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도의 경고의 말은 각 시대에 모두 적용되나 특히 우리 시대에 적용된다. 그가 의미하는 우상숭배는 신상을 숭배하는 것만이 아니요 자신을 섬기는 것, 안일에 대한 사랑, 식욕과 정욕의 만족을 다 의미한다. 다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목과 기호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며 방종을 시인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의 종교가 아니다.”(행적, 317)


역사적 거울로부터 비춰오는 빛

1.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이 얻었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어떻게 소개했는가? 광야 교회를 인도하신 분은 누구였으며, 그분은 십자가로 이루실 구원을 어떤 상징적 예표로써 나타내셨는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순종할 때는 축복의 보상을 받고 범죄할 때는 형벌을 받은 고대 이스라엘의 경험을 지적하였다. 그는 히브리인들이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의 보호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기이한 방법에 대하여 그들에게 생각나게 하였다. 그와 같이 그들은 홍해를 안전히 건넜으나, 반면에 애굽인들은 같은 방법으로 건너려고 시도하다가 모두 익사하였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교회로 인정하셨다. 그들은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모든 여행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지도자로 모셨다. 침을 당한 반석은 그리스도를 예표하였으니, 그는 사람들의 범죄로 인하여 상함을 받으셔서 구원의 시내가 만민에게 흐를 수 있게 하셔야 하였다.”(행적, 315)

2.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모든 얽매임의 상태로부터 현저히 구원해 내셨음에도 그들은 왜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는가? 멸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으며,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5-6)

고전 10:7-10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보이신 은총에도 불구하고, 애굽에 두고 온 사치에 대한 갈망과 그들의 죄와 반역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이 그들에게 임하였다.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스라엘의 경험에 내포된 교훈을 주의하도록 명하였다. … 그는 안일과 향락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하나님의 현저한 징벌을 초래하는 죄악을 위한 길을 준비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을 때 느꼈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던져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들의 신으로 삼고 경배한 것은 그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놀 때였다. 많은 히브리인들이 방탕에 빠졌던 것은 바알브올의 예배와 관련된 호화스러운 잔치에 참석한 후였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일어났고 그분의 명령으로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염병으로 죽임을 당하였다.”(행적, 315-316)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3. 사도는 홍해의 무덤을 무사히 올라와 구원의 기념비를 세웠고, 광야에서는 생명의 떡과 물을 먹고 마셨으나, 마침내 멸망한 이스라엘의 경험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가르치고자 했는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사도는 고린도인들에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간원하였다. 저희가 깨어 기도하기를 게을리하고 자랑하고 거만하게 된다면 그들은 중한 죄에 빠지고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로 실망이나 낙담에 빠지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보증을 그들에게 주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은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감화를 끼칠 것인지를 스스로 살펴서 그 자체는 무죄할지라도 우상숭배를 시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양심을 거스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도록 형제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행적, 316-317)

4.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구원과 자유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동정심이 절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 13)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험을 받아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면밀하게 살피는 사업이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진행되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업적을 잊어버리고 그분께 반역하는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뒤돌아보고, 그곳에서 즐기던 좋은 것들,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연단하고 당신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신 것들을 탐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유행을 따르고, 세상의 쾌락에 동참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섬기는 일과, 당신이 그처럼 이적적으로 그들에게 주신 자유를, 그들이 애굽에서 전제적이요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동안 누리던 방종보다 얼마나 더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기를 원하셨다.”(1증언, 287-288)

“이 세계의 구속주께서 구름 기둥에 휩싸인 가운데 이스라엘과 교통하셨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없었다고 말하지 말자. 그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말라 불평불만을 터뜨렸을 때, 그들과 맺고 있던 그리스도는 우리들과 맺고 있는 분과 같이 부드러운 동정심이 가득하신 분이시었다. 우리의 영혼의 전을 죄의 오염으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한 후에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같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하였다(청년 지도자 1901. 7. 18).”(화잇주석, 행 15:11)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연합됨

5.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 교회와 신자들간의 조화와 절대적 연합의 관계를 무엇에 비유했는가? 온 몸은 무엇으로 각각의 지체들과 연결되어 있는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고전 12:13-27


사도는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함으로써 그리스도 교회의 모든 교인들 사이에 존재해야 할 긴밀하고 조화된 관계를 적절하게 예증하였다.”(행적, 317)

“교회의 신자 상호간의 관계는 서로를 붙들어 주는 관계이다(원고 82, 1898).”(화잇주석, 고전 12:4-6)

“신체의 모든 다른 지체들이 연합하여 온몸을 이루고 각 지체가 온몸을 주관하는 머리에 순종하여 각자의 직책을 수행하듯이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들은 하나의 균형진 몸 안에 연합하여 온몸이 성화된 머리에 복종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 완전히 연합하여 서도록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딛 2:14)시려고 당신 자신을 세상에 주셨다. 이 정결케 하는 과정은 교회를 모든 불의와 부조화와 다툼의 정신에서 깨끗하게 하고 헐어 버리는 대신에 세우게 하고 그들 앞에 놓인 큰 사업에 그들의 정력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모두 믿음으로 연합하도록 계획하신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기도는 당신의 하늘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이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해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4증언, 16-17)

6. 그리고 사도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인 사랑의 특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어떻게 진술하였는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고전 13:1-12


그의 공언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그 동료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지 아니한 사람은 참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비록 큰 믿음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신앙은 무가치할 것이다. 그가 크게 관대함을 나타낼지라도, 진정한 사랑 외에 어떤 다른 동기로 그의 모든 소유를 주어 가난한 사람들을 먹인다면 그 행위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열심으로 그가 순교자의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혹을 당한 광신자나 야심 만만한 위선자로 여기실 것이다. …

가장 순결한 기쁨은 가장 깊은 겸비에서 솟아오른다. 가장 강하고 가장 고상한 품성은 인내와 사랑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의 기초 위에 건설된다.

…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와 행위에 가장 좋은 해석을 가한다. 이것은 쓸데없이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지도 아니하고 불리한 보고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품성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

이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 이것은 하늘의 속성이기 때문에 결코 그 가치를 잃지 아니한다. 귀중한 보배처럼 그 소유자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통과할 것이다.”(행적, 318-319)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본교리 – 부활

7. 사도는 이어서 신앙의 기본이 되는 부활의 교리를 부정하는 신자들에 대하여 어떤 분명한 증언으로 대처했는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고전 15:13-20


고린도의 신도들 중에 도덕적 수준이 저하됨에 따라서 그들의 신앙의 기본적인 어떤 부분들을 포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부활의 교리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분명한 증거에 관한 명백한 증언으로 이 이단에 대처하였다.”(행적, 319)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처음 익은 열매로서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그분은 요제(搖祭)의 원형(原型)으로서 여호와 앞에 요제를 드리던 바로 그 날에 부활하셨다. … 그와 같이 처음 익은 열매 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모아들일 큰 영적 추수를 표상하였다. 그분의 부활은 죽은 모든 의인의 부활의 모형이요 보증이다”(소망, 785-786)

8. 사도는 고린도 형제들의 마음을 부활의 아침에 있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죽음의 잠으로부터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을 성도들과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들까지도 어떻게 동시에 격려했는가? 실제로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그리스도께서는 구름을 타고 큰 영광으로 오신다. … 그분은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살아있는 성도들을 변화시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오실 것이다.”(소망, 632)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는 죄와 사망을 이기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증인이었다. 그는 의인의 부활 때에 무덤에서 나올 자들을 표상하였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변화되어 올라간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지상에 살아 남아 있는 자들, 곧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고전 15:51-53)게 될 무리들을 상징하였다.”(소망, 421-422)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성도들을 예표하였다.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의 끝이 가까웠을 때에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같이 구주의 곁에 서도록 허락을 받은 것은 그와 같이 변화함을 받을 사람들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영광을 입은 이들에게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의 왕국의 축소판을 보았다. … 그들은 재림 때에 죽음에서 부활할 사람들을 대표하는 모세를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세상 역사의 종말에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할 사람들을 대표할 엘리야가 서 있었다.”(선지, 227)

첫 편지의 마지막 권면과 염려

9. 사도는 고린도의 형제들에게 노골적으로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 편지를 썼는가? 그는 첫 편지의 마지막에 어떻게 호소했는가?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7-58)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잘못을 책망할 필요성이 있음을 알았지만 잘못을 책망하면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책망의 말을 한 이유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실수하는 사람들의 친구라는 인상을 남기려고 참으로 조심스럽게 일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그에게도 큰 고통임을 이해시켰다. 그는 그들의 마음에 그의 관심은 그들의 관심과 동일하다는 인상을 남겼다(2:4 인용)(편지 16a, 1895).”(화잇주석, 고후 2:4)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승리는 영광스럽다. 사도는 고린도 신자들이 그들 앞에 있는 가능성들을 깨닫고 이기적인 사람들과 육욕적인 사람들을 떠나 영원불멸의 소망으로 생애를 영화롭게 할 것을 그들에게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

이와 같이 사도는 가장 단호하고 감명 깊은 방법으로 고린도 교회 중에 유행하고 있는 거짓되고 위험한 사상과 행습을 시정하고자 노력하였다.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말하였다. 그의 경고와 책망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오는 빛이 그들에게 비치어 그들의 생애를 더럽히고 있는 감추인 죄악들을 드러내었다. 이 빛이 신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던가?”(행적, 321)

10. 사도는 편지를 보낸 후에도 염려를 내려놓을 수 없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가?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7:8-9)


그 편지를 부친 후 바울은 그가 기록한 것이 그가 덕을 베풀고자 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는 더욱더 사이가 벌어질 것을 심히 두려워하여 때때로 그의 말을 철회하기를 원하였다. 사도처럼 사랑하는 교회나 기관들에 대하여 책임을 느낀 이들은 그의 정신적 의기소침과 자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위한 그분의 사업의 짐을 진 하나님의 종들은 대 사도의 몫으로 주어졌던 수고와 투쟁과 애타는 염려에 대하여 알 것이다. 교회 가운데 있는 분열로 번민하고, 그가 동정과 지지를 보낸 사람들 중 어떤 이들로부터 배은망덕과 배반을 당하며, 악이 잠복하고 있는 교회들의 위험을 깨달음으로 죄를 책망하는 면밀하고 엄중한 증언을 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와 동시에 그는 그가 너무나 가혹하게 다루지나 아니하였나 하는 두려움으로 가슴이 무거웠다. 그는 근심에 떨면서 그의 기별을 받은 곳으로부터 어떤 소식이 오기를 고대하였다.”(행적, 321-322)


[상고할 말씀]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이와 같은 헌신과 세상에서의 분리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다 같이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주님께는, 세상의 것과, 그분께서 세상에서 택하여 그분 자신에게 거룩하게 하신 것과를 친히 분리시키는 벽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부르심과 특성은 독특하며, 그들의 전망(展望)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특성이 그들을 다른 모든 백성들과 구별 지어준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까지 하나의 몸이다. 그들은 그 몸을 지도하고 다스리는 하나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분리되도록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린 동일한 명령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리고 있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는 바뀌지 않았다. 이 마지막 날의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행과 매우 유사하다. 고린도전서 10장을 읽되, 특별히 6절에서 15절까지 읽어보라.”(1증언, 283-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