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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14분


제10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802-808; 누가복음 24:33-48; 요한복음 20:19-29


기억절 :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2-23)


서론 :  제자들은 저희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경이로운 진리를 세계에 선포해야만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들을 가리킨 예언들,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 구속의 경륜의 신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등 저희가 목격한 이 모든 것을 온 세계에 알려야만 하였다. 그들은 회개와 구주의 능력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만 하였다.”(소망, 805)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이 엠마오에서 밤길을 달려온 두 제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과 공포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자신을 나타내셨는가?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눅 24:33-36)


여행자들은 모든 제자들이 놀라운 흥분에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방 안에 있는 자들은 감사와 찬송을 돌리면서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두 여행자는 급히 달려왔기 때문에 숨을 가쁘게 쉬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말을 마치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믿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때에 보라! 그들 앞에 다른 분이 서 계셨다. 모든 사람의 눈은 그 낯선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아무도 들어오겠다는 신호로 문을 두드린 일이 없었다. 아무런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자들은 놀라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서 당황하게 되었다. 그 때에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음성이 아닌 바로 저희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분명하고 똑똑한 말씀이 그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선포하였다.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이제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항상 의심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번민하는 영혼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시며 우리와 함께 유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소망, 802-804)

2. 예수님께서는 놀라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저들을 안심시키셨는가?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 24:37-43)


그들은 잔인한 못에 상하신 그분의 손과 발을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음성이 아닌 바로 저희가 항상 듣던 그분의 음성임을 알게 되었다.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믿음과 기쁨이 불신을 대신하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으로 그들은 부활하신 구주를 인정하였다.”(소망, 803)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떤 말씀들을 새롭게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도록 하셨으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4-48)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그분은 죽기 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기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기억나게 하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자들은 저희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경이로운 진리를 세계에 선포해야만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들을 가리킨 예언들,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 구속의 경륜의 신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등 저희가 목격한 이 모든 것을 온 세계에 알려야만 하였다. 그들은 회개와 구주의 능력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만 하였다.”(소망, 804-805)

4. 제자들이 저들에게 위탁된 거룩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풍성한 부으심(오순절:이른 비)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약속된 성령의 부으심이 성취되기 전에 지금(무교절) 저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심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였는가?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직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은 아직도 충만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까지도 성령의 더욱 풍성한 부으심이 나타나지 않았다. 성령을 받기까지는 제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은 이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신 바 되었다. 제자들로 하여금 교회와 관련된 그들의 직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가장 신성한 임무를 위탁하고 계셨으며 성령이 없이는 이 사업이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깊이 느끼기를 바라셨다.

성령은 영혼들 속에 영적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이시다.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성령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물들여지게 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를 지니고 그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내는 자만이 대표자로 서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소망, 805)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위탁하신 사업에서 교회를 통하여 저들이 감당해야 할 가장 엄숙하고 고상한 성질의 사명은 무엇인가?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누구에게든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유를 주셨다는 뜻이 아니다. 산상 설교에서 그분은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셨다. 그 일은 하나님께 속한 대권(大權)이다. 그러나 그분은 조직된 교회에 교인 개개인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다. 교회는 범죄한 자들을 경고하고 교훈해서 할 수 있는 한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은 성실하게 다루라. 위험에 빠진 영혼들을 경고하라. 그들 스스로가 속임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말라. 거짓말과 안식일을 범하는 일과 도둑질과 우상 숭배와 다른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해 주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만일 저희가 그냥 죄를 고집하면 그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언한 판결이 하늘에서도 그들에게 선고된다. 죄의 길을 선택함으로 저희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끊었으므로, 교회는 그들의 행위를 시인함으로 인하여 주님께 욕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 그대로 말해 주어야만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죄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의 행위는 하늘의 재가를 받게 된다. 교회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멸시하는 것이다.”(소망, 805-806)

6. 교회에게 주어진 죄인을 용서할 권세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요일 1:9 (참고문 참조)


그러나 이러한 묘사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장면이 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이 사상을 맨 먼저 갖도록 하라. 잘못한 자를 위하여 노력할 때 모든 사람은 그의 눈을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하라. 목자들로 주의 목장의 양떼들을 친절하게 돌보도록 하라. 그들로 잘못하는 자들에게 구주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말해 주도록 하라. 그들로 죄인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믿도록 격려하게 하라. 그들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선포하게 하라. 회개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라’(미 7:19)는 보증이 있다.

교회는 죄인의 회개를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라. 회개한 사람을 불신의 어둠에서 인도해내서 믿음과 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라. 그의 떨리는 손이 예수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도록 하라. 이와 같은 용서는 하늘의 인정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만 교회는 죄인을 용서할 권세를 가진다.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도 영혼들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할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명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전파하도록 하셨으나 제자들 자신은 한 점의 죄도 사할 수 있는 권세를 받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 이름’(행 4:12)이다.”(소망, 80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두 번째(도마를 향하여)

7.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다락방에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왜 믿으려 하지 않았는가? 그는 한 주일 동안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가?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도마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데 대한 충분한 증거를 받았으나 그의 마음에는 어둠과 불신이 가득하였다. 도마는 부활하신 구주의 경이로운 출현에 대한 제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더욱더 깊은 절망에 빠져들어 갔다. 만일 예수님께서 참으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면 문자 그대로 세상 나라에 대한 희망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주님께서 자기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도마는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주일 내내 그의 형제들이 희망과 믿음을 가진 데 반해 그는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는 불행에 잠겨 있었다.

그 동안 도마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가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눈으로 본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그의 정신과 마음에 질투와 불신이 자리잡도록 놔두었다.”(소망, 806-807)

8. 도마는 한 주일 동안이나 의심과 질투로 다른 제자들과 스스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동료들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다락방으로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제자들과 도마를 향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도마에게는 어떤 제안을 하셨는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6-28)


어느 날 저녁,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만나기로 결심하였다. 자기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좋은 소식이 참이었으면 하는 가냘픈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예언의 증거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다.

도마를 보시고 예수께서는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도마의 생각과 그가 한 말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의심하는 제자는 자기 동료 중에 한 주일 동안 예수님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제자들은 도마의 불신을 주님께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분이 자기의 주님이심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증거를 바라지 않았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소망, 807)

의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엄숙한 경고

9.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어떤 부드러운 책망의 말씀을 더하셨는가? 이 책망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경고가 되어야 하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께서는 그의 고백을 받으셨으나 그의 불신을 부드럽게 책망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만일 도마가 형제들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기꺼이 믿었더라면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께 더욱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지금 이 세상이 도마의 모본을 따른다면 한 사람도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일 저희가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서 받았던 그 같은 증거를 받는다면 저희는 믿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들은 저희가 그 증거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많은 증거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도마와 같이 의심의 원인이 모두 제거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불신에 굳어 버리게 된다.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불평과 원망을 하도록 하는 자들은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의심의 종자를 뿌리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완숙된 의심의 수확물을 거두게 될 것이다. 믿음과 확신이 가장 필요한 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바라고 믿는 일에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소망, 807-808)

“하나님께서는 빛과 진리를 정직하게 바라는 자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빛을 주신다. 그러나 의심과 의문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 그분의 목적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시고 사람들에게 그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음을 행사하도록 요구하신다.”(5증언, 303)

10. 예수님께서 도마를 다루신 모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생각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나오라.”(딤전 6:3-5, 킹제임스)


도마를 다루신 일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셨다. 예수님의 모본은 우리가 믿음이 약하고 의심을 많이 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를 보여 주신다. 예수께서는 비난으로 도마를 억누르지도 않으시고, 그와 시비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의심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도마는 자기의 믿음의 조건들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분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관대한 사랑과 이해심으로 모든 장벽들을 무너뜨리셨다. 불신은 언쟁으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도리어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새로운 구실과 핑계를 찾는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로 나타내 주면 한때 원치 않던 많은 사람의 입술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 도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소망, 808)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의 다른 자리들, 수고의 현장에는 마땅히 배양되어야 할만큼의 사랑과 부드러운 느낌이 없다. 사랑은 계속적인 배양이 필요한 부드러운 하늘의 식물이다. 우리는 이곳 총회에서 하나님의 택한 가족으로서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서로 간에 투쟁을 좋아하고 언쟁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에는 전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나 우리 형제들이 서 있는 것을 허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들이 불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은 안 된다, 이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라.”(2설교, 14)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에다 주신 일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지 않고 죄를 범하도록 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파는 권한도 교회에 주신 일이 없으며, 마땅히 받아야 할 책망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죄를 가리우도록 뇌물이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자유를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일이 없다. 예수님은 자기의 이름으로 죄없이함을 받으라는 말씀을 모든 나라에 설교해야 할 책임을 제자들에게 지우셨지만,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아담의 후손들에게서 단 한 점의 죄도 없이할 만한 권한을 받지 못하였다. …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끌어서 자기는 죄를 용서할 권한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들을 하늘에 계신 크신 용서자에게서 돌아서게 하여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게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3예언 245, 246).”(화잇주석, 요 20:23)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곧 오신다. 그대들의 생각을 높이고 머리를 쳐들 것이며 기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즐거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고 충만한 영광을 맛보게 되기를 바란다. 재림의 소식이야말로 복되고 즐거운 소식이며 모든 영혼을 감동케 하고 우리의 가정에서 반복되어야 하며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다. 이보다 더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신자들이나 또는 불신자들과 트집잡는 일이나 언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기신 일이 아니다.”(2기별,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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