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5시 16분


제8과


“어찌하여 우느냐”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788-794; 마태복음 28:1, 5-10; 마가복음 16:1-8; 누가복음 24:1-12; 요한복음 20:1-18; 초기문집, 186-187


기억절 :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


서론 :  부활하신 후에 세상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최초의 사업은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쇠하지 않는 사랑과 친절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일이었다. 당신은 그들의 산 구주이시며, 무덤의 속박을 깨뜨리셨으며 더이상 죽음이란 원수가 당신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증거를 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실 때 그들을 사랑하셨던 그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다. 그분은 사랑의 줄로 그들을 더욱더 가까이 매고자 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기를 그들이 갈릴리에서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다.”(소망, 793)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1.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일찍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향하여 가면서 무엇을 염려했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 이르렀을 때 어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는가?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막 16:1-3)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주일 중 첫날 미명에 그들은 구주의 몸에 바를 귀중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희망의 태양은 지고 어둠이 저희 마음을 덮었다. 걸어가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비스러운 사업과 위안의 말씀들을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요 16:22)라 하신 그분의 말씀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들은 동산 가까이 이르러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라고 말하면서 걸어갔다. 저희가 돌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들의 길을 계속해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영광으로 환하여졌는데 그 빛은 떠오르는 태양에서 발산되는 빛이 아니었다. 땅이 진동했다. 그들은 큰 돌이 굴려진 것을 보았다. 무덤은 비어 있었다.”(소망, 788)

2. 그들보다 먼저 이미 무덤을 찾아왔던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히 갔는가? 그러나 나중에 온 이 여인들은 천사로부터 어떤 기쁜 소식을 들었으며, 그들도 누구에게로 달음질했는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요 20:1-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눅 24:2-9)


여인들은 모두 다 같은 방향에서 무덤을 향해 온 것이 아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무덤에 이르러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급히 달려갔다. 그동안에 다른 여인들이 왔다. 무덤 주위에는 빛이 비치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시체는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갑자기 저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빛나는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덤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돌을 굴려낸 천사였다. 그는 이 예수님의 친구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하늘의 영광의 빛이 비취고 있었으므로 여인들은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도망하려 하였으나 천사의 말에 저희 발걸음을 멈추었다.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하라. 그들은 다시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또다시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거기에는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난 다른 천사가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다.

그분은 살아나셨다! 그분은 살아나셨다! 여인들은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젠 향료가 필요 없다. 구주는 죽어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시다. 예수께서 자기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들은 이제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날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경이로운 날인가! 그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하였다.”(소망, 788-789)

요한의 믿음과 마리아의 믿음

3. 마리아의 기별을 들은 제자들은 무덤으로 달려갔다.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 주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임을 어떤 증거를 보고 믿었으며, 구주의 어떤 말씀을 기억했는가?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요 20:3-7)

고전 14:33, 40


마리아는 그 기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는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는 슬픈 기별을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갔다. 제자들은 급히 무덤에 달려가 마리아의 말이 사실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수의(壽衣)와 수건을 보았을 뿐 저희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수의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 아니요 주의 깊게 개켜 있었고 각각 제자리에 있었다. 요한은 ‘보고 믿’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 말씀은 아직 깨닫지 못하였으나, 이제 그분의 부활을 예언하신 구주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었다.

수의를 이렇게 개켜 놓으신 분은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힘있는 천사가 무덤에 내려와, 동료와 함께 주의 시체를 지키던 다른 천사와 합세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돌을 굴려낼 때에 다른 천사는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몸에서 싼 것들을 풀었다. 그러나 이것을 각각 개켜서 제자리에 둔 것은 구주의 손이었다. 별과 원자(原子)를 한결같이 인도하시는 그분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질서와 완전은 그분의 모든 사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소망, 789)

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지 못한 마리아는 그분의 시체에 대한 어떤 염려로 가득 차 있었는가? 그녀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분을 어떻게 알아보았는가? 그리고 기별을 주셨을 때, 그녀는 즉시 어떻게 했는가?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3, 14, 18)


그 다음에 그는 예수님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자기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천사들로부터 돌아섰다. 그 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그녀에게 말을 거는 다른 음성을 들었다. 마리아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사람의 모습을 보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라고 말했다. 만일 이 부자의 무덤이 예수님을 장사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장소라고 생각되었다면 그녀는 스스로 예수님을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는 한 무덤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음성으로 비게 만든 무덤이었는데 곧 나사로가 누웠던 무덤이었다. 그녀가 그 곳에서 주님을 장사할 곳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귀중한 시체를 보살피는 일이 슬픔에 싸인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제 당신의 낯익은 음성으로 ‘마리아야’ 하고 친히 부르셨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낯선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 그는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도 기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조차 잊어버렸다. 마리아는 마치 그분의 발을 안을 듯이 예수님에게 달려가 ‘랍오니여’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을 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제자들에게로 갔다.”(소망, 790)

불신에 빠진 제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친절과 사랑

5.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천사들의 기별을 가지고 온 여인들의 증거를 불신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그들의 믿음이 이토록 위축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24:11-12)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 20:9)


구주께서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교회에게 줄 선물을 받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그분의 빈 무덤을 생각하고 슬퍼서 울고 있었다. 온 하늘에는 기쁨의 날이었던 그날이 제자들에게는 불안과 혼란과 의혹의 날이었다. 여인들의 증거를 불신하는 것은 저희 믿음이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저들이 예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으므로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사두개인들의 교리와 소위 과학적인 이론을 매우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저희 마음에 부활에 관하여 그들의 마음에 찍힌 인상은 모호하였다. 그들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큰 문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소망, 790-793)

6.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나오실 때 부활의 증거를 남겨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여러 번 자신을 반복하여 나타내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제자들을 위한 더욱 명확한 어떤 기별을 주셨는가?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8-10)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렸으나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가라는 부르심에는 또다시 저희 모두가 포함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시겠다고 하신 초청을 반복해서 말했다. 세 번째 기별이 그들에게 보내졌다. 아버지께 다녀오신 후에 예수께서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매우 명확하게 주신 이 약속을 들었을 때에 제자들은 당신의 부활에 대하여 예언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심과 혼란을 물리칠 수 없었다. 여자들이 저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에도 제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인들이 환상을 본 줄로 생각하였다.”(소망, 793-794)

두려움과 비탄에 빠진 제자들

7.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셨으나 제자들은 왜 여전히 두려움에 빠져 있었으며, 다락방 문은 왜 굳게 잠갔는가?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요 20:19)


재난에 잇따라 또 재난이 밀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주일 중 여섯째 날에 저들의 주님이 운명하시는 것을 보았고 그다음 주 첫째 날에 주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백성들을 속이려고 그분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퍼져나가는 거짓된 증언조차도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제사장들의 증오와 백성들의 분노를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그들을 도와주시던 예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때때로 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는 말을 반복하였다. 외롭고 상심되어 그들은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했다(눅 24:21; 23:31).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님이 당하신 운명처럼 그들도 어느 땐가는 그같은 운명에 처하리라는 것을 알고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서 문을 굳게 잠궜다.”(소망, 794)

8. 그리스도께서는 이른 새벽에 부활하셨으나, 제자들은 왜 그날 온 종일 동안 비탄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었는가?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눅 24: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 16:11)


그러나 저희가 구주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모든 시간 동안 기뻐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동산에서 예수님이 자기 곁에 가까이 계신데도 울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가리워 예수님을 분별하지 못했다. 제자들의 마음은 비탄에 빠져 천사의 기별이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마리아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하신 구주의 말씀이 해당이 되고 있는가! 그분은 저희 곁에 가까이 계시나 눈물로 흐려진 저들의 눈이 그분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나 저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소망, 794)

지체된 것 같으나 하루를 넘기지 않음

9. 제자들이 여인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의심하면서 무덤으로 달려가는 대신 주님의 어떤 말씀을 기억했어야만 했는가?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마 17:22-2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마 20:17-19)

마 27:62-63


아! 숙인 머리가 들려지고 눈이 열려 그분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귀가 열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 살아나셨다’고 하라는 그분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 큰 돌로 막고 로마의 인으로 인봉한 요셉의 새 무덤을 들여다보지 말도록 명하라. 그리스도는 거기 계시지 아니하신다. 빈 무덤을 바라보지 말라. 희망도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살아 계신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까닭에 우리도 역시 살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거룩한 불로 정결케 된 입술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는 노래를 즐거이 부르라. 그분은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그리하면 그것이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닻과 같이 영혼을 붙잡을 것이다.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소망, 794)

10.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곧장 제자들에게 자신을 직접 나타내시는 대신에, 여인들을 통하여 기별만을 주신 것은 어떤 더 나은 선물을 준비하시기 위함이었는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4)


예수께서는 당신의 희생이 아버지께 가납되었다는 보증을 받기까지는 당신의 백성들이 드리는 경의를 받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하늘 궁정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들의 죄에 대한 당신의 속죄는 충분하였고 당신의 피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의 말씀을 친히 들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을 인정하시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받으시며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완성하시고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고 하신 그분의 언약을 성취시켜야만 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생명의 임금에게 주어졌으며 그분은 당신의 권세와 영광을 나누어 주시려고 죄악 세상에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셨다.”(소망, 790)

“천사들은 구름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호위하고 그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게 하기 위하여 영원한 문들을 높이 열도록 명하였다. 나는 예수께서 그 하늘의 찬란한 무리들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앞에서 영광에 싸여 계실 때에라도 땅에 있는 자기의 제자들을 잊지 않으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으시고 돌아오셔서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려고 하였다. 그는 그날 바로 돌아오셔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 보이셨다. 그때에야 그는 자기를 만지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이는 그가 아버지께 올라가셔서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살아, 235-236)


[상고할 말씀]

마치 초기의 제자들이 다니엘서 9장을 근거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바로 그 성경 가운데 메시야의 죽으심에 대한 예언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도 다니엘서 8장 14절과 요한계시록 14장 7절을 근거로 기별을 전하면서도 재림전에 하여야 할 다른 기별이 그 같은 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70주일의 끝에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오해했던 것처럼 재림신자들도 2,300주야가 마칠 때에 일어날 사건을 오해하고 있었다. 이 두 경우는 다 같이 진리에 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반적인 오류를 그냥 받아들이거나 고집하므로 생긴 일이었다.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은 다 같이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기별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다 같이 자기들의 기별을 오해하므로 실망을 당하였다.”(쟁투, 352)

“성소 문제는 1844년의 실망의 신비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큰 재림운동을 지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와 현재의 의무를 가르쳐 줌으로 진리의 전체적인 체계가 상호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민과 실망의 밤을 지낸 후 ‘주를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믿음으로 재림을 바라보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기뻐하게 되었다.”(쟁투,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