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6 19:00

10. 겟세마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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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01분


제10과


겟세마네(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693-697; 마태복음 26:54-56; 마가복음 14:41-50; 누가복음 22:48-53; 요한복음 18:3-12; 교회증언 2권, 200-207; 증언보감 1권, 220-226 


기억절 :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 26:53-54)


서론 :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들의 인성과 같지만 그는 고통을 더욱 예민하게 느꼈다. 이는 그의 영성이 죄의 때가 하나도 묻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제하려는 마음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휠씬 더 강하였다. …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길을 가라고 강요받지는 않으셨다. 그는 이 투쟁을 깊이 생각해 오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를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지불하기로 자원하셨다(사인즈 1897. 12. 9).”(화잇주석, 마 26:42)


온 하늘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주께서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심

1. 하늘 아버지께서는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시는 겟세마네의 아들로부터 당신의 빛과 사랑과 영광은 거두셨으나, 그분의 고통에 어떻게 동참하셨는가? 죽음과 슬픔이 없는 온 하늘이 당한 무서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사 63:3)

“내가 조롱하는 자들의 모임에 앉지도, 기뻐하지도 않았으며, 주의 손으로 인하여 내가 홀로 앉았나니 이는 주께서 나를 분노로 채우셨음이니이다.”(렘 15:17, 킹제임스)


이와 같은 결정을 하신 후 잠시 일어나시던 몸은 죽은 듯이 땅에 쓰러졌다. 졸도하신 주님의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부드럽게 대어, 숱한 일반 인생들보다도 더 상하신 그분의 이마를 씻어드려야 할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구주께서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는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천사들은 구주의 고통당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사들은 저희 주님께서 사단의 군대에 포위되어 그분의 육신이 몸서리나고 신비스러운 공포에 눌린 것을 보았다.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다. 거문고는 모두 멈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당신의 빛과 사랑과 영광을 거두시는 아버지를 침묵과 슬픔 가운데 지켜보았던 수많은 천사들의 놀라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불쾌한지를 좀 더 잘 깨달을 것이다.”(소망, 693)

2. 범죄하지 않은 세계들과 하늘의 천사들뿐만 아니라, 누가 예수님의 투쟁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는가? 이 두려운 위기의 순간에 그분을 격려하려고 하늘로부터 누가 내려왔는가?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범죄하지 않은 세계들과 하늘의 천사들은 투쟁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에 따라 큰 열심으로 이를 주목하였다. 사단과 배도의 무리인 악의 동맹자들도 구속 사업의 이 큰 위기를 한결같이 바라보았다. 선과 악의 세력들은 그리스도께서 세 번 반복하신 기도에 어떤 응답이 올 것인지를 보려고 기다렸다. 천사들은 거룩하신 고통자에게 구원을 가져다드리기를 열망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야만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피할 수 있는 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두려운 위기, 만물이 위기에 처하였으며 신비스러운 잔이 고통하시는 자의 손에서 떨고 있던 그때에, 하늘이 열리며 그 위급한 시간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추었는데, 사단이 떨어진 그 지위를 차지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힘있는 천사가 그리스도 곁에 내려왔다. 천사는 그리스도의 손에서 잔을 취하려고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사랑의 보증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잔을 마시도록 격려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겸하여 가지신 탄원자에게 힘을 주려고 왔다. 그리스도의 고통의 결과로 구원얻게 될 영혼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천사는 그리스도에게 열려 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 천사는 그분의 아버지가 사단보다 더욱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므로, 그분의 죽음은 사단의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 세상 나라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그분께 보증하였다. 인류 가운데서 큰 무리가 구원 곧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은 영혼의 수고에 만족하실 것이라고 그 천사는 말하였다.”(소망, 693-694)

죽음의 쓴 잔의 고통을 견딜 강한 힘을 얻으심

3. 예수님께서 극도의 위기 가운데 죽음 직전에 계실 때 하늘에서 내려온 가브리엘은 그분의 힘을 어떻게 도왔는가? 폭풍의 분노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그분께서는 어떻게 견디실 수 있으셨는가?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욥 14:13)


극도의 위기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마음과 영혼이 무거운 죄의 짐 밑에서 부스러져 내리고 있었을 때 가브리엘이 그 거룩한 수난자의 힘을 도우라고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강하게 하여 피로 물든 그의 길을 가도록 하였다. 그 천사가 기진맥진한 그를 붙들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는 그 쓰디쓴 잔을 취하사 마시는 일에 동의하였다. 잃어버림을 받아 파멸해 가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수난 당하시는 그분의 귀에 들렸을 때 피에 젖은 그분의 입술에서 ‘그러나 만약 제가 이 쓴 잔을 마시지 않고는 인류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는 말씀이 흘러 나왔다(사인즈 1897. 12. 9).”(화잇주석, 눅 22:42, 43)

“그리스도의 고민은 그치지 않았으나 억압과 좌절은 그분을 떠났다. 폭풍은 결코 경감되지 않았지만 폭풍의 표적인 그분이 폭풍의 분노를 대면할 강한 힘을 얻은 것이었다. 그분은 침착하고 평온하게 되셨다. 피에 젖은 그분의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들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맛보심으로 어떤 인간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셨다.”(소망, 694)

4. 죄의 무게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을 통하여 견딜 힘을 얻으셨다. 가장 강한 천사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분의 흠 없는 인성이었을지라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정신적 고뇌와 고통은 무엇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는가?

이는 우리가 받은 극심한 압박으로 인하여 견딜 힘을 잃어 심지어는 삶의 절망에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사형 선고를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8-9, 킹제임스)


만약 하늘로부터 천사들이 와서 힘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의 인성은 두려운 죄의식 때문에 그때 거기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보수하시는 공의를 인간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신 그분 위에 내리신 그 힘은 죄로 가득 찬 세상에 내려질 엄청난 진노의 무게하에 고통을 당하고 계신 그분을 견디게 하시고, 붙들어 주신 바로 그 힘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선고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것은 홍수로 옛 세상이 멸망한 역사로도 증명이 되었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소돔성 거민들을 멸망시킨 기록으로도 입증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셨을 때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고뇌 속에서 입증된 것만큼 그렇게 크게 증명된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겟세마네 동산이 죄로 가득 찬 세상에 가장 큰 고통의 장소가 된 것은 죄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결과이었다. 어떤 슬픔도, 어떤 고뇌도 하나님의 아들이 견디신 것을 측량해 볼 수 있는 것은 없다(원고 35, 1895).”(화잇주석, 마 26:36-46)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천사로부터 힘을 얻고 승리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을 판 유다를 만나시기 위해 앞장 서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찾는 무리들을 향하여 어떻게 물으셨는가? 그분께서는 위기를 벗어날 충분한 기회가 있으셨으나 피하지 않으신 채 다시 한번 동일한 물음으로 저들에게 무엇을 상기시키려 하셨는가?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요 18:7)

요 18:3-6


예수께서 당신을 판 자를 만나기 위하여 걸어가실 때에 조금 전까지 고민하시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분의 제자들보다 앞서가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내로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예수께 수종들던 천사가 예수님과 폭도들 사이로 나섰다. 거룩한 빛이 구주의 얼굴을 비추고, 비둘기 같은 모양이 그분을 가리웠다. 이 거룩한 영광이 나타날 때에 살기 등등한 군중들은 잠시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제사장들, 장로들, 군사들, 그리고 유다까지도 죽은 사람들처럼 땅에 엎드러졌다.

천사는 물러가고 빛은 사라졌다. 예수께서는 도망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셨지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남아 계셨다. 영광을 받으신 그분은 지금 당신 발 앞에 무기력하게 엎드러진 그 무정한 무리들 가운데 서 계셨다. 제자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잠잠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은 곧 변하였다. 폭도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로마군인들과 제사장들과 유다는 그리스도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희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분이 도망하지나 않을까 근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구주께서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다. 저희는 저희 앞에 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았으나 그것을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는 질문에 그들은 다시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소망, 694-695)

6. 유다는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도 그분께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는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는 두 번의 질문과 “내로라”는 두 번의 나타내심, 그리고 그분의 능력의 표적은 누구를 위한 마지막 호소였으며, 이 호소는 왜, 어떻게 거절되고 말았는가?

쓸모없는 사람과 악인은 완고한 입과 더불어 행하느니라. 그는 눈으로 눈짓하며, 발로 말하고,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마음에는 완고함이 있고 끊임없이 악을 꾀하며, 불화를 일으키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재난이 갑자기 임하리니, 그가 대책도 없이 갑자기 망하리라.”(잠 6:12-15, 킹제임스)

시 18:25-27


그리스도 자신을 구원한 힘은 그분의 능력 안에 있었다. 그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가 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천사들은 즉시 그분을 둘러쌌다. 그리하여 동산에 모인 무리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라는, 저들이 증거 할 수 있고 또 증거 하게 될 확실한 표적을 보았다. 보냄을 받은 폭도들이 비틀거리며 허공을 치고 맥없이 땅바닥에 넘어졌을 때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복종시킨 후 아무런 해도 받지 않으시고 저들 사이로 통과하신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광의 광채를 발하심으로 저들을 멸하실 수도 있었다. 유다는 그것을 기대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번이나 그 일을 피하셨기 때문이었다. …

심지어 그때까지도 유다가 계속해서 증오심을 품고 끝까지 자기의 목적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일 그때 그가 회개하더라면, 만일 그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더라면, 만일 그의 반역의 정신이 분쇄되었더라면 그는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극악한 반항심은 주어진 빛을 거절한 만큼 증가하였다. 다가온 위험과 재난에 대한 호소와 경고의 기별도 유다의 목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빛과 증거를 받았음에도 그는 자신의 행로를 좇아 자기 뜻대로 행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과 거룩한 입술로부터 최후로 발해진 부드러운 견책의 말씀도 그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저항함으로 자신의 심령을 완고하게 만들었다.”(원고 100, 1897. 9. 15;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267)

반역자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심

7.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호소마저도 거절한 채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반항하기로 결심한 유다를 향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마 26:50)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눅 22:48)


… 이제 그[유다]는 그들[폭도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서 다정한 친구인 것처럼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말로 유다는 연거푸 예수님의 입을 맞춘다. 그리고 마치 위험 가운데 계신 그분을 동정하여 우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다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다. 이 호소는 반역자의 양심을 일깨웠을 것이며 그의 완고한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이나 그는 염치와 성실과 인간적인 친절을 이미 저버렸다. 그는 상냥해지는 의향이 없음을 보이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도 버티어 섰다. 그는 자신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에 사단을 대항할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반역자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폭도들은 조금 전에 저희 눈앞에서 영화롭게 되셨던 그분의 몸에 유다가 접촉하는 것을 볼 때에 대담해졌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붙잡아 선한 일에만 쓰시던 그 귀하신 손을 묶기 시작하였다.”(소망, 695-696)

8.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을 스스로 내어주시려고 하셨는가? 심지어 베드로가 행사한 정당방위의 폭력조차도 금하셨으며, 이런 방법은 그분의 왕국의 원칙이 아님을 어떻게 분명히 보여주셨는가?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 26:54)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 22:51)


제자들은 저희 주님께서 자신을 잡히도록 내어 주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었다. 왜냐하면 폭도들을 죽은 사람처럼 넘어지게 한 그와 같은 능력이 예수님과 그의 동료들이 도망할 때까지 폭도들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저희가 사랑한 그분의 손을 묶으려고 포승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분개하였다. 베드로는 분개하여 성급히 칼을 뽑아 주님을 방어하려고 하였으나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뿐이었다. 이 일을 보신 예수께서는 로마 군병들이 굳게 붙잡은 그 손을 푸시고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며 상한 귀를 만지시니 곧 귀가 완전히 나았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각 제자들 대신에 한 군단(軍團)씩]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왜 그분은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하고 제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의 발설되지 않은 생각의 대답으로 그분은 다시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소망, 696)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9. 예수님을 잡으려고 무장한 폭도들을 데리고 온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분께로부터 화살처럼 날카로운 어떤 말씀을 들었는가? 그분께서는 저들이 어둠 속에 가리려는 위선을 어떻게 폭로하셨는가?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2-53)


유대인들의 고위 관원들은 예수님을 잡는 데 친히 가담하였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은 부하들에게 맡기기에 너무 중대한 문제였으므로 교활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성전 경호원들과 폭도들과 합세하여 유다를 따라 직접 겟세마네에 온 것이었다. 이 고관들과 연합된 무리는 어떤 무리였던가! 마치 사나운 짐승이라도 잡으러 가는 것처럼 온갖 도구로 무장한 호전적인 폭도들이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돌아보시며 예수께서는 그의 엄중한 시선으로 그들을 주시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저희 생명이 계속하는 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 말씀들은 전능하신 자의 날카로운 화살과 같았다. 위엄 있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도적이나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대적하러 왔구나. 나는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다. 너희는 나를 잡을 기회가 많았으나 너희가 잡지 않았다. 밤이 너희들의 일하기에 더욱 적합하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소망, 696-697)

“예수님은 자신의 일하는 방법과 그를 참소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을 대조하셨다. 이날 한밤중에 폭도들이 예수님을 포박한 일, 그가 기소를 당하여 정죄함을 받기도 전에 당한 심한 조롱과 모욕 등은 그들의 일하는 방법이었다. 그분이 하는 일은 모든 사람 앞에 공개되었다. 그의 가르침 속에는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들의 태도를 꾸짖으시고 사두개인들이 쓰고 있는 위선의 탈을 벗기셨다(원고 51, 1897).”(화잇주석, 요 18:20, 21)

10. 예수님께서 폭도들에게 자신을 묵묵히 내어주시자 지켜보던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으며, 예언된 말씀들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잡히고 묶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예수께서 자신과 그들에게 굴욕을 허락하시는 데 대하여 그들은 상심하였다. 제자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폭도들에게 굴복하는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분노와 공포 가운데서 베드로는 이제 그들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에 따라서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보라 너희가 다 각기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고 예수께서는 일찍이 예언하셨던 것이다.”(소망, 697)


[상고할 말씀]

그러나 유년, 청년, 장년 시대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홀로 다니셨다. 그는 순결하고 신실하사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으나 백성들 가운데서 그와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심히 무거운 책임을 지셨다. 인류의 원칙과 목적에 결정적인 변화가 없는 한 모두가 다 잃어버린 바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아셨다. 이러한 사실이 그의 마음을 억눌렀으며 아무도 그가 진 짐의 무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열렬한 목적으로 충만하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의 빛이 되도록 그의 생애의 계획을 실천하셨다.”(소망, 92)

“인간은 어떤 사람도 죄의 담당자가 되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주님이 지신 죄의 저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떤 슬픔도 하나님의 진노가 엄청난 힘으로 그를 내려 누를 때 그가 느낀 슬픔과 비교해 볼 수 없다. 인성은 단지 한정된 양의 시련과 시험을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유한한 사람은 유한한 정도만을 견딜 수 있을 따름이지만, 그리스도의 본성은 고통을 느끼는 기능이 컸었다. 왜냐하면 인성이 신성 안에 존재해 있었고, 잃어버린 세상 죄로 인하여 야기된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기능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견디신 고뇌는 죄의 성질과 계속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실 보복의 성질을 더욱 넓게 하고 더욱 깊게 하였으며, 더욱 확대된 개념을 갖게 해준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원고 35, 1895)”(화잇주석, 마 26:3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