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9 20:00

6. “나를 기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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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7분


제6과


“나를 기념하여”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652-661; 마태복음 26:20-29; 마가복음 14:17-25; 누가복음 22:14-23; 요한복음 13:18-30


기억절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서론 :  그러나 성만찬 예식은 슬픔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그런 목적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의 제자들이 주의 성탁 주위에 모일 때에 그들은 그들의 결점을 기억하고 슬퍼하지 말 것이다. 그들은 향상되었든지 저하되었든지 간에 그들의 과거의 종교적 경험에 얽매이지 말 것이다. 그들은 그들과 저희 형제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해 내지 말 것이다. 준비적 예식에 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반성, 죄의 자복, 의견 충돌에 대한 화해 등 이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오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설 것이 아니요 구원의 빛 가운데 설 것이다. 그들은 의의 태양의 밝은 빛에 심령을 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장 귀중한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마음으로 비록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의 임재하심을 충분히 인식하는 가운데 그들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소망, 659)


표상적 축제에서 실체적 축제로의 전환점

1. 구약시대 4천 년 동안 상징적으로 행해져 왔던 어린 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제도적 의식인 유월절 표상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그 실체적 희생이 되심으로써 어떤 기념으로 전환될 것이었이며, 언제까지 지켜질 것이었는가?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그리스도께서는 두 제도와 그 의식에 따르는 두 큰 축제 사이의 전환점에 서 계셨다.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속죄물로 지금 막 바치려고 하였으며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사천 년 동안 당신의 죽음을 지적하여 온 예표와 의식의 제도를 끝내실 것이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잡수실 때에 그분의 큰 희생에 대한 기념이 될 예식을 유월절 대신으로 세우셨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축제일은 영원히 끝나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예식은 각 시대를 통하여 모든 나라에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지켜야 할 예식이었다.

유월절은 애굽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기념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해마다 자손들이 이 의식의 뜻을 물을 때마다 그 역사를 되풀이해서 말해 주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 이렇게 함으로 경이로운 구원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롭게 간직될 것이었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신 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의식은 기념되어야 한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새롭게 간직된다.”(소망, 652-653)

2.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대신에 새롭게 기념할 만찬에서 어린 양과 짐승의 피 대신에 제자들에게 누룩 없는 떡과 신선한 포도즙을 사용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그리스도께서는 아직도 유월절 만찬을 차려 놓은 식탁에 계셨다. 유월절 절기에 쓰던 누룩 없는 떡이 그리스도 앞에 놓여 있었다. 발효되지 않은 유월절 포도즙이 식탁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떡과 포도즙을 흠 없는 희생물인 자신을 나타내시는 데 사용하셨다.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발효로 부패되지 않은 것만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을 대표할 수 있었다.”(소망, 652-653)

“그분이 혼인 잔치에 모인 손님들을 위하여 만드신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은 건강에 좋고 원기를 새롭게 하는 음료였다. 이런 것이 바로 우리 구주와 당신의 제자들이 첫 성찬식에서 사용한 포도즙이었다. 이것이 성찬식에서 구주의 피의 상징으로 항상 사용되어야 할 포도즙이다. 이 거룩한 성례전은 심령을 새롭게 하고 생명을 주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죄악을 조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여기에 관련되어서는 안 된다.”(치료, 333)

제자됨은 자청했으나, 만찬은 거절한 제자

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이 마지막 만찬 자리에 은밀한 목적을 꾀하는 제자가 있으며,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계심을 어떻게 증거하셨는가?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스스로 자청했던 제자는 누구였는가?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마 8:19)


반역자 유다도 성만찬 예식에 참석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찢겨진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즙을 받았다. 그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앉아 계시는 바로 그 곳에 앉아서 반역자는 음흉한 목적을 꾀하고 있었으며 엉뚱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발을 씻기실 때에 유다의 성질을 알고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주셨다.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요 13:11)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거짓 제자에게 그의 은밀한 목적을 아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켰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들이 식탁에 자리잡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소망, 653-654)

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밝히시는 대신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성의 분명한 증거만을 제시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는 그분께서 내미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어떻게 거절했는가?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마 26:21-2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26-27, 30)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취지를 깨닫고, 그분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공포와 낙담이 그들을 엄습하였다. 그들은 주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하나라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희 마음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

유다는 자기의 목적이 폭로된 것을 보자 놀라움과 혼란 중에 급히 일어나 방을 떠났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반역자가 그리스도를 떠나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나간 것은 밤이었다.

이 발걸음을 내딛기까지는 유다에게 회개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주님과 그분의 동료인 제자들 앞을 떠날 때에 최후의 결정은 이루어졌다. 그는 그 경계선을 넘어가 버렸다.

이 유혹받은 영혼을 다루심에 있어서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은 참으로 놀라웠다. 유다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 하나 하지 않으신 것이 없었다. 그가 두 번씩이나 주를 배반하겠다고 맹세한 후에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반역자의 마음에 있는 은밀한 목적을 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분명한 증거를 유다에게 주셨다. 이것이 그 거짓 제자에게 하신 마지막 회개의 요청이었다. 신성과 인성을 겸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실 수 있는 간청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하였다. 완강한 교만으로 격퇴당한 자비의 물결은 부드럽게 하는 사랑의 힘센 조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죄가 탄로나 놀라긴 했지만 유다는 더욱 결심을 굳게 할 뿐이었다. 그는 성만찬에서 나와 배반하는 그 일을 완성하려고 나갔다.”(소망, 654-655)

유다를 통한 제자들에 대한 자비로운 목적

5.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반역적인 음모뿐만 아니라, 곧 닥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분명히 아신다는 자신의 메시야적 신성에 대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오해치 않도록 하기 위하여 유다의 종말까지도 어떻게 선언하셨는가?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 13:18-19)


유다에게 화를 선언하신 일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자비로운 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고로 그분은 자기가 메시야라는 최고의 증거를 그들에게 주셨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그에게 닥쳐올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시는 것처럼 잠잠히 계셨다면 저희 주께서는 거룩한 선견지명이 없으시고 불시에 습격을 받아 잔인한 폭도들의 손에 팔리웠다고 제자들은 생각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가 열둘을 택하였지만 그 중의 하나는 마귀라는 것을 일년 전에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다. 이제 그의 배반을 주님께서 훤히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 유다에게 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은 그분이 굴욕을 당하시는 동안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의 믿음을 굳게 할 것이었다. 유다가 무서운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때 제자들은 예수께서 반역자에게 선고하신 재난을 기억할 것이었다.”(소망, 655)

6. 유다가 최후의 회개의 기회마저도 거절하고 반역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을 씻기시고 만찬의 자리에서도 제외시키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그리고 구주께서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반역자로 알려진 그에게서 당신의 봉사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실 때에 하신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한층 더 그분이 식탁에서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요 13:11, 18)고 선언하셨을 때에도 그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그분이 하신 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가장 흉악한 죄를 저지른 자를 대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유다에 대하여 알고 계셨지만 그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배반자는 성만찬을 나누는 일에 그리스도와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구주께서는 증인이 그분을 받아들여 회개하고 죄의 더러움을 씻도록 권유하는 데는 언제나 오래 참으셨다. 이 모본은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과오와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와 절연해서는 안 된다. 부주의한 분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를 유혹의 희생이 되게 하며 혹은 그를 사단의 전쟁 마당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방법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잘못과 결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으며 열둘 중 하나를 제하고는 모두 회개하였다.”(소망, 655-656)

성만찬 예식의 참여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본

7. 예수님의 모본을 통하여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7-29)


그리스도의 모본은 성만찬 예식에 사람들을 제외시키는 것을 금하신다. 공개된 죄로 인해 죄지은 자가 제외되는 것은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가르치신다(고전 5:11). 그러나 이 이상은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이 경우에 참석시킬 것인가를 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누가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누가 알곡에서 가라지를 골라낼 수 있겠는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그 까닭은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고전 11:27, 28, 29)기 때문이다. …

합당치 못한 어떤 사람이 참석하였다는 이유로 아무라도 참석을 거부하지 말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공개적으로 참석하여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증거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고 당신의 임재로 그들에게 활력을 주시는 것은 그분께서 친히 지정하신 바로 이 의식들에서이다. 비록 부적당한 마음과 손이 의식을 집행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섬기려고 그곳에 계신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오는 모든 사람은 큰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거룩한 특권의 기회를 등한히 여기는 자들은 큰 손실을 당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는 말씀이 마땅할 것이다.”(소망, 658)

8. 신자로서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 12:1)


신자들이 이 의식을 거행하려고 모일 때에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자들이 함께 참석한다. 회중 가운데는 유다와 같은 자도 있을 수 있다. 만일 그럴 경우 흑암의 왕에게서 보냄을 받은 사자들이 그곳에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절하는 모든 자들에게 시중드는 까닭이다. 하늘의 천사들도 역시 참석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방문객들은 이런 때에는 언제든지 참석한다. 회중 가운데 마음으로는 진리와 거룩함의 종들이 아니지만 예식에 참석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올지 모른다. 그들을 금하지 말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다의 발을 씻기실 때에 참석하였던 증인들이 그곳에도 참석한다. 인간 이상의 존재들의 안목이 그 장면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이 친히 세우신 의식을 시인하려고 그곳에 계신다. 그분은 죄를 깨닫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려고 그곳에 계신다. 죄를 뉘우치는 단 한 번의 표정이나 생각일지라도 예수께서 주목하지 않으시는 일이 없다. 회개하며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하여 그분은 기다리신다. 영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유다의 발을 씻기신 분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에서 죄악의 오점(汚點)을 씻으시기를 열망하신다.”(소망, 656)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된 새 언약과 재림의 언약의 기념식

9.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즙을 나누심으로 어떤 언약의 관계를 새롭게 맺으셨는가? 그 언약은 무엇으로 비준되었는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즙을 나누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구주가 되심을 서약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하셨는데 이를 통하여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얻는다. 이 언약으로 금생과 내생을 위하여 내려 주실 수 있는 모든 축복은 그들의 것이 되었다. 이 언약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批准)될 것이었다. 그리고 성만찬의 집전은 타락한 전 인류의 한 부분으로서 개별적으로 저희 각 개인을 위하여 희생하신 무한한 희생을 제자들 앞에 항상 생각나게 할 것이었다. …

우리 주님은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당신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나와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억압과 핍박과 고통을 당할 때에 그대를 위하여 생명을 준 그토록 큰 나의 사랑을 기억하라. 그대의 의무가 어렵고 가혹하게 보이며, 그대의 짐이 지기에 너무도 무겁게 보일 때에 그대를 위하여 내가 멸시와 수치, 곧 십자가를 참은 것을 기억하라. 엄격한 시련으로 그대의 마음이 위축될 때에 그대의 구주가 살아 계셔서 그대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사실을 기억하라.”(소망, 659)

10. 성만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히 3:1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이 소망을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다 같이 모일 때는 언제나 어떻게 ‘예수께서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을 자세히 말하곤 하였다. 환난 가운데서도 그들은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받았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는 생각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귀중하였다.

이것들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강권하는 힘이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기억에 새롭게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고자 이 예식을 제정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우리 영혼과의 연합이 있을 수 없다. 형제와 형제 사이의 연합과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굳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만큼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효험있게 만드는 것은 없다. 우리가 즐거움으로 그분의 재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죽으심 때문이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의 소망의 중심이다. 그 위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고착시켜야 한다.”(소망, 659-660)

모든 식탁과 매 끼니마다 성만찬에 참여함

11. 우리는 날마다의 일용할 떡과 음료를 통하여도 어떻게 그분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우리 주께서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적 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생의 삶에서까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혜를 입고 있다. 우리가 먹는 떡도 그분의 찢어진 육체로 산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그분의 흘리신 보혈로 산 것이다. 날마다 자기의 음식을 먹는 자는 그가 성자이건 죄인이건 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을 받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모든 떡덩이마다 갈바리의 십자가 인이 찍혀있다. 모든 샘물에도 십자가가 반사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큰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다락방에서 거행된 성만찬에서 비치는 빛이 매일의 생활 양식을 거룩하게 한다. 가족 식탁은 주님의 식탁처럼 되며 끼니마다 식사는 성만찬과 같이 된다.”(소망, 660)

1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 특별히 무엇을 먹고 마심으로 그분의 거룩한 속성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영적 능력에 동참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53, 63)


우리의 영적 생활에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더욱 그러한가!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선언하셨다. 우리를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버리신 생명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명하신 일을 행함으로 우리는 이 생명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4, 56, 57)고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은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성만찬에 적용된다.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큰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적 생애와 같아지게 된다. 그 사람은 모든 성만찬 예식 때마다 영적 능력을 받을 것이다. 이 예식은 신자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산 연결을 이루고 그리하여 하나님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한다.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이것은 의존적인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을 이룬다.”(소망, 660-661)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의 찢어진 육체와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에 우리는 상상 가운데 다락방에서 거행된 성만찬에 참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죄를 지신 분의 고민으로 성별된 동산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한 그 투쟁을 목격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들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루신 희생이 얼마나 크고 의미 심장한 것인지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된다. 구속의 경륜은 우리 앞에서 영광스럽게 빛나고 갈바리의 사상은 우리 마음속에 활력 있고 신성한 감격을 일깨운다.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돌리는 찬양이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 있을 것이니 이는 갈바리의 장면들을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간직하는 영혼들에게는 교만과 자아 숭배가 번성할 수 없는 까닭이다.

구주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바라보는 자는 사상이 향상되고, 마음이 순결하게 되고, 품성이 변화될 것이다. 그는 나아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며 이 오묘한 사랑을 어느 정도 반사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말한 사도의 말을 더욱 완전히 받아들일 것이다.”(소망,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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