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2 20:27

5. 종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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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4분


제5과


종의 종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642-651; 누가복음 22:7-18, 24; 요한복음 13:1-17; 교회에 보내는 권면, 299-301


기억절 :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서론 :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처럼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바 되었으나 때때로 죄악과 접촉함으로 마음의 순결이 더렵혀진다. 우리는 그분의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베드로는 그의 더럽혀진 발이 그의 주님이시요 주인이신 분의 손에 접촉되는 것을 피하였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우리는 우리의 죄 많고 더러워진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져가 접촉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악한 성질과 허영과 교만이 얼마나 그분을 슬프시게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결점과 더러움을 모두 예수께 가져가야 한다. 예수께서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으실 수 있다. 그분의 공로로 깨끗함을 받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과 교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소망, 646-649)


제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영원히 인상 깊게 새겨져야 할 교훈

1.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누구와 함께 보내시고자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눅 22:8)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다락방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같이 식탁에 앉아 계셨다. 그들은 유월절을 경축하기 위하여 모였다. 구주께서는 오직 열 두 제자와만 이 절기를 지키고자 하셨다. 그분은 자기 때가 왔음을 아셨다. 그분 자신이 참 유월절 양이었으며 유월절을 먹는 그날에 희생되실 것이었다. 그분은 바야흐로 진노의 잔을 마시려고 하셨으며 곧 최후의 고통의 침례를 받으실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조용한 몇 시간이 그분에게 남아 있었으며 따라서 그분은 이 시간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보내려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무아(無我)의 봉사의 생애였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마 20:28) 것이 그분의 모든 행동의 교훈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하였다.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예증으로 그분의 교훈을 반복하셨는데, 그 예증으로 그의 교훈은 제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영원히 인상 깊게 새겨졌다.”(소망, 642)

2. 이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그늘 아래 계셨으므로, 그분의 마음은 당할 배반과 모욕과 수치와 슬픔으로 인하여 괴로우셨으나, 그분께서는 자신의 고통보다 누구를 먼저 염려하실 수밖에 없으셨는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떠나사 아버지께로 갈 시간이 온 것을 아셨다. 그는 세상에 있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제 그분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계셨는데 고통이 그분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분이 배반을 당할 때 그분은 자신이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범죄자들이 당하는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당신이 구원하려고 오신 자들의 망은(忘恩)과 잔인성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치르어야 할 희생이 얼마나 큰 것임과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헛된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자신 앞에 놓인 모든 일을 아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당할 수치와 고통을 생각하시고 쉽사리 압도를 당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소유로 당신과 함께 있었고 또한 당신의 수치와 슬픔과 고통스러운 일이 지난 다음 세상에서 투쟁하도록 남겨질 열두 제자들을 바라보셨다. 자신이 받으셔야만 하는 고통을 생각하실 때는 언제나 제자들과 연결을 지어 생각하셨다.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을 염려하시는 마음이 맨 먼저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소망, 643)

“누가 크냐?”

3. 주님께서 오직 제자들과만 함께 하시기를 고대하셨던 그 유월절 다락방에서 그들은 또다시 어떤 다툼과 논쟁으로 그분의 마음을 슬프게 했는가?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잠 25:6-7)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앞에서 진행된 이와 같은 논쟁은 그분의 마음을 슬프고 상심되게 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권세를 주장하면서 다윗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이라는 자랑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그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였고, 서로 서로를 평가하였던 바 저희 형제들이 더욱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첫째로 내세웠다. 그리스도의 보좌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다른 제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두 형제가 감히 가장 높은 지위를 요구한 것이 열 제자들을 격분시켜 서로를 멀리하게 하였다. 자신들은 잘못 판단을 받았고 그들의 충성과 재능은 옳게 평가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유다는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가장 가혹하였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 유다는 왼편으로 그리스도의 다음 자리를 헤치고 들어갔으며 요한은 바른 편으로 나아갔다. 만일 그곳에 제일 높은 자리가 있다면 유다는 기어코 그것을 차지하려고 하였는데 그 자리는 그리스도 옆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반역자였다.”(소망, 643-644)

4. 또 다른 어떤 문제가 제자들 사이의 알력의 원인이 되었는가?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 7:22)


또 다른 알력의 원인이 있었다. 잔치가 있을 때에는 종이 손님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으며 이때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항아리와 대야와 수건이 그곳에 있어 발 씻길 준비가 다 되어 있었으나 종이 그곳에 없었으므로 제자들이 이 일을 해야만 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자존심이 상할 그 종의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모든 제자들은 냉정한 무관심을 나타냈으며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듯 무감각하게 보였다. 그들은 잠잠히 앉아서 스스로 낮은 데 처하여 겸손하기를 거절하였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사단이 그들에게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도록 이 불쌍한 영혼들을 인도하셔야 하겠는가? 어떻게 그분은 그저 제자라고 공언하는 것만이 그들로 제자가 되게 하지 못하며 또한 그들에게 그분의 나라에서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으실까? 어떻게 그분은 참된 위대함은 사랑의 봉사, 즉 참된 겸손이라는 것을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 어떻게 그분은 그들의 심령에 사랑의 불을 붙여서 당신이 그들에게 말씀하고자 원하는 것을 그들로 이해하게 하실 수 있으실까?”(소망, 644)

결코 잊지 못할 한 모본

5. 제자들 사이의 질투와 다툼의 정신을 예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책망하셨는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 13:4-5)


서로 봉사하려고 움직이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한동안 기다리셨다. 그 다음에 거룩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제자들은 놀라움으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셨다. 이러한 동작은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였다. 쓰라린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저희 마음에 가득 찼다. 그들은 무언의 책망을 이해하였으며 다 같이 새로운 빛 가운데서 자신들을 바라보았다.”(소망, 644)

6. 예수님께서는 무언의 동작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한 모본을 주심으로써, 그분께서 사람의 모본이 되시기 위하여 몸소 종의 형체로 오신 사명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5-8)

마 12:18-20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들의 이기적인 정신 때문에 그분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으나 그분은 그들의 갈등에 대하여 그들과 논쟁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분은 그들이 결코 잊지 못할 한 모본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쉽게 흩어지거나 꺼지지 않았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만물을 그의 손에 맡기셨고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당신의 충만한 신성을 의식하셨지만 당신은 왕관과 왕복을 벗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지상 생애에서 그분이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들 중의 하나는 몸소 종과 같이 수건으로 허리를 두르시고 종의 일을 행하신 것이었다.”(소망, 644-645)

세족 예식 – 더 높은 정결에 대한 표상

7.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종으로서 자신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을 굴욕적으로 생각함으로 자신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마땅히 겸손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의 굴욕적이라고 생각되는 봉사까지도 제자들이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분의 봉사는 무엇에 대한 표상이었는가?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요 13:6-8)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1-2)


베드로의 차례가 왔을 때 그는 놀라서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하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의 겸손이 그의 마음을 깨뜨렸다. 베드로는 이 섬기는 일을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행하고 있지 않음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주께서 종의 일을 행하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온 영혼이 이 굴욕에 대하여 분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하여 오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가 거절한 봉사는 더 높은 정결의 표상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씻으려고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발을 씻기시도록 허락하지 않으므로 베드로는 그 낮은 정결 가운데 포함된 더 높은 정결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그의 주님을 거절하고 있었다. 주께서 우리의 정결을 위하여 일하시도록 허락하는 일은 주님을 굴욕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준비된 것은 무엇이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가장 진정한 겸손이다.”(소망, 645-646)

8.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발을 씻기시는 봉사의 이유를 공개하셨을 때, 제자들은 비로소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만찬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먼지로 더러워진 발의 정결보다 더 중요한 어떤 정결이 필요함을 깨달았는가?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요 13:8-9)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시 22:26)

“자기를 낮추는 자와 함께 겸손한 영을 갖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노략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9, 킹제임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그의 교만과 고집을 버렸다. 그는 그리스도와 분리된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육체적 정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 낮은 정결의 예증을 통하여 더 높은 정결을 말씀하고 계신다. 목욕하고 온 사람은 깨끗하지만 샌들을 신은 발이 곧 더러워지므로 다시 씻을 필요가 있었다. 그와 같이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은 죄와 불결을 씻기 위해 열려 있는 큰 샘에서 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그러나 유혹은 그들을 죄악으로 유인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아직도 그분의 정결하게 하시는 은혜가 필요하였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에서 먼지를 씻으실 때에 예수께서는 바로 씻으시는 그 일로써 그들의 마음에서 이간(離間)과 질투와 교만을 함께 씻어 버리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일이었다. 그 때 그들이 가졌던 정신으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해 준비된 자는 하나도 없었다. 겸손과 사랑의 상태로 돌아가기 전에는 그들이 유월절 만찬에 참석하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려고 하시는 기념 예식에 참여할 준비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정결해야만 하였다. 교만과 이기심이 알력과 증오심을 일으켰으나 이 모든 것을 예수께서는 그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씻어 버리셨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예수께서는 ‘너희가 다 깨끗하’다고 말하실 수 있으셨다. 이제 그 곳에는 마음의 연합과 서로 사랑함이 있었다. 그들은 겸손하고 온순하게 되었다. 유다 외에는 모두가 다 가장 높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였다. 이제 부드럽고 우아한 마음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소망, 646)

그리스도의 위대한 겸손과 봉사의 법칙을 기념함

9. 예수님께서는 전 지상 생애 동안에 아버지의 속성이신 어떤 법칙 아래서 생애하셨는가? 그 속성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결정적으로 새겨졌는가?

…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막 9:35; 마 23:11-12


당신의 생애와 교훈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 그 기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신다.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그분은 계속하여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하나님께서는 이 봉사의 이상을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을 통하여 봉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선두에 서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봉사의 법칙 아래 있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섬기셨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이리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셨으며 그분의 모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순종할 것인지를 보여주셨다.

예수께서는 여러 번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이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이 무리 가운데 뛰어나게 되기를 요구하였을 때에 그분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된’(마 20:26) 다고 말씀하셨다. 내 나라에는 편애와 최상권의 원칙은 없다. 유일의 위대함은 겸손의 위대함이다. 유일의 영예는 다른 사람을 헌신적으로 봉사함에서 찾을 수 있다.”(소망, 649-650)

10. 예수님께서는 이 위대한 속성의 원칙을 하나의 종교적 예식으로 성별되게 하심으로서 어떤 목적이 이 예식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성취되어야 했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6-17)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 가운데서 단지 친절한 행동만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었다. 여행에서 더러워진 먼지를 없애려고 손님들의 발을 씻기는 데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종교적 예식을 세우고 계셨다. 우리 주님의 그 행동으로 이 겸손 예식은 성별된 예식이 되었다. 예수님의 겸손과 봉사의 교훈을 항상 기억하기 위하여 제자들은 이 예식을 지켜야만 하였다.

… 인간에게는 그의 형제들보다 자신을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자아를 위해 일하며 가장 높은 자리를 구하는 성벽(性癖)이 있어서 이것들은 때때로 악한 억측들과 정신적 괴로움의 결과를 초래한다. 성만찬 예식에 앞서 행하는 의식은 이 오해들을 제거하고 인간에게서 이기심을 쫓아내며 자고의 버팀에서 내려와 그의 형제를 섬기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이끄는 의식이다.”(소망, 650)

더욱 거룩한 교제와 사명을 위해 준비됨

11. 더 거룩한 교제,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기에 앞서 우리는 반드시 누구를 통하여 심령의 살핌과 새로운 은혜의 일깨움이 필요한가?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거룩한 순찰자가 이 때에 하늘에서 내려와 이 의식이 심령을 살피는 의식, 죄를 뉘우치는 의식, 그리고 사죄의 복된 보증의 의식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참석하신다. 당신의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이기심이라는 수로를 통하여 흘러 내려온 사상의 조류를 변화시키시려고 그곳에 계신다. 거룩한 성령께서는 저희 주님의 본을 따르려는 감각을 활발하게 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주의 겸손을 기억할 때에 사상과 사상은 연결되며 일련(一連)의 추억들, 하나님의 크신 인자(仁慈)와 지상 친구들의 호의와 친절이 떠오른다. 축복을 잊어버리고 자비를 남용하고 친절을 등한히 여긴 일들이 마음에 떠오른다. 사랑이란 귀중한 나무를 밀어낸 쓴 뿌리들이 나타난다. 품성의 결함과 의무에 대한 태만과 하나님께 감사치 않음과 동포들을 냉정하게 대한 일들이 기억에 떠오른다. 죄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빛으로 나타나 보인다. 우리들의 사상은 자기도취가 아니요, 엄격한 자책과 겸손이다. 심령은 활기를 얻어 이간을 일으킨 모든 장벽을 헐어 버린다. 악한 생각과 악한 말은 제거된다.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부드럽게 하는 은혜가 심령에 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들을 다 같이 복스러운 연합으로 이끈다.”(소망, 650-651)

12.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겸손과 봉사의 정신으로 세족 예식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성만찬 예식의 교제를 통하여 얼마나 더 깊고 거룩한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롬 12:10, 16; 고전 9:19


이와 같이 준비 예식에 대한 교훈을 배우게 될 때에 더욱 높은 영적 생애에 대한 소망이 불붙게 된다. 이 소망에 대하여 거룩한 증인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영혼은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의의 태양 광선은 마음의 밀실과 심령의 성전에 가득 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바라본다.

이 예식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결코 단순한 예식이 될 수 없다. 이 예식의 계속적인 교훈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는 말씀이 될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하늘 보고(寶庫)의 영원한 부를 당신과 함께 상속받게 하시고자 당신은 어떤 비천한 봉사라도 하실 수 있다는 증거를 주셨다. 같은 의식을 행함으로 그분의 제자들은 같은 방법으로 저희 동포들을 섬길 것을 스스로 서약한다. 이 예식이 바르게 거행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도우며 서로 축복하는 거룩한 교제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저희 생애를 무아적 봉사 사업에 바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봉사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일터는 주님이 가지셨던 그것처럼 넓다. 세계는 우리의 봉사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무식한 자들은 각처에 있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성만찬에 참여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봉사하기 위하여 나아갈 것이다.”(소망, 651)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유다의 발을 씻기셨지만 그의 마음은 예수께 굴복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정결하게 되지 않았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께 복종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분의 존엄성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하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무한히 높으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 예식에 은혜와 의의를 부여하셨다. 그리스도처럼 높임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몸을 굽혀 가장 낮은 의무를 감당하셨다. 육적인 마음에 머무르며 자신을 섬김으로 굳어지는 그 이기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겸손의 모본을 보이셨다. 그분은 이 위대한 주제를 사람의 수중에 남겨 두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셔서 하나님과 동등이신 그분이 몸소 그의 제자들에게 종으로 행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가장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서로 다투고 있는 반면에 모든 사람이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며 영광의 천사들도 섬기기를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분이 허리를 굽혀 자기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분은 당신을 팔 자의 발을 씻기셨다.”(소망,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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