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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9분


제10과


“네 왕이 임하나니”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569-579; 마태복음 21:1-11; 마가복음 11:1-10; 누가복음 19:29-44; 요한복음 12:12-19


기억절 :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1-42)


서론 :  이스라엘은 은총받은 백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전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다. 그것은 ‘터가 높고 아름다’웠으며 ‘온 세계’의 ‘즐거’움 이었다(시 48:2). 아버지가 그의 외아들을 품듯이 천년 이상이나 수호자 그리스도께서 보호하고 부드럽게 사랑하신 기록이 거기 있었다. 이 성전에서 선지자들은 그들의 엄숙한 경고를 발하였다. 그곳에서 예배자들의 기도와 합하여 향연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동안 불타는 향로를 흔들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는 짐승의 피가 넘쳐흘렀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시은소 위에 나타내셨다. 그곳에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렸으며 상징과 예식의 화려한 의식이 각 시대를 통하여 계속해 내려왔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종말을 고하여야만 하였다.”(소망, 576)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1. 다윗의 보좌의 후계자로 약속된 이스라엘의 왕의 오심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려고 하고 있었는가?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오백 년 전에 선지자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왕의 오심을 이와 같이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이제 성취될 것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왕의 영광을 거절해 오셨던 분께서 이제 다윗의 보좌의 약속된 후계자로서 예루살렘에 임하신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것은 주일 중 첫째 날이었다. 그분을 보려고 베다니에 모였던 군중들이 이제 그가 받으실 환영을 보려는 열망으로 그분과 동행하였다. 많은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도성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는데 이들도 예수님을 수행하고 있던 군중들과 합세하였다. 자연계도 모두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들은 신록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그 꽃들은 대기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과 기쁨이 백성들에게 활력을 주었다. 새 왕국에 대한 희망이 다시 솟아나고 있었다.”(소망, 569)

2.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임하실 영광스러운 순간까지도 태어나실 때처럼 어떤 겸손함을 지니실 것인가? 그러나 이 일에서도 그분의 신성은 어떻게 드러났는가?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눅 19:30-32)


예루살렘에 타고 갈 목적으로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어 그에게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하셨다. 구주께서는 태어나실 때, 다른 사람들의 환대에 의존하셨다. 그가 누우신 구유는 빌린 안식처였다. 들에 있는 수많은 가축이 다 그분의 것이지만 이제 그분께서는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타실 짐승을 다른 사람의 친절에 의존하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을 이 심부름을 위하여 보내시면서 주신 상세한 지시 가운데서까지도 그분의 신성이 다시 드러났다. 그분이 예언하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는 간청이 곧 수락되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타본 일이 없는 나귀 새끼를 쓰시기로 결정하셨다. 열광적인 즐거움으로 제자들은 저희 옷을 짐승 위에 펴고 주님을 그 위에 앉혔다. 지금까지 예수께서는 언제나 도보로 여행하셨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지금 짐승을 타고 가기로 선택하시자 제자들은 처음에는 놀랐다. 그러나 그분께서 도성에 들어가셔서 친히 왕임을 선언하시고 왕권을 주장하시리라는 즐거운 생각에서 그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빛났다. 심부름을 가면서 그들은 저희의 열렬한 기대를 예수님의 친구들에게 전달하였으며 따라서 흥분은 널리 원근에 퍼졌고 백성들의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소망, 569-570)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3. 예수님께서 한 번도 타신 적이 없는 나귀를 타시고, 한 번도 허락하신 적이 없는 왕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받아들이신 이유는 왜인가? 백성들은 어떤 희망으로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는가?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8-9)


그리스도께서는 왕의 입성에 관한 유대인의 풍습을 따르고 계셨다. 그분이 타신 짐승은 이스라엘 왕들이 탄 것이었던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메시야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시리라고 예언되었다. 그분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자마자 승리의 함성은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 군중들은 그분을 저희 왕 메시야로서 환호하였다. 예수께서는 지금, 전에는 결코 허락하신 적이 없으셨던 충성의 맹세를 받으셨다. 제자들은 이것을 그분이 보좌에 오르심으로써 그들의 즐거운 희망은 실현될 것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군중들은 해방될 시간이 이르렀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가고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독립 국가가 되는 것을 상상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 흥분에 도취되었고 서로 다투어서 그분께 충성을 바쳤다. 그들은 화려한 행렬과 웅장함으로 장식할 수는 없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그분께 경배하였다. 그들은 값진 선물을 그분께 선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가시는 길에 저희 겉옷을 융단처럼 펴 놓았고 또한 잎이 무성한 감람나무와 종려나무의 가지를 큰길에 깔아 놓았다. 그들은 대형 깃발을 가지고 승리의 행렬을 인도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계의 승리의 상징인 쭉쭉 뻗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높이 흔들면서 큰 환호성과 호산나를 외쳤다.”(소망, 570)

4. 예수님의 입성 행렬은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자들로부터 어떤 질문과 관심을 받았는가? 관원들은 어떤 우려를 나타냈는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10-11)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요 12:19)


그들이 행진하자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행렬에 참가하려고 달려나온 자들로 말미암아 군중은 계속 불어났다. 구경꾼들은 계속적으로 군중과 섞이면서 이분이 누구시냐, 이 소동은 모두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었고, 그분이 예루살렘에 가시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분이 지금까지 당신을 보좌에 앉히려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켰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분이 바로 그분임을 알자 그들은 매우 놀랐다.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고 선언하셨던 분에게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들은 의아해하였다.

저희의 질문들은 승리의 함성으로 묵살되었다. 이 환성은 열광적인 군중으로 말미암아 반복되었다. 그것은 백성들에 의해 멀리 전달되었으며 주위의 산과 골짜기들로부터 메아리쳐 울려 왔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온 무리들이 그 행렬과 합류하였다. 유월절을 지키려고 모인 군중 가운데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려고 나왔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성가를 부르면서 그분을 환영하였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저녁 제사를 위한 나팔을 불었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관원들은 우려하면서 서로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라고 말하였다.”(소망, 570-571)

지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감동적인 승리의 행렬

5. 예수님께서는 이 입성이 곧 당신을 죽음의 십자가로 몰고 갈 것을 아셨으나, 왜 승리의 환호와 함성과 찬양으로 영광 받으심을 거절하지 않으셨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눅 24:17-18)


… 이것은 그분을 십자가로 몰고 갈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신을 구속주로서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그분의 목적하신 바였다. 그분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의 최후를 장식할 그 희생에 주의를 불러일으키기를 열망하셨다. …

승리의 입성과 관계된 사건들은 각 사람의 화제가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을 소개할 것이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련시켜 회상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예언을 연구하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나라에서 신앙으로 들어오는 개심자들이 증가될 것이었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애에 단 한 번뿐인 이 승리적인 장면에서 하늘 천사들의 호위 가운데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나팔로 선포를 받으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러한 시위 행렬은 그분의 사명의 목적과 그분의 생애를 주관했던 법칙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받아들이셨던 겸비의 신분에 진실하셨다. 세상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칠 때까지 그분은 인류의 짐을 지셔야만 하였다.”(소망, 571)

6. 예수님의 승리의 행렬에는 세상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어떤 특별하고 놀라운 전리품들이 그분의 입성에 영광과 감동을 더하고 있었는가?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막 11:8)


일찍이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승리의 행렬을 본 일은 결코 없었다. 그것은 세상의 유명한 정복자들의 행렬과 같지 않았다. 왕다운 용맹의 전리품인 신음하는 포로들의 대열도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구주의 주위에는 죄 많은 인류를 위하여 그분께서 사랑으로 행한 수고의 영광스러운 전리품들이 있었다. 그곳에는 예수께서 사단의 권세로부터 건져 주심으로 그 구원을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포로들이 있었다. 그분이 눈을 뜨게 한 소경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분이 혀를 풀어 주신 벙어리가 가장 큰 소리로 ‘호산나’를 불렀다. 그분이 고쳐주신 절름발이가 기쁨에 넘쳐서 제일 적극적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구주 앞에서 흔들었다. 과부와 고아들은 그들에게 베푸신 그분의 자비하신 일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었다. 깨끗함을 받은 문둥병자들이 그들의 깨끗한 옷을 그분의 길에 펴고 영광의 왕으로서의 예수께 만세를 불렀다. 무리 중에는 그분의 음성으로 죽음의 잠에서 깬 자들도 있었다. 그의 몸이 무덤에서 썩고 있었던 나사로는 지금 건장한 남자의 활력으로 기뻐하며 구주께서 타신 짐승을 몰고 있었다.”(소망, 572)

승리의 입성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셨음 

7. 많은 바리새인들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분께 어떤 요구를 하고 나섰는가? 그들의 요구는 왜 거절될 수밖에 없었는가?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39-40)


많은 바리새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질투와 악의에 불타올라 민중들의 감정의 흐름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을 행사하여 백성을 침묵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간청과 위협은 열심을 더욱 증가시킬 뿐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민중들이 그들의 수의 힘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할까 봐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군중들을 헤치고 구주께서 계시는 곳에 나아가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는 책망과 위협의 말을 하였다. 이와 같이 시끄러운 시위 운동은 불법적인 것으로 당국에서 허락할 수 없다고 그들은 선언하였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는 예수님의 대답을 들었을 때 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승리의 장면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선지자로 말미암아 예언된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목적을 저지하기에는 무력하였다. 만일 사람들이 그분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실패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생명 없는 돌들에게 음성을 주셔서 돌들의 찬양의 환호성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하게 하셨을 것이다. 침묵 당한 바리새인들이 뒤로 물러가자 스가랴의 예언이 많은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소망, 572-575)

8. 산과 골짜기를 울리던 영광과 찬양의 입성 행렬은 어디서 왜 갑자기 멈춰졌으며, 황금빛으로 찬란한 성전의 영광에 군중들은 넋을 잃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장면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는가? 군중들은 왜 놀라고 실망하게 되었는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행렬이 도성으로 내려가는 고개에 도달했을 때 예수께서 발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모든 무리들도 발을 멈추었다. 그들 앞에는 기울고 있는 태양의 광선을 담뿍 받아 찬란히 빛나는 예루살렘이 보였다. 모든 사람의 눈이 성전에 끌렸다. 성전은 장엄하고 웅대한 모습으로 다른 모든 것보다 높이 치솟아 있어, 마치 백성들을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도하려고 하늘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다. 성전은 오랫동안 유대 민족의 자랑이며 영광이었다. 로마인들 역시 성전의 장대함을 그들 스스로 자랑하고 있었다. 로마가 임명한 왕이 유대인과 힘을 합쳐 성전을 재건하고 단장하였다. 로마 황제도 선물을 보내어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성전은 그 견고함, 화려함, 그리고 장대함으로 세계의 경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서산에 기울어지는 해는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그 찬란한 빛깔은 성전 벽의 순백색 대리석을 비추었으며, 또한 금으로 입힌 성전 기둥에서 번쩍거렸다. …

예수께서 이 광경을 응시하시자 수 많은 군중들은 외치던 일을 멈추고 갑자기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는다. 그들 스스로 느낀 그 감탄을 구주의 얼굴에서도 찾으려는 기대로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분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은 감탄 대신에 슬픔의 구름으로 덮인 얼굴을 본다. 그분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그분의 몸은 큰 폭풍 앞에 선 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한편 마치 깊은 상처를 받은 마음에서 나오는 듯한, 그분의 떨리는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들은 매우 놀라고 실망하였다. 천사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이 고민의 눈물을 흘리는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승리의 함성을 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분이 통치하시기를 기쁨으로 희망하면서 영광스러운 도성으로 그분을 호위하던 기쁨의 무리들도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재난을 동정하는 경건한 슬픔에서였다. 그러나 이 갑작스런 슬픔은 어떤 장엄한 승리의 합창에 삽입된 한 통곡의 곡조와도 같았다.”(소망, 575-576)

운명지어진 도성, 예루살렘

9. 예수님께서는 이 기쁨의 장면에서 비탄의 울음소리와 함께 고뇌의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광스러운 거룩한 도성에서 어떤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었는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1-42)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던 그 기쁨의 장면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조용한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억누를 수 없는 고뇌의 눈물을 흘리시고 신음하고 계셨다. 군중들은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들의 만세 소리는 잠잠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에 동정하여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의 눈물은 자신의 고통을 예감함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바로 그분 앞에는 겟세마네가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그곳에서 큰 흑암의 공포가 그분을 뒤덮을 것이었다. 양의 문도 또한 거기서 보였는데, 여러 세기 동안 이 문을 통하여 희생 제물이 된 짐승들이 들어갔다. 이 문이 크신 원형 예수님을 위하여 곧 열릴 것이었는데 이 모든 희생 제물들은 세상 죄를 위한 그분의 희생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까이에 갈바리가 있었는데, 그곳은 그분께 다가오고 있는 고민의 장면이 전개될 곳이었다. 그러나 구속주께서 마음의 고통으로 우시고 신음하는 것은 당신이 받으실 참혹한 죽음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분의 슬픔은 이기적인 슬픔이 아니었다. 자기희생적인 그분의 영혼은 자신이 받을 고통에 대한 생각으로 위협받지 않았다. 예수님의 마음을 찢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조소하고 그분의 능력 있는 이적을 보고서도 확신하기를 거절하고 그분의 생명을 취하려는 예루살렘의 광경이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그의 구속자를 거절함으로써 어떤 상태에 있는지와, 만일 예루살렘이 그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당신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을 보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려고 오셨는데 어찌 예루살렘을 버리실 수 있으셨겠는가?”(소망, 576)

10. 예루살렘이 멸망의 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주어진 선물과 특권에 유의했더라면 예루살렘은 어떤 도성이 되었을 것인가?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 3:9-11)


예수께서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축복하기 위하여 여러 번 드신 그 손을 드시고, 운명지어진 도성을 향하여 흔드시면서 슬픔에 잠겨 비탄에 잠긴 어조로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 라고 부르짖으셨다. 구주께서는 여기서 말씀을 멈추시고 만일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원하셨던 선물인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떤 형편 가운데 처하게 되었을 것인지를 말씀하지 않으신 채 남겨 놓으셨다. 만일 예루살렘이 그의 특권이 무엇임을 알고 하늘에서 보내신 빛에 주의했었더라면, 그 도성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힘으로 속박되지 아니하고 열국의 여왕으로서 번영을 자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문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서 있지 않았을 것이며 성벽에는 로마의 깃발이 휘날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일 예루살렘이 구속주를 받아들였었더라면 축복받았을 뻔했던 그 영광스러운 운명이 하나님의 아들 앞에 나타났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이 당신을 통하여 무서운 질병을 치료받고 속박에서 해방되며 강력한 지상의 수도로 세워졌을 것을 보셨다. 예루살렘 성벽으로부터 평화의 비둘기가 모든 민족에게 날아갔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세상의 영광의 면류관이 되었을 것이다.”(소망, 576-577)

예루살렘을 위한 최후통첩의 날

1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속주로 오셨으나 왜 당신의 백성들을 멸망의 운명에서 구원하실 수 없으셨는가? 그분께서 고민 가운데서 우신 것은 예루살렘에 닥칠 어떤 무서운 장면들 때문이었는가?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3-44)

마 24:1-2; 애 4:10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자녀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거만, 위선, 증오, 그리고 악의 때문에 그분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지 못하셨다. 예수께서는 운명지어진 도성에 임할 무서운 징벌을 아셨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과 포위된 주민들이 굶주려 죽는 것을 보셨으며, 어머니들은 저희 자녀들의 죽은 시체를 먹으며 부모와 자녀들은 마지막 한입의 음식까지도 서로 빼앗아 먹는 등 타고난 애정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굶주림의 고통 때문에 깨어지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당신의 구원을 거절한데서 확실히 나타난 유대인들의 완고함이 그들로 하여금 침입하는 군대에게도 역시 항복하기를 거절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보셨다. 그분은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실 갈바리 언덕에 삼림의 나무들처럼 빽빽하게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그 처참한 거민들이 고문대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며, 아름다운 궁전은 파괴되고 성전은 황폐되며 성전의 거대한 벽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고 마치 그 도성이 밭과 같이 파헤쳐질 것을 보셨다. 이 무서운 장면을 보시고 구주께서 고민하시며 우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소망, 577)

12. 예루살렘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 이제 막 서산에 넘어가려 할 그때, 아직도 회개하기에 너무 늦지 않은 그 시간에 성령께서는 이 운명의 도성을 위해 제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감동케 하시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셨는가? 도표를 참고하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10-11)


신속히 서산으로 기울고 있는 태양이 하늘에서 자취를 감출 때 예루살렘에 대한 은혜의 날도 끝날 것이었다. 그 행렬이 감람산 고개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아직도 예루살렘이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에 은혜의 천사는 공의와 급히 다가오는 심판에 자리를 내어 주려고 그의 날개를 접고 황금 보좌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의 마음은 아직도 그분의 자비를 조소하고 그분의 경고를 멸시하며 당신의 피로 저희 손을 더럽히려고 하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간청하셨다. 만일 예루살렘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아직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다. 지는 해의 마지막 광선이 성전과 망대와 누각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 어떤 선한 천사가 예루살렘을 구주의 사랑으로 인도하고 그의 멸망의 비운을 돌이키지 않을까? 선지자들을 돌로 쳐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한, 아름다우나 악한 그 도성은 회개하지 않음으로 속박의 사슬로 스스로를 묶고 있었다. 그 도성에 대한 은혜의 날들은 거의 다 지나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에게 말씀하신다. 그날이 다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증언이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증거의 음성이 과거 선지자들의 외침에 응답하면서 높이 울려 퍼졌다. 만일 예루살렘이 그 부르심을 듣는다면, 만일 그의 문으로 들어오고 계시는 구주를 받아들인다면 아직도 그 성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백성들의 큰 무리와 함께 도성에 이르고 계시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의 관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중들을 분산시키기를 바라면서 두려움 가운데 그분을 만나러 나아갔다. 감람산을 내려가려고 할 때에 그 행렬은 관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그들은 떠들썩한 기쁨의 원인을 묻는다. 그들이 ‘이는 누구냐?’라고 질문할 때에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충만하여 이 질문에 대답한다. 그들은 웅변적인 어조로 그리스도께 관한 예언들을 아래와 같이 반복한다.”(소망, 577-578)

그리스도께 관한 예언 도표.png


[상고할 말씀]

하늘의 대주재께서 눈물을 흘리시다니!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마음에 근심하시고 고뇌에 눌리시다니! 그 광경을 보고 온 하늘은 놀랐다. 그 광경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전능하신 분에게 있어서도 죄인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린 결과에서 구원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타내 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내다보시고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 그 같은 속임수에 온 세계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유대인의 큰 죄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교계의 큰 죄는 천지를 다스리는 하나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멸시받고 무시당할 것이다. 죄에 속박되어 사단의 종이 된 무수한 자들이 둘째 사망을 받을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권고(眷顧)하시는 날에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맹목(盲目)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쟁투,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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