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23:37

6. 새 나라의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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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26분


제6과


새 나라의 율법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547-551; 마태복음 20:20-28; 마가복음 10:32-45; 누가복음 18:31-34


기억절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4-45)


서론 :  그는 계속해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정실(情實)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획득하는 것도 아니요 독단적인 증여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품성의 결과이다. 면류관과 보좌는 달성된 상태의 증거이며 이것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아를 극복한 증거이다.”(소망, 549)


제자들에게 감취어진 "말씀"(예언)

1.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예언을 더욱더 명확하게 알려주셨는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2-34)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에 다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다. 예수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의 뜻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평화가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희생당하실 장소를 향해 나아가셨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이상한 느낌과 의심 그리고 공포가 엄습하였다. 구주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그의 주위에 불러 모으시고 전보다 더욱더 명확하게 그가 배반당하여 고통받으실 것을 그들에게 알리셨다.”(소망, 547)

2.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 깨달을 수 없었는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눅 18:31-34)


그들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도처에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 자신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앉으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백배를 얻고 그의 나라에도 참여하리라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그는 열두 제자에게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그의 나라의 높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특별히 약속하지 않았던가? 이제까지 그는 당신에 관하여 예언에 기록된 모든 일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메시야의 통치하시는 영광을 예언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들에 비추어 볼 때 배반당하여 핍박과 죽음에 이르리라는 그의 말씀은 막연하고 희미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어려움이 방해할지라도 그들은 왕국이 곧 건립될 것이라고 믿었다.”(소망, 547-548)

새 나라의 지위에 대한 욕망

3.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 감취어지도록 만들었는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5-37)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를 따른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께 봉사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린 첫째 무리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예수와 같이 있기 위하여 집과 친구를 즐거이 버렸으며 그와 같이 동행하고 담화하였으며 은밀한 가정에서나 공중의 회집 장소에서나 늘 예수와 같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공포심을 진정시키시고 위험 중에서 구원하시고 고통에서 건지시고 슬픔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과 연결될 때까지 인내와 온유로써 그들을 가르치셨었다. 마침내 그들은 열렬한 사랑으로 그들이 그의 나라에서 예수와 가장 가까이 있기를 열망하였다. 가능한 한 모든 기회에 요한은 구주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였고 야고보는 구주와의 가까운 연결로서 영예를 누리고자 갈망하였다.”(소망, 548)

4. 제자들(야고보와 요한)의 욕망과 탐심을 누가 부추겼는가?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0-21)


그들의 어머니도 그리스도의 추종자였으며 물질로써 아낌없이 그리스도를 받들었다. 아들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욕심은 그로 하여금 새 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지위에 그의 아들들을 올려놓으려는 탐심을 품게 하였다. 그는 이러한 요구를 제시하도록 그들을 부추겼다.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예수께 나와 마음에 있는 소원을 허락해 주실 것을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셨다.

이에 어머니는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옵소서’라고 대답하였다.”(소망, 548)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까이 설 사람

5.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세상적 욕망으로부터 정결케 하시고자 그들의 요구를 누구의 권한으로 돌리셨는가?

…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


예수께서는 동료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구하는 그들의 이기심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부드럽게 대하셨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당신께 대한 그들의 애정의 깊이를 아셨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히 인간의 애정만은 아니었다. 비록 이 사랑이 인간이란 통로를 통하여 세속적인 요소로 더러워졌지만 그것은 예수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샘에서 넘쳐 나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책망하지 않으시고 깊게 하시고 정결케 하실 것이었다. …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을 침례를 받으려니와’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수 앞에는 보좌 대신에 십자가가 있을 것인데, 그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두 악인이 같이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과 같이 고통을 나누어야 했으며 야고보는 형제들 중에 첫 번으로 칼에 죽을 것이었고 요한은 고통과 비난과 핍박을 형제들보다 가장 오래 받을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정실(情實)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획득하는 것도 아니요 독단적인 증여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품성의 결과이다. 면류관과 보좌는 달성된 상태의 증거이며 이것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아를 극복한 증거이다.”(소망, 548-549)

6.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분의 가장 가까이 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인가? 그들의 품성은 어디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까이 설 사람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 즉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고전 13:4, 5)하는 사랑, 마치 우리 주님을 움직였듯이 제자들로 하여금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고 생애하게 하고 수고하게 하고 죽기까지 희생하게 한 사랑의 정신을 가장 깊이 체득할 자들이 될 것이다. 이 정신이 바울의 생애 가운데 명백히 나타났다.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말하였다. 죽음 그 자체도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낼 것이었으며 영혼들을 그에게로 모을 것이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빌 1:21, 20) 한다고 말하였다.”(소망, 549)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

7. 다른 열 제자들은 요한과 야고보의 행동을 왜 불쾌하게 여겼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시기와 투쟁을 어떻게 막으셨는가?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1-44)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를 듣고 열 제자들은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야말로 모두가 다 스스로 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그들은 두 제자가 그들보다 앞서 유리하게 보이는 자리를 얻었다고 분노하였다.

가장 크고자 하는 투쟁이 재연될 것처럼 보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분개한 제자들을 불러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나라에서 지위는 권력의 확대를 의미한다. 백성들은 지배 계급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게 마련이었다. 세력과 부와 교육은 지도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군중을 억압하는 많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상류 계급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향락하고 지배하게 되어 있었으며 하류 계급은 복종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종교도 권력에 좌우되었다. 백성은 저희 상전이 지도하는 대로 믿고 행하도록 기대되었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권리는 전적으로 부인되고 있었다.”(소망, 549-550)

8.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과는 다른 어떤 원칙으로 건설되어야 하는가? 그분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어떻게 설명하시고 나타내 보이셨는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고전 9:19)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3)


그리스도께서는 이와는 다른 원칙하에 국가를 건설하고 계셨다. 그는 사람들을 권력으로가 아닌 봉사로 부르셔서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도록 하셨다. 권력과 지위와 재능과 교육은 동료들에게 봉사할 큰 의무를 감당하도록 그 소지자들에게 주어졌다. 가장 미천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까지도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고후 4:15)이라는 말씀이 주어졌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는 제자들 중에서 모든 면에 돌보는 사람이었으며 짐 지는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빈곤을 나누셨고 제자들을 위하여 극기하셨으며 더욱 어려운 곳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저들보다 앞서가시고 미구에 당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지상에서의 그의 사업을 마치실 것이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원칙은 그의 몸된 교회의 교인들이 행하여야 할 원칙이다. 구원의 계획과 기초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예수께서 끼치신 모본을 따르고 그의 양무리의 목자로 일하는 사람이다.”(소망, 55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께 그 근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에게 봉사하신다. …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봉사의 이상(理想)을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으로써 섬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인간의 선두에 서셔야 하였다. 그분의 전 생애는 봉사의 법 아래 있었다.”(행적, 359)

초대 교회에 충만한 정신

9. 그리스도의 나라는 어떤 원칙에 의해 움직여지는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강요하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가?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5)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은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를 판단하거나 그의 의무를 규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신다.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자신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과 합칠 권리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12, 5)는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배하고 충성을 강요하려고 세상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은혜의 사자로서 인류를 향상시키는 일에 사람들과 협력하려고 내려오는 것이다.”(소망, 550-551)

“사람들을 강권하여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일부분이 아니다. 양심을 강요하는 자는 사단이요, 사단의 정신에 자극된 사람들이다. 의에 대한 열심을 구실로 악한 천사들과 동맹한 자들이 때때로 그들의 종교적 이념으로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동료들에게 고통을 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은혜를 나타내시고 언제나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신다. 예수께서는 영혼 내에서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부분적인 봉사를 가납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원하는 봉사, 사랑의 강권 아래서 마음을 기꺼이 굴복시키는 것을 갈망하신다.”(행적, 541)

10. 제자 요한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배운 그분의 나라의 원칙을 깨달은 훗날 교회들에게 편지하면서 어떻게 권면하고 있는가? 실제로 초대교회는 그 원칙으로 충만했었음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요일 3:11)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구주께서 가르치신 원칙과 모든 말씀이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사랑하는 제자의 기억에 간직되었다. 그의 생애의 만년에 요한이 교회들에게 보낸 증언의 요지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1, 16)는 말씀이었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 충만한 정신이었다.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후에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다(행 4:32, 34, 33).”(소망, 551)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께서는 최초의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음 속에 영광의 소망으로 그리스도를 품게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거하여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목격한 후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후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이 상호간에 지녀야 할 그 사랑의 성질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그 후에 요한은 그의 동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제자들이 살아 계신 구주를 선포하려고 나아갈 때에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도들과의 달콤한 교제를 만끽했다. 그들은 친절하고 사려 깊고 극기하였으며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날마다 서로 교제하는 중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사랑을 나타내었다. 이기심 없는 말과 행동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이 사랑을 불붙이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사랑을 신도들은 항상 품고 있어야 하였다. 신도들은 새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고자 전진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매우 가까이 연합하여 그분의 요구를 모두 성취할 능력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와 매우 밀접히 연합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의 생애는 당신의 의로 그들을 의롭게 하실 수 있는 구주의 능력을 높여야 하였다.”(행적, 546-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