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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48분


제12과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음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506-510; 누가복음 17:20-22


기억절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서론 :  그리스도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 또는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설립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간의 마음에 심음으로 이루어진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여기에 인류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 사업을 성취하기 위한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실행하는 것이다.”(소망, 509-510)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명이 실패했음을 암시하기 위해 그분께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셨는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물었다. 침례 요한이 나팔 소리가 온 땅에 울리는 것처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는 기별을 전한 지도 벌써 삼 년 이상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이 바리새인들은 왕국이 설립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를 보지 못하였다. 요한을 거절하고 매 발걸음마다 예수를 반대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암시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표로 세속적 권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바라보지 말라.”(소망, 506)

2.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제자들은 그 말씀을 언제 이해하게 되었으며 어떤 유익을 얻게 되었는가?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눅 17:22)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에는 세속적인 화려함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그대들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사명을 분별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그대들은 비록 인성에 가리웠지만 사람의 생명과 빛이 되는 그분이 그대들과 같이 있는 현재의 기회가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회, 즉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담화하며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기회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까지라도 그들이 지닌 이기심과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신 영적 영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구주의 품성과 사명을 충분히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로 승천하시고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후의 일이었다. 성령의 침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하신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기억에 되살아 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열려서 예언들을 이해하고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이로운 예수의 생애가 저희 눈앞에서 지나갔으며 그들은 꿈에서 깬 사람들과 같았다.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말씀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아담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고 실제적으로 아버지를 떠나 죄 많은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기 전보다 이제 자신들이 더욱 하찮음을 깨달았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과 하신 일을 되풀이해 말하는 데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해해 왔었던 그리스도의 교훈들이 이제 새로운 계시처럼 제자들에게 똑똑히 제시되었다. 성경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책이 되었다.”(소망, 506-507)

예언 연구를 통하여 그분을 잘 알게 됨

3.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을 탐구함으로 그분을 어떻게 새롭게 알게 되었는가? 그들은 과거에 그분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왜 이해할 수 없었는가?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 후에 성령의 깨우치심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았는가?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예언들을 탐구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게 되었고 세상에서 시작하신 사업을 마치시기 위해 승천하신 그분을 잘 알게 되었다. 제자들은 거룩하신 분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인간도 깨달을 수 없는 지식이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왕과 선지자와 의인들이 예언한 예수의 도우심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놀라움으로 예수의 품성과 사업에 대한 예언적 기록을 읽고 또 읽었다. 예언적인 성경 말씀을 그들은 얼마나 희미하게 이해하였었던가! 예수께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걸어 다니신 치욕적인 그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제자들은 그분의 성육신의 신비, 인성과 신성을 겸해서 가지신 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들의 눈은 저희 견해에 붙잡혀서 인성 가운데 계신 신성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은 후에 그들은 예수를 다시 보고 그의 발 앞에 나아가기를 얼마나 사모하였던가!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가 그분께 그들이 깨달을 수 없는 성경 말씀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던가! 그들은 그의 말씀을 얼마나 주의 깊이 들을 것이었던가!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하셨을 때에 그는 무엇을 의미하셨던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열렬히 알기를 원했던가! 제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매우 약했던 것과 그들의 사상이 목표에서 매우 멀리 벗어나서 그 실재를 깨닫지 못한 것을 슬퍼하였다.”(소망, 507-508)

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어떤 길을 예비해주셨었는가?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나, 무엇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가?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 3:1-3)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선언하기 위하여 한 사자를 보내셔서 그의 사명에 대하여 유대 나라와 온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하셨다. 요한이 선언한 놀라운 인물이 삼십 년 이상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은 참으로 그를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 알지 못했다. 제자들은 널리 퍼진 불신이 그들의 견해에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도록 허용했었던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신 그분께서 그 어둠 가운데서 비취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빛이 어디서 온 것인지 깨닫지 못하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실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였다. 제자들은 가끔 예수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왜 우리가 세속적 생각과 제사장들이나 랍비들의 반대가 우리의 감각을 혼란하게 하도록 방임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모세보다 더 크시고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우신 분이 우리를 가르치고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을까 하고 말하였다. 우리의 귀는 얼마나 둔했던가! 우리의 이해력은 얼마나 약했던가!”(소망, 508)

성령의 조명(照明)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음

5. 제자들은 과거의 예수님께 대한 자신들의 불신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분기(奮起)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1-42)


도마는 그리스도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입으신 상처에 그의 손가락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천대받으시고 거절 당하실 때에 그를 부인하였었다. 이와 같은 쓰라린 기억들이 또렷하게 그들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었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옳게 평가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불신을 깨달았을 때 이 모든 일이 이제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분기시켰던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대적하고 공회 앞으로 끌고 가서 옥에 넣었을 때라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행 5:41) 을 기뻐하였다. 제자들은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를 기뻐하였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하였다.”(소망, 508)

6.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시대처럼 오늘날도 진리와 하나님의 사업은 이 시대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오해와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성령의 조명(照明)이 없이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은 사도 시대처럼 오늘날에도 사실이다. 진리와 하나님의 사업은 세상을 사랑하고 타협하는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옳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안일하고 세속적인 영광과 세상과 일치하는 길 가운데서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수고와 비천과 비난의 길에서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엡 6:12)하여 싸우는 전쟁 마당에서 멀리 앞선 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시대처럼 오늘날도 그들은 이 시대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오해와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그 자아 희생적인 정신과 함께 결단코 세속적인 정신과 조화될 수 없다. 이 두 원칙은 서로 반대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소망, 508-509)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마음에 건설됨

7.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라고 믿는 바처럼,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바라고 소망했는가?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그러나 오늘날 종교계에 그들이 믿는 바 대로 세상적인, 현세적인 주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이 세상 나라의 치리자 즉 법정과 병영(兵營), 국회, 궁정, 시장(市場)의 치리자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그분께서 인간의 권위에 의해 집행되는 법령들을 통해서 통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이 세상에 육체로 계시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율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그분을 대신하여 행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왕국의 건설이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집행하시기 위해 현세적인 왕국을 자진해서 세우시고 그들을 당신의 뜻의 해설자와 그의 능력의 대행자로 삼았더라면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세상 보좌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셨다.”(소망, 509)

8.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부패에 대한 어떤 개혁의 시도도 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분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눅 20:2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예수께서 사시던 그 당시의 정부는 부패하고 강압적이었다. 도처에서 토색과 편협과 잔인한 압제 등의 악폐들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주께서는 사회 개혁을 시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국가의 권력 남용을 공격하지도 않으셨고 국가의 원수를 정죄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권력을 장악한 자의 권위와 행정에 간섭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모본되신 예수께서는 세속적인 정치를 멀리하셨다. 예수께서 사람들의 재난에 무관심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구제책이 단순히 인간적인 그리고 외적인 조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제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미쳐야 하고 반드시 마음을 개심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 또는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설립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간의 마음에 심음으로 이루어진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여기에 인류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 사업을 성취하기 위한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실행하는 것이다.”(소망, 509-510)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적 과시를 수반하여 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드러운 영감을 통하여, 성령의 내적 역사(內的役事), 곧 생명되시는 분과의 영혼의 교통을 통하여 오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위대한 능력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에 도달한 인간의 성품 속에 보여진다.”(치료, 36)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진리 위에 세워짐

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어떤 결심으로 일했으며, 영혼들을 죄와 부패로부터 돌이키는 일에 누구와 협력했는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사도 바울은 인구가 조밀하고 부요하고 사악하고 이교(異敎)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습으로 더럽혀진 고린도에서 그의 봉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 2:2). 그 후 바울은 가장 더러운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었던 어떤 자들에게 편지할 때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6:11, 1:4)라고 그는 말할 수 있었다.”(소망, 510)

10. 그리스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의 사업은 어떤 사람들에게 맡겨질 것인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마 16:24; 눅 14:27


그리스도 당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의 사업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인간의 법률의 인정과 지지를 극성스럽게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적 진리 즉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 속에 바울의 경험을 이루어 낼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자들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그렇게 될 때 그들도 바울처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라고 말하였다.”(소망, 510)

“주님께서는 세밀한 사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마음을 사로잡고 확신시키게 될 말들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갖추고 있을 인물들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왕국은 외적인 과시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빛은 이기적 목적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간의 제안이 아닌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름으로써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목사, 497)


[상고할 말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봉사사업에 남녀들을 택하실 때, 그들이 세속적 재산과 학문과 웅변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신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나의 길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겸손하게 걸어가고 있는가? 내가 나의 말을 그들의 입술에 넣어 줄 수 있는가? 그들이 나를 대표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성전에 당신의 성령을 넣어 주실 수 있는 비례만큼 각 사람을 사용할 수 있으시다. 그분께서 가납하실 사업은 당신의 형상을 반영하는 사업이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영원한 원칙에 속한 불후의 특성들을 세상에 제시할 그들의 신임장으로 간직해야 한다.”(치료,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