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1 18:14

4. 초막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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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51분


제4과


초막절에서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447-354; 요한복음 7:1-15, 37-39; 부조와 선지자, 537-542


기억절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서론 :  목마른 영혼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들려오고 있으며, 명절 마지막 날 성전에서 들은 자에게 보다도 더욱 큰 능력으로 우리에게 호소한다. 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열려 있다. 피로하고 목마른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신선한 물이 제공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아직도 외치고 계신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계 22:17; 요 4:14).”(소망, 454)


초막절

1. 유대인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지키는 중요한 세 차례의 절기 중에서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슨 목적으로 지켜졌는가?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성력으로 「세말」-난외주) 수장절을 지키라”(출 34:22)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 16:13-15)


초막절은 일년 중 마지막 모임이었다. 이 때에 백성들이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회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였다.”(소망, 447)

“7월에는 초막절 또는 수확의 절기가 있었다. 이 절기는 과수원과 감람원과 포도원의 산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절기였다. 이 절기는 그 해의 가장 영광스러운 축제였다. 땅은 그 소산물을 증산해 주었고 수확물을 곳간에 거두어들였으며 과실과 기름과 포도즙은 저장되고 처음 익은 열매들이 보관되었으므로 이제 백성들은 그들을 풍성히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모여들었다.”(부조, 540)

2. 칠 일 동안 지켜졌던 초막절이 가진 또 다른 중요한 기념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동시에 표상적인 이 절기는 언제 어떻게 최종적으로 완전히 재현되어 성취될 것인가? 

칠 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레 23:36)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3:42-43)


명절은 칠 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 명절을 경축하기 위하여 팔레스틴 주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저희 가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멀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백성들은 기쁨의 기념품들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빈부 노유 모두 주의 은택으로 연사(年事)에 축복하사 주의 길에 기름이 떨어지게 하신 분에게 감사의 헌물을 가져왔다. 눈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숲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도성은 마치 아름다운 삼림의 모습과 같았다.

이 절기는 추수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명절 동안 오두막이나 또는 푸른 가지로 만든 초막에서 기거하였다. 이 초막들은 길거리나 성전 마당이나 지붕 위에 세워졌다. 예루살렘 주위의 언덕과 골짜기도 역시 이 잎이 무성한 초막으로 점철(點綴)되어서 이 초막들은 백성들로 번잡해 보였다.”(소망, 447-448)

“예수께서 불꽃에 싸여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때에 그분의 은나팔이 울려 퍼졌다. …

우리는 다 같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7일 동안 유리 바다를 향하여 올라갔다. 이때 예수께서 면류관을 가지고 오셔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친히 우리 머리에 씌워 주셨다. 그분은 또 우리에게 금거문고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주셨다.”(초기, 16)

큰 감명과 기쁨을 주는 기념적인 예식

3. 초막절 절기는 왜 다른 절기와는 달리 기쁨의 잔치의 축제가 될 수 있었는가? 칠 일 동안 거룩한 축제로서 어떤 광경들이 깊은 인상을 주었는가?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사 30:29)


예배자들은 거룩한 노래와 감사로 이 명절을 경축하였다. 이 절기의 조금 전에 대속죄일이 있었는데,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자백한 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받았다. 이리하여 기쁨의 잔치를 벌일 길이 준비되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6:1)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소리가 일어나는 한편 호산나의 함성이 뒤섞인 모든 종류의 음악에 합창이 동반되었다. 성전은 모든 사람의 기쁨의 중심이었다. …

밤에는 켜놓은 불빛으로 성전과 그 마당이 찬란하게 빛났다. 음악, 종려나무 가지의 물결, 기뻐서 외치는 호산나라는 부르짖음, 큰 무리를 이룬 백성들, 매달린 등불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성장(盛裝)한 제사장들 그리고 장엄한 예식들이 다 연합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장면을 이루었다.”(소망, 448)

4. 그러나 그 절기 중 가장 큰 감명을 주며, 가장 큰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예식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었는가?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 17:6)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그러나 그 절기 중 가장 큰 감명을 주며, 가장 큰 기쁨을 일으킨 예식은 광야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첫날 동이 틀 무렵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길고 드높게 불면 화답하는 나팔소리와 저희 장막에서 부르짖는 백성들의 즐거운 환호성이 들과 골짜기에 메아리치며 축제일을 환영하였다. 그때에 제사장은 기드론의 흐르는 물에서 한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높이 들고 나팔이 울리는 가운데 음악에 발맞추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넓은 성전 계단을 올라가면서 ‘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시 122:2)라는 노래를 읖조린다.

제사장은 물항아리를 제사장의 뜰의 중심부에 위치한 제단에 둔다. 이곳에는 두 은대야가 있었으며 각각의 대야 곁에는 한 제사장이 서 있었다. 한 항아리의 물은 한쪽 대야에 부어지고 한 항아리의 포도즙은 다른 대야에 부어졌으며 물과 포도즙은 기드론으로 연결된 관을 통하여 사해로 흘러 들어갔다. 이렇게 나타내 보이는 성수(聖水)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반석에서 솟아 나온 샘물을 상징하였다.”(소망, 448-449)

예수님의 형제들이 절기에 참석하도록 그분을 재촉함

5. 예수님께서는 연중 절기인 장막절이 가까웠음에도 왜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하지 않으셨는가? 예수님께서 종교적 회집에 무관심한 표면상 태도에서 그분의 제자들과 친척들은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이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 7:1, 2)


요셉의 아들들이 장막절에 참석하기 위하여 준비할 때 그들은 예수께서 참석할 의향을 나타내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를 근심스럽게 주목하였다.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치신 이후로 예수께서는 거족적 회집에는 참석하지 않으셨다.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과의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시려고 그는 갈릴리에서만 일을 하셨다. 그가 큰 종교적 회집들을 표면상으로 경시하시고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에게 적개심을 나타내게 되자 백성들은 예수에 대하여 어리둥절하였으며 그의 제자들과 친척들까지도 그러하였다. 그는 가르치시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축복받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셨지만, 자신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예배에 무관심하신 것처럼 보였다. 예수께서 세리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섞이시며 랍비의 유전을 무시하시고 안식일에 관한 유전적 요구를 기탄없이 제쳐놓으시는 것 등의 모든 사실은 그를 종교 당국자들과 적대적인 위치에 서게 한 듯했으며, 그것은 많은 의문을 일으켰다.”(소망, 449-450)

6. 예수님의 형제들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인기로 인하여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는가? 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를 강권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가?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3-5)


예수의 형제들은 그가 나라의 대인들과 학자들과 불화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 사람들이 옳은 것이 틀림없으며 예수께서는 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서심으로 과오를 범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결백한 생애를 목격해 왔었다. 그들은 그 제자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였을지라도 그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갈릴리에서의 그의 인기는 그들의 야심을 만족하게 하였으며, 그들은 아직도 그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바로 그분임을 바리새인들로 깨닫게 해줄 그의 권능의 증거를 나타내시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은 자랑스런 만족감을 가지고 그가 만일 메시야라면, 그가 만일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들은 이 일이 아주 걱정스러워서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 가도록 재촉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만일 이 일을 구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말하였다. ‘만일’이란 말이 의심과 불신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그가 비겁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메시야란 것을 안다면 왜 이처럼 그는 이상하게 사양하고 활동하지 않는가? 만약 그가 참으로 그와 같은 권능을 가졌다면 왜 담대히 예루살렘에 가서 그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가? 왜 갈릴리에서 그에 관하여 알려진 바와 같은 놀라운 일을 예루살렘에서는 행하지 않는가? 격리된 지방에 숨어서 무식한 농부와 어부들을 위해서만 그대의 능한 일들을 행할 것이 아니라 수도(首都)로 가서 제사장과 관원들의 지지를 받고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민족을 연합시키라고 그들은 말하였다.”(소망, 450)

세상에 속한 정신과는 연합할 수도, 동행할 수도 없음

7. 예수님의 형제들은 왜 실망했으며, 그분께로부터 왜 돌아섰는가? 예수님의 형제들은 왜 제자가 될 수 없었으며, 그분께서는 저들을 어떻게 분류하셨는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 7:7)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요 15:19)


이 예수의 형제들은 남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자들의 마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기적인 동기로 말하였다. 이 정신은 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이었다. 현세의 보좌를 구하는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 된다고 선언하셨으므로 그들의 감정은 상했다. 그들은 그처럼 많은 제자들이 그를 버릴 때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들은 그의 사업이 나타낸바 그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십자가를 회피하기 위하여 그에게서 돌아섰다.”(소망, 450-451)

“그 형제들은 권위 있는 어조로 그가 가야 될 행로를 지시하였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아를 이기는 그의 제자로 분류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속한 자들로 분류하시면서 그들의 비난을 그들에게 되돌리셨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같은 정신을 가진 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자신들처럼 사랑한다.”(소망, 451)

8. 예수님께서는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백성들에게 나타내셔야만 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요 7:6, 8-10)


예수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안일과 자신의 세력을 부식시킬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의 권세나 영광을 얻을 기회를 엿보지 않으셨다. 세상은 그에게 이와 같은 상급을 제공하지 아니하였다. 이곳은 그의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곳이었다. 그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구속의 큰 계획을 수행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그는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일을 성취시키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외람되게 행하거나 위험 속으로 달려가거나 위기를 재촉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의 사업에 있어서 사건 하나하나마다 지정된 시간이 있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셔야만 하였다. 그는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으며 그의 사업이 그의 죽음을 초래할 것도 아셨지만 때가 되기 전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었다.”(소망, 451)

“… 예수께서는 조용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셨다. 그는 각처에서 도성으로 올라오는 여행자들을 피하기 위하여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하셨다. 만약 예수께서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는 어떤 여행자의 군중과 함께 하셨다면 성안에 들어갈 때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대중의 시위는 관원들로 하여금 그분을 적대시하게 했을 것이었다. 그가 홀로 여행하기를 선택하신 것은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소망, 452)

예수님의 큰 외침

9. 축제가 한창 무르익고 당신에 대한 흥분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는가? 그분의 설교의 유일한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위엄과 권위로써 말씀하셨는가?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요 7:14-15)


축제가 한창 무르익고 당신에 대한 흥분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그는 성전 마당의 대중 앞에 나타나셨다. …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의 주목을 끄는 한 가운데 서서 전에는 아무도 해본 일이 없는 그런 훌륭한 설교를 그들에게 하셨다. 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율법과 제도에 관한 지식, 제사 제도와 선지자의 교훈에 대한 당신의 지식이 제사장과 랍비들의 지식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는 형식주의와 유전의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미래의 생애의 전경이 그의 앞에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본 것처럼 절대적인 권위로 땅의 일과 하늘의 일,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의 말씀은 매우 명료하고 수긍시키는 힘이 있었다. 가버나움에서처럼 백성들은 다시 한번 그의 가르침에 놀랐는데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눅 4:32)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예증들을 사용하셔서 그는 청중들에게 그가 그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하여 오신 그 축복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재난을 경고하셨다. 예수께서는 그가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모든 가능한 증거를 다 주셨으며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저들을 그와 같은 저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면, 그는 동족에게 거절되고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

예수께서 성전 마당에서 가르치셨을 때에 백성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그에게 대하여 가장 분격한 자들까지도 그를 해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 시간 동안에는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소망, 452-453)

10. “명절의 큰 날” 마지막 날에 표상적인 기념예식이 행해질 때, 예수님께서는 그 예식의 실제를 어떻게 소개하셨으며, 자신을 어떤 운명에 내어주셨는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7-38)


예수께서는 ‘명절의 큰 날’ 마지막까지 매일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이날 아침 예수께서는 백성들이 지루한 축제 절기에 지친 것을 보셨다. 그분은 갑자기 성전 마당을 다 울릴 만큼 큰 음성으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처한 형편이 이 호소를 매우 힘있게 하였다. 그들은 성대한 의식과 계속되는 축제의 장면을 다 보았으며 저희의 눈은 빛과 색채로 현혹되었고 저희의 귀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매우 즐겁게 되었지만, 이 모든 의식들 가운데 심령의 결핍을 채워 주거나 쇠하지 않을 영혼의 갈증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 안에서 샘물이 되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수 샘에 나와서 마시라고 그들을 초청하셨다.

그날 아침에 제사장은 광야에서 반석을 친 일을 기념하는 예식을 집행하였었다. 이 반석은 그의 죽으심으로 구원의 산 시내를 열어서 목마른 자에게 흘러가게 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생명수였다. 모인 군중들 앞에서 그는 생명수가 온 세계에 흘러갈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매 맞을 운명에 처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침으로써 사단은 생명의 왕을 멸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매 맞은 반석에서는 생수가 흘러나왔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들의 마음은 이상한 경외심으로 감동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옵소서’(요 4:15)라고 부르짖게 되었다.”(소망, 453-454)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는 영혼의 필요를 아셨다. 허식과 부와 명예는 심령을 만족시킬 수 없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올 것이라’. 빈부 귀천 누구를 막론하고 다 환영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마음에 무거운 짐 진 자를 구원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낙담하는 자에게 희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좌절된 희망으로 인해 슬퍼하는 자였으며 많은 사람들은 남모르는 슬픔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칭찬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었을 때 저들은 저희의 갈증을 풀어 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에 도달하려고 노력한 자신들을 발견하였다. 즐거운 장면의 광채 속에 서 있으면서도 그들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슬프기만 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 하는 돌연한 외침이 슬픈 명상에 잠긴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으며 연달아 들리는 소리는 그들의 심령에 새로운 희망을 불붙여 놓았다. 성령께서는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선물의 제공을 저들이 깨달아 알 때까지 그들 앞에 그 상징을 제시하셨다.”(소망,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