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2 20:04

8. 호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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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호수의 밤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377-382 ; 마태복음 14:22-33; 마가복음 6:45-52; 요한복음 6:14-21


기억절 :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 14:31-32)


서론 :  하나님께 끊임없이 의지할 필요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시험에 지고 말것이다. 우리는 지금은 우리의 발이 안전하여 결코 동요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안다. 아무것도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단은 유전적이거나 계발된 품성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필요나 결함에 눈이 멀도록 계획하고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확고부동하게 예수를 바라봄으로써만 우리는 안전하게 행할 수 있다.”(소망, 382)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함

1. 보리떡의 이적을 통하여 군중들은 어떤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백성들의 확신은 어떤 소망으로 점점 부풀어 올랐는가?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 6:14)


봄날 저녁 황혼에 사람들은 풀이 많은 평지에 앉아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식물을 먹었다. 그날 그들이 들은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그들에게 들렸었다. 그들이 목도한 병고치는 이적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리떡의 이적은 그 큰 군중의 각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 이적이 주는 유익을 받았다.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었다. 이제 그들을 먹인 이 사람은 모세가 예언한 그 사람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어떤 인간의 능력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몇 천 명이나 되는 배고픈 무리를 배불리 먹일 만한 양식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였다.

종일토록 확신은 더욱 강하여졌다. 그 최고의 행위는 오래 기다리던 구원자가 그들 사이에 계시다는 보증이었다. 백성들의 소망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분이야말로 유대를 지상의 낙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드실 바로 그분이시다. 그는 온갖 소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그는 증오하는 로마의 세력을 부술 수 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국가들을 정복하여 오랫동안 추구하여 왔던 권세를 이스라엘에게 돌릴 수 있다.”(소망, 377)

2. 군중들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께서 존경을 얻고자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이제 그분을 어떻게 강제로 추대하려고 했는가? 이 선동에 누구도 합세했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요 6:15)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당장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주의를 이끄시거나 존경을 얻고자 조금도 노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본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는 제사장들이나 관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예수께서 결코 다윗의 보좌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들은 의논한 결과 예수를 강제로 모셔 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언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다윗의 보좌를 물려받을 정당한 분이라고 선동하는 데 있어서 무리들과 합세한다. 예수께서 이런 명예를 거절하시는 이유는 그가 겸손하시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백성들로 저희 구원자를 높이도록 하자. 거만한 제사장과 관원들로 하나님의 권위를 입으신 분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게 하자.”(소망, 377-378)

군중을 해산시킴

3.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이 계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을 내다보셨으므로, 그들의 계획을 어떻게 무산시키고자 하셨는가?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마 14:22)


예수를 왕위에 추대하려는 노력에 폭력과 폭동이 뒤따를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영적 왕국의 사업은 방해를 받을 것이다. 이 운동은 지체 없이 저지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당신이 백성들을 해산시키는 동안 배를 타고 즉시 가버나움에 돌아가라고 명령하신다. …

예수께서는 군중에게 해산을 명령하셨다. 예수의 태도가 매우 단호하였으므로 그들은 감히 불순종하지 못하였다. 찬송과 칭찬의 말이 그들의 입술에서 사라졌다. 예수를 붙잡으려고 막 나서다가 그들의 발걸음은 멈춰졌고 기쁘고 열성적인 표정이 그들의 용모에서 사라졌다. 그 무리 가운데는 심지가 굳고 결심이 굳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왕자다운 예수의 태도와 몇 마디의 조용한 명령은 소동을 평정하게 하고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모든 지상의 권세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깨닫고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복종하였다.”(소망, 378-379)

4.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해산시키시고 홀로 어디로 가셨는가? 제자들은 왜 즉시 배를 타고 건너편(가버나움)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마지못해 따랐는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막 6:46)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기가 이번처럼 불가능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제자들은 예수를 왕위에 앉히려는 대중 운동을 오랫동안 원해 왔었다. 이 모든 열정이 허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니 제자들은 견딜 수가 없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여든 군중들은 새 선지자를 보기를 갈망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이 시기가 저희 사랑하는 선생을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히는 데 황금같이 귀한 기회처럼 보였다. 이 새로운 야심에 불타는 그들에게 있어서 저희만 떠나가고 예수를 홀로 그 황량한 해변에 남겨 두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그 계획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전에 결코 취하지 않으셨던 위엄으로써 말씀하셨다. 그들은 더 이상 반대할지라도 소용이 없는 것을 알고 잠잠히 바다를 향하여 돌아섰다.”(소망, 378)

제자들이 불평과 불신으로 영적 흑암에 빠짐

5. 예수님께서는 따로 산에서 누구를 위해서 왜 기도하셨는가?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장차 격렬한 시험의 때에 그분의 왕국에 대한 일반적인 기만 위에 세워진 관념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어떻게 되실 것을 아셨는가?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예수께서는 홀로 남게 되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서는 여러 시간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셨다. 이 기도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단이 사람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사명의 거룩한 본질을 그들에게 드러낼 능력을 얻기 위하여 구하셨다. 구주께서는 지상에서 봉사하실 기한이 거의 끝난 것과 당신을 구주로 영접할 사람이 매우 드물 것을 아셨다. 괴롭고 투쟁하는 심령으로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들은 격심한 시험을 받을 것이었다. 일반적 기만 위에 기초를 둔 오랫동안 품어 온 저희의 소망은 매우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모양으로 실망을 당할 것이었다.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에 오르기는커녕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그들은 목도할 것이었다. 사실은 이것이 예수의 참된 대관식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식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희가 시험이라고 인정하기가 곤난한 격렬한 시험이 닥칠 것이었다. 지력을 깨우치고 이해력을 넓혀 주는 성령이 아니면 제자들의 믿음은 타락할 것이었다. 예수의 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관념이 세상의 세력 부식과 명예에 몹시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예수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짐이 무거웠으므로 그는 쓰라린 고뇌와 눈물로써 탄원하셨던 것이다.”(소망, 379)

6. 제자들은 즉시 배를 타고 떠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왜 지체했는가? 그들의 불만스러운 마음은 불신으로 발전하여 결국 어떤 형편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요 6:64)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제자들은 예수가 분부하신 대로 즉시로 출범하지 아니하였다. … 그들은 예수를 저희의 구주로 시인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를 뒤에 두고 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는 이유로 불평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명령에 그토록 쉽게 굴복한 자신들을 꾸짖었다. 그들이 더욱 강청하였더라면 목적을 성취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불신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다. 명예욕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저희가 예수께서 받으셔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만큼 높임을 받는 것을 보기를 몹시 원하였다. 능력 있는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선생과 함께 있으면서도 속이는 자들이라는 비방을 받는 것은 제자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그들은 과연 항상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결코 왕으로서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실 것인가?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지신 분께서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나타내심으로써 왜 그들이 가는 길을 좀 더 수월하게 하지 않으셨는가? 왜 그는 침례 요한을 참혹한 죽음에서 건지지 않으셨던가? 이와 같이 억측하다가 마침내 제자들은 심한 영적 흑암 속에 빠지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가 과연 사기꾼은 아닐까 하고 그들은 의심하였다.”(소망, 379-380)

격렬한 태풍을 만남

7. 제자들은 이 영광스러웠던 이적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주셨던 어떤 교훈에 유의했어야만 했는가? 그들은 의심과 불신의 시험을 자초함으로 곧 어떤 위기를 맞게 되었는가?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요 6:16-18)


제자들은 그날 그리스도의 기이하신 행적을 목도하였다. 마치 하늘이 땅에 내려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 귀하고 영광스러운 날에 대한 기억이 그들을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 차게 했어야 했다. 만일 그들이 마음에 가득한 이 일들에 대하여 피차에 이야기하였더라면 결코 시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이 그들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유의 되지 않았다. 이 때는 제자들이 큰 축복을 받은 시기였으나 그들은 축복받은 것을 다 잊어버렸다. 그들은 요동하는 물 가운데 빠져 있었다. …

격렬한 태풍이 갑자기 제자들을 엄습하였으나 그들은 그 태풍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갑작스런 기상의 변화였다. 왜냐하면 그날은 매우 청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강풍이 그들을 때릴 때 그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불만도 불신도 안타까움도 다 잊어버렸다. 각 사람은 모두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힘썼다. 벳새다에서 제자들이 예수와 만나기로 예정한 지점까지는 해상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아니하였다. 보통 일기라면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저희가 도착하려는 지점에서 자꾸만 멀리 떠밀려가고 있었다. 밤 사경까지 그들은 힘써 노를 저었다. 그러나 지쳐버린 지금,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노젓기를 단념하고 말았다. 저들은 폭풍과 암흑의 바다 가운데서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또 저들은 선생이 함께 계셨으면 하고 갈망하였다.”(소망, 380-381)

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바다를 여행하는 처음부터 어둡고 캄캄한 가운데서 폭풍과 싸우며 사경을 헤매는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분의 구원의 손길은 언제 이르렀으며, 왜 즉시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셨는가?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마 14:24)


예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 감찰하시는 자 예수께서는 해안에서 겁에 질려 태풍과 싸우고 있는 그들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일순간도 당신의 제자들을 잊지 않으셨다. 예수의 눈은 깊은 우수를 띄시고 폭풍에 시달리는 귀한 짐을 실은 배를 좇으셨으니 이는 이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부드러운 사랑으로 그의 자녀를 보살피는 것처럼 긍휼이 많으신 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지켜보셨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고 거룩하지 못한 야심이 가라앉고 겸손히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들은 구조를 받았다.”(소망, 381)

끝까지 바라보고 끊임없이 의지하라

9. 베드로는 이제 죽는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께 어떤 요청을 했는가? 베드로는 어떻게 물 위를 걸었으며, 어떻게 물속으로 빠져갔는가? 단 한 번의 불신과 자고심은 얼마나 큰 모험이며, 자신을 어떤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가?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마 14:28-30)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8-20)


베드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안심하고 걸어갔다. 그러나 자만하는 마음이 생겨 배 위에 있는 자기 동료들을 잠시 뒤돌아다 보고 그는 그의 눈을 예수에게서 돌이키게 되었다. 바람이 맹렬히 불어 닥쳤다. 파도가 높이 솟아 베드로와 예수 사이로 직접 밀쳐 왔다. 베드로는 겁이 났다. 잠깐 동안 그리스도가 베드로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의 믿음은 무너졌다. 그는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물결이 그를 삼키려 할 때에 베드로는 그의 눈을 성난 물결에서 돌이켜 위를 쳐다보고 예수께 고정시키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즉시 내민 손을 붙잡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구주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서 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제 굴복하여 말이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자랑할 이유가 없었으니 이는 불신과 자고심으로 말미암아 자칫하면 그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눈을 예수에게서 돌이켰을 때에 그의 발디딤은 허물어지고 파도 속으로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소망, 381-382)

10. 우리는 베드로의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의 믿음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깨달아야 하며, 어떻게 함으로 가능한가?

…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 14:30-3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품성을 아셨다. 그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격심한 시험을 당할 것인지를 아셨다. 바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의 연약함을 보이기를 원하셨다. 곧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만 그가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시험의 폭풍 가운데서 베드로는 자신을 전혀 믿지 아니하고 구주께 의지할 때에만 안전하게 행할 수 있었다. 베드로가 약하였던 것은 자신을 강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식별할 때까지는 그리스도께 의지할 필요를 깨달을 수 없었다. 만일 베드로가 바다에서 있었던 경험을 통하여 예수께서 가르치고자 하셨던 교훈을 배웠었더라면 큰 시험이 닥쳐왔을 때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하나님께 끊임없이 의지할 필요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시험에 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지금은 우리의 발이 안전하여 결코 동요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안다. 아무것도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단은 유전적이거나 계발된 품성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필요나 결함에 눈이 멀도록 계획하고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확고부동하게 예수를 바라봄으로써만 우리는 안전하게 행할 수 있다.”(소망, 382)


[상고할 말씀]

곤경이 닥쳐올 때 베드로와 같이 될 때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우리의 눈을 구주께 고정시키는 대신에 파도를 쳐다본다. 우리의 발걸음은 미끄러지고 교만한 물결은 영혼을 뒤덮는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께 오라고 명령하시고 그를 죽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 후에 우리를 버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당신의 자녀들을 교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일상생활의 환경을 통하여 저들이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에게 지정하신 더욱 넓은 무대에서 그들이 맡은 부분을 행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신다. 인생의 위기에서 승패를 결정 짓는 것은 매일의 시험에 대한 승부에 달려 있다.”(소망,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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