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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06분


제2과


“잠잠하라 고요하라”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333-341; 마태복음 8:23-34; 마가복음 4:35-41; 5:1-20; 누가복음 8:22-39


기억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 8:26-27)


서론 :  우리는 얼마나 흔히 제자들이 겪은 경험을 겪는가! 시험의 태풍이 점점 거세어지고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리며 파도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예수가 계심을 잊어버리고 홀로 폭풍과 싸운다. 우리의 희망이 사라지고 멸망 직전에 빠질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뢰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예수를 기억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를 구하시도록 예수께 요청한다면, 우리의 부르짖음은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불신과 자기 신뢰를 슬프게 책망하시지만, 우리가 요청하는 도움을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다. 육지건 바다건 우리가 구주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께 대한 산 믿음이 인생의 바다를 잔잔하게 할 것이요, 당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내실 것이다.”(소망, 336)


해변에서의 다사(多事)했던 날

1.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던 날, 어떤 교훈의 말씀들을 비유로 가르치셨는가?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막 4:1-2)

마 13:3-52


그날은 예수의 생애 중에서 다사(多事)한 날이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잘 아는 예증으로 당신의 나라의 성질과 그 나라가 건설되는 방법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다시 설명하시면서 최초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업을 씨 뿌리는 자의 일에 비유하셨고 당신의 나라의 성장을 겨자씨의 생장과 가루 서말 속에 넣은 누룩의 영향에 비유하셨다. 의인과 악인의 최후의 대 분리는 곡식과 가라지 그리고 고기잡이 그물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예수께서는 그가 가르치신 진리의 탁월한 귀중성을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의 비유로써 예증하시는 동시에 집 주인의 비유로 제자들이 당신의 대리자로서 어떻게 일하여야 할지를 가르치셨다.”(소망, 333)

2. 예수님께서는 이날 종일 가르치시고 봉사하심으로 피곤함을 느끼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어디서 쉬기를 원하셨는가? 왜 그분께서는 비유로만 가르치셨으며, 그분의 휴식은 특별히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 4:33-35)


예수께서는 종일 가르치시고 또 치료하셨다. 저녁이 되었으나 군중은 여전히 예수에게 밀려왔다. 예수께서는 잡수시거나 쉬실 여가도 거의 얻지 못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악의에 찬 비평과 오전(誤傳)을 하며 예수를 따라다녔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의 수고를 한층 더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이제 날이 저물어 그는 매우 피곤함을 느끼시고 호수 건너의 한적한 곳에서 쉬기로 결심하셨다.

게네사렛의 동부 해변은 호숫가 여기저기에 동네들이 있었으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쪽과 비교하면 적막한 지방이었다. 그곳에는 유대 사람들보다 이방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갈릴리와는 별로 왕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한적함을 그곳에서 얻으실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 그곳으로 가자고 명하셨다.”(소망, 333-334)

맹렬한 광풍에 휩싸임

3. 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배고픔과 피곤에 지쳐 뱃전에서 잠드신 중에 고요하던 호수에는 갑자기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제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눅 8:23)


구주께서는 마침내 군중들의 압박에서 놓여나셨다. 피곤과 시장기를 이기지 못하신 예수께서는 뱃전에 누우셔서 이내 잠이 드셨다. 잔잔하고 상쾌한 저녁이었다. 호면은 한결같이 고요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이 하늘을 덮더니 바람이 게네사렛 동쪽 연안 일대의 산골짜기들을 맹렬히 엄습하고 뒤이어 호수에는 갑자기 폭풍이 일어났다.”(소망, 334)

“노한 바다에 해는 져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포효(咆哮)하는 바람에 격동하는 파도는 제자들이 탄 배를 사납게 때리면서 삼켜버릴 듯이 위협하였다. 저희 생애를 그 호수에서 보낸 그 강인한 어부들은 많은 폭풍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그들의 배를 안전하게 이끌어 올 수 있었으나, 그러나 이번만은 그들의 능력과 기술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태풍에 붙들려서 꼼짝할 수가 없었고 배에 물이 차는 것을 보자 그들은 희망을 잃고 말았다.”(소망, 334)

4. 자신들을 구하려는 제자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게 되었는가? 이제 그들은 누구를 간절히 찾게 되었는가?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 69:17)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船上)에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저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죽음만이 저들 앞에 놓인 것을 깨닫자 저들은 누구의 명령으로 바다를 횡단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던가를 기억하였다. 그들의 유일의 소망은 예수에게 있었다. 무기력과 절망 속에서 그들은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짙은 암흑은 그들의 시야에서 예수를 숨기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태풍의 노성에 삼키웠으며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의혹과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버리셨는가? 질병과 사귀와 사망까지도 정복하셨던 예수께서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구하실 힘이 없으시단 말인가? 비탄 가운데 있는 그들을 왜 돌보지 아니하시는가?

그들은 다시 불렀으나 성난 강풍의 비명 소리밖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들의 배는 벌써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잠깐 후에는 분명히 주린 바닷물이 저들을 삼켜버릴 것이었다.”(소망, 334)

“잠잠하라 고요하라”

5. 암흑을 꿰뚫는 번갯불이 선상을 비추었을 때, 제자들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쉬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어떻게 부르짖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두려움에 찬 간절한 요청에 어떻게 즉시로 응답해주셨는가? 

…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8-39)


갑자기 번갯불이 암흑을 꿰뚫자 그들은 예수께서 그 소동에 방해받으심이 없이 누워 잠드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놀람과 절망으로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외쳤다. 제자들이 위기 가운데서 죽음과 싸우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평안히 쉬실 수 있으셨을까?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께서는 잠이 깨셨다. 눈부신 번갯불이 예수를 비췄을 때 그들은 하늘의 평화가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분의 시선에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온유한 사랑을 느끼자 그들의 마음을 예수께 집중시키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부르짖었다.

그렇게 외친 사람들 가운데 무시당한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이 최후의 노력을 다하기 위하여 그들의 노를 붙잡았을 때 예수께서 일어나셨다. 태풍은 격노하고 파도는 그들을 덮쳤으며 번갯불은 그의 얼굴을 환히 비췄다. 예수께서는 자비의 봉사에 그토록 자주 쓰셨던 손을 드시고 성난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셨다.

폭풍은 그치고 큰 파도는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구름이 걷히고 별들은 반짝거렸다. 배는 고요한 바다 위에 떴다.”(소망, 334-335)

6. 제자들이 위기의 때에 나타내었던 두려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평온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믿음을 배울 수 있는가? 이 평안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그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슬프신 듯 이렇게 물으셨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폭풍을 대하셨을 때 그는 극히 평온하셨다. 예수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었으므로 말이나 표정에 두려워하시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전능하신 능력에 의뢰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조용히 쉬신 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의 주’의 입장에서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 능력을 그는 버리셨던 바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고 그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능력에 의뢰하셨다. 예수께서 쉬신 것은 믿음 곧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였으며 폭풍을 잔잔하게 한 그 말씀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예수께서 믿음으로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구주의 보호 안에서 쉬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를 의뢰하였다면 저들은 평강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당했을 때 저희의 두려움은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예수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자기 의뢰의 절망에서 예수께로 돌아갔을 때뿐이었다.”(소망, 335-336)

바람을 붙잡고 있는 시대

7.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시 어떤 폭풍의 바다를 지나고 있으며, 폭풍은 어떻게 잔잔해질 수 있는가?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0-21)


태풍을 잔잔하게 하신 이 이적 가운데는 또 하나의 영적 교훈이 있다. … 우리의 평화를 파괴한 것은 죄다. 자아가 정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지배하는 격정을 다스릴 수 없다. 제자들이 성난 폭풍을 잔잔하게 하는 데 무력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이점에는 무력하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의 큰 물결을 향하여 잔잔하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각 사람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신다. 태풍이 아무리 격렬할지라도 ‘주여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으면서 예수께 돌아오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그의 은혜가 인간의 격정의 분란을 잔잔하게 하는 바 그의 사랑 안에서 마음은 평안함을 얻는다.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29, 3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롬 5:1; 사 32:17).”(소망, 336-337)

8. 은혜의 시기가 곧 마치기 직전인 오늘날 세상의 폭풍은 어떻게, 왜 지체되고 있는가? 시련의 폭풍이 닥치기 전, 우리는 어떤 믿음의 표준을 가져야 하며, 어떤 경주에 힘써야만 하는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1-3)


이미 나라가 나라를 대항하여 일어나고 있다. 확정된 기간은 없다. 아직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네 바람이 붙들려 있는 때이다. 땅의 열강들이 마지막 큰 싸움을 위하여 그들의 군대를 진주시킬 것이다. 마지막 조금 남은 은혜의 시기를 우리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이용해야 한다(리뷰 1900. 11. 27).”(화잇주석, 계 7:1-3)

“어린 양이 생명수 샘물 곁으로 인도하실 사람들,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이 씻겨질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지식과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 

인간을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우리의 표준이 될만큼 훌륭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온전히 의롭고, 온전히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모범이시다. 그의 경험은 우리가 얻어야 할 경험의 척도이다. 그의 품성이 우리의 귀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난처한 일들과 어려움을 마음에서 벗어 버리고 그분께 마음을 고정시키라. 이는 우리가 그를 바라봄으로써 그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려 함이다. 우리는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안심하고 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주 현명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고 그를 생각할 때, 그분은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으로 자리를 잡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도록 힘써 노력하자(리뷰 1905. 3. 9).”(화잇주석, 계 7:4-17)

군대라는 귀신에게 포로된 자 둘을 놓아주심

9. 폭풍의 밤을 보내고 다시 고요해진 바다의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는 동트는 이른 아침이었다. 제자들은 도착하자마자 어떤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들은 잠시나마 또다시 누구를 잊고 말았는가?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마 8:28)


이른 아침에 구주와 그와 함께 한 제자들이 해변에 닿았을 때에 떠오르는 햇빛은 평화의 축복을 하는 듯 바다와 물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그들이 바닷가에 발을 딛자마자 격노한 태풍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 저희 눈앞에 전개되었다. 무덤 사이의 숨은 장소에서 두 명의 광인이 마치 저들을 갈기갈기 찢기라도 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의 몸에는 저희가 도망칠 때에 끊어버린 쇠사슬이 걸쳐 있었다. 그들이 날카로운 돌로 자신을 상하게 한 곳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헝크러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번쩍거렸고 사람다운 면모는 저들을 미치게 한 사단으로 말미암아 말살된 것처럼 보였고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야수에 더 가깝게 보였다.

제자들과 그들의 일행은 무서워 도망쳤다. 그러나 곧 그들은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지 않은 것을 깨닫고 예수를 찾기 위하여 돌아섰다. 예수께서는 저희가 도망간 그 자리에 서 계셨다. 태풍을 잔잔하게 하시고 전에 사단을 대면하사 그를 정복하셨던 예수께서는 이 사귀 들린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지 않으셨다. 이를 갈며 입에 거품을 뿜으면서 그들이 예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파도에게 잔잔하라고 신호하셨던 그 손을 드셨다. 그들은 더 가까이 나올 수 없었다. 그들은 격노하였으나 예수 앞에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소망, 337)

10. 이 광인들을 지배하던 영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아보았으며,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가 돼지 떼의 손실로 이어질 결과를 아시면서도 왜 들어주셨는가?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막 5:7-13)


악령의 수효와 위력과 악의에 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과 자비가 얼마나 대조적인지를 알려 주는 뚜렷한 예증은 거라사의 사귀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는 성경의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 그 고통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던 한 사귀는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막 5:9)라고 소리쳤다. 로마 군대에서는 한 군단이 3천 내지 5천 명으로 되어 있었다. 사단의 군대 역시 이와 같은 단체가 되어 진군한다. 그리고 그 사귀들이 속한 군대는 로마의 한 군단의 인원만큼 큰 단체였다.

예수님의 명령으로 사귀들은 그들의 포로들에게서 떠나가고 그 사람들은 조용하고 온순하고 정신이 똑똑하게 되어 구주의 발아래 앉았다. 그러나 그 사귀들은 돼지 떼들을 몰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도록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러자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축복보다 그 손실이 더 크다 하여 거룩한 치료자 되신 예수님을 떠나가도록 강요했다. 이것이 사단이 얻고자 했던 결과였다. 그들의 손실에 대한 책임을 예수님께 돌림으로 사단은 사람들에게 이기적 공포심을 일으켜서 그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사단은 손실, 불행, 고난의 원인을 그와 그의 부하들에게 돌리는 대신에 항상 그리스도인들이 그 원인인 것처럼 비난을 받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았다. 주님께서 악령들에게 돼지 떼들을 멸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더러운 짐승을 기르는 유대인들을 견책하시기 위함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 때에 그 사귀들을 막지 아니하셨을 것 같으면 사귀들은 돼지뿐 아니라 그 지키는 자들과 그 주인까지도 바다 가운데 빠지게 하였을 것이다. 그 돼지를 지키는 자들과 주인이 보호된 것은 오직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한 주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그 사건은 제자들에게 인류와 짐승들에게 나타나는 잔인한 사단의 세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만나게 될 원수가 어떤 자들임을 알고 그 간계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원하셨다. 또한 그 지방 사람들이 사단의 속박을 깨뜨리고 그에게 포로된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당신의 위력을 보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셨지마는 그처럼 놀라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예수님의 긍휼을 전파하기 위하여 거기에 남아 있었다.”(쟁투, 514-515)

데가볼리 지방(이방)의 최초의 이방인 선교사

11. 돼지 떼의 몰살로 인하여 그곳 주민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떠나시기를 간구했다. 반면에, 구원받은 두 사람은 예수님께 함께 있기를 간구했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막 5:16-19)


고침을 받은 두 광인은 그리스도께서 데가볼리 지방에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신 최초의 선교사들이었다. 겨우 잠깐 동안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을 특권을 누렸다. 저들은 예수의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 가르칠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증거를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저희가 아는 것 곧 그리스도의 능력에 관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 각기 행할 수 있는 일이다. …

비록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예수께서는 저희가 선택한 흑암 가운데 저희를 버려두지 아니하셨다. 그들이 예수에게 떠나가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저희가 무엇을 거절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빛을 보내시되 저희가 듣기를 거절하지 아니할 자들을 통하여 전하셨던 것이다.”(소망, 340)

10. 이들 선교사들의 증언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거라사의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효과적으로 완성하실 수 있는 길이 어떻게 예비되었는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막 5:20)

막 7:31; 8:1-9


돼지를 몰살시킴으로써 사단은 사람들을 구주에게서 돌아서게 하고 그 지방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 구주께서는 떠나셨지만 그에게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러서 예수의 능력을 증거하였다. 흑암의 임금의 매개물이었던 자들이 빛의 통로가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사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기이히 여기었다. 그 온 지방에 복음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예수께서 데가볼리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은 그분 주위에 모여들었고 삼일 동안에 한 동네의 주민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지방에서 나온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기별을 들었다. 심지어 사귀의 능력까지도 우리 구주의 지배를 받았고 악의 활동은 선을 위해 역이용당했다.”(소망, 340-341)

“… 저들은 예수께서 뒤에 남기신 사자들의 말을 듣자 예수를 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다시 그 지방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 주위에 모여들었고 …

예수께서 산에 오르시자 무리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픈 자와 불구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을 예수의 발아래 놓았다. 예수께서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 그들은 삼일 동안 계속 구주 곁에 모여 밤에는 노천에서 자면서까지 종일토록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의 하시는 일을 보고자 열망하였다. 삼일이 다하였을 때 그들의 양식은 떨어졌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배고픈 채로 보내고 싶지 않으셨으므로 제자들을 불러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다시 저희의 불신을 나타냈다. 그들은 벳새다에서 그들의 적은 소유가 그리스도께서 축사하심으로 무리들을 어떻게 능히 먹이실 수 있었던가를 보았으면서도 그들은 배고픈 무리를 위하여 식물을 늘이실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을 믿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갖다 드리지 않았다. 더구나 예수께서 벳새다에서 먹이신 무리는 유대인이었는데 이 무리는 이방인과 이교도들이었다. …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떡 일곱개와 생선 두 마리를 예수께 가지고 나왔다. 무리들이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었다. 이와 같이하여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사천명이 원기를 회복하였으며 예수께서 그들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 데가볼리의 이방 사람들은 예수를 기쁘게 영접하였었다.”(소망, 404-405)


[상고할 말씀]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으나 가버나움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하였으며 주님께서는 저들 가운데서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다. 주님께서는 위대하신 의원으로서 우리들이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질병에 걸렸을 때에 찾아 뵐 수 있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바람과 파도와 귀신 들린 인간들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배권을 소유하고 계신 사실을 증거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시다. 당신께서 굴욕을 당하고 계신 때에도 모든 정사와 권세들이 그분께 복종하였다. …

왜 우리들은 신령하신 의원에 대하여보다 큰 믿음을 행사하지 않는가? 주님께서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깨끗이 낫게 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당신께 나오는 자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행사하실 것이다. 우리들은 더욱 큰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백성들 사이에 믿음이 결핍된 것을 보게 될 때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똑바로 찾아가 우리들의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을 주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믿음이 부족하다. 아, 나는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갖도록 인도하려고 했던가! 저들은 믿음을 행사하기 위하여 극도의 흥분 상태에 이르러야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저들이 해야 할 일이란 사람들끼리 상호간의 말을 믿는 것과 꼭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분의 허락을 잠잠히 의뢰하라.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나에게 말씀하셨으니 주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지 말라. 확고히 신뢰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시다. 그대들의 하늘 아버지께서 미쁘신 분인 것처럼 믿음직스럽게 행동하라.”(1기별, 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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