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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27분


제13과


“내 형제는 누구인가?”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321-327; 마태복음 12:22-50; 마가복음 3:20-35


기억절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5)


서론 :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 가운데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예증이 있다. 가난으로 인하여 한 히브리 사람이 부득불 자기의 기업을 내놓고 자신을 몸종으로 팔게 될 때에 그와 그의 기업을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로 돌아갔다(레 25:25, 47-49; 룻 2:20 참조). 그와 같이 우리를 속량하는 사업과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우리의 유업은 우리의 친족이 되신 예수께 돌아갔다. 예수께서 우리의 친족이 되신 것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께서는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애인보다 더 친밀하신 분이시다.”(소망, 327)


육신의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사업에 불신의 그림자를 드리움

1.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의 사업에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사업을 중지시키려는 일에 누가 자신들과 협력하기를 원했는가?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0-21)


요셉의 아들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사업에 대하여 거의 공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의 생애와 활동에 관하여 들은 소식은 그들을 경악과 당황함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온 밤을 기도로 새우시며, 종일토록 큰 군중에 둘러싸여 잡수실만한 시간도 얻지 못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예수의 친구들은 예수께서 끊임없는 활동으로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예수의 이성이 안정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의 형제들은 이 소식을 들었으며 예수께서 사단의 능력을 빌어서 사귀를 내쫓는다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들었다. 그들은 예수와의 관계로 말미암아 저희에게 임한 비난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과 이적이 어떤 소동을 일으켰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대담한 말씀에 놀랐을 뿐 아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그들은 이런 모양의 활동을 중지하라고 설득하든지 강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머니에 대한 예수의 사랑을 이용하면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하도록 그를 설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마리아에게 그들과 협력하기를 권하였다.”(소망, 321)

2. 예수님의 육친의 형제들의 불신은 그분께서 마실 질고의 잔을 얼마나 더 쓰디쓰게 만들었는가? 그분께서는 누구의 가정을 즐겨 찾으셨으며, 그 가정의 어떤 분위기에서 평안을 누리셨는가? 그러나 자신의 거룩하고 엄숙한 사명에 대하여는 누구와만 교통하실 수 있으셨는가?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만일 육친의 형제들이 예수를 하늘에서 오신 자로 믿고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그와 협력하였더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서 얼마나 든든함을 얻었을 것인가! 그들의 불신은 예수의 지상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신 쓰디쓴 질고의 잔의 일부였다.

… 예수의 형제들은 종종 진부하고 시대적으로 낡은 바리새인들의 철학을 제시하여 모든 진리를 아시고 모든 오묘들을 이해하시는 예수를 가르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비난하였다. 그들의 비난은 예수의 골수를 찌르는 듯하였고 심령은 기진하고 비탄에 젖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였고 하나님을 옹호한다고 생각하였으나,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서 저들과 함께 계셨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예수의 가시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다. 가정에서의 몰이해로 너무 괴로우셔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오해가 없는 곳으로 가셔서 위안을 얻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즐겨 찾아가신 한 가정이 있었는데 그 가정은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이었다. 믿음과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예수의 마음은 평안함을 얻으셨다. 그러나 예수의 거룩한 사명을 이해하고 인류를 위하여 지신 짐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종종 홀로 계셔서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실 때에만 위안을 찾으실 수 있었다.”(소망, 325-326)

성령을 거역하는 위험을 경고하심

3. 바리새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거절했으며,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들은 성령의 강한 호소의 음성을 들었고, 그리스도의 임재의 빛 가운데 나타난 순결한 의를 사모하였으나, 왜 그분을 끝까지 거절했는가?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 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마 12:22-24)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2)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행위로 여김으로 축복의 근원에서 자신을 차단하고 있다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예수의 신적인 신분을 식별하지 못하고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사유하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다면 죄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으나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는 자는 회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리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하시는 것인데 사람이 고의로 성령을 거절하고 이를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교통하실 수 있는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성령을 끝까지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위하여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께서 이렇게 경고하신 바리새인들 자신이 저희가 반대하는 그 비난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구주께 마음이 끌리지 않은 성직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성령의 음성이 저들의 마음속에서 예수가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니 그의 제자가 될 것을 고백하라고 재촉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저들은 예수의 임재하심의 빛으로 그들의 부정함을 깨닫고 그들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의를 사모하였다. 그러나 저희가 예수를 거절한 후에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그들의 발을 불신의 길에 들여놓았으므로, 그들은 매우 교만하여 잘못을 자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진리를 시인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구주의 가르침을 맹렬히 반박하기에 힘썼다. 예수의 능력과 긍휼하심의 증거는 그들을 격노하게 하였다. 그들은 구주께서 이적 행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었으며, 가르치시는 것을 잠잠하게 할 수도 없었으나, 예수를 그릇 나타내고 당신의 말씀을 왜곡하기 위하여 그들의 전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자각시키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을 따랐으므로 그들은 그 능력을 대적하기 위하여 많은 장벽을 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간의 마음에 감명을 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능력이 그들로 더불어 싸웠지만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소망, 321-322)

4. 한 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 결국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인가? 성령을 거역하는 죄와 함께 무익하고 악한 말은 어떤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잘못을 시정하고 안전한 길로 저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빛을 보내신다. 눈이 멀고 마음이 강퍅하여지는 것은 이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흔히 그 과정은 점차적이요 거의 알아챌 수 없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한 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영적 감각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서 두 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암흑은 증가되고 마침내 영혼이 밤과 같이 어두워진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으나 진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를 사탄에게 돌렸다. 이렇게 행함으로 그들은 고의로 기만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사단에게 굴복하였으며 그때 이후로 그의 능력에 지배당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경고는 무익하고 악한 말에 대한 경고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말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의 표시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러나 말은 품성의 표시 이상을 뜻한다. 즉 말은 품성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사단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으로 시기나 악한 억측의 말을 발하는데, 그들은 사실은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말은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사단의 선동을 받아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는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옳은 것을 증명하려고 힘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정당하다고 믿게 된다. 의심의 말을 발하거나 하늘의 빛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다. 부주의하고 불경스러운 비평은 품성에 영향을 끼쳐서 불경과 불신을 기르게 한다. 이 습관에 빠진 많은 사람이 부지 중에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 급기야 성령의 역사를 곧잘 비평하고 거절한다.”(소망, 322-323)

첨가적인 경고 – 비워진 집에 성령께서 내재하시게 하라

5.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으나, 성령께서 내재(內在)하시도록 자신을 바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어떤 경고를 첨가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런 청중을 무엇에 비유하셨는가?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


그리고 예수께서 당신의 말씀에 감명을 받고 그 말씀을 기쁘게 들었으나, 성령께서 내재(內在)하시도록 자신을 바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첨가하셨다. 사람의 심령이 파괴당하는 것은 항거함으로 말미암아서뿐 아니라, 등한함에 의해서도 그렇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라.

오늘날과 같이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사단의 지배를 한동안 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그들은 영혼을 지배하던 악령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였다. 그러나 비유 중에 나오는 돌밭으로 비유된 청중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날마다 자신을 바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악한 귀신이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악의 권세에게 완전히 지배당하였다.”(소망, 323-324)

6. 우리가 하나님과 산 연락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하자면, 그리스도와 계속 교통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5)


사람이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에 새로운 능력이 새 마음을 점령한다. 사람이 스스로는 성취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본성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져다주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배역한 세상에서 예수께서 굳게 붙드시는 당신의 성채가 되며, 그는 당신의 권위 외의 어떤 권위도 그 성채에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와 같이 하늘의 능력으로 채워진 영혼은 사단의 공격에 난공불락이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배하심에 자신을 맡기지 아니한다면, 악한 자에게 지배 당할 것이다. 우리는 불가불 세상의 패권을 잡으려고 싸우는 두 큰 세력 중에 전자가 아니면 후자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흑암의 왕국의 통치를 받기 위하여 일부러 그것을 섬기기로 선택할 필요는 없다. 빛의 왕국과 관계를 맺는 것을 등한히 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늘의 능력에 협력하지 아니한다면 사단은 마음을 점령하여 그것을 자신의 거처로 삼을 것이다. 악에 대한 유일의 방어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내재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자기를 사랑함과 자아 방종과 죄에 대한 유혹의 부정한 영향을 대항할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악습을 버릴 수 있을 것이며 얼마 동안은 사단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마다 자신을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과 산 연락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복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숙하고 계속적으로 교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수의 마음대로 되어 마침내 그의 명령을 좇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자비의 초청을 무시하고 은혜의 성령을 멸시한 자들만큼 마음이 강퍅한 자는 또다시 없다. 성령에 대항하는 가장 보편적인 죄의 표시는 회개하라는 하늘의 초청을 완강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발걸음마다 구원을 거절하고 성령을 거스리는 죄길로 향하는 발걸음이다.”(소망, 324)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7.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의 관계를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가족 중 누구만이 그런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다 인간적인 혈육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스도께 연합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예수와 하나가 될 것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로서 육친 관계에 의한 것 이상으로 더 예수와 가깝고 구원받을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와 맺어진 관계에서 아무 유익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소망, 325)

8.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육신의 가정에서 오해와 불신을 겪을 때, 어떤 가정을 통하여 위안과 위로를 누릴 수 있는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4-38)


그리스도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가정에서까지 오해와 불신을 감내해야 하는 자들은 예수께서도 그와 같은 고충을 겪으셨다는 생각을 함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께서는 당신 안에서 우정을 얻고,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시는 중에 얻으신 위안을 찾으라고 저들에게 분부하신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고아처럼 인생의 시련을 홀로 견디도록 방임되지 아니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하늘 가족의 일원으로 받으시며 당신의 아버지를 그들의 아버지로 부르도록 분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스러운 자들이며, 가장 부드럽고 영속적인 끈으로 당신께 결합된 소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향하여 비상한 온정을 품고 계시는바 마치 신적인 것이 사람보다 뛰어난 것처럼 육신의 부모가 무력한 우리에 대하여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온정을 품고 계신다.”(소망, 326-327)

그리스도 – 우리의 기업을 무를 유일한 친족

9.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 가운데,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어떤 아름다운 예증이 있는가? 그 실례를 들어보라. 이방 여인 룻은 기업 무를 자를 통하여 얼마나 유명해졌는가?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5)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룻 4:14)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 가운데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예증이 있다. 가난으로 인하여 한 히브리 사람이 부득불 자기의 기업을 내놓고 자신을 몸종으로 팔게 될 때에 그와 그의 기업을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로 돌아갔다(레 25:25, 47-49; 룻 2:20 참조). 그와 같이 우리를 속량하는 사업과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우리의 유업은 우리의 친족이 되신 예수께 돌아갔다. 예수께서 우리의 친족이 되신 것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께서는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애인보다 더 친밀하신 분이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사 43:1, 4)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소망, 327)

10. 우리가 만일 예수님과 친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주님의 형제자매, 주님의 동족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살전 4:9)

요 13:34, 35; 갈 6:2; 빌 2: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보좌를 두른 하늘 천사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경험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예수와 친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 주의 형제 자매가 되는 자들을 얼마나 친절하게 대우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관계가 요구하는 바를 인정하는 데 신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가족의 양자가 된 우리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우리의 동족을 존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소망, 327)


[상고할 말씀]

하늘 가족으로 태어난 자는 모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당신의 가족들을 한데 묶어 연합시키며 어디서나 그 사랑이 표현되는 곳에서는 친족 관계가 나타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7).

심판 때에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실 자들은 신학이란 학문을 알지 못했을는지도 모르나 그리스도의 원칙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거룩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그들은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비록 이방인 가운데서일지라도 친절한 정신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으며, 생명의 말씀을 듣기 전에라도 그들은 선교인들을 도와주었으며, 저희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섬긴 자들이 있다.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르고 섬긴 자들 즉 인간의 도움을 통하여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일지라도 멸망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은 알지 못하였으나,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율법이 요구하는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킨 증거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소망,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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