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4 12:17

8. 레위 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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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9분


제8과


레위 마태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72-280; 마태복음 9:9-17; 마가복음 2:14-22; 누가복음 5:27-39 


기억절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서론 :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주께서는 하늘의 기별을 받고자 하는 다른 무리들을 찾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어부와 장터에 앉은 세리와 사마리아 여인과 당신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백성들 가운데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발견하였다. 복음 사업에 쓰이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런 영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가죽 부대가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그들을 채워주실 것이다.”(소망, 279)


세리, 레위 마태

1. 로마 관리 중에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로 여김을 받으며, 특별히 미움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부류는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는가?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팔레스틴에 있던 로마 관리 중에 세리보다 더 미움을 받은 자는 없었다. 외세에 의하여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독립이 떠나갔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을 계속적으로 자극하였다. 그리고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은 단순히 로마의 압박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치부하는 착취자였다. 로마 사람들의 지배 아래 이 직책을 맡은 유대인은 국가의 명예를 배신하는 자로 여겨졌다. 그는 배신자로서 멸시를 받았고 사회의 가장 비열한 계층으로 분류되었다.”(소망, 272)

2. 그러나 이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이 열려 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마 9:9)


레위 마태는 이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게네사렛에서 부름을 입은 네 제자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부르심을 받을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태를 그의 직업에 따라 판단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는 것을 아셨다. 마태는 구주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자각시키는 하나님의 영이 그의 죄악 됨을 드러냈을 때에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구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랍비들의 배척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 크신 교사께서 자기를 주목해 보시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소망, 272)

부르심에 놀랐으나,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은 마태

3. 이전에 어부들이 해변에서 부름을 받았던 것처럼 세리였던 마태는 어디에서 부름을 받았는가?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마 9:9)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을 때에 세리 마태는 예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다. 자기를 향하여 ‘나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는 매우 놀랐다.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 마태의 마음에는 주저함이나 의심도 없었고 이익이 남는 사업이 가난과 곤란으로 바뀌어지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예수와 함께 있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의 사업에서 그분과 연합할 수가 있다는 것으로 그는 족하였다.

이전에 부름을 받은 제자들 역시 그러하였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하시자 즉시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렸다. 이 제자 중의 어떤 이들에게는 생계를 그들에게 의존하는 친구가 있었으나 구주의 초청을 받았을 때에 머뭇거리거나 내가 어떻게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할까 하고 묻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였다.”(소망, 272-273)

4.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를 막론하고 어떤 시험을 받았는가?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 5: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막 10:28)


부유하던 마태에게나 가난하던 안드레와 베드로에게 똑같은 시험이 이르렀으며, 똑같은 헌신이 각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고 옛 생애에 대한 충동이 가장 강하던 성공의 순간에 예수께서는 바다에서 일하던 제자들에게 복음 사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셨다. 이와 같이 각 사람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그리스도와 친분을 맺고자 하는 욕망 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해 시험을 받고 있다.

원칙은 항상 가혹하다. 하나님의 사업에 전심을 다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분의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전적으로 바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예수의 동역자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람들이 위대한 구원을 인식할 때에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타난 자아 희생은 그들의 생애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느 길로 인도하시든지 즐겨 따라갈 것이다.”(소망, 273)

그리스도를 위해 마태가 베푼 잔치의 참석자들

5.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그분을 위한 어떤 자리를 마련했으며, 그 회합에는 어떤 사람들이 함께 초대되었는가?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눅 5:29)


세리들 간에는 광범위한 관심이 일어났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의 교사에게로 이끌렸다. 마태는 새로운 제자가 된 기쁨에 이전의 친구들을 예수께 데려오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친척과 친구들을 함께 불렀다. 세리들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평판을 받고, 보다 철두철미한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던 많은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소망, 273-274)

“… 회당장 야이로가 여기에서 예수를 만났다.”(소망, 342)

6. 마태가 베푼 잔치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마태와 그 회합에 모인 사람들에게 어떤 깊은 감화를 끼쳤는가? 그 결과가 언제 가장 충만하게 나타났는가?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막 2:15)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 41)


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 귀빈으로 앉으시고 당신의 동정심과 사교적인 친절한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이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갈급한 심령에 예수의 말씀은 축복과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 임하였다. 새로운 충동이 일깨워지고 새 생애에 대한 가능성이 사회의 버림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열려졌다.

이와 같은 회합들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를 시인하지 않던 사람들 중에 구주의 교훈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성령이 부어져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였을 때에 이들 가운데는 세리들의 식탁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 중에 얼마는 복음의 기별자들이 되었다. 연회석상에서의 예수의 모본은 마태 자신에게 끊임없는 교훈이 되었다. 멸시당하던 세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르며, 자기의 맡은 일에 있어서 가장 헌신한 복음 전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소망, 274-275)

바리새인들의 반대와 편견을 타파(打破)하심

7.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마태를 제자로 삼으심으로써 어떤 반대를 당하게 되셨는가? 바리새인들로부터 분노와 반대를 받으실 것을 아셨으나, 이런 문제들은 그분의 결정과 행동에 있어서 왜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는가?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탐식하는 자요, 술을 즐기는 자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그러나 지혜는 그 자녀들로 인하여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느니라, 고 하시더라.”(마 11:19, 킹제임스)

마 21:31


마태를 불러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은 큰 분노를 일으켰다. 한 종교적 교사가 직접 수종하는 자로서 세리를 택한다는 것은 종교적·사회적 및 민족적 관습에 위반되는 행위였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편견에 호소함으로써 여론의 흐름이 예수를 반대하기를 원하였다. …

잔치는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배설되었으며, 예수께서는 이 호의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이 호의를 받으시는 것이 바리새파를 성나게 하리라는 것과 또한 이 행위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명성을 저락시키는 일이 될 것을 잘 아셨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문제도 예수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예수에게는 외형적인 차별은 가치가 없었다. 예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생수를 갈급하는 심령이었다.”(소망, 273-274)

8. 바리새인들은 어떤 비난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했으며, 그분께서는 그들의 책략에 어떻게 응대하셨는가?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0-32)


랍비들은 마태의 집에서 베푼 잔치에 예수께서 참석하신 것을 알자 예수를 비난할 기회를 포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들을 통하여 그렇게 하기로 택하였다. 그들은 제자들의 편견을 일으킴으로 그들과 그들의 선생을 이간시키기를 원했다.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비난하고 그리스도에게 제자들에 대하여 비난을 퍼붓고 그들이 상처를 받을 성싶은 곳에 그들의 화살을 겨누는 것이 랍비들의 책략이었다. 이것이 곧 사단이 하늘에서 불만을 품은 이래로 일하여 온 방법이며, 불화와 이간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자들은 모두 사단의 정신에 자극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 비난에 답변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친히 대답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므로 의사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세리들과 이방인들은 영혼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의사로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시는 것은 그가 하실 일이 아니었던가?”(소망, 275)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어떤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그들은 왜 새 포도주를 거절하고 낡은 부대로 남고자 했는가?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눅 5:36-37)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

그리스도의 교훈이 비록 새 포도주로 표상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태초부터 가르치셨던 교훈의 계시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원래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새 것으로 보였고 시인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귀중한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았다. 낡은 유전, 습관 및 행동을 비우기 전에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고 산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는 돌아섰다. …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엄숙한 예배, 집회, 종교적 의식의 반복,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 제사 등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을 의롭고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소망, 279-280)

10.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영적 결핍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신앙과 얼마나 유사한가? 이 시대의 영적 결핍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무엇이 최우선의 필수요소인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38)

계 2:4-5


그리스도의 시대와 같이 오늘날도 그러하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 결핍을 알지 못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계 3:17, 18)는 기별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다. 믿음과 사랑은 불로 연단한 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금은 빛을 잃었고 부요한 보화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그들에게는 입지 않은 두루마기와 손대지 않은 샘과 같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는 말씀이 그들에게 발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사람이 온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될 수 있기 전에, 자아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가 포기될 때, 주께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으시다. 새 가죽 부대가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품성이 나타날 것이다.”(소망, 280)


[상고할 말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예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들이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상태에 있을 동안은 하늘의 산 진리의 위탁자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가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새로운 요소가 그들의 신앙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의 선행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공로와 연결시켰다. 사랑으로 행하며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은 의식과 사람의 교훈으로 된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결합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 예수의 교훈과 기성의 종교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발효시키는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는 낡고 쇠해져가는 바리새인의 유전의 가죽 부대를 터뜨릴 것이었다. …

유대인들의 멸망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으며, 그것은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많은 영혼들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소망, 27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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