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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7분


제13과


베데스다와 산헤드린 (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05-213; 요 5:20-47


기억절 :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8-40)


서론 :  유대인들은 성경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피상적으로 밖에 알고 있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다. 말씀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은 실체되시는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이다.”(소망, 212)


사단의 도구가 된 산헤드린

1. 산헤드린 회의보다 앞서 서 사단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정복하는 일에 실패한 후에 공생애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사업에 반대하여 회의를 소집하고, 누구를 통하여 진리에 대한 자신의 증오심을 고취시키려고 계획했는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창 3:15)


그러나 랍비들이 그렇게도 열성으로 성취시키려고 하던 계획들은 사실은 산헤드린 회의 외의 다른 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사단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정복하는 일에 실패한 후에 공생애에 들어가신 예수를 반대하여 가능하면 그의 사업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세력을 규합하였다. 사단은 직접적이며 개인적인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계략으로 이루어 보려고 결심하였다. 사단은 광야에서의 투쟁에서 물러서자마자 그와 동맹한 천사들과의 회의에서 유대 백성들이 그들의 구속주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한층 더 어둡게 할 계획을 완성했다. 사단은 종교계의 인간 대리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자신의 증오심을 고취시킴으로써 그들을 통해 일하려고 계획하였다. 사단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하여 그의 생애를 가능한 한 괴롭게 만들어서 예수께서 당신의 사업을 하는 중에 낙담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구주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에 사단의 도구가 되었다.”(소망, 205-206)

2. 반대와 저항을 아시면서도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자리를 들고 가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 42:4)

“{주}께서 자신의 의로 인하여 매우 기뻐하시므로 율법을 크게 하며 그것을 존귀하게 하시리라.”(사 42:21, 킹제임스)


예수께서는 ‘그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고 오셨다. 그는 율법의 위엄성을 감소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높이실 것이었다. …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축복은 커녕 저주가 되게 만든 이 무거운 짐이 되는 요구 사항들로부터 안식일을 자유롭게 하시려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런 이유로 베데스다에서 치유의 일을 행하시는 날로 안식일을 선택하셨다. 예수께서는 주일 중 다른 날에도 마찬가지로 병자를 고치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며 그 병자에게 자리를 가지고 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그를 고치기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가 갖기를 원하신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를 하시는 동안에 하신 모든 행동에는 현명한 목적이 그 밑받침이 되어 있었다. 그가 하신 모든 일은 그 행하신 일 자체와 그 교훈이 다 중요했다. 예수께서는 그 못가에서 고통당하는 자들 가운데서 당신의 치유력을 행사하시기 위하여 최악의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이루어진 큰 역사를 공표하기 위하여 그의 자리를 들고 시가를 통하여 다니라고 명하셨다. 그렇게 하면 안식일에 그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이 일어나게 될 것이므로 예수께서 주의 날에 관한 유대인들의 금령(禁令)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유전들이 무용하다고 선언하실 길이 열릴 것이었다.”(소망, 206)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될 수 없음

3.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사업은 안식일은 물론 모든 율법에 비추어 정당하다는 사실을 어떤 증거로써 반증하셨는가?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예수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사업이 안식일의 법과 조화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인류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항상 오르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사업과 조화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하셨다.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들 동안에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계획들을 수행하신다. 만일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이 올바르다면, 처음에 땅의 기초를 놓으신 이래로 모든 생물을 살리시고 붙드시기 위하여 일해 오신 여호와께서 잘못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창조물들을 좋다고 선언하시고, 그 사업의 완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종결하시고 우주의 끊임없는 일상적인 과정을 중지시키셔야만 한다.”(소망, 206)

4.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업에 대하여 무엇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가? 그분께서 엿새 동안에 하셨던 창조 사업과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심으로 모든 생명체들의 행복을 위해 안식일에도 쉬임 없이 행하시는 그분의 봉사는 왜 구별되어야 하는가?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하나님께서 태양이 안식일에 그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으시고, 지구를 따뜻하게 하고 초목에게 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그 온화한 빛줄기를 차단하셔야 하는가? 천체들이 성일에는 종일토록 조용히 정지하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시냇물이 들과 숲에 물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시고 바다의 물결이 그 쉴 줄을 모르는 조수의 간만(干滿)을 멈추도록 명하셔야 할까? 밀과 곡식은 자라나기를 멈추고 익은 포도송이는 그 자줏빛 열매를 맺는 것을 연기하여야 하는가? 초목들은 안식일에는 꽃봉오리가 맺거나 꽃이 피어서는 안 되는가?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땅의 열매와 삶을 매력 있게 만들어 주는 축복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천연계는 변함이 없는 과정을 계속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시라도 당신의 손을 멈추실 수가 없는데, 만일 멈추신다면 인간은 기절하여 죽을 것이다. 사람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불가결한 일은 행해져야 하며 병자는 돌보아야 하며 곤핍한 자들의 필요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안식일에 고통하는 자들을 구하기를 게을리하는 자에게 죄없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의도와 완전히 조화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이 안식일이나 기타 어떤 날에 경감시켜 줄 수 있는 고통으로 한 시간이라도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소망, 206-207)

“하나님께 대한 요구는 다른 날에보다 안식일에 한층 더 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평시의 작업을 떠나서 명상과 예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욱 많은 은총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들은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시기를 하나님께 요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축복을 갈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 사항들을 들어주시기 전에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신다.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는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시고 안식일에 안식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그의 일상 생애의 일에서 떠나서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를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신 사업은 율법에 완전히 일치했다. 그 행위는 안식일을 존귀하게 했다.”(소망, 207)

예수께 대한 분노

5.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더욱 격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왜 잘못되었는가?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사업과 동등하게 신성하고 같은 성질의 사업을 행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한층 더 격분하였다. 그들이 이해한대로는 예수는 율법을 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요 5:18)라 부름으로써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선언하신 것이었다.

유다 국민 전체가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라 불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하나님께 동일한 관계 속에 서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해서 그처럼 격노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비난함으로써 그가 최고의 의미에서 이 주장을 하신 것으로 그분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소망, 207-208)

6. 유대 지도자들의 예수께 대한 분노는 그분을 그 자리에서 죽이기를 원하였으나,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 22:2)


그리스도의 이 대적들은 그가 그들의 양심에 깊이 확신시키신 진리를 꺾을 만한 논증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관습과 유전을 인용할 수 있을 뿐이었으며, 이런 논증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는 자연의 순환에서 끌어내신 논증과 비교할 때 빈약하고 맥없어 보였다. 랍비들이 빛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조금이라도 느꼈었더라면, 그들은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고 계심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하신 요점들은 회피하고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셨기 때문에 예수에 대항하여 분노를 일으키려고 했다. 관원들의 분노에는 한도가 없었다.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예수를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예수를 좋아하는 감정은 강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시던 예수를 친구로 인정하였으며 예수께서 베데스다에서 그 고통하는 자를 고치신 것을 정당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얼마 동안은 그들의 증오심을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소망, 208)

본성과 뜻과 목적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

7.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선한 일로 그분을 비난했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비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박하셨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마 12:11-12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비난을 반박하셨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그 사업을 내가 행할 수 있는 권위는 곧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본질과 의지와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 사업과 섭리에 내가 하나님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그분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서 행하시려고 하신 바로 그 사업을 행하신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들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켰으며, 자만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범사에 자신들이 부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행동을 지시하여 주는 보다 고상한 지혜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고 그분의 능력에 의존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으므로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시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시고 아버지께서는 날마다 당신의 계획을 공개하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의지하여 우리의 생애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생애가 되도록 해야 한다.”(소망, 208)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자신이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간주하도록 가르치신다.”(소망, 209)

8.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자로서의 권세를 두 가지 측면에서 합당한 자격을 가지셨으나, 오히려 죄인들에 의해 정죄를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심판자의 사명 이전에 먼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오셨는가?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2-24)

요 5:25-34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정죄하는 재판관으로 자처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이 그들의 심판자요 온 지상의 심판자가 되심을 선언하셨다. 세상은 그리스도에게 위탁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타락한 인류에게 이르렀다. 그는 성육신 후에도 구속주이셨던 것처럼 그 전에도 그러하셨다. 죄가 생기자마자 구주가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빛과 생명을 주셨으며, 주어진 빛의 분량에 따라서 각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빛을 주신 그분, 가장 친절하신 간원으로 영혼을 돌보시고 그로 죄에서 돌이켜 성결로 이끌려고 하시던 그분이 또한 그 영혼의 대언자요 심판자이기도 하신 것이다. 하늘에서 대쟁투가 벌어진 때로부터 사단은 그의 사업을 기만을 사용하여 유지시켜 왔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궤계를 드러내시고 그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하여 일해 오셨다. 기만자 사단을 대항하시고 각 세대를 통하여 사단의 수중에서 포로된 자들을 뺏으시려고 힘쓰시고 장차 각 사람을 심판하실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시험의 모든 찌끼를 맛보셨으며 사람의 연약함과 죄를 이해하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사단의 유혹을 당당하게 대항하셨고, 자신의 피를 쏟으사 구원하시려 한 영혼들을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하실 것이기 때문에 인자가 심판하도록 지명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명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7). 그리고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다.”(소망, 210-211)

강퍅함과 성경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심

9.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심문을 받으시는 것을 거절하시는 대신, 그들의 강퍅함과 성경에 대한 무지를 어떻게 책망하셨는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자기에게 질문을 하거나 당신의 사업을 방해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러한 권위를 부여받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 자신의 교만과 오만에 그 기초를 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죄가 있다는 그들의 비난을 인정하시거나 그들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것을 거절하셨다.

그들이 자신을 고소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거나 그 행위의 목적을 설명하시는 대신에 예수께서는 관원들을 공격하셨다. 그리하여 피고인이 되신 예수께서 이번에는 원고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강퍅함과 성경에 대한 무지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당신을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다고 말씀하셨다.”(소망, 211)

10. 유대인들은 성경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되었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끝까지 몰아가기로 결심했는가?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 5:37-38)


구약 성경의 역사나, 교훈이나, 예언을 막론한 모든 페이지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다. 유대교의 전체 제도는 하늘의 정하신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복음에 대한 치밀한 예언이었다.”(소망, 211)


“유대인들은 성경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피상적으로 밖에 알고 있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다. 말씀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은 실체되시는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이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메시야의 왕국에 관한 선지자들의 교훈을 연구하였으나 그것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신실한 욕망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야심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찾을 목적으로 연구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모양으로 오셨을 때에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예수가 기만자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힘썼다. 그들이 일단 이 길에 그들의 발을 옮겼을 때 사단이 그리스도에 대한 저희의 반대를 북돋워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의 신성의 증거로 마땅히 받아들였어야 할 그 말씀까지도 그를 대적하는 말씀으로 해석되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전환시켜서 구주께서 자비로우신 행위로 그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 빛을 저항하기로 결심하였다.”(소망, 212)

스스로 흑암 속에 가둠

1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권위와 형상을 지니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왜 그분의 음성을 외인의 음성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1-43)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로 오셔서 그의 형상을 지니시고 그의 말씀을 성취하시며 그의 영광을 구하셨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영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장하나 그들 자신의 의지에 충동을 받고 그들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그들은 영접할 것이었다. 왜 그런가? 그 까닭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고하기를 원하는 욕망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호소에는 응답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짓 교사는 영접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품고 있던 의견과 유전을 인정함으로 그들의 자만심에 아첨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들의 생각과 일치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영적인 것이요 자아 희생을 요구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그들에게는 한갓 외인의 음성에 지나지 않았다.”(소망, 212-213)

12. 유대 지도자들의 예수님께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반대는 빛이 더욱 밝아질수록 상대적으로 짙은 흑암 속에 자신들을 스스로 가둔 채, 결국 예수님의 생명을 취하고자 어떻게 할 것인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당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결심하였음을 아셨다. 그러나 그는 자기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과 세상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그들에게 분명히 설명하셨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반대가 아무런 구실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살인적인 증오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예수의 공생애에 함께 하는 확실한 능력을 목격하고 그들은 공포에 질렸으나 예수의 호소를 저항하였으며, 자신들을 흑암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들은 예수의 권위를 전복시키고 백성들의 존경과 주의를 빼앗는 일에 뚜렷이 실패하였다.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받았던 것이다. 관원들 자신도 예수께서 그들의 양심에 죄책을 깊이 느끼게 하셨을 때에는 깊은 가책을 느꼈지만, 이것은 그들에게 그분을 더욱 혹독히 반대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생명을 취하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들은 전국에 기별자들을 보내어 예수를 사기꾼으로 배척하도록 백성들에게 경고하였다. 예수를 감시하고 그가 말하는 것, 행하는 것을 보고하도록 정탐꾼을 보냈다. 귀하신 구주께서는 이제 분명히 십자가의 그늘 밑에 서 계셨다.”(소망, 213)


[상고할 말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종교적 지도자들 중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성령에 대하여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자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소망, 213)

“선입 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은 주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 J. 와그너]와[ A. T. 죤즈] 두 형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정신에 다분히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특별하신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한 것처럼 저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 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1기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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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11.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청지기 2022.06.05 68
429 10. 야곱의 우물가에서 (2) 청지기 2022.05.28 63
428 9. 야곱의 우물가에서 (1) 청지기 2022.05.21 62
427 8.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청지기 2022.05.14 52
426 7. 니고데모 청지기 2022.05.08 64
425 6. 당신의 성전에서 (2) 청지기 2022.04.30 60
424 5. 당신의 성전에서 (1) 청지기 2022.04.23 64
423 4. 혼인 잔치에서 청지기 2022.04.16 89
422 3.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청지기 2022.04.09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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