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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9분


제10과


야곱의 우물가에서 (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188-195; 요 4:20-42


기억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서론 :  이 여인은[사마리아 여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천적 믿음의 활동을 대표한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선교사로서 태어난다.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물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영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광야에 솟아나는 샘과 같아서, 모든 것을 소성시키고 멸망하여 가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수를 마시기를 열망하도록 만든다.”(소망, 195)


종교적 편견의 장벽을 무너트림

1.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 중에 사마리아인으로서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종교적 우월성의 논쟁은 얼마나 오래된 문제였는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그리심산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그 성전은 파괴되어 그 제단만 남아 있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장소에 대한 문제로 논쟁을 계속해 왔었다. 사마리아인들의 조상 중 얼마는 한때 이스라엘에 속하여 있었으나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게 정복당하도록 버려 두셨다. 그들은 여러 세대 동안 우상 숭배자들과 혼합되었으며 우상 숭배자들의 종교는 점차 이스라엘의 종교를 부정하게 물들여 놓았다. 그들은, 우상들은 그들에게 우주의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믿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들의 새긴 우상을 공경하도록 지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에스라의 시대에 재건되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그 건축에 유대인들과 합류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 특권을 거절당했으며 그 후로 두 국민들 사이에 극렬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이에 필적하는 성전을 세웠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은 모세의 의식에 일치하게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재난들이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성전은 원수들에게 파괴되어 그들은 저주 아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유전과 예배의 형식을 고수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유대인의 종교가 그들의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시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소망, 188)

2.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에게 위탁된 위대한 진리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 주장하는 그 어떤 편견이나 우월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경적 진리임을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1-22)


예수께서는 자신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는 지금 유대인들에 대한 이 사마리아인의 편견을 깨뜨리시고자 하셨다.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이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구원의 위대한 진리가 유대인들에게 맡겨졌으며 유대인들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오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그의 정부의 원칙들이 명백히 제시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한 지식을 주신 백성들, 곧 유대인으로 분류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는 사마리아 여인의 생각을 형식과 의식 문제나 쟁론의 문제들을 초월하게 만드시기를 바라셨다.”(소망, 188-189)

성령과 진리로만 성립되는 참된 경배(예배)

3.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도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론과 형식이 아닌 진리의 기초와 원칙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참된 예배의 기초 역시 거듭남의 진리와도 어떻게 일치하며, 이것은 둘 다 무엇의 결과인가?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 4:23-24, 킹제임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을 때에 드러내셨던 것과 같은 진리가 여기에 선언되어 있다. 거룩한 산이나 성전을 찾음으로 사람들이 하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종교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이것은 마음을 정결하게 할 것이며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새로운 능력을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즐거이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곧 참된 경배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열매이다.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 작성되며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받을 수 있다. 어디서나 영혼이 하나님을 구하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영혼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배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당신의 아들과 딸로 삼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소망, 189)

4. 그 여인은 화제를 바꾸었음에도 어떻게 점점 더 깊이 감동되었으며, 무엇을 깨닫기 시작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그 여자는 예수와 이야기할 때에 그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 여자는 자기 백성들의 제사장들이나 유대인에게서 이러한 취지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결코 없었다. 자기 생활의 과거가 자기 앞에 펼쳐졌을 때에 그 여자는 자신의 큰 부족을 깨닫게 되었다. 그 여자는 수가의 샘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제까지 접촉하여 오던 어떤 것도 자기의 필요를 이와 같이 크게 깨닫게 해준 적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그 여자의 생애의 비밀을 통찰하셨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신시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예수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친구라고 느꼈다. 예수의 임재하심의 순결이 그녀의 죄를 정죄했으나 그는 책망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당신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예수의 신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했다.”(소망, 189-190)

계시와 생수의 선물 –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5. 그 여인은 대화를 할수록 점점 그분의 정체에 대하여 어떤 분명한 확신을 유발시켰으며, 그분으로부터 어떤 선언을 듣게 되었는가? 그녀가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마침내 그녀에게는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요 4:25-26)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혹시 이분이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메시야가 아니실까? 하는 의문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 여자는 예수에게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이 말을 듣고 그 여인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솟아올랐다. 그 여자는 하늘의 교사의 입에서 나온 그 놀라운 선언을 받아들였다.

이 여인의 마음은 깨달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가장 고상한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의 말씀에 흥미를 느꼈으며 성령께서 더욱 많은 빛을 받도록 그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는 약속을 연구하였었다. 그는 이 예언을 이해하기를 갈망하였다. 빛은 이미 그 여자의 마음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목마른 영혼에게 주시는 영적 생명인 생명수가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역사하고 있었다.”(소망, 189-190)

6.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인 이 여인에게 계시하신 진리의 실체(메시야)를 왜 유대인들에게는 하실 수 없으셨는가?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0-12)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에게 하신 명료한 말씀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하실 수 없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훨씬 더 제한된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후에 제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명하셨던 것이 그 여자에게는 계시된 바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예수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에 그 지식을 활용할 것을 아셨다.”(소망, 190)

“어디서나 사람들이 진리를 받으려고 마음 문을 연 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려고 대기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마음을 읽으시는 그분께 가납되는 예배를 드러내신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들에게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신 것과 같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신다.”(소망, 194)

갈증을 풀어주심으로 갈증을 해소하심

7. 예수님께 육신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하시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원기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먹고 마심보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는가?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1-3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신 당신의 말씀이 그 여자의 양심을 깨우쳤을 때에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주림과 갈증은 채워졌다. 예수께서 하늘을 떠나 이루시기 위해 오셨던 사명이 성취되는 것은 당신의 사업을 행할 능력을 구주에게 주었으며 그에게 인간의 필요를 초월하게 하였다. 진리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섬기는 것은 예수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예수께는 그것이 안위와 원기 회복의 요소였다. 자비심은 그의 영혼의 생명이었다.”(소망, 190-191)

8. 사마리아 여인이 생수를 갈망하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갈망하시는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갈망하신다. 그는 자신의 피로 사신 자들의 동정과 사랑에 주리고 계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희망을 가지시고 그들이 자기에게로 와서 생명을 얻기를 갈망하신다. 어머니가 자기의 어린 자녀에게서 지성의 눈이 트인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그 인정의 미소를 고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고마워하는 사랑의 표현을 고대하시는 것이다.”(소망, 191)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9. 그리스도를 발견한 그 여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녀는 이 충만한 기쁨을 어떻게 증거했는가?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그 여인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 놀라운 계시의 말씀은 그녀를 거의 압도하였다. 그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다른 사람에게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동네로 돌아갔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이 왜 떠나갔는지를 아셨다. 그가 물동이를 버리고 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의 감화가 어떠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영혼의 간절한 소망은 생수를 얻는 것이었다. 그는 우물에 나온 용무도 잊어버렸다. 그는 구주의 목마르심을 채워 드리기 위하여 물을 떠 드리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자기가 받은 귀한 빛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하였다. 그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여인의 얼굴에는 새로운 표정이 있었으며 그녀의 전체의 용모에 변화가 생겼다. 그들에게 예수를 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소망, 191)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의 단순한 믿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게 될 때, 얼마나 놀라운 결과가 순식간에 일어났는가?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 4:39-42)


우물 곁에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좋은 씨가 뿌려져서 그 추수가 얼마나 신속히 거두워졌던가. 사마리아인들이 와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다. 그들은 우물 곁에 계신 예수의 주위에 모여들어서 예수에게 질문의 화살을 퍼부어 그들이 이제까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였던 많은 사물에 대한 예수의 설명을 열심히 받아들였다. 말씀을 듣자 그들이 어렵게 생각하던 문제가 깨끗이 가시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치 암흑 속에서 돌연히 나타난 빛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다가 환한 대낮을 발견한 사람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짤막한 대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듣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에게도 이 놀라운 교사의 말을 들려주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동네에 초청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이틀 동안 사마리아에 체류하셨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소망, 192)

표적이 아닌 예언의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

11. 이 여인을 통해 그리스도께 나온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에 관한 신앙의 기초를 어떤 예언의 말씀 위에 두었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 18:15, 18)

창 12:2-3; 신 32:9; 사 11:10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단순하심을 비웃었다.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무시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표적을 구하지 않았으며 예수께서는 우물가의 여인에게 당신의 생애의 비밀을 드러내신 것 외에는 그들 가운데서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새로운 기쁨으로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 앎이라’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속주로서 오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성령께서 모세를 통하여 예수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로서 예언하였다. 야곱을 통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께로 모인다는 것이 선언되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는 예수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선언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이러한 성경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두었다. 유대인들이 후기의 선지자들의 말을 그릇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을 초림시에 있을 것으로 돌렸던 사실은 사마리아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성경 외에는 모두 버리도록 인도하였다. 그러나 구주께서 이러한 모든 거짓된 해석들을 일소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후기의 예언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받아들였다.”(소망, 192-193)

12.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초청에 응하사 이틀을 머무신 것은 특별히 누구에게 축복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는가? 훗날 제자들은 이 날의 경험을 어떻게 회고하였는가?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머무르신 것은 아직도 유대인의 완강한 고집의 감화를 받고 있던 당신의 제자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조국에 충성하려면 사마리아인들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행위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모본을 따라가기를 거절할 수가 없었으므로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르는 동안 예수에게 충성하여 그들의 편견을 억제하였지만 마음속은 불만이었다. 그들은 경멸과 증오심을 갖는 대신 긍휼과 동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에 느렸다. 그러나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 교훈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되살아났다.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은 후에 그들은 구주의 표정과 그 말씀과 이 멸시받는 외인들에 대한 그의 존중과 친절의 태도를 회고하였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을 때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정신으로 자기의 사업을 하였다. 요한이 에베소와 서머나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는 세겜에서의 경험(수가의 야곱의 우물가에서: 편집자 주)을 기억하고 그들이 직면하여야 할 곤란들을 내다보시고 친히 모본을 보이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하늘의 교사에 대한 감사한 생각으로 충만하였다.”(소망, 193-194)


[상고할 말씀]

구주께서는 회중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으셨다. 그는 흔히 자기 주위에 모인 몇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행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멈추어 서서 듣는 중에 이 하늘에서 보냄을 입은 교사를 통하여 놀람과 경외심을 가지고 무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적은 청중에게도 큰 무리에게 하는 것과 같은 열성을 가지고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별을 듣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화가 얼마나 멀리 미치게 될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구주께서 사마리아 여자 때문에 시간을 소비하시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보기에도 사소한 문제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인과 변론하시기를 왕들이나 고관들이나 제사장들과 변론하시는 것보다 더욱 열심히 더욱 웅변적으로 하셨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하신 교훈은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이르러 반복되어 왔다.

사마리아 여자는 구주를 발견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예수 앞으로 이끌고 나왔다. 그 여자는 자신이 예수의 제자들보다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증명하였다.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훌륭한 선교지라는 것을 나타내는 아무런 표시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은 장래에 마쳐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 바로 주변에 거두어야 할 영혼의 수확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인을 통하여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 그 여자는 그 빛을 즉시로 자기 부락민들에게 전하였다.”(소망, 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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