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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27분


제6과


당신의 성전에서 (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163-166; 요한복음 2:18-22


기억절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서론 :  그리스도를 예표하던 희생 제사는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참된 희생 제물에 눈을 돌렸다. 지상의 제사장 직분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를 바라본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12:24, 9:8-12).”(소망, 166)


놀라운 변화의 광경이 펼쳐진 성전

1. 성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었는가? 그들은 그분께 무엇을 호소했는가?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 21:1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시 26:8-9)


그들은 천천히 생각에 잠겨서 그러나 증오심을 가지고 성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을 떠난 사이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가! 그들이 도망갔을 때에 가난한 자들은 뒤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들은 사랑과 긍휼이 표현된 예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눈물 어린 눈으로, 자신의 주위에서 떨고 있는 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너희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선생님이여, 나를 축복하소서’라는 간절하고도 가련한 호소를 하면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몰려들었다. 그리스도의 귀는 모든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한 어머니의 긍휼보다 더 큰 긍휼을 가지시고 고통당하는 어린 것들을 굽어보셨다. 모든 사람들이 돌보심을 받았다. 각색 병 가진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 벙어리가 입을 벌려 찬송하고, 눈먼 자들이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당하는 자들의 마음은 즐겁게 되었다.”(소망, 162-163)

2.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구원의 계시를 나타내셨으며, 이들은 왜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전할 수밖에 없었는가?

학대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시 74:21)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인들이 이 위대한 사업을 목격하였을 때에 그들의 귀에 들려온 소리들은 얼마나 놀라운 계시였던가! 사람들은 그들이 겪어온 고통, 그들의 깨어진 희망, 고통스러운 여러 날들과 잠 못 이룬 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망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질 것처럼 보였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치료하여 주셨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짐이 너무나 무거웠으나 나는 돕는 자를 발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다. 나는 그분의 사업을 하는 데 나의 생애를 바치겠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너의 생명을 건지셨다. 네 목소리를 높여서 그를 찬송하라’고 말하였다. 유년들과 청소년들, 아버지 어머니들, 친구들과 목격자들이 목소리를 모두어 감사의 찬송을 드렸다. 소망과 기쁨이 그들의 마음을 채웠다. 평화가 그들의 마음에 깃들었다. 그들은 심신을 치료받고 고향에 돌아가서 각처에서 예수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선전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에 이와 같이 나음을 입었던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치던 폭도들에게 가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를 동정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놀라우신 능력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구주 되심을 알았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파하는 말씀을 들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사자들이 되었으며 그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소망, 163)

표적을 보고도 표적을 요구함

3. 성전에서 도망갔던 무리들은 어떤 예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께 무엇을 요구하였는가?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 2:18)


그들은[성전에서 도망갔던 무리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놀랐으며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았다. 성전을 더럽힌 죄는 주로 제사장들에게 있었다. 성전 뜰이 시장으로 변하게 만든 것은 제사장들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백성들은 비교적 무죄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거룩한 위엄에 감명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영향은 더욱 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일종의 혁신으로 간주하고, 성전의 주관자들이 허용한 것을 간섭하실 권리가 예수에게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장사가 방해를 받았으므로 감정이 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호소를 짓눌러 버렸다.

어느 누구보다도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이는 그들의 손 안에 그리스도의 사명을 묘사한 성경 두루마리가 있었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일은 초인간적 능력의 현현임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를 심히 미워하였으나 예수가 성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두려움에서 생긴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은 예수에게 가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질문했다.”(소망, 163-164)

4.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비유로 답변하셨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유대인들은 이 답변을 어떤 구실로 삼았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예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셨었다. 그들의 마음을 빛으로 환하게 하고 메시야가 하리라는 이적을 그들 앞에 행하심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주셨었다. 이제 그들이 표적을 요구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한 비유로 대답하심으로 그가 저들의 악의(惡意)를 읽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그 악의가 결국 그들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를 아셨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이중의 뜻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성전과 예배가 파괴될 것을 언급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 곧 성전 된 당신의 몸이 파괴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미 이 일을 음모하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성전에 돌아왔을 때에, 이미 그들은 예수를 죽임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제거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 앞에 그들의 계획을 드러내셨을 때에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예수의 말씀을 예루살렘의 성전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분노하여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고 외쳤다. 이제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었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거절할 것을 다짐했다.”(소망, 164)

믿는 자들을 위한 증거

5.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이 원수들에 의해 어떻게 사용될 것을 알고 계셨는가?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 2:23-24)


그리스도께서는 불신하는 유대인들이나 심지어 당신의 제자들까지도 이 때에 자기의 말을 깨닫기를 의도하지는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원수들에 의해 곡해되고 그를 정죄하는 데 쓰이리라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그 말씀은 고소의 재료로, 그리고 갈바리에서는 그에 대한 조롱거리로 쓰여질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며, 아직은 감당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슬픔을 그들에게 안겨 주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은 편견과 불신의 결과를 유대인들에게 너무 일찍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었다. 이미 그들은 예수께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되시기까지 그분을 끈질기게 쫓아다닐 길에 들어섰다.”(소망, 164-165)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를 사실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말씀이 되풀이될 것을 아셨다. 유월절에 말씀하신 그 말을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것이며 세계 각처에 전달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그 말씀의 의미가 명백하게 될 것이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었다.

예수의 제자들까지도 그들의 영적 흑암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흔히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일어난 사건들로 인하여 이 교훈들 중 많은 것들을 명백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더이상 그들과 함께 동행하지 않으셨을 때 그의 말씀은 그들에게 지주(支柱)가 되었다.”(소망, 165)

지상 성소 봉사의 완성과 종말

7.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성전과 그 봉사의 신성성은 언제, 어떻게 그들에게서 거두어질 것인가? 그렇게 됨으로써 성전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인가? 

그는 성소가 되실 것이나 이스라엘 두 집에는 넘어지는 돌과 거침이 되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의 거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라.”(사 8:14, 킹제임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 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성격과 그의 사업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다. 희생 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가리켜 왔던 큰 사건이 완성되는 때에 이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모든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줌으로써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절하였을 때, 그들은 성전과 그 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을 거절한 것이었다. 성전과 그 봉사의 신성성은 떠나갔다. 성전은 파괴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날부터 희생 제물과 그와 관련된 의식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가인이 드린 제물처럼 그것들은 구주를 믿는 믿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성전을 실제적으로 파괴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안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진 것은 곧 마지막 크신 제물이 드려졌다는 것과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가 영원히 종말을 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소망, 165)

8. 지상 성소의 원형이셨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에 의해 무너졌으며, 그 성전을 어떻게 3일 만에 완성하셨는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행 10:39-40)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유대인의 성막은 사람들이 건축했다. 유대인의 성전도 사람이 건축했다. 지상에 있는 것의 원형인 하늘 성소는 인간 건축가가 세운 것이 아니었다.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슥 6:12, 13)라.

그리스도를 예표하던 희생 제사는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참된 희생 제물에 눈을 돌렸다. 지상의 제사장 직분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를 바라본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12:24, 9:8-12).”(소망, 165-166)

하늘 성소 봉사의 두 국면

9. 더럽혀진 지상 성전의 뜰을 정결케 하시고, 번제단의 속죄를 완성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서, 어떤 직분으로 인류를 위한 구속의 완성을 위해 봉사를 계속하실 것인가? 그분께서는 하늘 성소의 첫째 칸에서는 얼마 동안 봉사하실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단 8:1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성전의 봉사가 지상에서 하늘의 성전으로 옮기워지고, 성소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제자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구주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통이 단절되거나 능력이 감퇴되는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한편 그의 성령으로 여전히 지상의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신다. 그는 육안에서는 사라지셨으나 그가 떠나가실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약속은 성취되었다. 예수께서는 당신보다 열등한 교역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위임하시지만 활력을 주는 그의 임재하심은 아직도 그의 교회에 함께 하신다.”(소망, 166)

10. 마침내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성소의 정결과 구속의 완성을 위해 최종적으로 어디에 임하실 것인가? 그분의 마지막 봉사는 왜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가?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말 3:2-5)

단 8:14; 7:13; 말 3:1; 마 25:10


그리스도의 희생과 제사장 직분을 표상하는 구약 시대의 상징적 의식에 있어서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일은 제사장이 하는 연중 봉사 중의 맨 마지막 것이었다. 그것은 속죄의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해 버리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기록책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하시는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최후의 봉사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이 봉사는 조사하는 일, 곧 심판하는 일로써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건이 결정된 후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셨다. 또한 계시록 14장 7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고 한 첫째 천사의 기별은 재림직전에 있을 이 심판을 말한 것이다.”(쟁투 352)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소 문제와 조사심판에 관한 문제를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크신 대제사장의 위치와 사업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을 활용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차지하기를 바라시는 그 위치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은 영혼을 구원하든지 잃어버리든지 할 것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법정에 계류되어 있는 소송 사건이 있다. 각 사람은 크신 재판장을 직접 대면하여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심판이 시작되어 책들이 펴질 것과 마지막 날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서야 할 엄숙한 광경에 대하여 각 사람은 다니엘과 같이 자주 심사숙고하는 것이 참으로 긴요하다.”(쟁투, 488)


[상고할 말씀]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서 7장 13절에 묘사된 대로 인자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과 말라기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 등의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직접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랑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쟁투, 426)

“조사 심판과 죄의 도말은 주님의 재림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죽은 자들은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그들의 사건이 심리(審理)되는 조사 심판이 마치기 전에는 그들의 죄가 도말될 수 없다. 사도 베드로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 20)라고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는 때에 믿는 사람들의 죄가 도말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조사심판이 마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때에 모든 사람에게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쟁투,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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