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6 20:57

4. 혼인 잔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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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혼인 잔치에서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144-153; 요한복음 2:1-11


기억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사 43:10)


서론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비록 인간이지만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임을 증거할 때에 기뻐하신다. 그들은 조상(彫像)들이 아니요 살아 있는 남녀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로 말미암아 소생된 그들의 마음은 의의 태양을 향하여 열리고 넓어진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밝게 빛나는 행위로 그들이 받은 빛을 다른 이들에게 반사한다.”(소망, 153)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1. 예수님의 공생애가 30살에 시작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그분의 생애에서모든 사건마다 정해진 때가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눅 3:23)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민 4:23)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 7:8)


이 사람들은 일생 중 육체적으로 가장 혈기 왕성한 시기에 있었으므로 성막과 그 기구들을 운반하는 일에 매우 적합하였다.”(SDA성경주석, 민 4:3)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은 지상 생애 시에 하신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영세 전부터 수립되어 있었던 계획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그 모든 내용의 완전한 계획이 그 앞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씩 인도함을 받았다. 그는 정한 시기에 행동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와 같이 순복하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소망, 147)

“그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구속의 큰 계획을 수행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그는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일을 성취시키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외람되게 행하거나 위험 속으로 달려가거나 위기를 재촉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의 사업에 있어서 사건 하나하나마다 지정된 시간이 있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셔야만 하였다. 그는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으며 그의 사업이 그의 죽음을 초래할 것도 아셨지만 때가 되기 전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었다.”(소망, 451)

2. 어머니의 요구에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돌아가실 것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봉사는 언제 시작하시는 것이 합당한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비교해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 2: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요 2:14-18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이중의 뜻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성전과 예배가 파괴될 것을 언급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 곧 성전 된 당신의 몸이 파괴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 이미 그들은[유대인들] 예수께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되시기까지 그분을 끈질기게 쫓아다닐 길에 들어섰다.”(소망, 164-16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 하나님의 섭리가 국가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충동과 감화의 조류를 지도하여 마침내 구주께서 강림하실 수 있도록 세상의 상태가 무르익었다. 여러 국가가 한 정부하에서 연합되어 있었다. 한 방언이 널리 사용되고 그것이 어디서나 문학적 언어로 인정을 받았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연례적인 절기들에 참여하기 위하여 각처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우거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감으로 온 세상에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소식을 전파할 수 있었다.”(소망, 32)

첫 이적의 목적

3. 예수님께서는 “때가 아직” 아니었지만, 혼인 잔치에서 첫 이적을 베풀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그러나 비록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수를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예수께서 이 믿음에 응답하셨다. 첫 이적을 행하신 것은 마리아의 믿음을 높이고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불신으로 이끄는 많은 큰 시험들을 만날 것이었다. 예언의 말씀들은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히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종교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확신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예수를 받아들이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이적과 그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하였으나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불신과 뿌리 깊은 편견과 예수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놀라고 몹시 실망하였다. 구주의 초기의 이적들은 이 반대에 저항하도록 제자들을 강하게 했다.”(소망, 147-148)

4. 예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포도즙을 공급하심으로써, 혼인 잔치의 손님들에게 세상의 법칙이 주는 선물과는 다른 어떤 선물을 주시고자 하셨는가?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 2:9-10)


사람들이 가장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고 그 후에 나쁜 것을 주는 것과 같이 세상이 주는 선물도 그러하다. 세상이 공급하는 것은 눈을 즐겁게 하고 감각을 황홀하게 하지만 불만족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포도주는 쓴맛으로 변하고 즐거움은 우울로 변한다. 노래와 환락으로 시작하던 것이 피곤과 싫증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선물은 언제나 신선하고 새롭다. 예수께서 사람을 위하여 마련한 잔치는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하는 일이 결코 없다. 새로운 선물마다 받는 자의 재능을 증가시켜서 주님의 축복을 이해하고 누리게 한다. 그는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신다. 공급이 그치는 일은 결코 없다. 만일 당신이 예수 안에 거한다면 오늘 풍성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은, 내일은 보다 더 풍성한 선물을 받게 되리라는 보증이 되는 것이다. 나다나엘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법칙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나타내실 때마다 잘 받아들이는 심령에게 ‘네가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 1:50)고 선언하신다.”(소망, 148)

충분하고도 완전한 선물

5.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에서 주신 선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 선물은 무엇을 위하여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는가?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 하시매 갖다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 2:7-9)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에서 주신 선물은 한 상징이었다. 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는 침례를, 포도주는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항아리를 채운 물은 인간의 손에 의하여 운반되었으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생명을 주는 효력을 그 물에 부여할 수가 있었다. 구주의 죽음을 가리키는 의식들도 역시 그러하다.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의식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효력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잔치를 위하여 충분한 음료를 공급하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공급하심이 풍성하여 사람들의 죄악을 도말하고 영혼을 소생시키고 붙들어 준다.”(소망, 148-149)

6.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참석하신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이적을 통하여 나누셨던 최상의 포도즙과 지상 공생애의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나누셨던 잔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 표상은 언제 완전히 성취될 것인가?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참석하신 첫번 잔치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업을 상징하는 잔을 그들에게 주셨다. 마지막 만찬에서 그 잔을 다시 주시고 그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고전 11:26) 전하게 될 성스러운 의식을 제정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고 말씀하셨을 때에 주님과 이별하는 제자들의 슬프던 마음은 재회(再會)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를 위하여 준비하셨던 포도주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의 상징으로서 주신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즙이었다.”(소망, 149)

혼인 관계

7. 혼인 관계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 54:5)


혼인 관계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부드럽고 신성한 결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의 기쁨을 그가 자기의 신부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는 날, 구원받은 자들이 구주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식탁에 앉을 그 날의 기쁨을 예표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 오직 너를 헵시바라 …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 것임이니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사 62:5, 4; 습 3:17)고 그는 말씀하신다. 사도 요한은 하늘의 사물에 대한 이상을 보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6, 7, 9).”(소망, 151)

8.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서 하나님과의 혼인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예수님의 재림 전에도 일어날 동일한 배도에 대하여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렘 3:8)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3)


한편 각 나라에서 온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봉헌된 성전을 찾았다. 금과 보석으로 빛나는 그 성전은 아름답고 장엄하게 보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아름다운 궁전에 더 이상 계시지 아니하셨다.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스스로 이혼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 봉사의 끝이 가까웠을 때에 마지막으로 성전의 장식을 바라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 지금까지 그분은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에서 나가시자, 하나님의 임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건축된 성전에서 영원히 거두어졌다.”(행적, 145)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 그는 성전 경내에서 행하던 모든 신성 모독적인 것들을 일소하셨다. 그의 봉사의 마지막 사업들 중에는 성전을 두 번째로 정결케 하신 일이 포함되어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을 경고하시는 마지막 사업 중에도 교회들에게 두번의 뚜렷한 호소를 보내시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의 큰 외침 속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려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하신다(리뷰 1892. 12. 6).”(화잇주석, 계 18:1-5)

예수의 증인

9. 예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는가?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요 1:4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7)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 14:12)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은 개인적인 접촉과 교제에 의한 것이었다. 때때로 그는 산기슭에서 그들 가운데 앉으셔서 가르치셨으며 때로는 바닷가에서 혹은 함께 길을 걸으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오묘를 드러내셨다.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설교하지 않으셨다. 심령의 문이 열려서 하늘의 기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든지 그는 구원의 길에 대한 진리들을 말씀하셨다. 그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것을 하라거나 저것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촌락과 도시들을 두루 여행하시면서 그들을 데리고 다니신 것은 그가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를 그들로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들의 관심에 자기의 관심을 연결시키셨으며 그들은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일을 하였다.”(소망, 151-152)

10.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어떤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는가?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행 10:38-39)


우리는 모두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된 사교적 능력은 영혼들을 구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이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에 열중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우리의 축복과 특권을 나누어 갖기를 원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로 보게 하라.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무정하고 가혹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로 보게 하라. 그리스도를 찾았다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셨던 것처럼 봉사하라.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이란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거짓된 인상을 세상에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눈이 예수께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인정 많은 구주를 볼 것이며 그의 용모에서 빛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다스리시는 곳마다 화평이 머물고 기쁨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평온하고 거룩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소망, 152-153)


[상고할 말씀]

인류의 관심에 그 자신을 연합시키신 그리스도의 모본은 그의 말씀을 전파하고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사교적인 교제를 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르기 위해 그들을 있는 그곳에서 만나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는 일은 드물 것이다. 설교에 의해서만 사람의 마음이 진리에 접촉되는 것은 아니다.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으나 매우 유망한 활동의 분야가 있다. 그것은 낮은 자의 가정에서, 위인들의 저택에서, 접대하는 식탁에서, 순수한 사교적인 오락을 위한 모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소망,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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