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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132-143; 요한복음 1:19-51; 마태복음 3:1-12


기억절 :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 1:49-50)


서론 :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증언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스스로 보도록 요구하였다. 예수께서는 이제 하늘에 올라가 계시므로, 그 제자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대표자로 선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실증하는 것이다. 다른이에게 끼치는 우리의 감화는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사람됨에 더 크게 좌우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논리에 도전하고 반박하고 우리의 호소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심없는 사랑의 생애는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다.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으로 특징지워진 언행 일치의 생활은 세상에서 한 능력이 되는 것이다.”(소망, 141-142)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1. 그리스도의 전주자(前走者)로 온 침례 요한의 기별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얼마나 파급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반면에 백성들 전반에서는 어떤 기대가 만연했는가?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


요한의 복음 선포는 종교계 당국자들의 주목을 이끌 만큼 국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 요한은 자기의 사업에 대한 산헤드린의 재가를 얻으려고 애씀으로써 산헤드린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관원들과 백성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똑같이 견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를 열렬하게 따랐다. 요한의 사업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증대되어 가는 듯이 보였다.”(소망, 132-133)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어진 지도 오래 되었으며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그러한 개혁을 경험한 지도 오래 되었다. 죄를 자복하라는 요구는 새롭고도 놀랍게 보였다. 지도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은 생애의 은밀한 것들이 폭로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요한의 호소와 책망의 말을 가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이 전한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직접적인 선포였다. 메시야의 강림을 다루고 있는 다니엘의 70주일(週日)에 관한 예언이 거의 끝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 당시 기대하던 국가적 영광의 시대에 참여하기를 열망하였다.”(소망, 133)

2. 산헤드린[공회]에서 보낸 대표자들과의 대화에서 요한은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이사야의 어떤 예언을 통해서 설명했는가?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 40:1-5)

요 1:20-23


옛날에는 왕이 자주 다니지 아니하는 그의 영토 내의 지역을 여행할 때에는 일단의 사람들을 왕의 수레보다 앞서 보내어 험준한 비탈을 평평하게 하며 우묵한 곳을 메우게 함으로 왕이 안전하게, 장애 없이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선지자는 복음 사업을 예증하기 위하여 이 관습을 인용하였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리라. 하나님의 영이 그 기이한 일깨우는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지실 때에 인간의 교만심은 낮아진다. 세상의 쾌락과 지위와 권세는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 10:5) 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그토록 과소 평가되던 겸비와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높여진다. 이것이 바로 복음 사업이요 요한의 기별도 그것의 일부였다.”(소망, 135)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3. 랍비들은 메시야가 강림하시기 전에, 누가 직접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가?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마 17:10-12)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

눅 9:11-13


그들은 또한 메시야가 강림하시기 전에 엘리야가 직접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요한은 이러한 기대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보다 깊은 뜻이 있었다. 예수께서 후에 요한에 대하여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엘리야가 행하던 사업을 하기 위하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 만일 유대인들이 그를 받아들였다면 그들을 위하여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예언은 성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었다. 요한은 자기가 성취시키기 위하여 왔던 사명을 그들을 위하여 성취시킬 수 없었다.”(소망, 135)

4.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으나, 엘리야의 개혁 때와 달리 왜 그 결과가 극히 미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늘날도 그러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요단강에 모였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시는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 주어진 표적은 그들 중 몇 사람에게만 나타났었다. 그 이전의 침례 요한의 몇 달 동안의 봉사 기간에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부름에 유의하기를 거절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여졌고 이해력은 어두워졌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에 하늘이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하였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본 적이 없는 눈은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보지 못하였으며,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는 귀는 그 증언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와 같다. 그리스도와 섬기는 천사들의 임재가 회중 가운데 나타나는 때가 종종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평상시와 다른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구주의 임재하심이 드러난다. 화평과 기쁨으로 마음은 활기를 얻는다. 그들은 안위와 용기와 축복을 받는다.”(소망, 135-136)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 첫 제자들

5. 침례 요한의 제자로서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찾아간 첫 제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이 그분을 찾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 1:35-37, 40)


이튿날 두 제자가 곁에 서 있을 때 요한은 다시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계신 것을 보았다. 요한의 얼굴은 다시 보이지 않는 분에게서 오는 영광으로 환하여졌다. 이어 그는 이렇게 외쳤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말은 제자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는 데 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칭호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그러나 요한 자신은 그 말을 설명하지는 않았었다.

그들은 요한을 떠나서 예수를 찾으러 갔다. 둘 중의 하나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였고 다른 하나는 전도자 요한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충동에 움직여 그들은 예수를 따랐다. 이는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기를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과 침묵 속에서 ‘이분이 메시야인가?’라는 중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소망, 138)

6. 요한과 안드레가 그리스도를 찾아가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요 1:38-39)


그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그분(메시야)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랍비여(당신은)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부르짖었다. 길가에서의 잠시 동안의 면담으로는 그들이 바라던 것을 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와 따로 만나서 그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 듣기를 원하였다.”(소망, 138)

“요한과 안드레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불신의 정신을 갖고 있었더라면 예수의 발 아래서 배우는 자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판단하는 비평가로서 그에게 나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 가장 귀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이 첫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침례 요한이 전도할 때에 성령의 부르심에 반응하였다. 그들은 이제 하늘의 교사의 음성을 알아보았다. 그들에게 예수의 말씀은 신선함과 진리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의 조명(照明)이 구약성경의 교훈을 비추었다. 진리의 다방면의 주제들이 새로운 빛 속에서 솟아올랐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지식의 열쇠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안’(요일 4:7)다.”(소망, 139)

첫 제자들의 전도 –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7. 예수님의 첫 제자인 안드레는 그분을 만난 기쁨을 누구에게 전했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0-42)


안드레는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기쁨을 나누어 주려고 하였다. 그는 그의 형제 시몬을 찾으러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리쳤다. 시몬은 두 번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 역시 침례 요한의 전도를 들었었다. 그는 구주께로 급히 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주목해 보시고 그의 성품과 생애의 역사를 읽으셨다. 그의 충동적인 성질, 그의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마음, 그 야심과 자만, 그의 타락과 회개와 활동과 순교의 죽음의 역사 등 이 모든 것을 구주께서는 읽으셨다. 그러고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고 말씀하셨다.”(소망, 139)

8.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제자 중 하나로 부르셨다. 그는 또 누구에게 메시야를 전했는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의혹과 선입견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3-45)


빌립은 나다나엘을 불렀다.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지적할 때에 무리들 가운데 있었다. 나다나엘은 예수를 보자 실망하였다. 수고와 빈곤의 흔적을 지닌 이 사람이 과연 메시야일까?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를 거절하기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의 기별이 그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는 기별은 나다나엘에게 자기의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으로 보였다. 그러나 빌립은 아직까지도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의심을 품은 말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다나엘의 마음속에 다시 선입견이 일어났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하였다.

빌립은 논쟁하지 않았다. 그는 ‘와보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은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것으로 충분하였다.”(소망, 140)

그리스도 교회의 시작 – "빛의 통로"

9. 나다나엘의 위대한 믿음의 고백은 진리를 탐구하는 어떤 자세의 결과였는가?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


무화과 나무 아래서 홀로 기도하던 나다나엘에게 증거하였던 하나님의 영이 이제는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셨다. 의혹을 가지고 어느 정도 선입견에 빠져 있기는 했지만 나다나엘은 진리를 찾는 정직한 욕구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나왔다. 이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의 믿음은 자기를 예수께로 인도한 자의 믿음을 능가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이 랍비들의 지도를 신뢰했더라면 그는 결코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제자가 된 것은 스스로 보고 판단함에 의해서였다. 오늘날 선입견을 가지고 선으로부터 물러서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러하다. 만일 그들이 ‘와 보’면 그 결과는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인간적인 권위의 지도를 신뢰하는 한 아무도 진리의 구원하는 지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다나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고 성령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나다나엘을 보신 분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우리도 보실 것이다. 빛의 세계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겸손하게 하늘의 지도를 구하는 자들 가까이에 있다.”(소망, 140-141)

10.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 전도의 시작은 “와 보라”는 그리스도의 모본으로부터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로 그대로 전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모본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빛의 통로가 되도록 부르셨는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6-7)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초는 요한, 안드레, 시몬,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름으로 시작되었다.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 중 하나인 안드레가 그의 형제를 찾아 그를 불러 구주께로 인도하였다. 빌립은 부름을 받자 나다나엘을 찾으러 나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서 우리의 인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직접적인 호소를 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배워야 한다. …

…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업은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사람이 회개하면 즉시로 예수가 자기의 귀중한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려 주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생긴다. 구원하며 성화시키는 진리는 마음속에 가두어 놓을 수 없다.

하나님께 헌신한 모든 사람은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대리자로 삼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은혜의 부요함을 전하게 하신다. …

그리고 다른 이에게 빛을 주려고 하는 사람 자신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겔 34:26),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없이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의 기쁨, 곧 그의 희생을 통하여 구속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소망, 141-142)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의 교훈은 확신과 경험이 함께 어우러진 말씀의 표현이었으므로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는 자들은 하늘의 명령을 따른 교사들이 된다. 말씀을 통하여 성화된 사람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능력 즉 청중들의 마음을 말씀에 매력을 갖도록 만들고 그들로 말씀이 살아있는 실재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며 받아들일 때에 그는 이것을 그의 태도와 그의 어조로 설득력 있게 드러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듣고, 보고, 만져보았던 생명의 말씀을 알게 하여 다른 이들도 그리스도의 지식을 통하여 그분과 교제하도록 할 것이다.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이 닿은 입술에서 나오는 증언은 잘 받아들이는 마음에 진리가 되어 품성을 성화시킨다.”(소망,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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