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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44분


제4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43-49; 누가복음 2:1-20


기억절 :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서론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사단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연약함을 가진 무력한 어린 아기로 오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을 허락하셨다. …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 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은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인생의 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은 여기 있’다. 기이하도다, 하늘이여! 놀랍도다, 땅이여!”(소망, 49)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신 이유

1.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인성을 취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인성을 취하셨다. 그의 지상에서의 환경은 거칠고 험악하였다. 그의 영광이 가리워졌던 것은 그의 외양의 위엄이 주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모든 외적 장식을 피하셨다. 재물, 세상의 명예, 인간적인 위대함은 결코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어떤 세속적 성질의 매혹물로 사람들을 그의 편으로 이끌려고 하지 않으셨다.”(소망, 43)

2. 구원의 기별은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백성들은 무엇을 보고 그분을 따라갈 수 있는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오직 하늘의 진리의 아름다움만이 그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을 이끌어야 하였다. 메시야의 품성은 오래전부터 예언되어 왔었던 바,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에 기초해서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소망, 43)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고 있었으므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허락하신 분의 오심을 선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가의 예언은 그분의 출생지를 알려 주었고(미 5:2), 다니엘은 그분의 초림의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단 9:25).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런 예언들을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실을 백성들에게 전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핑계할 수는 없었다.”(쟁투, 312-313)

그분을 영접할 준비

3.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그분의 강림이 임박했음을 미리 알려주는 어떤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졌는가?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구속주를 환영할 준비가 되었는가?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

눅 1:5-25


천사들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경륜을 보고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성을 쓰신 하나님의 아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주목하여 보았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땅에 왔다. 다른 민족들은 우화를 경배하고 거짓 신들을 경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예언의 빛이 비치었던 땅에 천사들이 왔다. 천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게 찾아갔다. 제사장 사가랴가 제단 앞에서 봉사할 때에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깝다고 하는 것이 이미 발표되었다. 이미 선구자가 출생하였고 그의 사명이 이적과 예언으로 입증되었다. 그의 출생에 대한 소식과 그의 사명의 놀라운 의미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들의 구속주를 환영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소망, 43-44)

“만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저희의 맡은 책임에 충실하였더라면 그들은 예수의 탄생을 선포하는 그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지나친 바 되었다.”(소망, 47)

4. 그런데도 그들은 오시는 구속주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극소수만이 그분을 맞을 준비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하늘의 사자들은 거룩한 진리의 빛을 세상에 나누어 주라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무관심을 놀라움으로 보았다. 유대 민족은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리라는 것을 증거하는 백성으로서 보존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강림이 이제 임박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성전에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켰지만 거기서까지도 그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유대나라의 제사장과 교사들은 각 시대를 통하여 가장 큰 사건이 이제 곧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무의미한 기도를 외우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예배 의식을 거행하였으나 재물과 세상의 명예를 위하여 다투는 가운데 메시야의 나타나심을 위하여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무관심이 이스라엘 땅에 편만하였다. 이기심과 세상에 몰두한 심령들은 온 하늘을 진동시킨 기쁨에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고자 갈망하고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보내심을 받았다.”(소망, 44)

베들레헴, 에브라다

5. 예수님에 관한 예언 중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탄생하실 장소에 대하여도 어떻게 예언되어 있었는가? 구주께서 탄생하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섭리를 통하여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를 다윗의 고향으로 인도하셨는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6)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있는 그들의 집을 떠나 다윗성을 향하여 여행할 때에 천사들이 그들과 동행하였다. 로마 제국의 거대한 영토 내에 사는 백성들에게 호적을 하라는 명령이 갈릴리 산악 지방의 거주민에게까지 미쳤다. 옛날에 사로잡혔던 주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고레스왕이 세계적인 대국의 왕위에 부름을 받았던 것처럼 가이사 아구스도도 예수의 어머니를 베들레헴에 인도하는 일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킬 한 그릇이 되었다. 예수의 어머니는 다윗의 혈통인데 다윗의 자손은 다윗성에서 탄생해야 했다.”(소망, 44)

6.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통치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지상 최대의 놀라운 예언의 사건을 성취하고 계셨으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정작 구주께서 나시리라고 예언된 성읍 베들레헴은 그분을 어떻게 대했는가?

거기[베들레헴]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6-7)


선지자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고 말하였다. 그러나 왕가의 후손이 살던 성에 왔을 때 요셉과 마리아를 알아보거나 존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피곤하고 쉴 곳이 없어 성문에서부터 성 동편 끝까지 좁은 길을 모두 헤매며 그날 밤을 위한 휴식처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붐비는 여관에는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가축들이 거하는 거친 가옥에 쉴 자리를 발견했으며 이 곳에서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였다.”(소망, 44)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심오하고 경건한 태도로 세계 역사상 최대의 사건, 곧 인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장소, 시기, 환경 등에 관하여 연구를 하고 있었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구속자를 영접하는 최초의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고대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먼 나사렛의 산골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두 사람의 피곤한 여행자는 그 마을의 좁은 길을 동쪽 끝까지 걸어가면서 밤 동안에 쉴 곳과 잘 곳을 찾았으나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열어 주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비천한 한 외양간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거기서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셨다.”(쟁투, 313)

빛을 찾고 기쁨으로 받아들인 자들

7. 예루살렘 백성들이 구주의 탄생에 관하여 무관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주의 탄생을 목격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아기 예수를 만나기 전에 목자들은 누구를 만났는가? 하늘의 사자들은 목자들이 예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눅 2:8)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2)


베들레헴의 언덕 위에는 셀 수 없는 천사의 무리가 모였다.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저희의 맡은 책임에 충실하였더라면 그들은 예수의 탄생을 선포하는 그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지나친 바 되었다.”(소망, 47)

“빛을 찾고 그 빛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밝은 빛줄기가 비췰 것이다.

소년 다윗이 양을 쳤던 들에서 목자들이 밤을 지새우며 여전히 양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고요한 시간에 약속된 구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며 다윗의 보좌에 즉위하실 왕께서 오시기를 기도하였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말을 들은 목자들의 마음은 영광스러운 계시로 가득 찼다. 구주께서 이스라엘에 오신 것이다. 그의 강림은 권세와 존귀와 승리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천사는 빈곤과 초라함 가운데 나신 구주를 그들이 알아보도록 준비시켜야 하였다. 천사는 말하였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늘의 사자는 목자들의 두려움을 진정시켰다. 그는 그들에게 예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소망, 47)

8. 천사들의 기별을 받은 목자들은 곧 어떻게 했으며 무엇을 증거했는가? 이들이 전한 소식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주었는가?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눅 2:15-18)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 2:20)


천사들이 사라지자 빛도 희미해지고 베들레헴 언덕은 다시 밤의 어두움에 싸였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찬란한 광경이 목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았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거기를 떠나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소망, 48)

아기 예수, 기이하신 아버지의 사랑

9.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다. 세상에게 주신 그 독생자는 장성한 아들이 아니라, 여자에게서 태어난 한 아기로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태어나셔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십자가의 희생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도 희생인 이유는 무엇인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 4:4)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5-7)


베들레헴의 이야기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롬 11:33)이 숨기어 있다. 우리는 하늘의 보좌를 구유와 바꾸시고 경배하는 천사들과의 교제를 외양간의 가축과 바꾸신 구주의 희생에 경탄한다. 사람의 자만심과 자부심은 그의 임재 앞에 견책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비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소망, 48-49)

10. 하늘 아버지께서는 독생하신 아들을 4천년이나 죄의 유전의 법칙을 끼쳐온 연약한 어린 아기의 인성으로 세상에게 내어주심으로 세상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사단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연약함을 가진 무력한 어린 아기로 오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가 싸워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을 허락하셨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애의 위험들을 생각하고 떤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사단의 권세에서 보호해 주고 시험과 투쟁에서 벗어나도록 붙잡아 주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 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은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인생의 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은 여기 있’다. 기이하도다, 하늘이여! 놀랍도다, 땅이여!”(소망, 49)


[상고할 말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늘날에도 인류 가족들이 그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에 선포한 선언과 그 때에 울린 선율(旋律)은 끝날이 가까이 이를수록 더욱 고조될 것이며 땅 끝까지 반향될 것이다. 의로운 해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면서 떠오를 때에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라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허다한 무리의 음성에 의하여 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소망, 48)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보수주의적 사상이 자기 동료들과의 접촉을 차단해 버릴 때 특히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될때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동정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위대성의 새로운 국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 보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머리로서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킨 의를 드러낸 거룩한 정부의 원리 가운데 있는 교훈들을 인간에게 가르치셨다.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키는 일에 있어서 죄와의 어떤 타협도 없었으며 공의의 어떤 주장도 무시되지 않았다. 자비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서 각기 제정된 위치가 있는데 자비는 그 자체의 온화하고 관대한 기질을 소멸함이 없이, 또는 그 자체의 동정적인 특성을 상실함이 없이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죄인을 벌하는 데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의는 그 자체의 성실성을 범하지 않고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는 일에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1기별,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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