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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56분


제1과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


[연구범위]

선지자와 왕, 303~310; 이사야 6장


기억절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서론 :  그의 영광, 그 무한하신 능력, 주의 비할 데 없는 위엄이 계시 가운데서 그의 앞으로 지나갔고 그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을 계시하실 때까지도 그가 품고 있었던 모든 것, 즉 놀랄 정도로 깨끗하게 보였던 자신의 내적 불결함이 드러나게 된 것은 이 비교할 수 없는 빛 가운데서였다. 그의 말까지도 자신에게 매우 비열하게 여겨졌다.”(리뷰 1888. 10. 16; 화잇주석, 사 6:1-8) 


웃시야 시대의 외적 번영과 영적 쇠퇴

1. 웃시야 왕의 시대에 유다는 어떤 번영을 누렸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어떤 신앙이 특징을 이루었는가?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 26:4-5)


웃시야(아사랴로도 알려짐; 왕하 14:21)의 오랜 통치 기간 동안에 유다와 베냐민 땅에는 거의 2세기 전 솔로몬이 죽은 후로 어느 다른 통치자가 다스리던 때보다 더 큰 번영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왕은 여러 해 동안 신중히 통치하였다. 왕의 군대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전에 잃어버렸던 영토들을 회복하였다. 도시들을 재건하고 방비를 굳게 하여 인근 민족들 중에서 국가의 위치를 크게 강화시켰다. 통상은 다시 활발해져서 열국의 부가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왔다. 웃시야의 명성이 ‘원방에 퍼짐도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대하 26:15).

그러나 이 외적인 번영은 거기에 상응하는 영적 능력의 부흥이 수반되지 아니하였다. 성전 예배는 전처럼 계속되고 군중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기는 했으나 교만과 형식주의가 점차 겸손과 성실을 대신했다. 웃시야 자신에 대하여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대하 26:16)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선지, 303-304)

2. 웃시야는 통치 말년에 어떤 교만의 정신을 나타내었으며, 그의 참람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어떤 교훈을 가르치는가?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대하 26:17~21 참조


웃시야에게 매우 큰 재난의 결과를 가져온 죄는 참람의 죄였다. …

웃시야는 왕인 자기가 이 같은 책망을 받은 데 대하여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웃시야는 권위를 가진 이들의 연합된 항의를 무시하고 성전을 더럽히지는 못하였다. 분노에 찬 반역에 대해 화를 내면서 거기에 서 있는 동안 그는 돌연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다.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다. 그는 당황하여 도망하였고 결코 다시는 성전 마당에 들어올 수 없었다. 웃시야는 몇 년 후 그가 죽을 때까지 문둥병자가 되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는 명백한 말씀을 떠난 어리석음의 산 모본이 되었다. 그의 높은 지위와 그의 오랜 봉사의 생애도 그의 치세의 말년을 더럽히고 자신에게 하늘의 형벌을 초래한 참람된 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었다.”(선지, 304)

“(대하 26:16-21 인용) 웃시야 왕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참람죄를 어떻게 벌하시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 주께서 교회 내의 어떤 지위에 사람들을 임명하시고 주께서 그들에게 지정하신 자리에서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주께서 그들에게 상당한 성공을 안겨 주었을 때, 교만하지 말고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나님은 그 일에 그를 부르시지 않았다(리뷰 1900. 8. 14).”(화잇주석, 대하 26:16-21)

이사야의 부르심과 유다의 전망

3. 이사야는 언제 부르심을 입었으며, 그의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망은 어떠했는가?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사 1:7-9)


웃시야의 통치가 거의 끝나가고 요담이 이미 많은 국사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에 왕족인 이사야는 아직 청년이었으나 선지자의 임무에 부르심을 받았다. 이사야가 일하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위험이 따르고 있었다. 선지자는 북방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범하는 것을 목격해야 하였다. 그는 자기 나라의 중요한 도시들 앞에 진친 앗수르 대군을 바라보아야 하였다. 그의 생존시에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이스라엘 열 지파는 열국 중에 분산될 것이었다. 유다는 거듭거듭 앗수르 군대의 침략을 받을 것이었으며 예루살렘은 포위될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중재하시지 않으셨다면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을 것이었다. 이미 큰 위험이 남방 왕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보호가 제거되고 있었으며 앗수르 군대는 유다 땅을 덮으려고 하였다.”(선지, 305)

4. 외부적으로 큰 위기들을 초래한 유다 백성들의 어떤 특성의 죄들이 얼마나 널리 퍼져있었는가?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사 1:21-23)


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위험이 비록 압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 오는 위험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여호와의 종을 가장 큰 곤란과 가장 깊은 의기소침에 빠지게 한 것은 그의 백성들의 완고함이었다. 열국 중에 횃불을 든 자로 서야 할 그들이 배도와 반역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자청하고 있었다. 북방 왕조의 신속한 멸망을 촉진했고 최근 호세아와 아모스가 분명한 말로 탄핵했던 많은 죄악들이 유다 왕국을 신속히 부패시키고 있었다.

특별히 백성들의 사회적 상태에 관해서는 전도가 암담하였다. 사람들은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고 있었다(사 5:8 참조). 공의는 왜곡되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

억압과 풍부함과 함께 교만과 허식을 사랑하는 것과(사 2:11, 12, 3:16, 18-23 참조) 크게 술 취함과 경쟁의 정신이(사 5:22, 11, 12) 들어왔다. 이사야의 시대에는 우상숭배 자체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사 2:8, 9 참조). 불법적인 행위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매우 성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 충실한 적은 무리들은 용기를 잃고 낙담과 절망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가고 반역적인 민족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당할 것처럼 보였다.”(선지, 305-306)

지성소의 영광의 계시

5. 이사야가 그의 과업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백성들의 완고한 저항을 감당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절망 중에 있을 때에 그에게 어떤 계시가 주어졌는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 6:1-4)


이사야가 성전 주랑(柱廊) 아래 서 있을 때에 이와 같은 생각들이 그의 마음속에 몰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성전문과 안 휘장이 들렸거나 걷어치운 것처럼 보이며 선지자가 그의 발을 거기에 들여놓지 않았는데도 지성소 내부와 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앞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의 계시가 나타났고 한편으로는 당신의 영광의 수종자들이 성전에 충만하였다. 보좌 양편에 스랍들이 공중을 날며 경외심으로 저들의 얼굴을 가리웠다. 그들이 창조주 앞에서 섬기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연합하여 엄숙하게 기도할 때에 성전 기둥과 백향목 문이 그 소리로 인하여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 집은 그들의 찬사(讚辭)로 충만하였다.”(선지, 307)

“이사야는 빛나는 스랍들이 보좌 앞에서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고 노래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은 이 예언이 미래에 성취될 것에 관한 것이었다.”(선지, 313)

6. 그에게 계시로 보여진 영광의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

사 6:1~8 참조


주께서는 성소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성소를 떠나실 때에 그 영광도 함께 떠난다. 그 영광은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밖에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의 시은좌 위에 머물러 있던 영광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눈에 보이는 장막(pavilion), 곧 쉐키나였다. 이사야가 본 것은 이 영광이었다(사 6:1-8 인용)(원고 71, 1897).”(화잇주석, 사 6:1-8)

“… 선지자 이사야는 하늘의 성소와 지성소를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성소의 안쪽 휘장이 걷히고 하늘 위에 높이 들린 보좌가 그의 시야에 나타났다. 보좌에 앉으신 분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이 비쳐 나왔다. 그의 영광이 마침내 땅에 가득할 것처럼 그의 수종자들이 성전을 가득 메웠다. 그룹들이 크신 왕의 수종자들로서 시은좌의 양 옆에 열석하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그들에게 둘리워진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찬양의 노랫소리가 깊고 열렬한 경모하는 음조로 울려 퍼질 때, 마치 지진이 나듯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였다. 이 거룩한 천사들은 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입술로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렸다. 그가 창조주께 늘 드리는 힘없는 찬미와 스랍들의 열성적인 찬미를 대조해 볼 때, 그 선지자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부끄러웠다. 잠깐 동안이나마 그는 여호와의 고상한 품성의 흠없는 순결에 접하는 숭고한 특권을 가졌다.”(리뷰 1888. 10. 16; 화잇주석, 사 6:1-8)

은혜의 계시로 변화됨(선물)

7. 계시를 통하여 이사야는 어떤 감동으로 충만해졌는가?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그의 영광, 그 무한하신 능력, 주의 비할 데 없는 위엄이, 계시 가운데서 그의 앞으로 지나갔고 그의 영혼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을 계시하실 때까지도 그가 품고 있었던 모든 것, 즉 놀랄 정도로 깨끗하게 보였던 자신의 내적 불결함이 드러나게 된 것은 이 비교할 수 없는 빛 가운데서였다. 그의 말까지도 자신에게 매우 비열하게 여겨졌다. 

… 깊은 겸비 가운데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서 …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것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미덕으로 생각하는 자발적 겸비나 비굴한 자책과는 다르다. 이런 모호한 가짜 겸비는 교만과 자만으로 가득찬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말로는 자신들을 비하시키나, 그러한 행동들이 사람들로부터 찬양과 칭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실망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죄에 대한 자각은 순수한 것이었다. 흠과 약점을 지닌 인간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그 거룩성과 그 영광의 빛 가운데 드러나 비교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완전히 무능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느꼈다.”(리뷰 1888. 10. 16; 화잇주석, 사 6:1-8)

8. 곧바로 어떤 선물과 어떤 변화가 그에게 이르러왔으며 기별자로서의 사명의 자격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6-7)


지성소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 서서 그는 만일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과 무능함을 그대로 버려 둔다면 그는 전혀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 스랍이 고통 중에 있는 그를 구원하고 그로 그의 큰 사명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제단에서 취한 타오르는 숯불을 그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말하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였으며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7, 8)라고 응답하였다.”(선지, 307-308)

“이사야는 주의 영광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가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을 보고, 그분의 위엄을 보고 난 후에 가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하시는 한 기별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자신이 그 일에는 전연 자격이 없음을 느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격이 없는 자라고 생각케 하였을까?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기 전에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였을까?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로운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군의 주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을 때, 자신에 대한 화를 선언했고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임을 절감하여 부르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입술에 제단의 핀 숯불을 대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리뷰 1889. 6. 4).”(화잇주석, 사 6:1-7)

준비된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기별

9. 이사야에게 백성에게 전할 어떤 엄숙한 경고의 기별이 위탁되었으며, 그의 기별은 어떤 난세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럽게 증거되어야만 했는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

사 6:11~12 참조


선지자의 임무는 분명하였으며 그는 음성을 높여 성행하는 죄악을 꾸짖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어떤 희망의 보증이 없이는 사업에 착수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묻기를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당신의 선민 중에 아무도 깨닫고 회개하고 고침을 받을 사람이 없나이까’ 하였다.

죄 많은 유다를 위한 그의 영혼의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의 사명이 전혀 결실이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세대 동안 증가되어 온 죄악들이 그의 시대에 제거될 수는 없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참을성 있고 용기 있는 교사 곧, 비운의 선지자인 동시에 희망의 선지자가 되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목적은 마침내 성취되고 그의 노력과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사자들의 모든 수고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날 것이다. 남은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경고와 호소의 기별이 반역한 민족에게 전하여져야 하였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릴 중한 형벌 곧 전쟁, 추방, 억압, 열국 중에서의 권력과 명성의 상실 등 이 모든 일들은 그 가운데서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북방 왕국 열 지파는 곧 열국 중에 분산되고 그들의 성읍들은 황폐될 것이다. 파멸을 자행하는 적국의 군대가 거듭거듭 저희 나라를 휩쓸 것이며 예루살렘까지도 마침내 함락되고 유다도 사로잡혀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은 영원히 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선지, 308-309)

10. 이사야의 충성스런 오랜 봉사의 결과로 성취하게 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사 10:22)


하나님의 목적이 마침내 성취될 것이라는 이 같은 보증은 이사야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세상의 권세들이 유다를 모두 반대한들 어떠랴! 여호와의 사자가 반대와 저항을 당한들 어떠랴! 이사야는 만주의 주이신 왕을 보았고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란 스랍의 노래를 들었다. 타락한 유다에게 주신 여호와의 기별에 회개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수반될 것이므로 이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사업을 행할 용기를 얻었다. 이사야는 힘들고도 긴 사명의 기간을 통하여 언제나 이 계시를 기억하였다. 그는 60년 이상이나 유다 자손들 앞에서 희망의 선지자로 서서 교회의 미래의 승리에 대해 점점 더 담대하게 예언하였다.”(선지, 310)


[상고할 말씀]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영광을 보았을 때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부르짖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하였다. 이사야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질책해 왔지만 이제 그가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선고를 내린 것과 꼭같은 정죄하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그는 차갑고 생기없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주의 이상이 그에게 주어질 때까지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가 성소의 위엄과 거룩함을 보았을 때 그의 지혜와 재능들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로 보였는지! 거룩한 봉사를 하기에는 자신이 얼마나 부적합한지! 이사야가 자신을 본 이러한 견해를 바울의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민 중에 당황하는 이사야에게 위로의 말이 주어졌다(사 6:6, 7 인용).

이사야에게 주어진 이상은 말세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를 상징한다. 믿음으로 그들은 지금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는 특권들을 받았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었다.’ 믿음으로 그들이 지성소를 보고 그곳에서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볼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입술이 부정한 백성, 곧 그들의 입술은 자주 헛된 것을 말하고 그들의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별하지 않고 그 영광을 위해서 쓰이지 않는 자들임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연약하고 무가치함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인격의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대조해 볼 때에 당연히 절망감을 느끼겠지만, 이사야처럼 주께서 그들의 마음에 주시기로 계획하신 감명을 받아서 그들의 영혼을 그분 앞에서 겸비히 하면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 언약의 무지개는 보좌 위에 있다. 이사야를 위해서 하신 일을 그들 속에서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구를 들으실 것이다(리뷰 1896. 12. 22).”(화잇주석, 사 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