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08:12

11. 압살롬의 반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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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43분


제11과


압살롬의 반역(1)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727~745; 사무엘하 13~19.


기억절 :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미 7:8-9)


서론 :  가장 쓰라린 학대와 모독 중에서도 겸손과 무아의 정신과 관대함과 유순함을 나타낸 그의 이 같은 경험의 이야기는 그의 온 생애의 경험 중에 가장 고상한 사건 중에 하나이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이 가장 처절한 외적 굴욕을 당하던 이 시간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더 위대한 때는 결코 없었다.”(부조, 738) 


범죄의 결과들 – 2중의 형벌

1. 다윗은 범죄로 자신이 스스로 선고한 심판의 결과를 어떻게 감당해야 했는가? 다윗의 장자인 암논은 어떤 죄를 범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6)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삼하 13:14)

삼하 13:6~13 참조.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비유를 듣다가 ‘저가 …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고 무의식 중에 자기 자신에게 선고를 내렸다. 그는 자신의 선고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의 아들 중 넷은 죽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각인의 상실은 아비의 죄악의 결과이었다.

다윗은 장자 암논의 치욕적인 죄를 형벌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은 채 지나가게 놔뒀다.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인도에 어긋난 암논의 범죄는 그로 이중으로 유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대한 자책을 받은 다윗은 범죄자를 형벌할 수 없었다. …

다윗의 다른 아들들처럼 암논은 이기적 방종에 몰두하였다. 암논은 하나님의 요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의 마음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크게 범죄하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오랫동안 참으셨다. 2년간 그에게 회개할 기회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는 범죄하기를 계속했다. 무서운 형벌의 심판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음에 넘어지고 말았다.”(부조, 727)

2. 암논은 누구에 의해 살해 당했는가? 이 일로 다윗은 어떤 이중적인 형벌을 맛볼 수밖에 없었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맹을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사환들이 그 분부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삼하 13:28-29)

삼하 13:21~27 참조.


그처럼 더럽게 수치를 당한 누이의 당연한 보호자인 압살롬은 최후에 더욱 실수 없이 처치하기 위하여 만 2년 동안 자기의 복수심을 감추어 왔다. 왕의 아들들의 잔치에서 거나하게 취한, 근친상간의 죄를 저지른 암논은 그의 아우의 명령에 따라 살해되었다.

이중의 형벌이 다윗에게 주어졌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무서운 기별이 그에게 전달되었고 ‘왕은 곧 일어나서 그 옷을 찢고 땅에 엎드려지고 그 신복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허겁지겁 예루살렘에 돌아온 왕의 아들들은 저희 아비에게 사실을 밝혀 암논만이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대성통곡하니 왕과 그 모든 신복도 심히 통곡하니라.’ 그러나 압살롬은 그의 외할아버지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망하였다. …

다윗은 암논의 범죄를 처벌하기를 게을리했다. 왕이요 아버지인 그의 불충실과 그 아들이 회개치 않은 까닭에 여호와께서는 사건들이 그 당연한 진로를 따르도록 허락하시고 압살롬을 제지하지 않으셨다. 부모나 통치자가 죄악을 처벌할 의무를 게을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처리하실 것이다. 당신의 제지하시는 능력이 악의 대리자들로부터 조금만 거두어져도 악이 악으로 처벌되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부조, 727-728)

압살롬과의 화해

3. 압살롬은 누이의 일로 형 암논을 살해하므로 복수는 했으나 아버지 다윗에게서는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의 압살롬을 위한 마음을 안 요압은 부자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어떻게 지혜롭게 했는가?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삼하 13:37)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하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소년 압살롬을 데려오라”(삼하 14:20-21)

삼하 14:1~19 참조.


다윗이 암논의 죄를 묵인한 죄의 결과가 이것으로 다 끝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그술로 도망한 후 다윗은 그의 아들이 범한 죄는 어떠한 처벌이 요구된다는 것을 느끼고 그가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왕도 포함되어 있는 뒤얽힌 죄악을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정력과 야망은 있으나 절조가 없는 압살롬은 추방으로 인해 국사에 관여하지 못했으며 얼마 후에 위험스러운 음모에 몰두하게 되었다. 

2년 끝에 요압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 목적을 고려하던 중 그는 지혜롭다는 평판이 있는 드고아 여인의 도움을 얻었다.”(부조, 728)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올 허락을 받았으나 궁전에 나타나거나 그의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다. 다윗은 자녀들에 대하여 방종한 악한 결과를 보기 시작하였고 이 아름답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까닭에 압살롬과 백성들 양편 모두에게 이와 같은 범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줄 필요를 느꼈다. 압살롬은 2 년간 자기의 집에 살았으나 궁전에서는 추방되었다. 그의 누이가 그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녀가 당한 회복할 수 없는 수치를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였다. 백성들의 판단으로는 왕자가 범죄자라기보다 차라리 영웅이었다. 이런 이점을 가지고 그는 백성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 왕이 야망적이요 충동적이요 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하여금 2년 동안이나 소문이 파다한 불평의 씨를 품고 있도록 방임해 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돌아오도록 허락하였으나 자기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한 처사는 압살롬에게 백성의 동정을 사게 하였다.”(부조, 729)

4. 다윗이 도덕적으로 점점 연약하고 우유부단해져 가고 있는 동안, 아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 가로채고 있었는가?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삼하 15:6)

삼하 15:1~5 참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기의 범죄에 대한 기억이 항상 그의 앞에 있어서 다윗은 도덕적으로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범죄하기 전에는 용기 있고 단호한 사람이었으나 이제 그는 연약하고 우유부단하였다. 백성들에 대한 그의 감화력은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천리(天理)를 어긴 아들의 음모를 유리하게 하였다. 

요압의 영향으로 압살롬이 다시 그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어 표면적으로는 화해가 이루어졌을지라도 그는 야망적 음모를 계속하였다. 압살롬은 이제 거의 왕자다운 위엄을 갖추어 병거와 말들과 그의 앞에 달리는 자 50명을 가졌다. 한편 왕은 더욱 은퇴하여 한거하려는 소망으로 기울어지고 압살롬은 부지런히 백성들의 총애를 구하였다.

다윗의 귀찮아 하고 우유부단하게 하는 영향이 그의 신하들에게까지 확대되어서 재판 업무에도 태만과 지체하는 일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압살롬은 교활하게 모든 불만의 원인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였다.”(부조, 729)

압살롬의 반역

5. 그동안 자신의 야망을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해 온 압살롬은 마침내 그의 반역적 음모가 성숙되었을 때 그것을 실행할 곳으로 가기 위해 어떤 구실로 위장하여 왕에게 허락을 받아냈는가?

사 년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삼하 15:7-8)

“그 때에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그 사기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으며”(삼하 15:11)


왕자의 교활한 암시에 선동을 받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빨리 유포되었다. 모든 사람의 입술에는 압살롬을 칭찬하는 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를 나라의 후사로 알고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가 이 높은 신분에 처할 만하다고 자랑스럽게 그를 바라보았고 그를 보좌에 앉히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 … 그러나 아들에 대한 애정에 눈먼 왕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압살롬이 받은 왕자다운 위엄을 다윗은 그의 궁정의 명예 즉 화해에 대한 기쁨의 표시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백성의 마음이 앞으로 올 일에 대하여 준비가 된 것을 보고 압살롬은 각 지파에게 모두 선정한 사람들을 은밀히 보내어 반역에 대한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리고 이제 종교적 예배란 구실로 그의 반역적 음모를 은닉하고자 하였다. 오래 전 그가 유랑하던 때에 한 서원을 헤브론에서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경건에 위안을 받으며 축복을 베풀어 돌려보냈다. 음모는 이제 완전히 성숙되었다. 압살롬의 더할 나위 없는 위선적인 행위는 왕을 눈멀게 할 뿐 아니라 백성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고안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에 대하여 반역하게 되었다.”(부조, 730)

6. 왕의 허락으로 헤브론에 도착한 압살롬은 그의 반역적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어떤 유력한 자를 끌어들였는가? 왕의 모사였던 그가 이 반역에 가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삼하 15:12)


헤브론에 도착하자 압살롬은 즉시 아히도벨을 소환하였다. 그는 다윗의 모사의 두목 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지혜로 평판이 나 있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의 의견은 신의 명령처럼 안전하고 지혜롭다고 생각되었다. 아히도벨은 반역자들에게 가담했고 그의 가담은 압살롬의 사업이 분명히 성공할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하여 그의 깃발 아래 전국 각 곳으로부터 많은 유력한 자들을 끌어들였다. 반역의 나팔이 울릴 때에 왕자의 정탐꾼들은 온 나라에 퍼져 압살롬이 왕이 되고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는 기별을 전하였다.”(부조, 730-731)

“다시 다윗은 그의 재난이 자신의 범죄의 결과임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유능하고 가장 꾀많은 정치적 지도자인 아히도벨의 반역은 그의 손녀 밧세바가 입은 치욕과 그에 따른 가문의 수치를 보복하고자 한 것이었다.”(부조, 735)

전쟁보다 피난을 선택함

7.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는가? 압살롬의  군대가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진격해올 때 다윗은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삼하 15:14)


그동안에 경보는 예루살렘에 전달되어 왕에게 알려졌다. 다윗은 정신이 번쩍들어 자기의 보좌 곁 가까이에서 일어난 반역을 보게 되었다. 그의 친 아들, 그가 사랑하고 믿던 아들이 그의 왕관을 빼앗고 의심 없이 그의 생명을 취하려고 음모하고 있었다. 다윗은 그의 큰 위기에 그처럼 오랫동안 그를 누르던 억압을 떨쳐 버리고 그의 소년 시절의 정신을 가지고 이 무서운 급변을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압살롬은 2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헤브론에서 그의 군대를 소집하고 있었다. 반역자들은 곧 예루살렘 성문에 당도할 것이다. 

다윗은 궁정에서 ‘터가 … 아름’답고 ‘온 세계가 즐거워’하고 ‘큰 왕의 성’(시 48:2)인 수도를 내다보았다. 그는 수도가 살육과 참화를 입을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왕위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에게 도움을 구하여 그의 수도를 보존하도록 저항하게 할 것인가? 그는 예루살렘이 피로 범람하게 할 것인가? 그는 전쟁의 공포가 택하신 성읍에 내리지 않게 하기로 결심했다.”(부조, 731)

8.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불상사를 피하려고 도성을 떠났다. 왕을 도와 피난길에 동행한 사람들은 어떤 자들이었는가?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 …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삼하 15:15, 18)

삼하 15:19~22 참조.


다윗은 겸비하고 슬퍼하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반란으로 자기의 왕좌와 궁전과 하나님의 법궤를 버리고 예루살렘 성문을 나섰다. 백성들은 마치 긴 장례 행렬처럼 비탄에 젖어 그의 뒤를 따랐다. 다윗의 호위병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그리고 잇대의 휘하에 있는 가드 사람 6백명이 왕과 동행하였다. …

잇대는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생사하고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은 이교 신앙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으로 개종한 이들로서 그들은 이제 저희 하나님과 저희 왕에게 대한 그들의 충성을 훌륭하게 증거하였다.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겉보기에 기울어져가는 그의 사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받아들이고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하였다.”(부조, 731-732)

법궤를 옮길 권위

9. 왕의 피난 행렬에 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동행하기 위해 나왔는데 그들은 누구였으며 무엇을 메고 나왔는가?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삼하 15:24)


행렬은 다시 멈추었다. 거룩한 제복(祭服)을 입은 한 무리가 가까이 나아오고 있었다.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이것을 좋은 징조라고 바라보았다. 이 거룩한 분의 상징의 출현이 그들에게 구원과 최후의 승리의 보증이었다. 이 일은 백성을 감동시켜 그들로 용감하게 왕에게 다시 모이도록 할 것이다. 법궤가 예루살렘에 없는 것은 압살롬의 지지자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것이다.”(부조, 732)

10. 제사장들과 함께 법궤를 자신에게 머물게 함으로 유리할 것을 알면서도 다윗이 법궤를 돌려보낸 중요한 몇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삼하 15:25)


법궤를 보자 잠시 동안 기쁨과 희망이 다윗의 마음을 전율케 하였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하나님의 유업을 다스리도록 임명된 통치자로서 그는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왕은 마음에는 개인적 이익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과 당신의 백성의 행복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였다.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시 132:14)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권위 없이는 제사장이나 왕이라도 당신의 임재의 상징을 거기에서 옮길 권리가 없었다. 다윗은 그의 마음과 생애가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하지 않으면 법궤가 성공보다는 차라리 재난의 방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큰 죄는 항상 그의 앞에 있었다. 그는 이 반역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형벌임을 깨달았다. 그의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칼이 이제 뽑혀진 것이었다. 그는 이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거룩하신 주권자의 뜻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나라의 헌법이요 나라의 번영의 기초인 거룩한 율법을 나라의 수도에서 옮기는 것은 그를 위하는 일이 아니었다.”(부조, 732)


[상고할 말씀]

그러나 다윗이 그의 역경의 시간에서보다 더 존경받을 만한 때는 결코 없었다. 이 하나님의 백향목이 폭풍과 폭풍우와 씨름할 때보다 참으로 더 위대했던 때는 결코 없었다. 그는 가장 강력한 적개심으로까지 부풀어오를 수 있었던 날카롭고 격렬한 기질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저지른 불법적인 잘못의 오명에 가슴이 에었다. 치욕이 그의 가슴을 깨뜨렸다고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가 자극을 받아 광란에 빠져 통제 불능의 노여운 감정을 폭발시키고 격한 감정을 터뜨리고 복수의 표정을 나타냈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다윗)와 같은 품성의 특징을 지닌 사람에게서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그런 것들이 그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상한 심령과 눈물로 얼룩진 감정을 가지고, 그러나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그는 자신의 영광이 서린 곳이면서 동시에 죄악이 자행되었던 장소들을 뒤로 하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을 계속한다.”(행실, 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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