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24분


제5과


법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김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581~591; 삼상 3~7장; 살아남는 이들, 186~191.


기억절 :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0-22)


서론 :  그들이 법궤를 하나님과 관련시키지도 않고, 당신의 율법을 순종함으로 당신께서 나타내신 뜻을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에는, 그 법궤가 그들에게 보통 궤짝보다 더 유용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들이 자기들의 신들을 바라보듯이 마치 법궤 자체가 능력과 구원을 가진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들은 법궤에 넣어 둔 율법을 범하였다. 법궤를 숭배하는 그 일이 그들을 형식주의와 위선과 우상숭배로 인도하였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죄악을 버리기까지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수 없으셨다.”(부조, 584)


사무엘에게 위임된 기별

1. 엘리의 집에 관한 경고를 대제사장인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게 직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그 기별은 누구에게 위임되었는가?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삼상 3:10-14)

삼상 3:1~9 참조.


또 다른 경고가 엘리의 집에 주어져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경고를 대제사장과 그 아들에게 직접 전하실 수 없으셨다. 그들의 죄가 빽빽한 구름처럼 당신의 거룩한 성령의 임재를 막았다. 그러나 죄악이 난무하는 중에도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께 충실하였으므로,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엘리의 집에 정죄의 기별을 전달할 사명을 받았다.”(부조, 581)

2. 아이 사무엘이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주어진 기별을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엘리 대제사장에게 전했을 때,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삼상 3:15-18)


사무엘은 그에게 위임된 그처럼 무서운 기별을 생각할 때에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아침에 그는 평상시와 같이 그가 할 일을 하려고 나아갔으나 무거운 짐이 그의 어린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 무서운 경고를 알리도록 명하시지 않으셨으므로 사무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엘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사무엘은 자기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을 받지나 않을까 하고 떨었다. 엘리는 그 기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집에 어떤 큰 재난을 예고하는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사무엘을 불러 여호와께서 나타내신 바를 빠짐없이 말하도록 명했다. 소년은 그의 말을 순종했고 늙은 엘리는 머리 숙여 그 무서운 선고에 겸손히 복종하였다. 엘리는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참된 회개의 열매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였으나 그 죄를 포기하지 않았다.”(부조, 582)

법궤를 빼앗김, 하나님의 섭리

3. 노령의 제사장 엘리는 주어진 기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죄악들을 시정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필요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삼상 4:1, 5)

삼상 4:2~4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고도 대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찬동도 없이 이 원정을 기도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장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4천명 가량이라.’ 사방으로 흩어지고 낙담한 군대가 진으로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말하였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만큼 그들의 죄가 무르익었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죄가 이 무서운 재난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법궤를 진지로 가져가도록 명령하지도 않으셨고 허락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승리가 저희 것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엘리의 아들들이 법궤를 진 중으로 가져올 때 큰 환호성을 올렸다.”(부조, 583)

4. 이 전쟁에서 여호와의 법궤가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전쟁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은 거부하면서도 어떤 착각에 빠질 수 있는가?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0-11)

렘 7:3~7 참조.


일어날 수 있는 재난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재난이 이스라엘에게 내렸다.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겨 원수의 소유가 되었다. 여호와의 임재와 능력의 상징이 저희 중에서 떠났을 때에 실제로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에 대한 가장 놀랄 만한 계시가 이 성스러운 법궤와 연결되어 있었다. 전날에는 이 법궤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기적적 승리를 얻곤 했다. … 그러나 이제 법궤는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이번 경우에는 법궤가 방벽이 될 수 없음이 밝혀졌고 온 이스라엘은 통곡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이 다만 명목상의 신앙에 불과했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신앙의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법궤 속에 간직한 율법도 역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계명을 멸시하고 그 요구를 경시하여, 그들 중에 계시는 여호와의 성령을 슬프게 하였다. 백성들이 거룩한 계명을 순종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시고 당신의 무한하신 능력으로 그들을 위하여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법궤를 하나님과 관련시키지도 않고, 당신의 율법을 순종함으로 당신께서 나타내신 뜻을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에는, 그 법궤가 그들에게 보통 궤짝보다 더 유용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들이 자기들의 신들을 바라보듯이 마치 법궤 자체가 능력과 구원을 가진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들은 법궤에 넣어 둔 율법을 범하였다. 법궤를 숭배하는 그 일이 그들을 형식주의와 위선과 우상숭배로 인도하였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죄악을 버리기까지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수 없으셨다. 

법궤와 성소가 이스라엘 중에 있는 것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심중에 죄악을 품은 자의 요구를 들으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고 기록되어 있다.”(부조, 583-584)

“어떠한 외형적 의식도 단순한 믿음과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다. …

이와같이 자아를 포기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처음 시작할 때에만 할 것이 아니라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매 발걸음마다 거듭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우리 자신 밖에서 오는 능력에 달렸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찾는 일과 끊임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일과 하나님 앞에서 심령을 낮추는 일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실물, 159-160)

“이가봇” –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5. 자녀를 출산하던 비느하스의 아내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어떤 말을 반복하면서 숨을 거두었는가?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19-22)


비느하스의 아내는 남편이 불경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경외한 여인이었다. 시부와 남편의 죽음과 그보다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무서운 소식이 그를 죽게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후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이 불운한 시간에 탄생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즉 ‘영광이 없다’고 명명하고 숨을 거두면서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말을 슬프게 반복하였다.”(부조, 585)

6.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아주 버리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두를 권고하시는 일에 법궤를 사용하셨다.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어디에 두었는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삼상 5:1-6)

삼상 5:4~6 참조.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아주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이방인의 희열을 오랫동안 허락하지도 않으실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형벌하는 도구로써 블레셋 사람을 사용하시고 블레셋 사람을 형벌하는 데는 법궤를 사용하셨다. 과거 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당신을 순종하는 백성들의 힘과 영광이 되시기 위하여 법궤와 동행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는 여전히 법궤와 함께 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공포와 파멸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가장 큰 원수를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불충실을 벌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악인들은 이스라엘이 징계를 당하는 것을 보고 한동안 승리의 개가를 부를지 모르나, 그들도 역시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형벌을 당할 때가 올 것이다. 죄악을 품는 곳에는 어디든지 신속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형벌이 따를 것이다.”(부조, 585-586)

재앙이 주는 교훈

7. 법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우상숭배자들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어떤 진리들이 증거되었는가?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삼상 5:7, 10~12)

삼상 5:8~9 참조.


7개월 동안 법궤는 블레셋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 모든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전에 저희가 법궤를 취하려고 고심했던 것처럼 이제는 법궤를 없애려고 고심하였다.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힘의 근원이 되는 대신에 무거운 짐과 큰 저주가 되었다. 그러나 법궤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나님의 형벌이 따랐으므로 그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부조, 586-587)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얼마나 큰가! 우상을 숭배하는 블레셋 사람과 타락한 이스라엘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을 향유하였다.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은혜가 감사치 않고 반역만 하는 사람들의 길에 고요히 내리고 있었다. 모든 축복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무관심하였다. 인간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참으심이 말할 수 없이 컸으나 그들이 완고하게 회개하지 않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호의 손길을 그들에게서 거두셨다. 그들은 당신의 창조물과 경고와 권고와 책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부조, 587-588)

8. 블레셋 사람들은 마침내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법궤를 옮길 수레는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두 마리의 젖소가 끌게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일에서 그들은 무엇을 분명히 깨달았는가?

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 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삼상 6:7-12)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삼상 6:16)


블레셋 사람 중에는 법궤를 그 본토로 돌려보내는 일을 반대한 자들이 있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자존심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이 백성들을 권하여 바로와 애굽인들의 강퍅함을 본받지 말도록 했다. 그들이 그와 같이 하면 자신들에게 더욱더 큰 고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후에 계획을 즉시 실행하였다. 법궤를 금으로 만든 속건 제물과 함께 새 수레에 실어 법궤의 신성성을 더럽힐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이 수레를 목에 멍에를 멘 일이 없는 암소 두 마리에 메웠다.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보내고 암소들을 저희가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 법궤가 가장 가까운 레위인의 성읍 벧세메스 길을 따라 이스라엘인에게로 돌아가면, 블레셋 사람은 이것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리셨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줄 알리라’고 말하였다. 

마음대로 가도록 놓아 주자 그 암소들은 저희 어린 새끼들을 떼어놓고 울면서 벧세메스 길로 향해 곧바로 나아갔다. 천사들의 손의 안내를 받아 참을성 있는 짐승들은 계속 저희 길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임재가 법궤와 동행하여 지정된 장소에 안전히 도착하였다. … 법궤를 따라 ‘벧세메스 변경까지’ 왔던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 궤를 받아들이는 것을 목격하고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재앙이 멎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의 재난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형벌임을 확신했다.”(부조, 588-589)

부흥과 개혁

9.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법궤로 인하여 어떤 신속한 형벌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에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법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삼상 6:19)

삼상 6:20~7:2 참조.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가 돌아왔다는 기별을 빨리 퍼뜨렸으므로 인근 시골의 백성들이 법궤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법궤를 처음에 제단으로 쓰던 돌 위에 안치하고 그 앞에서 더 많은 희생 제물을 여호와께 드렸다. 만일 예배자들이 저희 죄를 회개하였더라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히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법궤가 돌아온 것이 좋은 일의 전조라고 기뻐한 반면에 법궤의 신성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 없었다. 그들은 법궤를 받아들일 적당한 장소를 준비하는 대신에 그것을 추수하는 들판에 방치해 두었다. 그들은 계속하여 거룩한 궤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돌아오게 된 놀라운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는 중에 이 법궤의 신비한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은 호기심에 못이겨 덮개를 걷어치우고 감히 법궤를 열었다. 

… 벧세메스 백성들의 불경한 행동은 신속한 처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돌연히 죽임을 당했다.”(부조, 589)

“살아남은 자들은 이 형벌을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다만 미신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법궤를 바라보게 되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갈망하였으나 감히 그것을 옮기지 못하고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법궤를 가져가도록 요청하였다. 이 곳 주민들은 큰 기쁨으로 신성한 궤를 환영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순종하고 충성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보증으로 알았다. 그들은 장엄한 기쁨으로 법궤를 그들의 성읍으로 옮겨 와 레위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하였다. 아비나답은 그 아들 엘리아살에게 명하여 법궤를 돌보게 하였고 법궤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부조, 589)

10.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안치된 때로부터 20년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온전한 개혁을 위하여 무엇을 선포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삼상 7:2)

삼상 7:3~14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족적으로 여전히 참 종교를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에 대한 형벌로서 블레셋 사람들의 속박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이 기간 중 사무엘은 전국 각 성읍과 동리들을 순회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로 돌리려고 노력하였으나 그의 노력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20 년간 원수의 압박으로 고생을 당한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사모하’였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행하여 그만 섬기라’고 권고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르치신 것처럼 사무엘의 시대에도 실제적 경건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생활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는 신앙의 외형적 형식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아무 가치가 없었다. 그들도 현대 이스라엘과 동일하다. 

오늘날도 고대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과 같은 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부흥이 필요하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내딛어야 할 첫 계단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들은 각각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우리들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실 것이다.”(부조, 590)


[상고할 말씀]

이스라엘을 구원함에 있어서 당신의 능력을 그런 방법으로 나타내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었다. 그 이유는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무장도 방어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적의 침공을 받도록 허락하셨다. 하늘 군대의 크신 대장께서 당신의 군대를 진주(進走)시키사 하나님 백성들의 원수들을 무찌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은 외식과 교만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드리는 값비싼 제물이 아니라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거룩한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을 보호하시지 않으실 것이다(사인즈 1882. 1. 26).”(화잇주석, 삼상 7:7-1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1 2020년 2기 부조와 선지자 청지기 2020.03.29 70
260 1. 사사시대의 악순환 청지기 2020.03.29 64
259 2. 삼손 청지기 2020.04.04 54
258 3. 아이 사무엘 청지기 2020.04.11 53
257 4. 엘리와 그 아들들 청지기 2020.04.19 57
» 5. 법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김 청지기 2020.04.26 105
255 6. 선지자 학교 청지기 2020.05.03 64
254 7.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함 청지기 2020.05.09 64
253 8.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음 청지기 2020.05.17 55
252 9. 사울이 왕위에 오름 청지기 2020.05.24 63
251 10. 사울의 외람됨 청지기 2020.05.31 59
250 11. 사울이 버림을 받음 청지기 2020.06.07 64
249 12.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음 청지기 2020.06.14 55
248 13. 다윗과 골리앗 청지기 2020.06.21 63
247 2020년 3기 부조와 선지자(2) 청지기 2020.06.28 95
246 1. 도망자 다윗 청지기 2020.06.28 74
245 2. 다윗의 너그러움 청지기 2020.07.04 90
244 3. 사울의 죽음 청지기 2020.07.12 68
243 4. 고대와 현대의 강신술 청지기 2020.07.19 62
242 5. 시글락에서의 다윗 청지기 2020.07.25 67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9 Nex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