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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47분


제9과


글자 그대로의 주일


[연구범위]

와 선지자, 111~116.


기억절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서론 :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쉬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즉 거룩한 목적에 사용되도록 구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아담에게 휴식의 날로 주셨다.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표징이었다. 성경은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다’고 말한다.”(소망, 281)


주일제도와 안식일

1. 주일제도는 언제부터 무엇과 함께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주일 제도는 안식일과 같이 창조 때에 시작되었으며 성경 역사를 통하여 계속 보존되어 내려와 우리에게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주일의 한 표본으로 친히 최초의 주일을 구분하셨다. 최초의 주일은 다른 모든 주일과 같이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7일로 구성되었다. 창조 사업에 6일이 걸렸다. 하나님께서는 제7일에 쉬시고, 이 날을 축복하셔서 사람의 안식의 날로 구별하셨다”(부조, 111)

“일하도록 주어진 엿새와 쉬기 위해서 구별된 제 칠일로 구성된 주일 제도는 성경 전(全) 역사를 통해서 보전되고 전수되어 왔으며 창조 당시의 주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3영적 90).”(화잇주석, 창 2:2)

2.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에서 주일과 관련된 무엇이 언급되었는가? 그러므로 주일제도가 존속하는 동안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주일과 그것의 기초가 된 사실들을 시인하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엿새 동안에 행해져야 할 일과 일곱째 날에 해서는 안 될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후에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모본을 가리키시면서, 이와 같이 주일 제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출 20:8-11 인용). 우리가 창조 주간의 날들이 글자대로 24시간 하루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이 이유는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보인다. 매 주일의 첫 6일은 일하는 시간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업을 하실 때 첫 주일 가운데 같은 기간을 쓰셨기 때문이다. 제7일에 사람은 창조주의 쉬심을 기념하여 일을 중지해야 한다.”(부조, 111)

“하나님께서는 제7일에 쉬셨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실제적인 6일 동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분의 창조를 영예롭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지키도록 따로 떼어 놓으셨다. 그분은 이 쉼의 날을 축복하시고 성스럽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사람들이 정확한 시간의 길이에 관하여 알고자 살피고 궁구하는 일에 매우 세심한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둥근 세계를 위하여 그분의 안식일을 만드셨으며 낮을 주관하는 태양의 조정에 따라 그 둥근 세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제칠일이 이르러 올 때에 그것이 모든 나라와 육지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할 시간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수개월 동안 태양이 지지 않고 또 수개월 동안 해가 뜨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그 시간의 길이를 보존된 기록에 의하여 계산할 것이다. …

주님은 그분이 만드신 각각 피조물의 모든 순종을 태양이 뜨고 지는 세상의 시간적 환경에 따라 받으신다. … 안식일은 둥근 세계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주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완전히 일치되게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순종해야 된다.­서신 167, 1900.”(3기별, 317)

창조론 대 진화론(1)

3. 혹자는 창조 사건에 수만 년이 걸렸다고 억측하는데, 이것이 진화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무엇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하는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 9)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그러나 첫 주일의 창조 사건에 수만 년이 걸렸으리라는 억측은 넷째 계명의 기초를 직접적으로 파괴한다. 이것은 마치 어마어마한, 막연한 기간을 기념하기 위하여 글자대로의 날들로 구성된 주일을 지키도록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분으로 창조주를 나타낸다. 이것은 피조물들을 다루시는 그분의 방법과 같지 아니하다. 그것은 그분께서 아주 분명하게 하신 것을 애매모호하게 한다. 그것은 가장 음험(陰險)한, 따라서 가장 위험한 형태의 불신이다. 그것의 참 성질이 감쪽같이 변장되었기 때문에 성경을 믿노라 공언하는 많은 자들도 그것을 믿고 가르치고 있다.”(부조, 111)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부조, 599)

4. 이러한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사 45:12)


성경은 이 세상이 오랜 세월을 통하여 혼돈 상태에서 서서히 진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뒤에 잇따른 모든 날처럼 저녁과 아침으로 되었다고 거룩한 기록은 선언한다. 매일의 끝에 창조주의 일의 결과가 발표되어 있다. 첫 주일의 기록 끝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제너레이션)이 이러하니라’(창 2:4, 영문 성경 참고)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창조 때의 날들이 글자대로의 날들이 아니라는 사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각 날은 제너레이션(세대 또는 발생의 뜻)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이 날들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의 어떤 새로운 부분들을 발생(제너레이터)시키셨거나 산출하셨기 때문이었다.”(부조, 112)

“지질학자들은 지구 자체 가운데서 지구가 모세의 기록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고 주장한다. …

지질학은 성경 역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 홍수의 역사 가운데서 영감은 지질학만으로는 결코 파헤칠 수 없는 것을 설명하였다.”(부조, 112)

“사단의 책략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우화를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함으로 그 자체로는 아주 명백한 하나님의 율법을 애매모호하게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반역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노력을 특히 넷째 계명을 파괴하는 데 기울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천지의 창조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 사업을 자연적 원인들의 결과로 설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명백한 성경상 사실과 반대되는 인간적 추론을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 예언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연구를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것들이 너무 모호하여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언명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세의 기록과 모순되는 지질학자들의 가설들은 열심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바가 그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분께서 나타내지 않으신 것에 대한 단순한 가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부조, 112-113)

창조론 대 진화론(2)

5. 이 마지막 시대에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씀에서 어떤 분야의 지식이 증가할 것인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하나님께서는 과학과 예술 양방면을 통해 빛의 홍수가 지상에 쏟아지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소위 과학적인 사람들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인간적 관점에서 이 문제들을 다룰 때에는 그들은 분명히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의 이론들이 성경에서 발견되는 사실들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내신 바를 넘어서 추론하는 일은 해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그분의 창조 사업을 과학적 원리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해도(海圖)나 나침반 없이 미지의 대양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탁월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연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도받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추적함에 있어서 갈피를 못잡게 된다. 창조주와 그분께서 창조하신 만물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으므로 그들이 자연 법칙으로 창조주와 그분의 창조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 역사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신구약 성경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그들은 닻을 잃어버렸으므로 불신의 암초에 부딪치게 된다.”(부조, 113)

“회의주의자들이 믿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유한한 지성을 가지고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무한하신 능력을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신체 작용만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으로부터 어쩔 수 없는 신비를 제공 받을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 창조주의 길과 그의 일을 연구를 통해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것이며 그의 무한하신 능력을 그냥 자연이라고 할 것이다.”(화잇주석, 욥 37:16)

6. 정보의 홍수라는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무엇에 유의해야 하는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적 관념으로 시험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식은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다. 흠잡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회의론자들은 과학이나 계시에 관한 자신의 불완전한 이해 때문에, 양자 사이에 모순들을 발견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바르게 이해하면 과학과 계시는 완전히 조화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아래에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질학 이론은 성경의 기록과 조화시킬 수 없는 발견을 했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천연계에서건 계시에서건 모든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다.”(부조, 11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처세훈들이 교회의 공론들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거짓되이 일컫는 헛된 철학과 과학이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의 구원에 거룩한 중보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소위 세상에서 현명하다는 사람들이 창조해 낸 여러가지 이론들을 그리스도와 그의 사자들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더 믿고 의지한다.”(화잇주석, 요일 2:18)

과학과 계시의 조화

7. 과학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주장하면서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들이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그분께서 행하셨거나 하실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의 법으로 말미암아 제약을 받으신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 사람들은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가 하면 만물, 심지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성령의 활동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존경하거나, 그분의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이나 그 법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대로, ‘자연의 법칙’은 물질세계를 주관하는 법들에 관하여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은 얼마나 제한되어 있으며, 창조주께서 유한한 존재들에게는 전적으로 이해될 수 없지만 당신 자신의 법들과 조화되게 일하실 수 있는 분야는 얼마나 광범위한가!”(부조, 114)

“천연계라는 책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둘 다 같은 창조주의 마음을 담고 있으므로 서로 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방법들과 다른 언어들을 가지고 동일한 큰 진리들을 증거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이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과학의 탐구로 발견되는 것은 그것이 바르게 이해되는 한 거룩한 계시인 성경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 천연계의 책과 성경은 서로 빛을 비추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일하시는 법칙들을 우리에게 다소 가르침으로 그분을 알게 해 준다.”(교육, 128)

8.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과학과 신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다. 모든 참된 과학은 그분의 일하심과 조화되며, 모든 참된 교육은 모두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도록 인도한다. 과학은 새로운 경이들을 우리 눈앞에 공개하며, 매우 높이 치솟아 새로운 깊은 것들을 탐구한다. 그러나 과학의 연구는 하나님의 계시와 모순되는 결과를 결코 가져오지 않는다. 무지로 인하여 과학이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에 대한 거짓 견해를 지지하려고 노력할지 모르나 천연계의 책과 기록된 말씀은 서로 빛을 비추어 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창조주를 숭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이지적으로 신뢰하도록 인도된다.”(부조, 115-116)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에 깨달음을 주시고, 기술과 과학의 발견을 통하여 이 세상에다 많은 빛을 비추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단순한 인간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류와 회의주의자와 불신앙의 가시들이 철학과 과학이라는 외투로 위장되어 있다. 사단은 이 영리한 방법을 고안해 내어서 영혼들을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고 진리와 믿음을 버리게 한다. 그는 자연을 그 자연의 창조주 위에 높인다(원고 4, 1882).”(화잇주석, 골 2:8)

“우리들은 과학을 연구하는 중에서도 역시 창조주께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참 과학은 물질세계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설명하는 데 불과하다. 과학의 연구는 다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뿐이다. 바로 이해되면 자연의 책과 기록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지혜롭고 자비스러운 법칙들을 가르쳐 줌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한다.”(부조, 599)

창조인가? 진화인가?

9.  진화론과 창조론은 분명히 정반대이다. 그리스도인은 창조론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여러분 자신으로부터는 어떤 선한 행실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선한 행실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진화론자는 노력하고 항상 노력할 것이지만 그것을 이루지는 못한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오직 선한 행실을 하려고 맴돌고 있는가? 들으라. 창조자 자신에 의하여 그 안에 창조의 능력이 있는 그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되지 않으면 지금부터 세상 끝까지 여러분 안에는 어떤 종류의 선한 것이 결코 없을 것이다. 이곳을 나갈 때에 선행을 하고 싶은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실을 위하여 창조함을 받을 때에만 선한 행실을 할 수 있다. 선한 행실을 하려는 노력을 멈추라. 창조주를 바라보고 그의 창조의 말씀을 받으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골 3:16)도록 하라. 그러면 그 선한 행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창조주와 함께 살고 창조의 능력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그 즐겁고 고요한 평강과 참된 힘과 성장이 있을 것이다.

그가 여러분에게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창조주를 인정하라. 오직 여러분 안에 창조된 선한 일만을 인정하고 창조되지 않은 어떤 선한 일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왜냐하면 주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면 선한 것은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연구, 존스, 제8장 창조인가? 진화인가?)

10.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의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내 속에서 역사하기 위해서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하는 바를 스스로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이 그 말씀한 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때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으므로 그 말씀에서 말씀하는 일의 실상을 창조할 수 있으며 믿음은 말씀 자체가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룰 것을 기대하고 그 말씀하는 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이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다.”(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연구, 존스, 제2장 믿음의 실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의를 마음 속에 심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세가 기록한 창조론을 진화론으로 폐지하려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제한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 막을 수 있는 큰 산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무를 가지고 그 산을 부수어 산산 조각을 낼 수 있다.”(1891년 대총회회보, 와그너, 6번)


[상고할 말씀]

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소망, 289)

“나는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킬지니라’(레 23:32)고 한 말씀이 그 말씀 그대로임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고 깨달으라. 그리하면,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주의 깊이 읽어 보라. 그대는 거기서 무엇이 저녁이며, 그것이 언제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천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껏 시작한 것처럼 안식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셨는지 물어 보았다. 나는 안식일의 최초의 기원으로 되돌아가서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펴보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거나 불쾌히 여기신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어 왔으며,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물어 보았다. 천사는, ‘너희가 이해할 것이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안 되었다’라고 말했다. 천사는 다시 말했다. ‘빛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빛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절할 빛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식일이 저녁에 시작되었다는 것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이들이, 안식일은 6시부터 시작된다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다고 마음에 생각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저녁이 6시를 의미한다고 추론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연합하고 일치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1증언,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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