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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6분




제2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연구범위]

산상보훈, 9~13.


기억절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서론 :  우리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소망, 300)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이 따름  


1.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징계와 고난이 따를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항상 애통하는 자들처럼 슬프고 우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 12:6-9)


 

“계속하여 투덜대며 불평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믿노라 공언하며, 행복과 쾌활한 얼굴을 죄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은 신앙의 진정한 면모는 하나도 갖추지 못한 자들이다. 천연계의 아름다운 경관을 죽은 그림 보듯 하는 자들, 살아 있는 꽃을 모으기보다는 죽은 낙엽을 보고자 하는 자들, 천연계가 속삭여 주는 말들 가운데서 특히 모든 우울한 것들을 골라 그 가운데서 비통한 쾌락을 취하는 자들, 생생한 푸른 나무로 덮인 골짜기와, 초목을 옷 입은 장엄한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는 자들, 기울여 듣는 귀에는 달콤하고 음악적인 목소리, 천연계가 그들에게 전하는 기쁨의 목소리에 대하여 그들의 오관을 막아 버리는 자들-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치유의 능력을 가진 빛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의의 태양되신 그리스도의 광채와 축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고 흑암을 모으고 있다.”(3증언, 334, 335)


2. 베드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닥치는 시련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 7)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세속성의 찌끼를 제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일부분이다. 괴로운 경험이 그들에게 닥쳐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인도하시고 계시는 까닭이다. 시련과 장애물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을 아는 것보다 그들의 약점을 더 잘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올바른 지도를 받는다면 당신의 사업의 발전에 사용될 수 있는 자격들을 갖추고 있음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이 영혼들을 같지 않은 지위와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시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결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결점들을 극복하고 사업에 적합한 자격을 구비할 기회를 주신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순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고통의 불이 타오르도록 허락하신다.”(행적, 524)


고난을 통해서 배움


3. 다윗 왕은 고난을 통하여 어떤 고귀한 교훈을 배우게 되었는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67, 71)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품성 안에 있는 악덕의 근거를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결함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신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장(章)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견책과 권고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알기 위한 시험이 이르러 온다. 시련에 부닥쳤을 때에 초조해 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반항하거나 그리스도의 손에서 떠나게 될까봐 걱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령을 겸비해야 한다.”(소망, 301)

 

4. 고난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경고와 약속을 명심해야 하는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2, 13)


 

“인생의 고난은 우리 성품에서 불순물과 거친 것을 제거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이들에 의해 채석되어 깎기우고, 끌로 새기어지고, 갈리고 다듬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또, 회전 연마기(硏磨機)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간 돌은 하늘 성전의 제자리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게 준비되어 나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위해서는 주께서 그처럼 신중하고 철저한 작업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분의 보석만이 궁전의 식양대로 다듬어진다.”(보훈, 10)


재난


5.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고통도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재난이 허락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보증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사 26:9)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1-33)


겔 33:11.


 

“구주의 말씀에는 재난이나 사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기별도 있다. 우리의 슬픔은 아무런 근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예레미야 애가 3장 33절). 그분께서 시련과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히브리서 12장 10절)기 위함이다. 감당하기 심히 어렵고 가혹하게 보이는 시련이라도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축복임이 판명될 것이다. 세상의 쾌락을 앗아가는 혹독한 재난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슬픔을 당하여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분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보훈, 10)


6.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우리를 위하여 또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7, 18)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사 61:1~3. 


 

“예수께서는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을 찾아 치료해 주신다. 사별과 고통과 고난의 생애도 그분의 황홀한 임재 앞에서는 환하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 못할 슬픔과 아프고 상한 마음으로 짓눌려 있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눈을 들어 당신의 자애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게 하신다. 거룩하신 구주께서는 눈물로 앞이 가리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곁에 서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손을 꽉 붙잡길 원하신다. 그리고 또, 우리가 단순한 믿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했으면 하고 원하신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슬픔과 비애와 시련을 향하여 열려 있다. 그분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애로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 주신다. 우리는 마음을 그분께 바치고 온종일 그분의 자애를 명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매일 당하는 슬픔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평화 가운데서 살게 해주실 것이다.”(보훈, 12)


진정한 애통의 근거


7. 다윗이 자신의 범죄로 인해 심한 애통을 경험했던 역사를 말해보라. 우리가 애통하는 자들의 축복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먼저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1-4)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9)


욜 2:12~17.


     

“다윗이 범죄한 후에 한 기도는 죄에 대하여 참으로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회개는 참되고 마음 깊은 데서 나온 것이었다. 죄를 변명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정하신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도 그 기도의 동기가 아니었다. 다윗은 자기의 범죄가 얼마나 흉악한지, 자기의 심령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를 깨달아 자기 죄를 미워하였다. 그가 기도한 것은 죄사함을 받기 위함만이 아니라 마음의 순결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성결의 기쁨 -하나님과의 융화와 교통을 회복하는 것- 을 갈망하였다.”(정로, 24, 25)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그리스도의 순결의 빛은 심령을 꿰뚫어 모든 오점(汚點)을 밝히 드러내고 사람의 품성의 결함과 결점을 폭로한다. 또 이 빛은 신성치 못한 욕망과 심지의 불신실과 입술의 불순결함을 명백히 드러낸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함으로 하나님께 불충성한 죄인의 행실이 자신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신의 감찰하시는 감화를 받아 찔림을 받고 통회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흠없는 품성을 볼 때에 자기 자신을 몹시 싫어하게 될 것이다.”(정로, 29)


8.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또 어떠한 일로 슬퍼해야 하는가? 이들에게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가?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겔 9:4)


 

“주님의 사업의 정신과 영혼 구원의 정신을 그 마음에 품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항상 죄의 참된 성격 즉 그 흉악한 성격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쉽게 습격하는 죄를 성실하고, 명백하게 다루는 쪽에 설 것이다. 특히 교회를 위한 마지막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없이 설 십사만 사천 명을 인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자들의 잘못을 가장 깊게 느낄 것이다. 이 사실은 각자 그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든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상된 마지막 사업에 대한 선지자의 예증을 통하여 강력하게 제시되었다.”(3증언, 266)


위로가 약속됨


9. 성경은 애통하는 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기록하고 있는가? 참된 위로는 모두 누구로부터 오는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벧전 5:7.


 

“여기서 애통이라고 하는 말은 진정한 마음으로 죄를 슬퍼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장 32절)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사람이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그는 영광의 주님을 징벌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은망덕과 반역으로 일관된 생애를 살아 왔음을 알게 된다. 그는 가장 좋은 친구를 버리고 가장 귀중한 하늘의 선물을 모독해 온 것이다. 계속해서, 그것도 직접,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상처를 받아 피가 흐르는 그분의 심장을 찔러 온 것이다. 그는 넓고 어둡고 깊은 죄의 심연(深淵)에 의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

이런 애통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죄를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그분을 통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보훈, 9, 10)


10. 예수께서 인간들이 당하는 슬픔에 동참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들이 당하는 슬픔에 동참할 때에 어떤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 4)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약 1:27.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의 슬픔을 애달파 하고 그 죄를 슬퍼하여 우는 자들 역시 복이 있다. 이 같은 애통에는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 전혀 개재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슬픔을 아는 분이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당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마음은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찢기고 상하셨다. 그분은 인류의 궁핍과 불행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아(無我)의 열성으로 일하셨다. 그래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당신께 나오기를 거절하는 무리들을 보실 때는 늘 애석함으로 마음이 무거우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은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때, 그들은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는 그분의 수고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과 함께 슬픔의 잔을 마심으로 그분의 기쁨에도 참여하게 된다.”(보훈, 12, 13)



[상고할 말씀]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세상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서 일하라.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일으켜 주라. 재난을 변장한 행복으로 생각하며, 화를 복으로 생각하라. 절망이 있는 곳에서 희망이 솟아오르도록 일하라.”(복음, 37)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연약한 영혼이라도 당신께 도움을 청하러 돌아오면 영원한 팔로 감싸 주신다. 산에서 나는 보석들은 없어질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그분과 함께 거할 것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 2장 17절). 하나님의 성은 황금문을 열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실패와 고난 중에서 인도하심과 지혜, 그리고 위로와 소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운 자를 맞아들일 것이다. 천사들의 노래가 그 곳에서 그를 환영하며, 생명나무가 그를 위하여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4장 10절).”(보훈, 99)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예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가 이제 막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하여 놀라움과 충격을 느끼면서 자기의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도 그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뒤섞인 서글픈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그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를 그윽이 바라보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통회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전환점에 이르러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였다. 그는 세리처럼 통회하고 회개하였고 세리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그를 바라보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에게 용서를 보증해 주었다.”(실물,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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