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언어의 감화력

by 청지기 posted Apr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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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언어의 감화력





[연구범위]

 부모와 교사와 학생들에게 보내는 권면, 238, 239.



기억절 : “너희 입에서 어떠한 더러운 말도 나오지 않게 하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좋은 것만을 말해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9 킹제임스)


서론: “그대는 말하고 행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악간의 결과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매우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말과 행동들이 인간사의 긴 사슬을 이루는 고리가 된다.”(3증언, 542)



누가 지배하는가?


1. 우리의 생애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무엇인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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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가 발하는 말에는 어떤 능력이 그대의 마음과 심령을 통제하고 있는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심령 속에서 다스리신다면, 그대의 말은 그분의 뜻에 의해 형성되고 빚어진 품성의 순결과 아름다움과 향기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타락 이래로 사단은 형제들을 참소해 왔기 때문에, 그대는 그 동일한 정신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마음과 품성과 개성 2, 579-580)



2.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품성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23:7 상단)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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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의 표시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러나 말은 품성의 표시 이상을 뜻한다. 즉 말은 품성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사단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으로 시기나 악한 억측의 말을 발하는데, 그들은 사실은 그렇다고 믿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말은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속아서, 사단의 선동을 받아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는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옳은 것을 증명하려고 힘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정당하다고 믿게 된다.”(소망, 323)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바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마음과 우리 입의 말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므로, 우리는 우리의 말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상은 우리의 말을 형성하고 우리의 말은 우리의 사상을 재현하는 것이다.”(말하고 노래하는 음성, 52)

우리의 말은 우리의 영혼이 먹고 사는 양식의 질을 증거하는 것이다.”(화잇주석, 15:1-2)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감화


3.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감화를 끼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1, 12)

벧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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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우리들은 장래의 수확을 위하여 씨를 심고 있다. 우리의 말로써 심는 그 씨에 대하여 아무리 주의할지라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종종 생각없이 말하고 말한 바를 잊어버리지만, 그 말들은 선악간에 추수하게 될 것이다. 사랑과 온유와 그리스도와 같은 언어로써 씨를 뿌리라. 그리하면 그대에게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다. 축복이 되지 못하고 저주가 되는 말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 우리가 밀을 심으면, 밀을 거둘 것이요 가라지를 심으면 가라지를 거둘 것이다. 그리고 그 수확은 밀이 되거나 가라지가 되거나 분명하고 풍성하게 거둘 것이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294)



4. 기독교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설교는 무엇인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벧전 3: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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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품행은 가장 강한 논증으로서 부주의한 자, 불경건한 자 및 회의주의자에게 가장 엄숙한 호소가 된다. 생애와 품성이 기독교를 위한 강력한 논증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할 때에 사람들은 그대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예수님에게서 배운 바 그대가 가진 지식을 알려고 힘쓸 것이다.”(부모, 478)

부지중에 자연히 나타나는 거룩한 생애의 감화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설교이다.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논증은 오히려 반항심을 격앙케 할 뿐이나, 경건한 모본은 아무라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복음, 59)



5. 권면하거나 훈계할 때에 무엇이 우리의 감화의 범위를 결정하는가?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9:17)

1:27(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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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우리가 부드러운 동정심으로 가득 채움을 받아 생애의 작은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 사랑의 봉사를 행함으로 당신 자신과 같아지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살고, 그분의 사랑을 깊이 호흡하며, 우리 주변에 그 온기를 반사하는 것이다. , 얼마나 놀라운 감화의 영역이 우리 앞에 열려 있는지! 우리는 순결하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만을 피울 수 있도록 영혼의 정원을 얼마나 주의 깊이 경작해야 할 것인지! 사랑과 온유와 자비로운 말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거룩하게 한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175)



미련한 남자와 슬기로운 여자


6. 나발의 말과 아비가일의 말을 비교해보면, 어떤 실제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삼상 25:10-11)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삼상 25:23-25)

삼상 25:2-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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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친절한 말로 다윗의 분노한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자기 남편을 위하여 그에게 간청하였다. 아비가일은 허식이나 교만심이 없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충만하여 남편에 대한 그의 헌신의 깊이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그의 남편의 불친절한 행동은 결코 계획적인 인신 모욕이 아니요 다만 비참하고 이기적인 그의 본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다윗에게 설명하였다.

꽃향기와 같은 아비가일의 경건은 얼굴과 말과 행동에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자들에게 풍겼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여인의 마음에 거하고 계셨다. 은혜가 깃들고 친절과 평화로 가득 찬 그의 말은 하늘의 감화를 끼쳤다. 다윗은 좋은 감정으로 돌아왔고 그는 그의 조급한 의도의 결과가 어떠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떨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이 이스라엘 여인처럼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급한 충동을 막고 조용한 말과 때에 적합한 지혜로 큰 악을 억누를 자들이 많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부조, 666-667)



7. 분노를 만났을 때, 유순한 대답은 어떤 일을 하는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항상 빛과 위로와 평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순결, 기지, 단순, 유용성으로 분명히 식별된다. 이것은 감화를 신성하게 하는 무아적 사랑에 지배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이것을 가진 자는 가는 곳마다 빛의 자취를 남긴다. 아비가일은 현명한 책망자요 권고자였다. 다윗의 격분은 여인의 감화와 설득의 능력으로 가라앉았다. 다윗은 그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취했고 자신의 마음의 자제력을 잃었음을 수긍하였다.

다윗은 겸손한 마음으로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긴’(141:5)다는 자신의 말과 같이 그 책망을 받아들였다. 다윗은 감사히 생각하고 축복하였으니 이는 그 여인이 그를 의롭게 충고한 까닭이었다. 책망을 받을 때에 안달하지 않고 그 책망을 받기만 해도 칭찬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책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책망하여 악한 길에서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자를 축복하는 자는 얼마나 드문가!”(부조, 667)



하나님께서 나를 아심


8. 거룩한 은혜로 자신의 혀를 제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대화를 할 것인가?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37:30)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3:13)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은 말의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혀가 언제나 계발된 양심과 거룩한 애정의 명령을 순종하도록 그것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는가? 그대들의 대화는 경솔, 교만과 악의, 기만과 불순에서 벗어나 있는가? 그대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만이 없는가? 말은 현저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그를 섬기는 데 혀가 바쁘게 사용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제어하기 힘든 그 지체를 통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탁월해질 수 있는 방법을 열렬하게 연구하고 있는 자들은 차라리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3:17) 는 지혜를 얻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는 많은 목사들이 이 말을 심령의 돌비에 새겨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았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형성된 사람은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3:13) 것이다.”(5증언, 175)



9. 평소에 말할 때, 무엇을 명심해야 하는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33:13, 14)

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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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더하기 법칙에 의거하여 살면서 은혜에 은혜를 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곱하기 법으로 주실 것이다. 그대가 더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곱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며, 그대의 모든 말과 행위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계시며, 그대가 그 모든 것을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는다면, 그대는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밝아지고 방심하지 않는 양심의 지시를 따르려고 애쓸 것이다. 그대의 입술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되어지고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까지 해 온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대의 혀가 불의의 세계가 되어 그대에게 두려운 정죄를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하라. 왜냐하면 영혼들이 그대를 통하여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4증언, 244)



설득력이 있는 말


10. 하나님의 표준에 따르면, 무엇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

고전 13: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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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설득력 있는 웅변은 사랑과 동정 가운데 발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말은 혼돈된 마음에 빛을, 또는 낙담된 자에게 빛을 가져감으로 저들의 전망을 환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귀중하여 성화된 힘과 열성과 또한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이 요구된다. 불행을 확장시키는 말이 아니요 믿음과 소망을 고무시키는 말이 요구된다. 우리들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의 본향을 구하는 가운데 하늘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줄 말을 하는 대신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 어린 말로 우리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 주어야 하지 않을까?”(우리의 높은 부르심, 295)

 

[상고할 말씀]


자매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질 때에 사단이 일할 것을 찾기 위해 대개 그 곳에 동참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는 곁에 서서 흥분시키며, 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취한다. 그는 이 모든 만담과 잡담과 비밀을 말하는 것과, 성격을 따지는 것 등이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임을 안다. 그것은 영성과 조용한 종교적 영향을 죽이는 것이다. U 자매는 혀로 죄를 많이 짓는다. 그녀는 입의 말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데, 그녀는 함부로 말하는 일이 잦다. 때때로 그녀의 말은 실지와 다르다. 그녀는 종종 과장한다. 그리고 잘못 말한다. 잘못 말할 의도는 없으나 말을 많이 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는 습관이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말할 때에 부주의하게 되고 무모한 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 때가 잦다. 이것은 그녀가 끼칠 수 있는 좋은 감화력을 파괴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그녀가 이러한 죄악된 언어생활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2증언, 185)

 

만일 그대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안일과 쾌락과 오락을 추구하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선을 베풀며 축복하기 위하여 애쓰신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우리 구속주께서 보여 주신 모본을 따라가기에 유의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감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끼치게 될 것이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또는 우리가 처하는 생애의 어떠한 관계를 막론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는, 그 범위가 크든 작든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주님을 시인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즉 남을 헐뜯음으로, 어리석은 농담과 익살을 늘어놓음으로, 무익하고 불친절한 말을 함으로, 진리를 얼버무리거나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시지 않음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는 품성을 통하여, 즉 안일을 사랑함으로, 또한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생애의 짐과 의무를 회피함으로, 죄된 쾌락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또한, 의복에 대한 자랑을 통하여나 세상과 일치함으로, 그리고 외모에 어그러진 행동을 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을 존중함으로 그리고 자아를 유지하고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마음을 상사병 같은 감상주의로 기울어지게 하고, 또한 가상적인 시련과 어려운 처지에 대해 마음을 쏟음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도 있다.”(3증언,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