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6시 51분
제13과
최초의 큰 기만(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541-550
기억절 :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전 9:5)
서론 : “영혼 불멸설은 로마교가 다신교에서 가져와 그리스도교로 들여보낸 거짓 교리들 중 하나였다. 마틴 루터는 그것을 ‘로마 법왕의 교령의 쓰레기더미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기괴한 이야기’로 분류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한 말을 그 종교 개혁자는 다음과 같이 주해한다. ‘또 다른 곳에서도 죽은 자는 아무 감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는 의무도, 과학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솔로몬은 죽은 자가 잠을 자고 있으며 아무런 감각도 없다고 판단한다. 죽은 자들은 일단 누우면 날이나 해가 가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깨어날 때에 그들은 잠깐 동안 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쟁투, 549)
악한 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섭리
1.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올바르게 깨달은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완고함을 오래 참으시지만, 그들에게도 어떤 시간이 올 것인가?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 5:14)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의지나 판단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노예적인 굴복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께서 사랑을 받으실 만하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를 충분히 깨달은 후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이런 특성들에 대하여 올바르게 깨달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분께 이끌려가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 가르치시고 친히 모본을 보이신 사랑과 자비와 친절의 원리는 하나님의 품성과 의지의 사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셨다고 주장하셨다.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구주의 교훈과 완전히 일치된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유익을 위하여 또한 당신의 심판을 받는 대상자의 유익을 위하여 악인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부의 율법과 당신의 품성과 공의로움에 일치되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다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증거들로 사람들 주위에 둘러 주시고 당신의 율법을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의 노력으로 그들을 따라오게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무효로 만들고 그분의 자비를 거절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면서도 그 선물을 주신 분을 멸시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가증히 여기시는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미워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함을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어야 할 결정적 시간이 올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당신의 편에 묶어 두실까? 그들이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강요하실 수 있겠는가?”(쟁투, 541-542)
2. 사단을 지도자로 삼고 그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되어 온 자들은 어떤 품성으로 굳어졌는가? 그 품성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계 22:11, 킹제임스)
“사단을 지도자로 삼고 그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되어 온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교만과 허위와 방탕과 잔혹이 그들의 품성으로 굳어졌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 세상에서 그들이 멸시하고 증오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진리는 거짓말하는 자에게 결코 듣기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온유는 자부심과 교만으로 더불어 화합할 수 없다. 순결과 부패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다. 이타적 사랑은 이기적인 사람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다. 완전히 세속적이요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되어 있는 자들에게 하늘이 어떤 기쁨을 줄 수 있겠는가?”(쟁투, 542)
회개의 기회를 무시한 악인들
3.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허비한 자들이 갑자기 하늘로 옮겨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노아의 시대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처럼 마지막 날에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허비한 자들이 갑자기 하늘로 옮겨져 언제나 그곳에 있는 고상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상태를 목격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충만하고 얼굴에서 기쁜 빛이 흐르고,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부단한 빛의 줄기가 구원 얻은 자들에게 비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에 하나님과 진리와 성결에 대한 증오심으로 충만해 있는 자들이 하늘의 무리들과 섞여서 그들의 찬양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 하늘에 적합한 품성을 이룰 수 있는 은혜의 시기가 여러 해 동안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순결을 좋아하는 마음을 배양하지 않고, 하늘의 방언을 결코 배우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너무 늦었다. 하나님을 반역한 생애가 그들을 하늘에 적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하늘의 순결과 성결과 평화는 그들에게 괴로움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은 태우는 불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거룩한 곳에서 피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하여 차라리 멸망 받기를 원할 것이다. 악인의 운명은 그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정해진다. 그들이 하늘에서 제외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원해서 되는 일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공의롭고 자비로운 처사이다.
마치 홍수 때의 물과 같이 마지막 날의 불은 악인들의 불의가 도무지 고쳐질 수 없다는 하나님의 판결을 선포한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의향이 없다. 그들의 의지는 반역에 사용되어 왔다. 그러므로 생명이 끊어졌을 때, 그들의 생각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범죄에서 순종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돌이키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쟁투, 542-543)
4. 하나님께서 살인자 가인을 즉시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살려두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의 악한 거민들을 제거하시고 부패한 소돔의 거민들을 멸망시킴으로 세상에 무엇을 베풀어주셨는가?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은 어떤 사망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하나님께서는 살인자 가인을 살려두심으로 죄인에게 마음대로 죄악의 길을 계속해서 걷도록 허용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예증을 세상에 보이셨다. 가인의 가르침과 모본의 영향으로 그의 자손들의 다수가 죄에 빠지게 되어 마침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이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창 6:5, 11)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자비로써 노아 시대의 악한 거민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그분께서는 자비로써 부패한 소돔의 거민들을 멸망시키셨다. 사단의 기만적 능력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찬성과 칭찬을 받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반역으로 인도한다. 가인의 시대, 노아의 시대, 아브라함의 시대, 롯의 시대에 그러하였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도 역시 그렇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키는 것은 우주에 대한 자비에서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생명은 의인이 받을 유업이요 사망은 악인이 받을 몫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신 30:15)노라고 말하였다. 이 성경절에서 말하는 사망은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아담의 범죄의 형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생과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둘째 사망’(계 20:14)이다.”(쟁투, 543-544)
두 가지 사망
5. 인류에게는 어떤 두 가지의 사망이 있는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아담이 범죄함으로 사망이 온 인류에게 이르렀다. 모든 사람은 빠짐없이 무덤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구원의 계획으로 모든 사람은 그들의 무덤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행 24:15).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러나 이렇게 부활하는 자들 중에는 뚜렷이 구별되는 두 부류가 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생명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계 20:6)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범죄의 형벌, 곧 ‘죄의 삯’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되, 그 기간과 정도는 다르나 최종적으로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자비에 모순되도록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 한 영감의 기자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고 말한다. 또한 사람은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옵 16). 그들은 오명(汚名)으로 덮인 채 소망 없는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들어 간다.”(쟁투, 544-545)
6. 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죄와 죄인들이 모두 없어진 이후의 정결케 된 영원한 나라를 어떻게 묘사했는가?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이리하여 죄와 그 결과로 초래된 불행과 파멸은 모두 종식된다. 시편 기자는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 … 나이다’(시 9:5, 6)고 말한다. 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조금도 음조가 틀리지 않는 완전히 조화된 훌륭한 찬양의 노래를 듣는다.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들었다(계 5:13 참조). 거기에는 잃어버린 사람들이 영원한 고통 중에 몸부림치면서 하나님께 참람된 말을 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구원 얻은 자의 찬미 소리와 함께 지옥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혼합되어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쟁투, 545)
영혼 불멸설의 오류
7. 영혼 불멸설은 어떤 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네가 …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영혼 불멸설의 근본적 오류는 죽은 후에 의식이 있다는 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 교리는 영원 지옥에 관한 교리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며 인간의 이성과 감정에도 반대된다. 일반적 신앙에 의하면 구속함을 받아 하늘에 있는 자들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 특별히 그들이 남겨 두고 간 친구들의 생애를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산 자가 당하는 어려움을 아는 것, 그의 사랑하는 자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는 것과, 그들이 당하는 생애의 모든 슬픔, 실망, 고통 등을 보는 것이 어찌 행복이 될 수 있겠는가? 지상에 있는 그들의 친구들 위를 배회하는 자들이 누리는 하늘의 축복이 어느 정도로 즐거움이 되겠는가? 회개하지 않은 자의 영혼은 그 숨이 끊어지자마자 지옥불에 던짐을 받는다는 믿음은 얼마나 역겨운 것인가? 그들의 친구들이 준비되지 못한 채 죽어서 영원히 죄와 저주를 받는 지옥으로 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무서운 생각으로 발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다윗은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솔로몬 역시 똑같은 증언을 한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5, 6, 10).”(쟁투, 545-546)
8. 세상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학은 죽은 의인이 하늘에서 영원한 복락에 들어가 불멸의 혀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주장하는 데,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가?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를 보이시겠나이까 유혼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셀라)”(시 88:10)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 그의 생명이 15년간 더 연장되리라는 응답을 받았을 때, 왕은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하였다. 그 노래에서 그는 그가 기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 … 하리이다’(사 38:18, 19). 세상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학은 죽은 의인이 하늘에서 영원한 복락에 들어가 불멸의 혀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한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죽음 가운데서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소망을 바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시편 기자의 말과 일치한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시 6:5),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 115:17).
오순절에 베드로는 부조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행 2:29).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행 2:34)다고 주장했다. 다윗이 부활할 때까지 그 무덤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의인이 죽을 때 승천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다윗이 마침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되는 것은 다만 부활을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힘입어 성취된다.”(쟁투, 546)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신앙
9. 사람이 죽으면, 바로 하늘에 간다는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전에 어떤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떠나시려 할 때 그들이 미구에 당신께로 올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 3)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그 사실을 더욱 자세하게 우리에게 알려 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8). 그리고 그는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부언한다. 이 위로의 말씀과 이미 인용한 보편 구제론을 믿는 목사의 말은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그 목사는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그 죽은 자가 아무리 죄악적인 생애를 살아왔다 할지라도 그가 운명할 때 천사들에게 영접을 받는다는 말로 확신 있게 위로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형제들에게 알려 주고 그때에 무덤의 속박을 깨뜨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영생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든지 그 복된 하늘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생애가 조사받고 그들의 품성과 행위가 하나님 앞에 통과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는다. 그 심판은 사람이 죽을 때에 받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말에 유의해 보라.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한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1). 여기서 사도는 세계의 심판을 위한 특별한 때, 곧 미래의 어떤 때가 작정되었다고 분명히 말했다.”(쟁투, 547-548)
10. 조사 심판의 교리가 왜 중요한가? 다신교의 영혼불멸설이 누구에 의하여 하나의 교리로써 그리스도교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전 9:5)
“만일 죽은 자들이 이미 하늘의 복락을 누리고 있거나, 혹은 지옥의 속에서 부르짖고 있다면 장래의 심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애매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 문제들은 보통의 두뇌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보급되어 있는 이런 교리에서 지혜와 공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거하다가 심판의 때에 그들의 사건을 조사받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라는 명령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악인들은 고통의 장소에서 끌려 나와 온 땅의 심판장에게 ‘저주를 받을 너희여 나를 떠나 …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21, 41)는 선고를 받게 되는가? 아,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에 대한 수치스런 모독이다.
영혼 불멸설은 로마교가 다신교에서 가져와 그리스도교로 들여보낸 거짓 교리들 중 하나였다.”(쟁투, 549)
의인들을 깨우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
11. 성경은 사람들이 죽는 즉시 승천하지 않음을 어떻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 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욥 14:10-12)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전 12:6)
“사람이 죽을 때 의인은 상급을 받고 악인은 형벌을 받는다는 말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부조들과 선지자들도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사도들도 그런 일에 대하여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성경은 사람들이 죽는 즉시 승천하지 않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부활할 때까지 자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살전 4:14; 욥 14:10-12 참조).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는 바로 그날에 그 사람의 생각은 없어진다(전 12:6 참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은 침묵 중에 있다. 그들은 해 아래서 행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피곤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된 휴식이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길거나 짧거나 간에 단지 일순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고 있다.”(쟁투, 549-550)
12. 무덤에서 복된 휴식을 하던 의인들은 어떤 소리에 깨어날 것인가? 그 나팔 소리를 언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그들[죽은 의인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영광스러운 불멸을 입을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2-55). 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그들은 그의 생각을 그치게 되었던 그 순간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감정은 죽음의 고통이었고 마지막 생각은 그들이 무덤의 세력 아래 넘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 제일 처음으로 일어나는 그들의 기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함성 가운데 메아리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쟁투, 550)
[상고할 말씀]
“우리에게는 부활하시고 항상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는 사흘 동안 무덤에 누워 계신 후에 그 착고를 깨뜨리셨다. 그리고 승리하신 가운데 그는 요셉의 빈 무덤을 향하여 선포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바로 그분이 지금 오고 계신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맞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잠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생명을 주시는 분이 곧 오실 것이다. 생명의 시여자(施與者)께서 무덤의 착고를 깨뜨리시려고 오고 계신다. 포로들을 데리고 오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포고하실 것이다. 거기에 부활한 무리들이 서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마지막 생각들은 죽음과 그 고통, 무덤과 묘지 등에 관한 것이었으나, 이제 그들은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선언할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사망의 고통이었지만 그들이 깨었을 때는 고통은 모두 다 사라졌다.”(화잇주석, 고전 15:5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