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너그러운 교회

by 청지기 posted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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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13분


제8과


너그러운 교회


[연구범위]

사도행적, 335-345; 고전 9:1-18; 고후 8:1-9:15; 9증언 49-60


기억절 :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서론 :  유대 민족보다 훨씬 우월한 특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이 드린 것보다 덜 너그럽게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바가 아니다. 구주께서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눅 12:48)라고 선언하셨다. 히브리인들에게 요구된 너그러움은 주로 저희 나라에 이익이 될 것이었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은 온 세상에 확장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손에 복음의 보화를 두셨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쁜 기별을 세상에 전할 책임을 지우셨다. 실로 우리의 책임은 고대 이스라엘의 책임보다 훨씬 크다.”(행적, 337-338)


십일조와 첫 열매와 헌물들로 창조주를 기억하라

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에서 하나님의 지상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어떤 원칙에 대하여 교훈했는가? 사도들을 힐문하는 어떤 신자들에게 어떤 물음으로 답했는가?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3-6)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사도는 다시 물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7-14). … 

바울이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말하면서 언급한 것은 복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이 계획이었다. 그 후 사도는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딤전 5:18)고 말하였다.”(행적, 335-336)

2. 복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십일조 외에도 어떤 것들이 일찍부터 포함되어 있었는가? 이 모든 것을 제도화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목적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 18:20-21)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셨으며 …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봉사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그분의 계획의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여러 가지 예물과 헌물들을 하나님께서 일일이 명세하셨다. 유대 제도 아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양면에 있어서 관대한 정신을 품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특별한 경우 자원하여 드리는 헌물들이 있었다. 곡식과 포도를 수확하는 때에 들의 처음 익은 열매-곡식과 포도주와 기름-는 여호와께 헌물로 성별되었다. 밭의 구석에 있는 것들과 이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남겨두었다. 양털을 깎을 때 털의 처음 수확과 밀을 타작할 때 곡식의 처음 열매는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하였다. 모든 짐승의 처음 난 것도 역시 그렇게 하였고 처음 난 아들을 위하여는 속전을 지불하였다. 처음 열매들은 성소에서 여호와 앞에 바쳐야 하였고 그 후에 제사장들이 사용하도록 드려졌다.

이 자선 제도로 여호와께서는 범사에 당신이 첫째가 되셔야 함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토지와 양떼와 소떼의 소유주시며 그들에게 햇빛과 비를 보내어 곡식이 자라 결실하게 하시는 분도 그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였다.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이며 그들은 소유의 청지기에 불과하였다.”(행적, 336-337)

“너그러운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증된 원칙과 속인들의 생활에서 예증된 원칙은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떻게 상반되는가?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시 112:9-10)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은 인간에게 위임된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한 사업 곧 선과 자비와 진리의 부요함을 세상에 전하는 사업의 발전을 돕는 일을 하나의 의무로만 여기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히 하나님께 속한 재물을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간직하게 하는 것은 탐욕의 정신이며, 이같은 정신은 … 지금도 그분께는 가증하다.

너그러운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서 최고로 나타난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께서 가지셨던 모든 것을 버리셨으며 당신 자신을 주셨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자비심에 호소할 것이다. 거기서 예증된 원칙은 주고 또 주는 것이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한편 이기심의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속인들의 생활에서 예증된 원칙은 받고 또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속인들은 행복과 안일을 얻고자 하나 그들이 심은 열매는 비참과 죽음이다.”(행적, 338-339)

4.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대하여 어떻게 돌려드릴 것인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0)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 16:29)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기를 그치신다면,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몫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의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자녀들은 그분께 속한 부분만 여호와께 돌려드릴 것이 아니라 감사의 예물, 곧 너그러운 헌물을 그분의 창고에 드려야 한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들의 처음 열매, 곧 그들의 가장 좋은 소유물들, 가장 좋고 가장 거룩한 봉사를 창조주께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 그들은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영혼을 물이 마르지 아니하는 물 댄 동산 같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대 수확을 거둘 때, 저희가 주께 가져올 수 있는 단들은 저희가 받았던 달란트들을 이기심 없이 사용한 데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행적, 339-340)

“진정으로 회심한 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의 구호금 분배 관리자로 생각하고, 그분께서 그들의 손에 넣어 주신 자금을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분배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할 것 같으면, 그분의 사업의 필요를 위하여 그분의 보고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비와 은혜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풍성한 자금을 남녀들에게 맡기셨다. 그분께서는 자금을 가진 당신의 청지기들에게 주린 자들을 먹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업에 그들의 돈을 투자하라고 명령하신다. 품성의 완성은 자기희생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9증언, 53)

교회의 의무와 목회자의 포기할 권리

5. 복음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한 목사들을 부양할 의무가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가?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 14)


활동적인 사업에 종사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사자들은 그들의 형제들의 동정적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원을 받지 아니하고 자비(自費)로써 싸움에 나아가도록 강요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목회 사업에 투신하기 위하여 그들의 세속적 직업을 버린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접하는 것은 교인들이 할 바 일이다. 하나님의 목사들이 용기를 얻을 때 그분의 사업은 크게 진전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원이 철회될 때 그들의 손은 약하게 되고 흔히 그들의 유용성은 크게 해를 입는다. … 

다양한 분야의 세속적 사업에서는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충실한 일꾼들은 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진리를 선포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사업은 어떠한 보통 직업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이 아닌가? 이 사업에 충실히 종사하는 이들은 정당하게 충분한 급료를 받을 만하지 아니한가? 우리는 도덕적인 복리와 육체적인 복리를 위한 수고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가치를 평가함으로 지상의 것에 대비하여 하늘의 것을 존중히 여기고 있음을 나타내어야 한다.”(행적, 340-341)

6. 그럼에도 바울은 사도로서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면서도 때때로 생계를 위하여 노동의 일을 하였는데, 특히 그는 고린도에서 교회로부터 부양받을 정당한 권리를 왜 포기했는가?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전 9:12, 18)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는 합당한 방법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교훈을 조심성 있게 선명하며, 또 자신이 복음 전도자로서 생활 수단으로서의 세상적인 일에 대해서는 ‘일하지 아니할 권’(고전 9:6)이 있음을 주장하는 한편, 그가 문명의 대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때때로 수공으로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

바울이 처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그곳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의심을 잘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안에 있는 그리스 사람들은 장사에 매우 눈이 밝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약삭빠른 상업을 해 왔으므로, 이득은 신성한 것이며 공정한 방법으로든지 부정한 방법으로든지 간에 어떤 방법으로라도 돈을 버는 것이 제일이라고 믿어 왔다. 이러한 그들의 특성을 잘 아는 바울은 그들에게 ‘바울은 자기가 부해지려고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을 일으킬 실마리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서 생활비를 요구할 수 있었으나, 그가 이득을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는 부당한 오해로 전도자로서의 그의 성공과 유능성이 손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이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였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기별의 감화력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해받을 만한 것은 모두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복음, 234-235)

자기희생의 법칙과 극기에 대한 보상

7. 자기희생의 법칙은 어떤 자들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는가? 그들의 헌금은 극기를 요구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많은 헌금보다 어떻게 더 가치가 있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3-44)


아주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헌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더욱 곤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의 선물, 곧 극기의 열매는 향기로운 향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간다. 그리고 자기희생의 모든 행위는 주는 자의 마음에 자비의 정신을 굳게 하고, 본래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로 당신의 빈곤을 통하여 부요하게 하신 분과 더욱 가까이 연합하게 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전부인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은 과부의 행위는 빈곤과 싸우면서도 그들의 예물로 하나님의 사업을 돕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주의를 이 여인에게 집중시켰는데 여인은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막 12:44)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인의 연보를 극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많은 연보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기셨다. 그들은 풍부한 중에 적은 것을 드렸다. 그 과부는 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생활비까지라도 드렸으며 내일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 그분께서는 예물의 가치가 액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요 바친 비율과 바친 사람의 동기에 의하여 평가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행적, 341-342)

8.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드리고도 내일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리라는 가난한 과부가 가졌던 믿음의 보증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가?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

마 10:40-42


이 가난에 시달린 집에 심한 기근이 밀어닥쳐 비참하게도 하잘것없는 음식마저도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 과부가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처해 있던 바로 그 날에 엘리야가 옴으로 자기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 여인의 신앙이 최대의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서운 궁지에서라도 그 여인은 마지막 떡 한 조각을 나누어 먹자는 낯선 사람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그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 

이보다 더 큰 신앙의 시험을 요구할 수 없었다. 과부는 이제까지 모든 나그네를 친절하고 너그럽게 접대하였다. 이제 자신과 아이에게 이르러 올 고통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여 ‘엘리야의 말대로’ 함으로 그 여인은 이 손님을 친절히 대접하라는 최고의 시험에 응했다.

이 페니키아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나타낸 후대는 놀라웠으며 그의 신앙과 관용은 놀라운 보상을 받았다.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 

사렙다 과부는 자기의 적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 보답으로 그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시련과 빈곤의 때에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엘리야의 시대보다 적어지지 않았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마 10:41)라는 약속은 지금도 옛날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시던 때와 똑같이 확실하다.”(선지, 130-132)

전심으로 드리는 사랑의 증거물

9. 유대의 신자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이방인 교회에서 모금할 때에 마게도냐 신자들의 너그러움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어떻게 모본이 되었는가?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 8:1-4)

고후 9:1-7


마게도냐 신자들은 거의 모두가 이 세상 물질에는 가난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흘렀다. 그들은 복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쁨으로 바쳤다. 유대의 신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에서 전체적으로 모금을 할 때 마게도냐의 회심한 사람들의 너그러움은 다른 교회에 모본이 되었다. … 

마게도냐 신자들이 행한 자원하는 희생은 전심으로 헌신한 결과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그 후에 복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아낌없이 바쳤다. 그들에게 바치도록 간청할 필요가 없었으니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필수품까지라도 부정하는 특권을 기뻐하였다. 사도가 그들을 제지하려 하였을 때 그들은 그들의 헌금을 받으라고 끈질기게 졸랐다. 그들은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단순성과 성실로 즐거이 자아를 부정하였으므로 자비의 열매가 풍성하였다.”(행적, 343-344)

10. 초기 교회들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너그러움과 관대함의 증거들은 무엇의 결과인가? 우리의 재물들을 어떻게 먼저 하늘 창고에 들일 수 있는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 9:8-9)


이기심이 없는 너그러움은 초기 교회를 기쁨에 넘치게 하였다. 이는 신자들이 저희의 노력이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별을 전하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안 까닭이었다. 그들의 자비심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다. 성령의 성화가 아니고는 무엇이 이와 같은 관대함을 가져오게 할 수 있었겠는가? 신자들과 신자 아닌 사람들의 안목에 이것은 큰 은혜의 이적이었다.

영적 번영은 그리스도인적 관대함과 밀접히 결속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구주의 자비심을 나타낼 특권에 대하여 기뻐하여야 한다. 주님께 드릴 때 그들은 그의 재물이 그들보다 앞서 하늘 궁정으로 간다는 보증을 가진다. 사람들이 그들의 소유를 안전하게 하고자 하는가? 그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이 있는 손에 그것을 두게 하라. 그들이 그들의 물질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가? 그들로 곤궁하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이것을 사용하게 하라. 그들이 저희 소유를 증가시키고자 하는가? 그들로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 10)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하라. 그들이 자신의 소유를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간직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그들의 영원한 손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보화를 하나님께 드리면 그 순간부터 그것에는 그분의 이름이 명각(銘刻) 되며, 그분의 불변의 인을 받는다.”(행적, 344-345)


[상고할 말씀]

자기희생은 그리스도의 교훈의 요지이다. 흔히 그것은 권세 있게 보이는 말씀으로 제시되고 명령으로 주어진다. 왜냐하면, 만일 간직하고 있으면 인간 전(全) 존재를 타락시킬 이기심을 사람의 생애에서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달리 인간이 구원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9증언, 49)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의 시간과 힘을 자아 중심의 삶에 바치기에는 너무 늦다. 마지막 날에 그대가 하늘의 보화에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 십자가의 승리를 밀고 나가고, 영혼들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대들의 동료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의 사업은 시험하는 불의 시련을 견딜 것이다.

자아 희생적인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소모되고 또한 소모당하고자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도와주기 위하여 열렬하고 사려 깊은 활동을 함으로써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의 동료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그는 봉사하는 중에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배들을 모으기 위하여 오실 때, 그는 다시 발견될 것이다.”(9증언,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