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위선에 대한 경고

by 청지기 posted Feb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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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12분


제7과


위선에 대한 경고


[연구범위]

사도행적, 70-77; 행 4:32-5:11 (참고: 청지기, 309-318) 


기억절 :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서론 :  신자들 편에서의 이러한 관대한 행위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결과였다. 복음으로 개심한 사람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관심, 곧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탐심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다. 형제들과 저희가 지지한 사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돈과 소유물에 대한 애착보다 훨씬 더 컸다. 그들의 행위로 보아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세상 재물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이 분명하였다.”(행적, 70-71)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서로 나눔

1. 오순절 이후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급속도로 증가됨에 따라 신자들 중에는 어떤 이들이 있게 되었으며, 교회는 이들을 위한 필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는가?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행 4:33-35)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에 증거를 더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이 초대 신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열렬한 유대인들의 고집 때문에 곧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끊어졌으므로 이들에게 음식과 거처를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영감의 기록은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진술하는데, 그것은 그 필요가 충분히 채워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자들 중에 돈과 소유가 있는 사람들이 그 위급한 때를 대처하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기쁨으로 희생하였다. 집이나 토지를 팔아 그 돈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적, 70)

2. 오순절 경험 이후 복음 사업을 위한 초대 교회 신자들의 자원하는 헌물과 관대한 행위에 대한 어떤 모본이 기록되어 있는가?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6, 37)


하나님의 성령이 생애를 지배할 때에는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의 가난함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게 될 것이다. 돈, 시간, 영향력 등 저희가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모든 선물들은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방편으로 사용될 때에만 가치가 있을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러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 사물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버리게 될 때 그들은 기쁨으로 동료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희생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선포한 진리는 듣는 이들에게 유력한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행적, 71)

아나니아와 삽비라 – 아름다운 축복을 상실한 자들

3. 초대 교회에 성령의 충만을 누린 특권을 받은 신자들 중에는 관대함의 모본과는 대조적으로 어떤 자들이 있었는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행 5: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위는 신자들이 나타낸 박애 정신의 모범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으니, 영감의 붓으로 기록된 그들의 경험은 초대 교회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소위 제자라는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들을 특권을 가졌다. 이들은 사도들이 기도한 후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행 4:31)였을 때에 다른 신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참석한 모든 사람은 깊은 가책을 느꼈고,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떤 재산을 팔아 그 수입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약하였다.”(행적, 71-72)

4.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이루어졌던 서약을 왜 철회하기로 결정했는가? 그들은 어떤 이중적인 마음을 품었는가?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행 5:2)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 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 그들은 저희가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였으므로 그들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문제를 여러번 이야기하였고, 그들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그들의 소유를 나누어 준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크게 존경을 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 엄숙히 헌납하였던 것을 바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형제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의적으로 재산을 팔아 그 모든 수입을 공공 기금으로 바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큰 몫을 따로 떼어 두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공공 자금으로 그들의 생계도 유지하고 동시에 형제들의 존경을 크게 얻고자 하였다.”(행적, 72)

하나님과 교회 모두를 속이므로 성령을 시험함에 대한 경고

5. 아나니아의 위선과 거짓은 어떤 결말을 보았는가? 그에게 신속한 형벌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인가?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 8)

마 12:31, 32; 전 5:4-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위선과 거짓을 미워하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과의 거래에 있어서 기만을 행하였고, 성령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므로 그들의 죄에 대해 신속하고도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아나니아가 헌물을 가져왔을 때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적, 72)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의 마음은 형제들과 같이 그들의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성령에 의하여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서약을 한 후에 그들은 뒤로 물러서서 이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바친다고 말하면서 그 값의 얼마를 감추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사기를 쳤고 성령께 거짓말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는 신속하고 두려운 심판을 초래했다. 그들은 현세의 생명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잃어버렸다.”(청지기, 312)

6. 남편의 죽음을 모른 채 들어온 그의 아내 삽비라 또한 어떻게 속였는가? 둘 다 동일한 형벌을 즉시 받음으로 교회에 어떤 경고가 되었는가?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 5:7-9, 11)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께서는 이렇게 주목할 만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시는 것이 어린 교회를 타락하지 않게 보호하는데 필요됨을 아셨다. 교인의 수효는 신속히 증가하고 있었다. 개심자들이 급속히 증가하는데, 만일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고백하면서 재물을 섬기는 남녀들이 들어오게 된다면 교회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이 심판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속일 수 없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감추어진 죄악을 찾아내시는 분으로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심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그들로 허위와 위선을 피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교회에게 주신 한 경고였다.

탐욕과 기만과 위선에 대한 하나님의 가증히 여기심에 대한 이 실례는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장래 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위험 신호로 주신 바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처음에 마음에 품은 것은 탐심이었다. 저희가 주님께 약속한 것의 일부분을 자신들을 위하여 보류하여 두고자 한 욕망 때문에 그들은 기만과 위선을 행하게 되었다.”(행적, 73-74)

하나님께 드린 서약은 성별된 금고임

7.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서약한 것은 십일조와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다른 헌금들과는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잠 12:22)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시 15:1, 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 4)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 사업이 당신의 백성의 수고와 헌금에 의존되게 하셨다.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과 십일조는 주의 사업에 재원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맡기신 재물의 일부분, 즉 십일조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이보다 더 많이 드리든 아니하든 모두 자유로 두신다. 그러나 마음이 성령의 감화로 감동을 받아 얼마의 금액을 바치기로 서약하였으면, 서약한 사람은 성별한 부분에 대하여 더이상 아무런 권리가 없다. 사람에게 한 그런 류의 약속들은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렇게 구속력이 있거든 하물며 하나님께 한 약속은 얼마나 더 구속력이 더하겠는가? 양심으로 결정한 약속이 사람들의 계약서보다 구속력이 덜하겠는가?”(행적, 74)

“성경에 의하여 주께 속한 것으로 구별해 놓은 것은 복음의 재원(財源)을 이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의 금고에서 취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바로 신성 모독이다.”(9증언, 246-247)

8. 이기심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서약할 때에 그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서약의 의무를 속히 이행하지 않으므로 시험에 빠질 수 있음을 왜 명심해야 하는가?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잠 20:25)

신 23:21-23


거룩한 빛이 매우 밝고 힘있게 마음을 비추게 되면 평소의 이기심은 그 힘을 잃고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저희가 그 때 한 약속을 사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성취하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구속주의 나라가 지상에 세워지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사단은 그들이 약속한 서약이 너무 많아서 재산을 모으거나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그들의 수고가 헛될 것이라고 암시한다.”(행적, 74-75)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맹세하고 서약한 것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를 백성들에게 깊이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서약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어음만큼도 그 서약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서약을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말로 한 약속을 무시할 것인가? 어떤 법적 계약서나 약정서도 하나님께 대한 서약보다 더 강제성을 띠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리뷰 1893. 5. 23).”(화잇주석, 행 5:1-11)

이생과 내세 둘 다 잃어버림

9.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기심과 탐욕의 속성을 정복하지 않은 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는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그 위증자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모든 위선과 기만을 몹시 증오하시며 멸시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도 배우기를 원하셨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모두 바친 것처럼 가장함으로 성령을 속였고, 그 결과로 이생과 내세를 다 잃어버렸다. 그들을 처벌하신 그 같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모든 거짓을 정죄하신다. 거짓된 입술은 그분께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계 21:27) 거룩한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신다. 진리를 전하는 일에 있어서 무책임한 필치나 불확실한 이해가 있게 하지 말라. 이 일을 생활의 한 부분이 되게 하라. 진리에 대하여 변덕스러운 태도를 취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계획에 맞추고자 가장하는 것은 믿음의 파선을 의미한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엡 6:14)라.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그의 영혼을 싼값에 파는 것이다. 그는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할지 모른다. 또한 공정한 거래를 통하여 이룰 수 없을 사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자신이 거짓말쟁이인고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확신을 갖지 않는다.”(행적, 75-76)

10.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무리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을지라도(3문 참고문 참조), 결국 그들은 어떤 죄를 버리지 못하므로 실패하고 말았는가? 표상적인 출애굽 사건에서 유사한 사건을 찾아보고,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사건들, 마지막 시대의 사건에서도 어떤 경고가 있는지 대조해보라.

수 7:1-26; 22:20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마지막 진노와 심판)

마 8:19, 20 (마지막 제자와 그의 결말)

마 25:42-45 (마지막 비유에서 염소의 운명)


그분께서는 예수께서 자기의 귀한 생명을 바쳐서 얻은 그의 공인된 백성들 가운데서 털끝만큼이라도 이기심이 보이면 대경실색한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누구나 다 정로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의 주님을 판 유다처럼 그들은 조그만 세상적인 유익을 위하여 선한 원칙들과 그리고 고상하고 관대한 마음을 팔 것이다. 그러한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늘을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온갖 정성을 다하여 하늘의 원칙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의 영혼이 이기심으로 위축되는 대신에 은혜로 왕성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위하여 선을 행할 기회가 많아지고 따라서 하늘의 원칙들을 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모본이시다. 그의 생애 가운데서는 이기심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항상 사심 없는 자비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초기, 268-269)


[상고할 말씀]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나 하나님께 부정직한 거래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경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사신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세상은 대규모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 주께서 재물을 더 많이 주실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그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자들이 세상의 습관을 따라서야 될 것인가? 우리는 주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신 것을 주의 사업에 바치지 않으므로 양심의 평화와 하나님과의 교제, 형제들과의 우정을 모두 잃어서야 되겠는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과 재정 처리에 관한 성경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라. 만일 그대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다면 주님의 재물을 횡령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사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

형제 자매들이여! 만일 주께서 그대에게 재물로 축복하셨거든 그것을 그대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말라. 하나님을 위하여 그대에게 위탁하신 것으로 여기고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일에 진실되고 정직하라. 그대가 서약을 했으면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한 신속히 바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님께 드리기로 서약한 후에 그대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므로 그대의 기도가 가증한 것이 되지 않게 하라. 교회에 흑암이 덮이는 것은 이 명백하게 계시된 의무들을 등한히하기 때문이다. ― RH, 1889. 12. 17.”(청지기,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