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라도의 법정에서(1)

by 청지기 posted Sep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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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07분


제1과


빌라도의 법정에서(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723-731; 마태복음 27:2, 11-14; 마가복음 15:1-5; 누가복음 23:1-11; 요한복음 18:28-39


기억절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서론 :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하는 사람을 쳐다보고 그 다음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죄수들을 다루었으나 이와 같이 선량하고 고상한 특성을 풍기는 사람이 그의 앞에 온 일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죄의 흔적이나 두려워하는 표정이나 완고하거나 도전적인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정숙하고 존귀한 태도를 지닌 사람, 죄인의 흔적이 없는 하늘의 특색을 지닌 사람을 보았다.”(소망, 724)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

1. 의회의 재판에서 예수님께 사형이 결정되었으나, 그분께서 다시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 27:1-2)

“말씀하시기를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리니, 그들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며”(막 10:33; 킹제임스)


로마의 통치하에서는 산헤드린은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죄수를 심문하고 재판할 수 있었으나 반드시 로마 당국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소망, 698)

“그리스도께서는 죄수처럼 포박되어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셨다. 감시하는 군사들이 그분을 둘러섰고 재판정은 구경꾼들로 꽉 차 있었다. 출입문 바깥에는 산헤드린의 재판관들, 제사장들, 관원들, 장로들과 폭도들이 서 있었다.

예수님을 정죄한 후에 산헤드린 의회는 선고를 확인받아 집행하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갔다.”(소망, 723)

2.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빌라도에게 고소하러 온 유대인 관리들은 왜 법정 안으로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는가?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 18:28)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그러나 이들 유대인 관리들은 로마인의 법정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문의 율법에 의하면 그들이 그 일로 더럽혀지게 되면 유월절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우매하여 저희 마음속에 가득 찬 살기등등한 증오심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참 유월절 양이신 것과 그들이 그분을 거절한 이상 그 큰 잔치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소망, 723)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며 저들의 의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고 저들의 희생 제물과 예물들이 그 중대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1기별, 239)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3. 빌라도는 예수님의 용모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으며, 그분과 그분의 사업에 대하여 어떻게 듣고 있었는가?

보라, 내 종이 슬기롭게 행할 터인즉 그가 높여지고 격찬을 받으며 지극히 고귀하게 되리라.”(사 52:13, 킹제임스)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하는 사람을 쳐다보고 그 다음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죄수들을 다루었으나 이와 같이 선량하고 고상한 특성을 풍기는 사람이 그의 앞에 온 일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죄의 흔적이나 두려워하는 표정이나 완고하거나 도전적인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정숙하고 존귀한 태도를 지닌 사람, 죄인의 흔적이 없는 하늘의 특색을 지닌 사람을 보았다.

그리스도의 용모는 빌라도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선한 본성이 일깨워졌다. 그는 이미 예수님과 그분의 사업에 대하여 들어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신 갈릴리의 선지자가 행한 놀라운 일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그것이 꿈처럼 빌라도의 마음에 다시 회상되었다. 그는 여러 곳에서 들은 소문을 다시 회상하였다.”(소망, 724)

4. 빌라도의 어떤 질문이 유대의 제사장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그들이 초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요 18:29)


빌라도는 ‘이 사람이 누구며 어디서 데려왔느냐?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하고 물었다. 유대인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드러내 놓고 심문하기를 원치 않았다. 저희는 대답하기를 ‘그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우는 한 기만자라’고 하였다.

또 다시 빌라도는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고 물었다. 제사장들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초조한 모습으로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이 나라의 일인자들이 사형에 처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당신에게 데려왔는데, 그에 대한 고소 죄목이 왜 또 필요한가? 그들은 빌라도에게 자기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많은 예비 심문을 거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수락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이적을 목격한 백성들이 저희들이 지금 시도하고 있는 거짓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한 선고에 대해 속히 재가받게 되기를 열렬히 원하였다.”(소망, 724)

제사장들이 궁지에 빠짐

5. 제사장들은 빌라도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이용하여 예수님께 대한 사형선고의 재가를 얻고자 하였으나, 빌라도는 왜 저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는 어떻게 하기로 작정했는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요 18:30-31)


제사장들은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빌라도와는 그들의 계획을 무난히 성취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일전에 빌라도가 사형에 처할 만한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 사형선고를 하고 그 사형 영장에 급히 서명한 일들이 있었다. 그의 생각에는 죄수의 생명이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그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바란 것은 빌라도에게 예수님과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고 그로 하여금 사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민족의 대축제일에 드리는 청이므로 이것을 그대로 받아주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 죄수에게는 빌라도를 주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감히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제사장들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어떻게 살리셨는지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정죄의 선고에 서명하기 전에 예수님을 고소하는 죄목이 무엇이며 저희가 능히 그것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결심하였다. …

빌라도는 공정하거나 양심적인 재판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심지(心志)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 대한 고소가 성립되기까지는 예수님을 정죄하지 않을 작정이었다.”(소망, 724-725)

6.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거절당함으로 궁지에 몰리자, 어떤 최후의 수단으로 그분을 고소했는가?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눅 23:2)


제사장들은 궁지에 빠졌다. 그들은 자기들의 위선을 깊숙이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종교적 문제로 잡혀 왔다는 것을 나타내지 말아야 하였다. 만일 그것이 잡혀 온 이유로 대두된다면 그들의 추진하는 일이 빌라도에게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공법(公法)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야만 했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 가운데서 로마 정부에 대한 폭동과 반란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반란을 매우 가혹하게 다스렸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제사장들은 이 기회에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기를 바랐던 그것을 그분이 가르쳤다고 주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후 수단으로 그들은 도움이 될 만한 거짓 증인들을 불러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였다. 세 가지는 전혀 터무니없는 고소였음을 제사장들은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같은 위증죄(僞證罪)를 범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소망, 725-726)

빌라도에게 주어진 귀중한 기회

7. 빌라도는 유대의 고관들이 음모로써 예수님의 사형선고를 받아내려는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그분의 품성의 증거를 통하여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확신을 고백할 기회를 어떻게 놓쳐 버렸는가?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 18:33-37)


예수께서는 직접적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성령께서 빌라도와 투쟁하시는 것을 아시고 그가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대답하셨다. 다시 말하면 빌라도로 하여금 그러한 질문을 하게 한 것이 제사장들의 고소 때문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고자 하는 소망 때문인가? 라는 말이다.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깨달았으나 그의 마음속에 자만심이 일어나서 그가 절실하게 느꼈던 확신을 고백하려 하지 않았다. …

빌라도는 황금처럼 귀중한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더욱더 빛난 빛을 주시지 않고는 그를 떠날 수 없었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자신의 사명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자기가 세상의 보좌를 구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빌라도가 깨닫도록 하셨다.”(소망, 726-727)

8. 빌라도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은 있었으나, 그런 그의 욕망은 어떻게 묵살되고 말았는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 자체가 말씀의 신비를 여는 열쇠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그 자체를 추천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바로 그것이 당신의 진리의 왕국을 넓히는 비결이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일만이 그의 황폐된 성질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빌라도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다.

빌라도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는 구주의 말씀을 열심히 붙잡았으며 그의 마음은 참으로 진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욕망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그는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법정 밖의 소란함이 그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는데, 이는 제사장들이 그로 하여금 즉시 행동하도록 시끄럽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힘주어 선언했다.”(소망, 727)

헤롯의 재판정에 서신 예수님

9.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죄할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했으나, 왜 그분을 석방할 수 없었는가? 그는 자신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시키고자 했는가?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눅 23:6-7)


그때까지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증오와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소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공의는 그리스도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백성들의 악의를 두려워했다. 그가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기를 거절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그 지역의 통치자 헤롯에게 그리스도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빌라도는 심문의 책임을 헤롯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그것은 또한 자신과 헤롯 사이의 오랜 분쟁을 종식시킬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 일은 예상한 대로 되어서 두 장관은 구주의 심문을 계기로 서로 친구가 되었다.”(소망, 728)

10.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심히 기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연고로 예수님의 이적을 기대했는가?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눅 23:8)

“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눅 9:9)

막 6:14-29; 눅 9:7-9 참조


빌라도는 예수님을 다시 군사들에게 내어 주었고 예수님은 폭도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 헤롯의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는 전에 구주를 만나본 일은 없었으나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때문이었다. 이 헤롯은 자기의 손을 침례 요한의 피로 물들인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에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막 6:16; 마 14:2).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자 했다. 그는 이제 이 선지자의 생명을 구원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마음에서, 피가 흐르는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오던 기억을 영원히 씻어 버리기를 원했다. 그는 또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만일 예수께 석방될 수 있다는 가망성을 보여 준다면 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소망, 728)

헤롯의 분노와 책임 회피

11. 헤롯은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도록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고 위협했지만, 왜 예수님께서는 전혀 응하지 않으셨는가?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눅 23:9)


구주의 침착한 얼굴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그(헤롯)는 그 얼굴에서 지혜와 순결만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빌라도와 같이 그도 그리스도가 적의와 질투에 의하여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시인하였다.

헤롯이 여러 말을 그리스도께 질문했으나 구주께서는 시종 깊은 침묵만을 지키고 계셨다. 왕의 명령으로 노쇠한 불구자들을 불러들인 다음 그들에게 이적을 행해서 그분의 주장을 입증하도록 요구했다. 사람들이 그대가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하니 나는 그대의 널리 퍼진 명성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기를 원하노라고 헤롯은 말했다. … 그러나 그리스도는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람과 같았다. …

헤롯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서 어떤 이적을 행한다면 석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 말도 못 들으신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으셨다.

헤롯은 이와 같은 침묵에 분노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권위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만심이 강하고 도도한 왕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공개적인 견책이 훨씬 덜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그는 화를 내며 예수님을 위협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역시 움직이지도 않으신 채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명은 쓸데없는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상한 심령을 고치기 위하여 오셨다. 죄로 병든 영혼들의 상처를 싸매시기 위하여 말씀해야 하셨다면 그분은 침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거룩하지 않은 말로 진리를 짓밟는 자들을 위해서는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소망, 729-730)

12. 헤롯은 예수님의 침묵에 어떻게 분노했는가? 그는 왜 양심의 가책을 받았으며, 그분을 정죄하는 무서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눅 23:11)


헤롯의 얼굴은 격정으로 점점 어두워갔다. 그는 군중들을 둘러보며 분노한 음성으로 예수님을 협잡꾼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그대를 군병들과 백성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하여금 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협잡꾼이라면 그들의 손에서 그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며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적을 행하여 그대 자신을 구원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군중들은 그리스도를 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야수처럼 군중들은 그들의 노획물에 달려들었다. 예수께서는 이리저리 끌려다니셨으며 헤롯은 폭도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하였다. 로마의 군병들이 사이를 가로막아 미친 폭도들을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구주께서는 갈갈이 찢기셨을 것이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혔다. 로마 군병들도 욕설하는 데 가담하였다. 헤롯과 유대인의 고관들의 지지를 받은 사악하고 부패한 군병들이 선동하는 온갖 모욕을 구주께서는 다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거룩한 인내심을 잃지 않으셨다.

… 헤롯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 자비의 광선이 죄로 굳어진 그의 마음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 죄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이는 그의 인성을 통하여 신성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조롱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그 시간에 헤롯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처럼 마음이 굳은 헤롯도 그리스도에 대한 선고를 감히 재가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무서운 책임에서 놓여 나기 위하여 예수님을 로마인의 재판정으로 돌려보냈다.”(소망, 730-731)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께서는 완고한 왕의 귀를 찌를 수 있는 말씀을 헤롯에게 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분은 죄에 가득 찬 헤롯의 생애와 다가오는 무서운 운명을 그의 앞에 공개하심으로 그를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히도록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침묵이 당신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통렬한 견책이었다. 헤롯은 선지자 중의 가장 큰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주어진 진리를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받을 만한 아무런 다른 기별이 없었다. 하늘의 임금께서 그에게 하실 말씀이 하나도 없었다. 인간의 슬픔에 항상 기울이시던 그분의 귀는 헤롯의 명령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동정과 관대한 사랑으로 뉘우치는 죄인을 항상 바라보시던 그분의 눈은 헤롯에게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으셨다. 가장 감명 깊은 진리를 말씀하시고 가장 흉악하고 타락한 자들에게 부드러운 음조로 탄원하시던 그분의 입술이 구주의 필요를 느끼지 않은 거만한 왕에게는 닫혀져 있었다.”(소망,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