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안나스 앞과 가야바의 궁전에서(2)

by 청지기 posted Sep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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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39분


제12과


안나스 앞과 가야바의 궁전에서(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706-712; 마태복음 26:62-67; 마가복음 14:63-65; 누가복음 22:34; 요한복음 18:16-17 


기억절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서론 :  잠잠할 때가 따로 있었다. 그분은 직접 질문을 받으시기 전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대답하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확실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나 이 호소는 민족의 공인된 최고의 권위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께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품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선언하셔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모본으로써 그 교훈을 반복하셨다.”(소망, 706-707)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정죄하려는 거짓되고 모순된 어떠한 증언에도 잠잠히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재판이 진전이 없자 당황하게 된 가야바는 어떻게 부르짖었는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께서는 모순된 증언들을 참을성 있게 들으셨다. 그분은 자기방어를 위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마침내 예수님을 고발하던 자들 사이에 분규가 일어나게 되고 당혹하고, 발광하게 되었다. 재판은 진전되지 못하고 그들의 음모는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야바는 절망적이었다. 한 가지 최후 수단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정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재판석에서 일어났으며 그의 얼굴은 격앙되어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의 음성과 태도는 분명히 그의 앞에 서 있는 죄수를 죽일 수 있는 세력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고 부르짖었다.”(소망, 706)

2. 마침내 가야바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도록 어떻게 호소했는가? 그분께서는 이 호소에 답하심으로 죽음이 초래될 것을 아셨으나, 자신을 어떻게 분명히 시인하셨는가?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마 26:63-64)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마침내 가야바는 그의 오른손을 하늘로 향하여 들고 엄숙한 선서의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예수님에게 말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런 호소에 그리스도께서는 잠잠히 계실 수 없었다. 잠잠할 때가 따로 있었다. 그분은 직접 질문을 받으시기 전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대답하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확실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나 이 호소는 민족의 공인된 최고의 권위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께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품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선언하셔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모본으로써 그 교훈을 반복하셨다.”(소망, 706-707)

가장 소중한 급소를 찔린 가야바의 분노와 정죄

3.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시고, 지금 그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과 정반대되는 어떤 장면을 상기시켜 주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선언하심과 더불어 신성의 증거를 나타내심으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의 어떤 장면에 주목하도록 하셨는가?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실 때에 모든 사람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모든 사람의 눈은 그분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덧붙여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하늘의 빛이 그분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동안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분의 인성의 자태를 통하여 번쩍거렸다. 대제사장도 구주의 꿰뚫어 보는 시선 앞에 두려워서 떨었다. 그 시선은 대제사장의 숨겨진 생각을 읽고 그의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일생 동안 그 핍박 받으시던 하나님의 아들의 엄중한 시선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 가운데서 그때에는 지금 그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과 정반대되는 장면이 나타날 것을 보여주셨다. 생명과 영광의 주로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이다. 그분은 온 세상의 재판관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판결에는 상소(上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에 모든 은밀한 일들이 하나님의 얼굴의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며 각 사람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소망, 707-708)

4. 놀란 가야바는 잠시 동안 어떤 공포스러운 광경의 환상을 보았는가? 그는 사단과 같은 분노를 어떻게 나타내었으며 예수님을 어떻게 정죄했는가?

…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겔 33:2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마 26:65)


그리스도의 말씀은 대제사장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으며 그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으리라는 생각은 가야바에게 공포심을 주었다. 그는 장래에 그가 그의 행위대로 선고를 받으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믿기를 원치 않았다. 최후의 심판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그의 마음에 밀려들어왔다. 잠시 동안 그는 무덤들이 죽은 자들을 내어 주는 무서운 광경과 그가 영원히 감추인 바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비밀들을 보았다. 잠시 동안 그는 마치 영원한 재판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고 만물을 보시는 재판관의 눈이 그의 심령을 읽으시며 죽은 자와 함께 감추인 바 되었다고 생각한 비밀들이 밝히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 광경이 제사장의 환상에서 사라졌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두개인인 그의 급소를 찔렀다. 가야바는 부활과 심판과 내세에 관한 교리를 부인하였다. 이제 그는 사단과 같은 분노로 발광하였다. 자기 앞에 있는 이 죄수가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학설을 논박하려고 하는가? 그는 자신이 짐짓 가장하고 있는 증오를 백성들이 보도록 그의 예복을 찢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죄수가 참람된 말을 했으므로 정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하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정죄하였다.”(소망, 708)

가야바가 사람의 유전을 따라 제사장 예복을 찢음

5. 가야바는 예수님을 참람의 죄로 정죄하면서 옷을 찢음으로 자신의 경건을 나타냈으나, 이는 오히려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에게 스스로 어떤 선고를 내린 것인가? 대제사장의 모든 공식 의상은 누구의 품성을 표상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막 14:63)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레 21:10)


분노가 뒤섞인 확신이 가야바로 하여금 그처럼 행동하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격분했다. 그는 진리에 대한 깊은 자각으로 자기의 마음을 찢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고백하는 대신에, 그것을 결정적으로 거절한다는 뜻으로 그의 제사장 예복을 찢었다. 이 행위는 깊은 뜻이 있었다. 가야바는 이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재판관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리스도를 정죄케 한 이 행위로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정죄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그는 제사장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 의복을 찢어서는 안 되었다. 레위인의 율법에 의하면 이것은 사형에 처할 행위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경우에도 제사장은 그의 예복을 찢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 중에는 친구가 죽을 때에 옷을 찢는 풍속이 있었으나 이 풍속을 제사장들은 지키지 말아야 했다. 이것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모세에게 명령하셨다(레 10:6).

제사장들이 입는 모든 것은 완전하고 흠이 없어야만 했다. 이 아름다운 제사장의 공식 의상들은 크신 원형(原型)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대표하였다. 의복과 태도에 있어서나 말과 생각에 있어서 완전함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그분의 영광과 완전함이 지상 봉사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완전함만이 하늘 봉사의 신성성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은 죄를 뉘우치고 겸손한 정신을 나타냄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찢어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분간하실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의 예복은 찢지 말아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늘의 사물에 대한 표상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찢어진 예복을 입고 감히 거룩한 직무에 나아가 성전봉사에 임하려는 대제사장은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그의 의복을 찢으므로 그는 상징적인 성격을 띤 직분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끊어 버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의식을 집무하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받으신 바 되지 못할 것이다. 가야바가 나타낸 행동은 인간의 격정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었다.”(소망, 708-709)

6. 가야바의 옷을 찢는 행동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며, 그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죄인가? 그의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한 국가로서 유대민족 전체에게 어떤 운명을 스스로 선고한 셈인가?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레 10:6)

삼상 15:26-28 참조


그의 의복을 찢으므로 가야바는 사람들의 유전을 따르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들었다. 참람된 사건에 제사장이 그 죄를 보고 무서워서 자기의 의복을 찢는 경우에는 죄가 없도록 인간이 만든 법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들의 율법으로 인하여 효력을 잃게 되었다.

대제사장의 모든 행동을 백성들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으며 가야바는 그의 경건을 나타내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비난하려고 계획된 이 행동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 23:21)고 말씀하신 그분을 모욕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참람된 죄를 범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정죄 아래 서서 그는 그리스도에게 참람된 자라는 선고를 내렸다.

가야바가 그의 의복을 찢었을 때에 그의 행동은 유대 민족이 한 국가로서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 대하여 그들이 서게 될 위치를 의미하였다. 한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던 백성들이 저희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고 있었으며, 여호와의 버림받은 백성이 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부르짖으셨을 때 성전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어졌는데, 거룩한 파수꾼께서는 유대 백성들이 그들의 모든 상징물의 원형이시며 그들의 모든 그림자의 실체이신 그분을 거절했다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졌다. 가야바가 그 때 크신 대제사장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던 대로 그러한 뜻을 가진 그의 옷을 찢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 옷이 그와 그의 백성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자기 자신과 자기 민족에 대한 공포에 눌려 그의 예복을 찢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소망, 709)

비인간적인 학대와 잔인한 취급을 받으심

7. 산헤드린 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무식한 폭도들로부터 어떤 취급을 당하셨는가?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마 26:67)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5)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선고했으나 밤에 죄수를 심문하는 것은 유대인의 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합법적인 선고를 하기 위해서는 낮에 성원이 된 의회 앞에서만 가능했고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주께서는 이제 유죄 선고를 받은 죄수로 취급되셨고 가장 낮고 비루한 인간에게 학대를 받도록 내어준 바 되셨다. 대제사장의 관저는 군사들과 군중들이 모여 있었던 개방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정원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감호실로 잡혀 가셨는데, 그 때 사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주장을 조롱했다.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그분의 말씀이 희롱조로 여러번 반복되었다. 법적 심문을 기다리면서 감호실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무식한 폭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의회 앞에서 잔인하게 취급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이것을 저희의 악마적인 성질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허가서로 삼았다. 그리스도의 고상하고 경건한 태도가 그들로 미치게 만들었다. 그분의 온유하심과 결백하심과 위엄스러운 인내심은 그들을 사단에게서 온 온갖 증오심으로 가득 채웠다. 자비와 공의는 짓밟혀졌다. 일찍이 하나님의 아들처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취급된 죄수는 결코 없었다.”(소망, 709-710)

8.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예수님께 안겨준 사람은 누구였는가?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 22:34)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한 고민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찢었는데 그것은 어떤 원수의 손이 가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그분에게 주었다. 가야바 앞에서 조소적인 심문을 받고 계실 때에 그의 제자 중 하나가 그를 부인했다.”(소망, 710)

베드로는 주님을 어떻게 부인하게 되었는가?

9.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 온 가야바의 재판정에서 그분의 제자로서보다는 섞인 무리와 함께 어떤 자로 여겨지기를 바랐는가? 그의 마음은 왜 불신으로 점령되었는가?

베드로는 문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요 18:16-17)


그때는 바로 동이 트기 직전이었고 그날 밤 중 가장 추운 때였으므로 마당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한 무리가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염치없이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기를 원치 않았다. 군중들과 섞여서 그는 예수님을 이곳으로 끌고 온 자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불꽃이 베드로의 얼굴을 비추자 문을 지키던 여인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여인은 그가 요한과 같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그의 얼굴의 절망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예수님의 제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인은 가야바의 집 종이었으며 호기심이 나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는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놀라고 당황했으며, 군중들의 눈은 곧 베드로에게 쏠렸다. 베드로는 그 여인의 말을 못 들은 체하였으나 그 여인은 굴하지 않고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고 화를 내며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고 곧 닭이 울었다. 오, 베드로여 그렇게 빨리 그대의 주님을 부끄러워하다니! 그렇게 빨리 그대의 주님을 부인하다니!”(소망, 710-711)

“술책이 동기가 되어 행동하지 말라. … 만일, 베드로가 술책을 사용하여 책망과 조롱, 핍박과 능욕을 피하고자 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처럼 연약하고 어리석은 일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희망은 그리스도 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굴욕을 당하시는 것을 보자, 불신이 들어와서 마음을 점령하게 되었다. 그는 유혹의 세력에 사로잡히게 되고, 위기를 당하여 성실성을 보여주는 대신에 사악하게도 그의 주님을 부인하였다.”(2보감, 137)

10. 베드로가 쉽게 원수의 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적극적인 투쟁에 있어서는 두려워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겁쟁이가 되고 마는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


베드로는 그의 진정한 신분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태도를 가장하므로 그는 자신을 원수의 편에 두었으며 쉽게 원수의 밥이 되었다. 만일 그가 자기 주님을 위하여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더라면 그는 용감한 군인이 되었을 것이나 조롱의 손가락이 그를 지적했을 때에 그는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말았다. 저희 주님을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겁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받게 될 때에는 그들의 신앙을 버리게 된다. 마땅히 피해야 할 자들과 사귀므로 그들은 유혹의 길에 저희 자신들을 방치해 둔다. 그들은 저희를 유혹하도록 원수를 초청해 들이고, 다른 환경 아래 있었더라면 그들이 결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행한다. 오늘날 고통과 비난이 무서워서 자기의 신앙을 숨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재판정에서 베드로가 행한 것처럼 실제로 자기의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심문에 대하여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분에게 퍼붓는 잔인한 욕설을 듣고 그분이 당하는 학대와 고통을 보고 그의 마음은 몹시 슬프고 괴로웠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그가 놀라고 분개한 것은 예수께서 그 같은 취급을 당하고 계심으로 그분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치욕을 안겨 주고 계신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기 위하여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들의 얼토당토 않은 조롱에 가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는 거짓을 행하고 있었으며 태연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그의 주님께 퍼붓는 욕설을 듣자 분개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소망, 712)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그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대를 시인할 것이다. 그대는 세상에서 나의 증인이며 나의 은혜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이 나도 하늘에서 그대의 대표자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의 결함이 있는 품성을 보지 아니하시고 나의 온전함으로 옷 입은 것을 보신다. 나는 하늘의 축복을 그대에게 전하여 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를 위하여 바친 나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은 자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자라는 시인을 받을 것이다.”(소망, 357)

“베드로, 그는 재판정에서 그분께서 굴욕을 당하실 때 그분을 부인하였다. 몇 시간 전만해도 그는 감옥이든 죽음이든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말로 매우 단호하게 자기 주님께 장담했었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 자만심에 차 있었던 나머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몰랐던가! 그의 주님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하는 환경 속에 얼마나 신속히 빠져들어갔던가! 그는 열렬한 기도로 그분과 함께 깨어 있었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재판정에서 그 사람의 제자 중 하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부인했다. 세번째 비난을 당하게 되자, 그는 저주와 맹세로 자기의 부인을 강조하였다.”(목사, 267)